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전설의 투자자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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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우리는 승선 수속을 마친 뒤 드디어 크루즈선에 승선했다.
한편, 우리랑 같이 승선하던 어느 금발 머리의 남자와 어느 아름다운 북유럽의 미녀.
수행원들도 없이 두 사람은 단둘이서 베르겐 시내를 구경한 듯 보이는데.
잠시 후, 그들이 크루즈에 오르자, 주변 승무원들은 일제히 그 금발 남자를 향해 무척 격식있게 인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금발 남자는 그런 인사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 조용히 그 여자와 함께 객실 쪽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쳐다보던 나는 주변 승무원한테 슬쩍 물어봤다.
“혹시 저 금발 남자는 누굽니까?”
북유럽 출신답게 체격이 무척 좋은 승무원들.
그중의 한 명이 친절하게 내 질문에 대답했다.
“카를 데 하이덴 마리찰라르 백작이십니다.”
아, 귀족이었구나.
“스페인 귀족인가요?”
“네.”
너무 쉽게 만나게 된 유럽의 젊은 귀족.
이때, 신기해하는 눈빛들이 내 주변에서 흘러나왔다.
조관형 상무는 무척 신기해했고.
박지훈 상무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인들에게 유럽의 귀족은 다소 생소한 개념이 아닌가.
“자! 가시죠.”
잠시 후, 우리는 각자 배정된 방에 짐을 풀게 되었다.
나를 포함한 박현주, 조관형 상무, 박지훈 상무는 각각 1인 1실을 쓰게 됐고.
이때, 경호원들은 3인 1실 혹은 2인 1실을 쓰게 됐는데.
여성 경호원인 강민정만 어쩔 수 없이 1인 1실을 쓰게 되었다.
“대표님, 이 방은 샅샅이 확인했으나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잠시 후, 김성태 팀장은 아주 넓은 내 방에 대해서 도청 등 보안 검색을 마쳤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들이 모두 끝날 무렵.
노크 소리와 함께 이번 크루즈 여행에 도움을 줄 전속 버틀러가 드디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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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 영광입니다! 저는 욘 외이가르덴입니다. 앞으로 ‘욘’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사실, 이런 ‘Sir’라는 경칭은 준남작 혹은 기사 작위에 대한 경칭인데.
여기선 객실 VIP 손님에 대한 경칭의 의미로써 남자를 ‘Sir’로 지칭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곳 손님인 여자들도 사회적 위치가 높다 보니, 귀족적 칭호에 준하는 ‘madam’ 혹은 ‘lady’ 등으로 칭한다고 했다.
한편,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는 그는 무척 공손한 태도를 견지했는데.
파란 눈의 북유럽 남성의 특징인 듯 금발이면서도 덩치가 좋고 무척 잘 생긴 모습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불편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주십시오. 그리고 혹시 지금 일행들과 같이 움직이실 겁니까?”
“아, 우선은 같이 움직일 생각입니다.”
“그럼, 제가 다른 버틀러들과 조율해서 일행분들을 부르겠습니다.”
이번 크루즈 여행 중에 버틀러는 총 3명을 지정했는데.
나한테 한 명.
박지훈 상무한테 한 명.
박현주한테 한 명.
총 3명이었다.
그리고 좀 더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려와 문을 열자, 버틀러 욘과 함께 다른 버틀러들이 보였다.
한편, 뒤에 서 있는 박현주의 모습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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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현주씨!”
나는 얼른 밖으로 나왔다가.
이내 눈이 약간 커지고 말았다.
폭이 넓은 프로방스 모자를 쓰고 있는 박현주.
새카만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모아 탐스럽게 어깨 앞쪽으로 흘러내린 모습인 그녀.
순백의 원피스도 입고 있는데.
다소 깊게 파인 옷 때문에 쇄골이 훤히 드러나 있고.
허벅지 바로 아래, 늘씬한 다리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저렇게 입으면 춥지 않나?’
순간, 떠오르는 생각은 바로 그거였다.
그러나 이내 놀랍다는 듯 나는 그녀를 다시 쳐다봤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소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 그녀.
회사원으로서 그녀의 단정한 이미지에 익숙했던 나에겐 조금 당혹스러운 변화였다.
“괜찮으세요? 혹시 제가 외투를 좀 가져올까요?”
그러자 박현주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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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대표님! 선체 안은 온도 컨트롤이 잘 되고 있답니다. 조금 더울 수도 있다고 하고.”
조관형 상무였다.
“그리고 대표님! 저희는 좀 따로 움직일까 하는데 혹시 괜찮겠습니까?”
그러면서 조관형 상무와 박지훈 상무는 같이 움직이려고 했고.
잠시 생각하다가 나는 경호원들을 즉시 나누어 배정했다.
그리고 그 무렵.
드디어 크루즈선의 출항을 알리는 듯.
부우우우우웅!
부우우우우웅!
부우우우우웅!
요란한 소리들이 밖에서 들려왔다.
