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증시 전쟁 카운트다운
<93>
“···민정씨, 오늘 수고 많았어.”
“네. 선배님도 수고 많았어요.”
“혹시 맥주 한잔할까?”
운전석의 김성태 팀장.
그는 넌지시 물어봤다.
그러나 강민정은 고개를 젓는다.
“피곤해요.”
“진짜 피곤한 거야? 아니면, 피곤한 척하는 거야?”
조수석의 강민정은 김성태 팀장을 힐끔 쳐다본 뒤 자신의 백팩 가방을 챙겼다.
“그만 내릴게요.”
회사에 잠시 들러, 옷들을 모두 갈아입었고 샤워까지 마친 그녀.
그녀의 긴 머리카락엔 샴푸 향과 습기가 아직 남아 있다.
평소에 늘 머리를 뒤로 묶고 다니던 그녀는 물기 때문에 머리를 그렇게 풀어놓은 건데.
그 때문에 여성적인 면모가 더 짙어지고 있었다.
한편, 김성태 팀장.
그는 아쉬운 표정을 짓다가 오른손을 들고서 손을 흔들었다.
“민정씨. 조심해서 가.”
“선배님도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너무 과속하시지 마시고요.”
과속이라는 말에 씩 웃는 김성태 팀장.
한편, 강민정은 차에서 내린 뒤, 백팩을 등에 메고는 일정한 보폭으로 걸어갔다.
너무 키가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다.
겉으론 다소 왜소해 보이지만.
자기가 가진 힘 이상을 쓸 수 있는 여자.
남의 힘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때, 김성태 팀장은 차를 바로 출발하지 않고 강민정의 뒷모습을 계속 쳐다보다가.
마침내 엑셀을 밟았다.
급출발을 하듯.
김성태 팀장의 차는 그렇게 출발했고.
마침 아파트 1층 현관으로 들어서던 강민정은 그 순간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빠르게 사라지는 차량의 뒷모습을 잠시 쳐다보다가.
조용히 현관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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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님! 지금 퇴근하는 길입니다. 네! 아까 보고드린 대로 오늘 사건은 갑자기 발생한 일입니다. 네! 자정까지 리포트 작성해서 결재 올리겠습니다. 네. 그리고 아까 보고드린 대로, 민정씨가 아니었다면 오늘 큰일 날 뻔했습니다. 네. 맞습니다. 확실히 그쪽 출신은 좀 다르긴 다릅니다. 국내 경력은 확실히 제가 더 좋은데··· 네! 동의합니다! 부장님 말씀대로 상황 판단력은 민정씨가 훨씬 더 빠릅니다···.”
잠시 후, 김성태 팀장은 전화를 끊었다.
부으응!
이때, 엔진이 약간 굉음을 냈고.
속도는 더 빨라졌다.
어느덧 제설 작업이 끝난 시간.
영하 7도까지 떨어진 한파 속.
도로가 얼어붙을 수도 있으나.
제설 작업 과정에서 뿌려놓은 화학 약품들 때문에 쉽게 얼지는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밤 9시가 다 되어가자, 통행량은 전날보다 더 줄어든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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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김한수 대표도 정말 대단한 사람이란 말이야. 상황을 보자마자 구하겠다고 그렇게 뛰어든 걸 보면 말이야.’
김성태 팀장은 김한수 대표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해 봤다.
그가 그렇게 빨리 움직이지 않았다면, 승객들을 제시간 안에 밖으로 이송하지 못했을 것이다.
김한수 대표 때문에 승객들은 빠르게 구조됐고.
강민정 때문에 김한수 대표는 구조 완료의 그 순간까지 무사할 수 있었다.
‘확실히 대단한 여자야.’
김성태 팀장의 이마엔 다시 주름이 잡혔다.
놀라운 사실은 구조 내내 통 보이지 않던 강민정.
그녀는 버스 중앙 좌측 측면 쪽으로.
사람 한 명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도 뚫어놨다는 것이다.
버스가 갑자기 폭발해 피할 데가 없을까 봐.
도피 통로까지 그렇게 확보해 뒀던 것이다.
‘머리가 확실히 좋아. 근데 사람이 너무 무덤덤해서··· 아! 신호 바꿨다.’
잠시 후, 김성태 팀장은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끼익!
교차로 라인 앞,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차를 정확하게 멈춰 세웠다.
어느덧 신호등엔 붉은 사인이 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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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장 PD님! 좀 전에 유튜브에 뜬 거, 그 동영상 혹시 아세요?”
