103화 열다섯 번째 투자 성공 - 유럽을 털다
<102>
“대표님, 괜찮으세요?”
조관형 상무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쳐다봤다.
그러나 나는 힐끔 쳐다본 뒤, 다시 주문 버튼을 넣었다.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창에선 번개같이 반대 주문이 들어가고 있었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타다다다닥!
그 순간.
아주 빠르게 다시 매수 주문이 들어갔고.
차트를 쫓다가 다시 매도 주문들을 일제히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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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잘 되고 있긴 하다.
그래서 내 심장은 불안함보다는 흥분하여 미친 듯이 뛰고 있다.
하지만, 아랫배에 힘을 꽉 주고서.
목에서 터져 나올 것만 같은 그 함성들을 억눌렀다.
‘조금만 더 참자!’
사실, 내가 여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호텔에서 이런 투자를 전개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단지 이번 여행은 순수한 여행 목적이 컸는데.
투자 목적이 갑자기 커져 버렸다.
그러나 한번 투자를 시작한 이상, 절대 멈출 수가 없다.
다만, 내가 짜둔 각종 프로그램들.
그 프로그램들이 한남동 집과 회사 오피스 컴퓨터에 있다 보니.
이곳에서 접근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 나는 직접 주문 혹은 예약 주문 형식의 수동 매수를 진행 중인데.
갑자기 빗발치기 시작하는 매수·매도의 격전 중에서.
그저 손가락으로 전투를 하려고 하니 이게 절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벌인 전투에서 절대 물러설 수도 없다.
물러났다간.
내가 가진 모든 유럽 자산을 한꺼번에 다 날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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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
그때부터 쉴 새 없이 포지션 청산과 새로운 주문들이 오가는 사이.
점점 더 내 계좌 잔고가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걸 잠시라도 즐기며 여유를 부릴 틈이 없다.
0.93초.
0.57초.
0.23초.
0.01초.
빨리 청산해야 한다!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점점 숨이 막혀···.
하지만 꿀꺽, 꿀꺽.
계속 마른 침을 삼키며.
계속 집중했다.
한편, 헝가리발 충격이 오스트리아 선물 시장을 관통하면서.
점점 더 거대한 도미노가 되었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팽창하는 것을 나는 가만히 지켜봤다.
그러면서 쉴 새 없이 각국 증시별 선물·옵션시장에 주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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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유럽 증시는 그 불안감이 잠시 수면 아래로 내려가 있었던 상태인데.
과거의 증시 불안 해소는 그저 미봉책에 불과했다.
활화산은 언젠가 폭발하는 법.
마그마가 끓어오르고.
용암이 활활 분수처럼 솟구치는 법이다.
특히, 헝가리 위기는 아직도 점진적인 문제의 화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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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쳤어! 유럽 시장 전체랑 싸우는 거잖아. 이게 바로 글로벌금융 재벌들의 마음이겠지.’
그러나 한번 불붙은 이상.
활활 타오르는 법.
헝가리발 충격파는 결국 오후 무렵 유럽 증시 전역을 강하게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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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증시, 연말 미궁으로···]
[유럽 증시 와르르···]
[헝가리 정부, 반박 성명 발표! 증시 혼란 가속화]
[헝가리 야당 당수 긴급 기자 회견! 정부 비난하며···]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드는 유럽 증시!
연말연시를 즐기던 휴가 중인 유럽 투자자들은 서둘러 회사로 복귀했고.
수많은 트레이더들이 선물 시장으로 다시 몰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유럽 각국 증시의 현황은 낙폭의 전주곡이 울렸는데.
엄청난 매도 폭발들이 잠시 후 각국 증시마다 우르르 쏟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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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뭣 하자는 거야!! 세로조! 로렌츠! 마탈라! 빨리 튀어 와!”
카롤로스 인터헷지 펀드의 비토리오 몬델로 이사.
그는 마치 뾰족한 칼날 속에 갇힌 듯한 느낌이었다.
이리 가지도 못하고.
저리 가지도 못하고.
그래도 찰나의 순간, 이상 동향을 확인했다.
하지만 시간을 잠깐 끄는 사이, 그 폭풍은 거세게 유럽 각국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고.