그러고는 잠시 선체가 슬쩍 흔들리는 듯했으나.
이후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다만, 복도 한쪽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니.
크루즈선은 어느새 물살을 가로지르며 스으윽 나아가고 있었다.
바다 위의 낭만.
크루즈 여행!
그게 시작되는 낭만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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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주씨, 우리도 가시죠.”
잠시 후, 나는 박현주와 함께 움직였다.
이때, 버틀러 욘과 김성태 팀장, 강민정 경호원이 우리를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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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 저기가 오페라 홀입니다. 오늘 밤 9시에는 저곳에서 베르디 오페라 공연이 시작되는데, 공연 스케쥴은 제가 정리해서 가져오겠습니다.”
객실 라인에서 벗어난 우리는 대형 홀이 있는 공간으로 들어섰는데.
전체 시설 자체가 전반적으로 화려했다.
역시 승선료가 비싼 만큼 비싼 이유가 있는 법.
선체 내에는 오페라 홀, 콘서트 홀, 아트 홀, 클래식 홀 등, 각각 기능에 맞춘 홀들이 곳곳에 있었고.
최고급 쉐프들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각종 메뉴별 레스토랑들이 선체 한 층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들 레스토랑에 대한 이용은 무료였고.
승객들은 각종 시설 이용과 관람이 무료였다.
다만, 주류와 관계된 것은 개인적으로 추가 지출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저긴 카지노입니다. 만 18세 이상 누구나 입장이 가능하죠. 그리고 그 옆에 있는 곳이 파티장인데, ‘그란데 마나··· 달 시엘로(위대한 신의 선물)’ 일종의 사교 클럽입니다. 밤 10시부터 오픈되고, 새벽 6시까지 운영됩니다. 만 18세 이상 입장이 가능하고, 칵테일 등 모든 주류와 음식이 저곳에선 무료입니다. 밤늦은 시각, 유명 배우, 모델들이 ‘그란데 마나 달 시엘로’를 많이 찾고 있습니다.”
“그럼, 귀족들도 저길 많이 찾나요?”
버틀러 욘에게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저 파티장은 주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고. 근엄하신 분들은 밤 8시에 개장되는 ‘보르본 도나티앵 클럽’으로 많이 모입니다.”
보르본 도나티앵 클럽?
“그럼 거긴 귀족들만 가는 곳인가요?”
“아뇨. 사업가분들도 많이 찾다 보니, 정치, 문화, 경제, 역사 등 여러 이야기들이 밤늦게까지 쭉 이어지기도 합니다.”
고상한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확실히 젊은 계층이 모이는 곳과 분위기가 확 다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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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쪽은 피트니스 센터와 실내 수영장입니다. 실외 수영장은 겨울 기간 동안 운영하지 않아, 이곳이 유일한 수영장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실내 수영장도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이쪽 수영장은 가족 단위에서 즐길 수 있는 곳이고 자정까지만 운영이 됩니다.”
그러고는 반대편도 가리켰다.
“반면, 이곳 ‘아스가르드’ 수영장은 밤 9시부터 새벽 6시까지 운영되고, 수상 파티가 밤새 벌어집니다. 그리고 이곳 천장 일부가 야간에 잠시 오픈이 되는데, 약간 춥긴 해도 별빛이 우르르 쏟아지는 그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순간, 박현주는 두 눈을 반짝거렸는데.
누가 봐도 그 표정이 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주씨, 우리 밤에 와서 한번 볼까요?”
“대표님, 지금 약속한 거예요!”
갑자기 목소리가 커지는 현주.
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의 표정은 단번에 밝아졌다.
“그럼, 우리 안에 들어가서 잠깐 보죠.”
아직 개장하지 않았으나 수영장은 언제든 구경할 수 있어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내 놀란 듯 좌우를 정신없이 쳐다봤다.
마치 베네치아를 연상케 하는 드넓은 수영장의 모습.
다이빙 장소로도 쓰일 수 있는 긴 다리 조형물과 그 아래쪽은 무척 수심이 깊어 보였다.
칵테일 바도 여러 개 있었고.
파라솔과 썬베드 공간들도 쭉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때.
버틀러 욘이 갑자기 자신의 손목시계 알람을 확인하더니 우리한테 다가와 외쳤다.
“Sir! 석양이 곧 질 것 같은데, 혹시 갑판으로 나가서 보시겠어요?”
석양?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벌써요? 3시밖에 안 됐는데?”
“아, 오늘 일몰 시각은 오후 3시 30분입니다.”
나는 박현주를 쳐다봤고.
이때, 박현주도 날 쳐다봤다.
아차! 여긴 노르웨이 바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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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잠시 후, 우리는 석양이 지는 바다를 보기 위해, 서둘러 크루즈 실외 갑판으로 나갔다.
이때, 자신의 방에 잠시 들렀던 박현주는 가벼운 외투를 입고서 나왔는데.