“무슨 유튜브? 유튜브에 무슨 재밌는 거 떴어?”
야외 촬영을 마치고 복귀한 장태우 PD.
몇몇 장비들을 한쪽으로 밀며 주변 정리를 마치던 그는 털모자와 목도리를 벗은 뒤 미간을 찡그렸다.
호기심보다는 오늘 일들이 너무 많아 피곤하기 때문에, 직접 유튜브를 찾아볼 생각은 전혀 나지 않았다.
“김 작가? 대체 뭐가 떴다고?”
장태우 PD가 마침내 독촉하자, 김미경 작가는 귀찮아하는 그의 얼굴에서 약간의 관심이 생긴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깜짝 놀라실 텐데요.”
“뭐가 그렇게 재밌대? 재미없으면 죽을 줄 알아. 핸드폰 줘봐.”
“PD님은 핸드폰 없으세요?”
“차에 두고 왔어.”
다시 손짓하자, 할 수 없이 김미경 작가는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근데 뭐야 이거? 이거야?”
“네. 그거요.”
장태우 PD는 이때 뜻밖의 제목에 잠시 멈칫했으나.
잠시 후, 동영상 시작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거친 소리들이 우웅거리며 들려왔는데.
바람 소리도 있었고.
크락션 소리도 있었고.
누군가의 고함 소리.
비명 소리.
울부짖는 소리.
급하게 외치는 소리.
온갖 소음들이 가득했다.
그러나 장태우 PD는 그 소음들과 상관없이 계속 집중했다.
“어, 어? 으! 으와아!”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신음 같은 비명을 지르다가 그는 입이 떡 벌어졌다.
콰아앙! 굉음들이 연거푸 들렸고.
순간, 잿가루가 날렸다.
시커먼 먼지와 함께.
나사와 파편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리고 사방에서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가 요란했는데.
장태우 PD는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안경 위로 치켜뜬 두 눈.
지금 그의 두 눈은 놀람과 함께 요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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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대박이죠?”
“어. 어. 대박!”
“스케쥴 잡아주세요. 인터뷰한 거 작업해서 빨리 스토리 만들게요.”
“아니, 잠깐! 내가 먼저! 국장님 먼저 뵙고!”
장태우 PD의 큼직한 눈동자가 좌우로 빠르게 오갔다.
“PD님! 지금 바로 안 움직이면, 우리 후순위로 밀려요. 다른 방송사에서 분명히 섭외 들어갈 건데.”
“김 작가! 잠깐! 잠깐만! 누가 그걸 몰라? 그게 아니라 국장님 말이야! 사행산업 홍보하는 거라고 방송 막았잖아. 투자가 무슨 사행산업이야? 야! 김 작가! 그거 줘봐. 핸드폰!”
“······.”
“빨리 쓰고 갖다 줄게. 그리고 무조건 들어갈 거니까, 빨리 스토리 작업부터 시작해!”
SBC 방송국 장태우 PD는 황급히 사무실 밖으로 뛰어나갔고.
장태우 PD의 그런 태도가 은근히 마음에 드는 듯.
입가에 미소를 보이던 김미경 작가는 얼른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현재의 포털사이트 모습을 그녀는 좀 더 살펴봤다.
‘실검 1위, 아직도 1위네.’
김한수 동영상.
굳건하게 1위를 지키고 있었고.
사고 현장에서 사람들이 찍은 핸드폰 동영상들은 여러 블로그(blog)들과 SNS를 통해 속속 올라오고 있었다.
가장 화질이 좋은 영상은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었는데.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중이었다.
<94>
“···아, 친애하는 수석 이사님! 현재 작업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기확보된 주주명부에 근거해서 주요 주주들에 대한 로비는 진행 중입니다. GHK캐피탈 등이 보유한 사채 8천만 달러 중에서 3천만 달러어치를 현재 기확보했고. 그 외 다른 주요 채권자들에 대해선 비공식 채널을 통해 계속 접근 중입니다···.”
특히, GHK캐피탈 등이 보유하고 있는 사채는 법정 신고기한에 거의 딱 맞춰 아주 늦게 신고할 생각인데.
회사 내부 직원들까지 조종해서 회계장부에 적혀 있는 GHK캐피탈 채무 부분 중 일부분을 삭제한 상태다.
이게 바로 회계장부에는 보이지 않는 ‘우발채무(contingent liability)’로 변질될 수 있는데.
이런 게 인수 협상 과정에서 툭! 튀어나오면 인수가는 추락한다.
