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물이 되어버린 투자자-96화 (96/138)

94화 눈 내리는 날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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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유럽 여행은 어떻게 진행할까요? 몇 분 정도 같이 가실 수 있죠? 경비와 특별 수당은 제가 다 지급할 겁니다.”

한편, 김성태 팀장은 강민정 경호원의 눈치를 슬쩍 본 뒤, 잠시 후 대답했다.

“저희는 총 5개 팀 중에서 3개 팀이 같이 움직일 수 있습니다.”

3개 팀이라면 총 여섯 명의 경호원들.

나쁘지 않다.

이들은 24시간 풀로 같이 움직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조관형 변호사, 박현주, 박지훈 상무, 그리고 나.

경호원 여섯 명이 더해진다면, 총 열 명이 같이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럼, 나도 이제부턴 슬슬 준비를 해야겠어.’

출국 전까지 철광석 풋 옵션들을 정리해야 하고.

이것저것 회사 일들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대학 원서 접수도 준비해야 하고.

대강화학 일, KH투자파트너스 일도 신경을 써야 한다.

그리고 아직 이른 시기이긴 하지만.

인수를 준비 중인 회사들에 대한 프로젝트 회의도 미래증권과 더불어 진행해야 한다.

그래서 머릿속은 다시 바빠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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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민정씨, 저거···.”

“선배님, 저도 보고 있어요.”

“저러다가 곧 떨어지겠는데···.”

“지금 신고할게요!”

“어떻게 저렇게 됐을까? 아무리 미끄러졌다고 해도···.”

“신고했어?”

“네! 지금 하고 있습니다! 네! 여보세요···”

“민정씨! 좀 빨리 오라고 해! 저거 큰일인데··· 저 저 저··· 저러다간··· 하! 큰일인데!”

그렇듯 들려오는 긴박한 목소리들.

한편, 나는 눈을 감고서 이런저런 생각들에 잠겼다가 곧이어 눈을 떴다.

“혹시 무슨 일 있습니까?”

그러자 김성태 팀장은 다급히 말했다.

“저기, 저쪽 좀 보십시오!”

김성태 팀장이 손으로 가리키는 앞쪽.

정확하게는 우측 위쪽.

하얀 눈이 쌓이는 교량, 다리 쪽.

힐끔 쳐다보다가 순간 나도 모르게 두 눈이 커졌다.

너무 비현실적인 모습에 너무 놀랐기 때문인데.

거기 보호 펜스가 부서져 있고.

그곳엔 한 대의 버스가 눈길에 미끄러진 듯 아주 위태롭게 튀어나와 있었다.

엉망진창이 된 보호 펜스들.

그들은 서로 엉켜서 덜렁거리는데.

이미 하단 둔턱을 넘어서 버린 버스 쪽에서 드드득! 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이때, 칠팔 미터 떨어진 곳의 펜스들마저 뒤틀리며 교량 지반으로부터 끌려 나왔는데.

한편, 내 앞쪽, 거북이걸음으로 주행 중이던 앞선 차량들.

그곳 운전자들은 크게 놀란 듯.

창밖으로 손을 내밀며.

하나 같이 그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크게 놀랐고.

나도 모르게 눈과 입이 쩍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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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저건 방법이 없어! 다시 신고해!”

“네! 선배님!”

그런데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머리가 더 쭈뼛 섰는데.

그리고 찰나, 정신이 번쩍 들었고.

알 수 없는 기시감이 휩싸이다가.

뭔가 데자뷔를 본 듯한 아주 섬뜩한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다시 내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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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회귀라는 것은 갑자기 덩그러니 과거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두뇌로는 그 많은 사건들을 시간순으로 모두 일렬 배열한 뒤 모두 다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지금 눈앞의 모습은 너무 충격적이라.

마치 데자뷔처럼.

잊고 있던 기억들이 스르륵 재현된 것 같았고.

실제, 기억들이 갑자기 소생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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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 지금 빨리 차를 옆으로 빼세요!”

“네?”

“빨리 옆으로 빼세요!”

놀라며, 백미러를 쳐다보다가.

김성태 팀장은 즉시 내 지시에 따랐다.

차는 갓길에 거의 붙은 채 정차했고.

곧장 나는 장갑을 끼고는 황급히 차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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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쏟아지는 눈.

나는 다급해진 시선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이때, 다시금 데자뷔 느낌을 받았다.