그럼에도 북유럽의 차가운 바닷바람이 우르르 밀려들자, 박현주의 표정은 이내 이상해졌다.
“현주씨, 춥죠?”
“아, 아뇨. 괜찮아요. 견딜 만해요.”
그러나 휘이이잉!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은 흩날렸고.
머리를 숙이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내 쪽으로 바짝 붙었다.
“그냥 선체 안으로 들어갈까요?”
그러나 박현주는 계속 괜찮다고 했다.
조금 후에 시작되는 해 지는 모습.
그 석양 포인트를 절대 놓칠 수가 없기 때문인데.
그러나 박현주는 점점 얼굴이 얼어붙고 있었다.
지금 입고 있는 외투가 문제가 아니라.
그녀가 입고 있는 얇은 드레스가 문제였다.
한 번씩 바닷바람이 맹렬하게 지나갈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며 몸을 부르르 떠는 박현주.
“그냥 이거 입으세요!”
나는 얼른 내 정장 상의를 벗었다.
그러고는 박현주의 어깨를 감쌌다.
“좀 괜찮죠?”
“아, 감사합니다. 대표님. 근데, 대표님은 안 추우세요?”
조금 나아진 듯 그녀의 표정이 풀렸고.
박현주는 고개를 들어 날 쳐다봤다.
“현주씨, 전 괜찮아요. 진짜 견딜 만해요.”
내가 그렇게 말하던 중.
찰나, 우리의 두 눈이 자연스럽게 마주쳤는데.
그런데 그때.
갑자기 우우웅! 하는 듯한 작은 소용돌이 같은 바다 돌풍이 갑판으로 밀려 들어왔다.
내 정장 상의는 갑자기 바람에 격렬하게 반응하며 펄럭거렸다.
파락! 파락!
그 순간.
큰일이다!
눈앞에 깜짝 놀란 듯한 박현주의 모습.
그녀가 돌풍에 놀라, 금방 그 정장 상의를 놓칠 것만 같았는데.
반사적으로 나는 황급히 그녀의 어깨를 두 팔로 감쌌다.
그리고 잠시 후, 작은 돌풍이 저 멀리 사라졌고.
그제야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나는 물러서다가.
그리고 바로 그때.
다시 밀려든 거친 돌풍!
할 수 없이 나는 다시 박현주의 어깨를 꼭 감쌌다.
무슨 일인지 돌풍은 그때부터 계속 이어졌고.
그 사이 석양은 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석양이 토해낸 붉은 노을이 꼭 껴안은 듯한 우리 두 사람을 서서히 감싸기 시작했는데.
마지막 석양은 한순간 강렬한 빛을 쏟아냈고.
그러고는 저 너머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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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허. 이자벨. 저 사람들 좀 봐! 얼마나 좋은 시절인가. 우리도 젊었을 때 저럴 때가 있었는데···.”
“대공. 너무 춥지 않은가요? 안으로 들어가시죠.”
“아직 견딜 만하네.”
한편, 노인의 모자가 돌풍에 흐트러지자.
모자 밑의 가발이 슬쩍 치솟았고, 노부인은 얼른 모자를 잡아당겨 가발의 위치를 교정했다.
“어서 들어가시죠. 감기 걸리시면 어떡하시려고요?”
잠시 후, 노부인은 다시 걱정했고.
노인은 젊은 커플의 모습을 내내 쳐다보다가.
입가에 미소를 보인 뒤 이제 고개를 끄덕였다.
“갑시다. 이자벨. 석양은 충분히 봤으니까.”
노인은 슬그머니 노부인의 어깨를 감쌌고.
그렇게 그들은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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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재잘재잘.
선내, 어느 아름다운 카페.
선내로 돌아온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앉아, 차가워진 몸을 데우기 위해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그러고는 대화가 시작됐는데.
이때, 박현주는 유난히 말이 많아졌다.
나 역시 이전보다 말이 많아진 것 같다.
그렇게 정신없이 대화하던 사이.
어느덧 시간이 꽤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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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씨! 이제 옷 갈아입고 식사하러 가죠. 유럽 귀족들은 그 레스토랑에 많이 간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버틀러가 하는 말이 저녁 식사 드레스 코드가 거긴 엄격하다고 했어요.”
“그럼 저도 옷 바꿔 입고 가야겠네요.”
귀족들을 바로 코앞에서 볼 기회인데 절대 놓칠 수가 없다.
우리는 다시 객실로 향했고.
잠시 후, 우리는 다시 만났다.
어느새 무척 화려한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있는 박현주.
그녀는 아까 전의 소녀다운 모습에서 벗어났고.
무척 도도한 자태로 밖으로 나왔는데.
나도 모르게 작은 탄성이 새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박현주는 역시 드레스가 잘 어울리는 여자다.
이런 드레스를 입으면 저절로 품격이 나오는데.
그 바람에 내가 좀 어색해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서 걷기 시작했고.
갑판의 일 때문에 우리는 확실히 가까워진 것 같았다.
한편, 그녀는 무척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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