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물이 되어버린 투자자-104화 (104/138)

102화 추풍낙엽 유럽 증시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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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 내에 있는 작은 회의실.

이곳은 대여섯 명이 회의하기에 딱 좋은 크기인데.

빔프로젝트를 투사할 수 있는 장치들도 세팅되어 있다.

잠시 후, 나는 노트북을 통해 룩셈부르크 전임 대공의 사진을 빔스크린에 띄웠다.

그러고는 어제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이야기했고.

오늘 아침, 내가 받았던 붉은 인장의 레터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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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대표님! 그러니까 룩셈부르크 대공의 존재를 대표님이 우연히 인지하게 되셨고. 그 대공으로부터 룩셈부르크 시민권을 아침에 제안받으셨다? 그 말씀인 거죠?”

검사 출신인 조관형 상무.

그는 사건을 정리하면서도 당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겨우 하루 만에 내가 유럽 진출을 위한 로얄(?) 초대권을 선물 받았기 때문이다.

한편, 내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박지훈 상무.

그는 대공의 사진을 계속 뚫어지라 쳐다보다가.

잠시 후, 아주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대표님, 제가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네요! 오늘부터 저는 무조건 대표님만 졸졸 따라다니겠습니다!”

그 말에 움찔하는 현주.

순간, 나도 모르게 현주를 쳐다봤다가.

다시 박지훈 상무를 쳐다봤다.

한편, 박지훈 상무는 자세를 고쳐 앉은 뒤 좀 더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혹시 룩셈부르크에 대해선 잘 아십니까? 제가 최근에 펀드 일을 맡다 보니, 그쪽 동향을 잘 압니다.”

그러면서 그는 룩셈부르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그 설명들을 모두 들은 뒤, 조관형 상무는 간단히 사정을 파악했는데.

“그렇다면, 대표님 신상 이력도 다 파악됐다는 말이군요?”

그 말에 박지훈 상무는 즉시 동의했다.

“투자를 하는 곳은 어디든 정보력이 뛰어납니다.”

그러고는 박지훈 상무는 룩셈부르크의 다른 측면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인구 50만 명에 불과한 아주 작은 국가. 전세계 다국적 기업들이 거의 다 몰려 있죠. 이유는 세금 때문입니다. 아주 낮은 세금. 그리고 행정 절차 역시 아주 간소화되어 있습니다. 기업한테 아주 좋은 곳이죠. 다만, 시민권 부여는 아주 엄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지훈 상무는 슬쩍 날 쳐다봤다.

“근데 지금까진 룩셈부르크가 유럽연합의 지지를 받고 있어 미국 측의 견제가 힘들었지만, 앞으론 변수가 있습니다.”

변수?

무슨 변수?

“결국, 모든 이슈의 시작은 돈 문제입니다. 미국 굴지의 기업들이 룩셈부르크로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는 상황이고. 이런 기업들의 수익에 대해선 미국이 세금을 거둘 수가 없죠. 미국 입장에선 무척 난처할 겁니다. 세계 최강의 미국은 반드시 룩셈부르크를 향해 견제구를 던질 겁니다.”

그래서 나는 질문을 던졌다.

“그럼, 조세회피처와 룩셈부르크의 차이는 뭘까요?”

“비슷합니다. 다만, 룩셈부르크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금융산업 중심지이고 국제적 위치도 아주 높습니다. 그래서 룩셈부르크를 통한다면, 금융을 넘어서, 유럽의 정치, 문화까지 관통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아는 것보다도 더 많이 조사했던 박지훈 상무.

그 덕분에 나는 머릿속이 더 명쾌해지는 것 같았다.

확실히 좋은 찬스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현주씨, 점심때가 다 됐는데. 우리 나가 보죠. 대공을 찾아가 다시 한번 이야기를 나눠보죠.”

시민권 등 프리패스가 주어지는 상황.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두 분 상무님! 혹시 법적 문제 없이 룩셈부르크로 자금을 끌어올 수 있는 방안과 얼마나 빨리 자금을 끌어올 수 있는지, 확인 좀 부탁 드립니다. 아마 박 상무님께서도 확인해 두시면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현주씨도 룩셈부르크 시민권 확보 등이 가능할 겁니다.”

“네? 현주도요?”