‘근데 진짜 희한하네. 왜 저렇게 저게 강렬하게 느껴지지?’

저 사고 장면은 언젠가 내가 뉴스나 인터넷 같은 곳에서 본 게 분명한데.

물론, 회귀 전의 나는 이 사건 당시 이곳에 있지 않았다.

회귀 전, 동시간대, 나는 공장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내 주변의 시간과 공간은 함께 휘어진 듯.

나는 회귀 전과 완전히 다른 위치에 서 있었고.

순간적으로 뒤틀어진 교차점에 선 듯.

이 사건과 겹쳐지게 된 것 같았다.

다만, 내가 저 사건을 본 적이 있다 보니.

직접 사건을 눈앞에서 목격하게 되자, 마치 데자뷔 같은 형태로 더 선명하게 기억이 재현된 것 같았다.

기억이란 게 이런 식의 강한 충격에 반응하는 것 같은데.

한편, 어느새 눈들이 내 머리와 어깨에 쌓이기 시작했다.

그 차가움에 정신을 차렸고.

그리고 그때.

트트트! 크으으으! 하는 굉음과 함께.

거대한 버스가 마침내 아래로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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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앙!!

엄청난 굉음!

곧장 10m 아래로 추락해 버린 버스.

그 버스는 사정없이 지면을 때렸고.

데굴데굴 비탈진 길을 굴러가더니.

바로 옆쪽 도로의 차량들과 부딪히며 뒤엉켰다.

2차 사고.

순간, 여기저기 비명들이 난무했는데.

비현실적인 현실에 놀라며.

김성태 팀장 등도 차에서 뛰어나왔다.

찰나, 새카맣게 타버린 사고 모습이 떠오르는 순간.

나는 다급히 외쳤다.

“팀장님!! 갑시다!!”

그러고는 나는 뭐에 홀린 듯 정신없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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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퍽!

눈 속에 박히는 내 구두.

마침내 사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코끝으로 불쾌한 냄새가 진동했다.

오일 냄새였다.

그리고 버스 주변, 차량들 쪽에선 비명 소리들이 요란했고.

건너편 차량들 쪽에선 사람들이 놀란 모습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한편, 나는 거의 뒤집혀 있는 버스 문 쪽으로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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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여긴 안 열립니다!”

김성태 팀장이 외쳤다.

심하게 구겨진 버스.

한편, 버스 앞쪽 측면에는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버스는 수많은 충격에 마구 짓눌린 듯.

각 창틀은 이미 틀어져 있다.

그 때문에 대다수 측면 유리가 깨졌으나

짓눌려 있어.

사람이 나올 수가 없다.

또한, 버스 승객 대다수는 큰 충격을 받은 듯 대다수가 기절한 상태다.

특히, 버스가 10m 아래로 추락할 경우, 대다수가 사망 내지 중상일 가능성이 크다.

“이쪽을 깨고 들어갑시다!”

그러고 보면, 이 사건의 끝을 아는 것은 현재 시각 나뿐이었다.

그리고 그걸 본 이상, 나는 절대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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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만, 이럴 땐 회귀한 사람으로서 외면할 수가 없어.’

사고란 게 언제나 갑자기 발생하는 거고.

지금도 딱 그러했다.

잠시 후, 경호원들과 나는 일제히 버스 앞 유리창을 깨기 시작했다.

사실, 정면 대형 유리창엔 거미줄 같은 금이 가 있으나.

그럼에도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공구가 필요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선배님! 이쪽도 진입이 가능합니다!”

옆에서 들려온 강민정 경호원의 목소리.

나는 그쪽을 쳐다본 뒤.

앞쪽 진입은 김성태 팀장 등에 맡긴 뒤.

곧바로 거기로 뛰어갔다.

그런데 이때.

순간, 나도 모르게 멈칫했는데.

내가 그렇게 멈칫하자, 강민정 경호원은 날 쳐다봤다.

거긴 한 대의 차량 측면이 버스에 깔려 있는 상태인데.

그 버스에 짓눌린 터라.

형체를 알 수 없는 차량 조수석 쪽에선 피가 주르르 흘러나오고 있었다.

붉은 피와 뒤엉킨 하얀 눈의 적나라한 모습.

그리고 그 운전석 쪽의 남자는 하얗게 탈색된 모습으로 그쪽을 쳐다보며 서 있었다.

“대표님, 여깁니다!”