항거불능의 상황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순간적으로 봤다.
“헝가리 증시가 갑자기 급락했어!”
사실, 헝가리는 아주 위태로운 나라다.
지난 6월, 헝가리는 제2의 그리스가 될 수 있는 불안감이 확산됐고.
유럽 증시는 당시 얼어붙으며 헝가리발 악재를 두려워하며 무섭게 급락했다.
그 원인은 바로 헝가리 정부의 재정적 문제.
재정 적자가 산더미처럼 쌓였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 결과, 헝가리는 새로운 디폴트 위험 국가로 분류되었고.
당시, 유럽 각국 증시 전역에 큰 쇼크를 던졌다.
한편, 지금 그 사태가 기억이 난 비토리오 몬델로 이사.
잠시 후, 그는 각 증시 위기에 반응하며.
헷지적 투자 차원에서.
우선은 소극적인 투자부터 지시했다.
왜냐하면, 이유를 알 수 없는 거친 변동세에 대해선 섣불리 차단하거나 봉합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자칫 그 폭탄이 더 큰 폭탄이 되어 자신들한테 쏟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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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큐!! 비토리오오오!!! 지금 당장 풋을 사들여!!”
“보스! 흥분하실 게 아닙니다! 직접 대응보다는···.”
“갓뎀! 비토리오오!! 헝가리가 터졌어!! 헝가리!! 헝가리!!”
“죄송합니다. 보스.”
“서둘러 풋을 쓸어 담아! 거대한 숏 셀링(공매도)이 시작될 거야!”
비토리오 몬델로 이사는 할 수 없다는 듯 황급히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낙관적 2011년 증시를 예측했기에.
모든 것들이 갑자기 뒤틀리자, 큰 혼란이 왔다.
그 벼락같은 변동세 때문에.
잠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혼미한 상태까지 다다랐다.
아마 다른 투자사들도 마찬가지일 터.
그러나 사람이란 게 경험 효과가 너무 크다.
이미 그리스발 대형 위기와 헝가리발 대형 위기를 겪은 바가 있어.
다들 똑똑한 머리보다 우둔한(?) 몸이 반응하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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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다.
모두가 움직일 때 같이 움직인다면 적어도 크게 무너지진 않을 터.
잠시 후, 그는 풋 포지션에 대한 집중적인 매수를 단행했는데.
실제 그때부터 각 증시로 엄청난 자금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풋 옵션의 호가는 더 높이, 더 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거침이 없었다.
하필, 진원지가 헝가리였기에.
하필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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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다다다닥! 타다다다다닥!
마치 속사포같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모습.
그 모습에 조관형 상무는 놀란 듯 계속 쳐다봤으나.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어느덧 증시 종료 30분을 앞둔 시각.
현재 유럽 전역의 증시는 얼어붙으면서도 거래는 미친 듯이 불붙기 시작했다.
물론, 지수 방향은 위쪽이 아니라 아래쪽.
특히, 파생 시장은 빛의 속도로 거래가 폭발하고 있었고.
엄청난 거래 폭풍들이 발생하고 있었다.
그 폭풍 속에서 수많은 투자자들이 매수와 매도를 빛처럼 쏟아냈고.
한편, 어느덧 유럽 전역을 전염시킨 나는 거대한 바이러스 덩어리가 되어 영국증시까지 넘어왔다.
그리고 쉴 새 없이 매수와 매도 주문을 날렸다.
이때, 두 개의 노트북들이 과부하에 걸리며.
벌겋게 달아오르는 듯한.
그런 환상마저 생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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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끝났습니까?”
“······.”
“대표님!”
한편, 두 눈에 핏발이 선 나.
지금 흥분 상태다.
휴-우!
그래도 한숨을 내쉬자 눈에 힘이 좀 빠진다.
거의 보이지 않는, 초속의 속도로 움직이는 매매의 순간.
그 순간들을 쫓으며.
거래 행위를 하다 보니.
두 눈은 충혈됐고.
여기저기 눈 핏줄이 터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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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잠시 후, 다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표님!”
불안한 듯 날 쳐다보는 조관형 상무.
“전 괜찮습니다. 끝났습니다.”