박지훈 상무는 무척 놀란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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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크루즈선이 곧 게이랑에르(Geiranger)에 도착한다는 선내 방송이 들려왔다.

이 작은 도시는 유네스크 세계 자연 유산에 포함된 세븐 시스터스 폭포가 있는 곳으로 유명한데.

그러나 나는 이 관광지에 대해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나는 무척 바빠졌기 때문이다.

<101>

그리고 그로부터 대략 한 시간 뒤.

나는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오던 대공을 마침내 찾을 수 있었고.

즉시 카페로 이동해서 우리는 30분가량 한담을 나눴다.

그러고는 인사를 마친 뒤.

현주와 함께 나는 그 카페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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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주씨, 어떻게 보세요?”

“음. 어제와 다르게, 그냥 변덕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어제보다 호기심이 더 커진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대화를 했고, 우리가 얻은 게 있지 않습니까?”

“제 시민권요?”

“네. 잘 됐죠. 시민권자 혜택은 상당히 많다던데. 더군다나 룩셈부르크는 이중국적을 인정하는 나랍니다.”

“하지만 한국이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죠.”

“그래서 시민권 제안은 당장 수락할 필요가 없죠. 영주권으로 대체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 어떻게 하실 건가요?”

“우선, 초스피드로 영주권부터 발급받고. 발급받는 즉시, 룩셈부르크 법인부터 만들 생각입니다. 법인 등록 절차가 간소해서, 조세회피처 페이퍼 컴퍼니들처럼 금방 등록이 될 겁니다.”

그렇게 대화를 하면서.

우리는 앤디 볼턴이 머물고 있다는 객실을 잠시 후 방문했다.

그곳에서 앤디 볼턴으로부터 영주권 발급 절차에 필요한 서류들을 안내받았고.

필요 서류들이 준비되면.

예외적 기준에 따라 영주권 발급 신청을 즉각 처리하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때부터 서류 준비는 착착 진행되었다.

각종 신청서들을 직접 작성했고.

재정 관련 서류는 크루즈선 예약 당시에 받아놓은 영문 계좌증명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신분증 사진 등은 금방 이곳에서 해결되었고.

건강과 관련된 자료 제출은 면제되었다.

그렇게 서류 준비를 마친 뒤, 저녁 무렵 그 서류들을 전달했는데.

그로부터 이틀 뒤.

크루즈선이 어느덧 노르웨이 에이드피오르드(Eidfjord)에 도착했을 때.

앤디 볼턴은 갑자기 내 객실로 찾아와 서류를 건넸다.

현주와 나.

우리 두 사람의 영주권 발급 신청이 통과되었다는.

프린터로 인쇄된 룩셈부르크 정부의 증명서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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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며칠 뒤.

크루즈선은 하루 내내 북해를 가로질러 나아갔는데.

맹렬하게 불어오는 차가운 바닷바람 속.

그리고 사방으로 펼쳐진 망망대해 속에서.

크루즈선은 북해를 계속 가로질러 갔고.

우리는 최종 목적지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향해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한편, 그 시간 동안.

나는 두문불출하며 무척 바빠졌는데.

조관형 변호사가 내 옆에 머물며 계속 날 도와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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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간이 흘러, 드디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도착한 뒤.

우리는 크루즈선에서 내렸고.

암스테르담에서 며칠을 보낸 나는 ‘페이퍼 컴퍼니’나 다름없는 룩셈부르크 현지 법인인 ‘KH 룩셈부르크 투자펀드’를 통해 이제 본격적인 유럽 투자를 시작하게 되었다.

모든 일들은 정말 전격적으로 진행된 상태인데.

가장 먼저 일차 투자 목적지는 국내 증권사의 해외투자시스템으로선 아직 접근하기가 힘든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 유럽권 내 중소형 선물 시장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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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특별히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을 노리는 이유가 있습니까?”

현재 나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증권거래소를 통해 지수옵션 계약에 대한 매집을 이어 나갔는데.

이때, 조관형 상무는 눈치껏 질문했고.

나는 잠시 후 대답했다.

“규모는 작긴 하죠. 하지만 관심이 덜하기 때문에, 매집을 마칠 때까지 크게 주목받지 않고 휩쓸어버릴 수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선 그게 장점입니다.”

현재, ‘KH 룩셈부르크 투자펀드’의 자본 규모가 상당히 작은 편인데.