그리고 혼란이 발생한다.
그 혼란을 노리는 것은 나단 킴 이사가 가진 수많은 전략 중의 하나다.
잠시 후, 통화를 끝낸 나단 킴 이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노트북 화면을 잠시 쳐다봤다.
에바 가보르 이사의 ‘대강화학’ 때문에 잠시 주목하게 됐던 김한수라는 친구.
그러나 그때를 제외하곤 특별한 교차점이 없었는데.
며칠 전, 그가 갑자기 자신의 영역으로 한 발짝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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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 톡.
톡. 톡···.
검지로 데스크를 계속 치다가.
나단은 찡그린 표정으로 인터넷 기사 하나를 다시 모니터에 띄웠다.
[미래증권, 미성건설 인수전 출사표]
“···내년 초, 미래증권은 IMF 이후 12년 만에 회생절차(법정관리)를 다시 밟게 된 미성건설에 대해 본격적인 인수전 신호탄을 쏘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회사의 청산이냐 혹은 인수·합병(M&A)이냐 그 기로에 놓인 미성건설은 새로운 주인 찾기에 몰두할 것으로 보여지며···(중략)··· 따라서 미래증권은 KH투자파트너스와 협력하여 이번 인수전에서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불사하고 있다···.”
사실, 나단은 한국말을 할 수 있고, 한국어를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걸 아는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즉, 인생의 7할가량을 유대인으로서 살아온 나단.
올해 52살인 그는 유대인으로서의 삶에 무척 만족한 터라.
좀 전, 자신이 한국 글자들을 잘 읽는다는 사실에 이내 불쾌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차가운 눈으로 그 기사를 몇 번이고 더 읽은 뒤.
KH투자파트너스 김한수 대표에 대해 좀 더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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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직 우리랑 격이 맞지 않아.’
딱딱한 표정의 나단은 이내 입술을 비틀었다.
파생 시장에서 그가 큰돈을 벌어들였다고 해도.
자신이 휘두르는 투자금과 수익의 스케일을 놓고서 비교한다면, ‘김한수’라는 자는 애초에 자신의 상대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고작 몇천억 원?
한국 투자자로선 대단한 수익이고 업적일 테지만.
글로벌 수준에선 아직 까마득한 아래 수준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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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저건 또 뭐야?’
그래도 경쟁자다.
그래서 좀 더 인내심을 갖고서.
좀 더 찾아봤는데.
잠시 후, 유튜브 동영상을 틀자마자 좀 더 신경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
아무런 상관조차 없는 사람들.
도대체 국민이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소방관들과 경찰관들과 같은 공무원들에게 잡다한 일들을 일임하기 위한 것이다.
그들이 해야 할 일들을 왜 그는 자신이 직접 하려고 할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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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단은 유튜브 동영상을 끈 뒤.
다시 톡. 톡. 소리를 내며 데스크를 두드렸다.
생각은 점점 더 깊어진다.
그리고 잠시 후.
나단의 입꼬리가 다시 비틀어졌다.
‘아직 애송이야. 나이도 어리고.’
그 나이에 투자를 읽는 것은 가상하지만, 그 위로 올라서긴 쉽지 않을 것이다.
반면, 자신은 헷지 전문가인 안토니오 이사와 함께 제3의 대형 프로젝트도 준비 중에 있지 않은가.
아직 시간은 남아 있다.
그러나 카운트 다운은 서서히 시작될 터.
조만간 주요 펀드들이 중국 공략을 시작한다고 하는데.
자신을 비롯한 랜드브리지 캐피탈 이사들도 그 대열에 서게 될 것이다.
다만, 중국 공략 전, 한국증시는 자신의 중국전 참전을 알리는 주요 신호탄이 될 것이다.
나단의 입꼬리는 점점 더 기묘하게 틀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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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18일 토요일.
한파가 다시 밀려들더니.
영하의 날씨가 다시 시작될 때.
철광석 풋 옵션 청산을 마친 나는 이번 여행 자금을 확실히 확보했다.
그리고 이번 여행 중에 사용할 블랙카드들도 서둘러 장착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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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면세 기준이 400불밖에 안 된단 말이야.’
런던, 파리 등의 경매소에서 경매 물건을 사더라도.
엄청난 세금을 내야 할 판이었고.
그 세금을 생각하니 원가보다 더 비싼 가격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뭘 어쩌겠나.
여하튼 다음 날, 드디어 출국 당일이 되었고.
우리는 이제 인천공항으로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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