“정말 끝난 겁니까?”
“네.”
“그럼 어떻게 됐습니까?”
“잠깐만요.”
욱신거리는 어깨를 몇 번 스트레칭한 뒤.
나는 곧이어 다른 것들을 물어봤다.
“혹시 중간에 유럽 기사들은 검색했나요?”
“네!”
“어떻게 나왔습니까?”
그러자 조관형 상무는 프린트해둔 수많은 기사들을 나한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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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위기 재점화···]
[유럽 증시 꽁꽁 얼어붙어···]
[연말의 저주, 위기의 유럽 증시]
[헝가리 구제금융 신청 초 읽기? 헝가리 위기 유럽을 휩쓸어···]
“···오늘 외화대출 비중이 높은 헝가리 정부의 재정 위기가 다시금 유럽 전역을 강타했다. 헝가리 선물 시장은 크게 위기감을 고조시켰으며, 그 여파는 곧바로 유럽 남부권을 넘어 유럽 증시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오늘 장중 유로화와 헝가리 포린트화의 환율은 급등했으며 동유럽권 국가들은 서둘러 환율 조정 정책들을 발표하면서 충격 완화에···.”
나는 기사들을 가만히 읽다가.
좀 심했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증시는 심리적인 것들이 다분하다.
확신을 가진 사람만이 그 증시를 휘어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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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그럼 대체 얼마나 번 겁니까?”
불안한 듯, 그러나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날 쳐다보는 조관형 상무.
나는 잠시 그를 쳐다보다가.
즉시 손짓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그러고는 룩셈부르크 증시투자 시스템을 보여줬고.
거기서 계좌 잔고를 보여줬다.
현재 룩셈부르크 통화는 유로화.
우선, 이 잔고에 있었던 돈은 대략 5백만 유로화.
이게 바로 ‘KH 룩셈부르크 투자펀드’의 자본금이다.
그러나 현재 이 잔고의 숫자 자체가 훨씬 더 커진 상태다.
한편, 조관형 상무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뒷자리 숫자부터 숫자를 읽어가다가.
어느덧 ‘1억’이라는 숫자를 소리 내어 읽었다.
“···1억 9,672만 6,880유로.”
이 시대 원화 가치로 환산한다면 무려 2,950억 원에 달하는 돈.
즉, 원금 대비하여 대략 39배의 수익이 발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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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쉽네요. 2억 유로는 채울 줄 알았는데.”
그러나 조관형 상무는 입이 떡 벌어지며 지금 얼어붙은 상태다.
그는 돈의 관념에서 순간적으로 혼란이 온 것 같은 표정인데.
사실, 내가 진행한 투자는 팀워크에 의한 정교한 시세 조종 작업이 아니었고.
그저 나는 마치 벌거벗은 몸으로 총탄이 난무하는 전장에 뛰어든 거였다.
그러나 나는 꿋꿋이 살아서 돌아왔고.
엄청난 전리품을 가득 안고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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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이제 맛있는 거 먹으러 가고 싶다. 너무 배가 고프다.’
근데 현주는 뭘 하고 있지?
박지훈 상무도 뭘 하고 있을까.
미안하게시리.
“조 상무님!”
“네?”
“박 상무님과 현주씨도 잘 있죠?”
며칠 전부터 칩거상태였던 나.
“두 분은 옆방 로얄 스위트 룸에서 잘 계십니다.”
“아, 그래요? 그럼 나가죠.”
“근데 대표님, 혹시 내일도 투자를 하실 겁니까?”
“아뇨. 더는 볼 것도 없습니다.”
내가 진행한 열다섯 번째 투자.
당분간 추가 투자는 없다.
유럽 증시가 진정되면, 그때 다시 미친 듯이 풋 옵션을 매수할 생각.
나스닥, 다우존스, 한국증시, 일본 증시, 중국 증시 등.
이쪽 역시 공략 대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할 일은 아니었다.
“조 상무님도 식사 안 하셨죠? 같이 하시죠!”
한편, 그 와중에 문득 떠오르는 여행 스케쥴 하나.
그러고 보니, 영국 런던 경매소 예약 건이 아직 유효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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