그렇다고 내가 한국에 있는 자산을 마음대로 유럽으로 옮길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해서 서서히 위로 저 위로 치솟아 오를 계획이다.

“대표님, 근데 부다페스트 증권거래소에 거래하는 종목들 자체가 상당히 숫자도 작네요?”

불과 40개, 50개밖에 안 되는 주식 종목들.

그러다 보니 거래소 외형을 키우기 위해, 회사채와 투자펀드들에 대한 거래도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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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상무님! 제법 매집은 된 것 같은데, 이제 오스트리아와 체코 증시로 넘어갈 겁니다.”

잠시 후, 나는 유럽 중부, 동부, 남동부 지역을 대표하는 오스트리아 빈 증권거래소 외에도 오스트리아 선물옵션거래소(OTOB)를 중심으로 다시 투자를 진행했다.

또한, 한 번씩 체코 프라하에 위치한 프라하 증권거래소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지 주가지수의 변동성에 대해서도 주목했는데.

물량 매집 단계이다 보니, 호가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괜찮은 거래물량들이 나오면 무조건 쓸어 담았다.

그리고 바로 그 시각.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주 밀라노.

이탈리아의 상업, 금융, 패션의 도시인 이곳 밀라노는 자동차, 금속, 화학, 기계업이 번성하고, 금융업도 상당히 번성한 곳이다.

한편, 이탈리아 대형 헷지 펀드, ‘카롤로스 인터헷지 펀드’의 본사가 밀라노 Parco Nord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펀드의 실무이사인 비토리오 몬델로 이사.

40대 중반의 나이인 그는 오늘 무척 한가한 듯.

데스크 위에 놓인 거울을 쳐다보며.

자신의 구레나룻을 한참 만지며 시간을 때우다가.

이내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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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 Mio(맙소사)! 오늘은 시간이 잘 안 가.”

이탈리아 남자답게 아주 잘 생긴 중년의 얼굴.

윤기가 쫙 흐르는 듯한 청색의 정장은 그의 외모와 무척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하하, 이 정도면 충분해.”

사실, 그에겐 달콤한 저녁 약속이 있다.

그리고 그 저녁 시간을 애타게 기다리며.

설렘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오늘 저녁, 산토리아 밀라노 레스토랑에서.

며칠 전 우연히 만난, 아름다운 바텐더 모니카를 만나기로 되어있는데.

“하! 나의 모니카! 하하하, 하하하.”

혼잣말까지 하며 즐겁게 웃다가.

한 번씩 휴대폰을 쳐다보고.

또한, 데스크 위에 설치된 수많은 증시 모니터들을 묵묵히 쳐다보기도 했다.

그러나 연말 시즌이라 증시는 특별한 변화가 없다.

유럽 증시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지나가며, 무척 조용한 편인데.

지난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날.

영국 FTSE지수는 대망의 6천 포인트를 찍었고.

긴 크리스마스 휴가가 끝난 뒤.

오늘 12월 29일 장이 시작된 이후, 큰 폭의 등락 없이 증시는 보합세로 나아가고 있다.

특히, 그리스발 충격과 헝가리발 충격이 다소 해소된 상태.

두 나라의 향후 디폴트선언 확률은 현시점에선 무척 낮은 편인데.

결국, 유럽 장세는 한동안 소폭 등락과 보합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2010년은 유독 힘들었지.’

그리고 한동안 느슨해질 타임.

선물 흐름도 한동안 지지부진해질 것이고.

각 유럽 증시 지수선물·옵션 역시 한동안 큰 변동세를 기대하긴 힘들 것이다.

“평화는 사랑스럽지. 모니카는 더 사랑스럽고.”

비토리오는 이태리 노래까지 흥얼거리다가 잠시 후 모니터들을 다시금 쳐다봤다.

역시 변화가 없다.

영국증시, 프랑스증시, 이태리 증시, 포르투갈 증시 등 전반적으로 유럽 증시는 무척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데.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뒤.

생각지도 못한 이상 징후가 갑자기 모니터에서 잡히기 시작했다.

규모가 너무 작다 보니.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던 곳.

그런데 그 갑작스러운 변화가 헝가리 선물 시장에서 시작되어, 오스트리아, 프랑스, 독일 선물 시장 등으로 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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