한편, 강민정 경호원의 외침에 다행히 나는 정신을 차렸고.

어느새 정리된 유리창을 통해 서둘러 진입했다.

“대표님, 그럼 저는 앞쪽 출입문 쪽을 살펴볼게요!”

이때, 바깥에선 강민정 경호원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버스 안으로 진입한 뒤 좌우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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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엉망진창이구나.’

버스 내부는 그냥 끔찍하다.

주변 차량들 때문에 거의 175도에 가깝게 뒤집혀 있는 버스.

천장은 바닥이 됐고, 바닥은 천장이 된 기형적인 모습.

그런데 그 내부 모습은 더 처참하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뒤엉켜 쓰러져 있고.

대다수가 기절한 상태다.

이리저리 부딪힌 듯 손발이 골절된 사람들도 있고.

일부는 얼굴이 피범벅이 된 상태다.

그 와중에 매캐한 냄새가 바람에 실려 내 코끝에 와 닿았고.

주변 기름 냄새도 심하게 나고 있었다.

에이씨!

나는 얼른 바로 앞사람부터 구조하려고 나섰다가.

얼른 생각을 바꿨다.

한 명 한 명 작은 창틀 사이로 실어나르다간 헛된 시간만 소모된다.

바닥에 있는 쇳덩이 하나를 주었고.

정면 유리창을 힘껏 내려쳤다.

잠시 후, 정면 유리창이 완전히 부서지자.

김성태 팀장 등이 곧이어 진입했다.

우리는 그때부터 몸을 숙인 상태에서 이송 작업을 시작했다.

“빨리 환자들을 밖으로 빼죠!”

이때부터 땀을 뻘뻘 흘리며.

정신없이 승객들을 밖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승객들을 밖으로 이송하다가.

잠시 후, 우리는 무척 당혹스러운 광경을 발견했다.

엉망진창이 되어있는 후미 쪽.

뒤틀어진 구조물들 때문에 미처 못 봤던 곳에 일부 승객들이 갇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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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으! 으으으으으!!

잠시 후, 내 근육들이 마치 터질 것 같이, 길쭉한 쇳덩이를 힘껏 밀어냈다.

지렛대 원리로 구조물을 옆으로 밀어내는 방식인데.

이때 경호원들 대다수가 힘을 보탰다.

그리고 마침내 쩌저적! 소리가 나더니.

엉킨 구조물이 좌우로 조금 벌어졌고.

이때, 나는 즉시 기어 들어가 사람들을 잡아당겼다.

그러고는 차례로 밀어내어 밖으로 보냈다.

“빨리 나갑시다! 빨리요!”

이때, 그사이 시간이 어느 정도 경과된 듯.

버스 앞쪽 측면에서 시뻘건 열기가 빠르게 퍼져 나갔고.

동시에 뜨거운 열기가 후루룩 밀려 들어왔다.

이때, 김성태 팀장은 내 팔을 잡더니 쭉 잡아당겼다.

그러고는 서둘러 김성태 팀장과 함께 뛰어서 밖으로 나오던 그 순간.

트드득! 쾅! 쾅!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눈앞으로 하얀 눈송이와 시커먼 재가 우수수 쏟아졌다.

이때, 되돌아보던 중, 나도 모르게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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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함께 밀려드는 바람.

매캐한 화염의 냄새들.

대략 10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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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이거 좀 드세요.”

고개를 돌렸다.

김성태 팀장이다.

하얀 눈들이 아직도 쏟아지는 시간.

그가 물병을 가져왔다.

잠시 후, 물을 마시고 나니, 좀 살 것 같았다.

“대표님, 근데 좀 더 도와줘야 할 것 같은데···.”

고개를 돌려 보니.

막 도착한 119구급대원들의 모습이 보였고.

앰뷸런스들도 보였다.

“네. 도와주죠.”

그때부터 다시 119구급대원들과 합세해서 환자들을 앰뷸런스에 실었고.

잠시 후, 앰뷸런스들은 차례로 환자들을 이송하기 시작했다.

한편, 여기저기서 심폐소생술(CPR)이 진행되고 있었고.

일부 환자들은 서둘러 지혈 처리가 되고 있었다.

그리고 좀 더 시간이 흐른 뒤.

사고 현장이 대략 정리되자, 그제야 우리도 거기서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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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하얗게 변해 버린 우리.

한편, 김성태 팀장의 머리카락은 온통 하얀색이었고.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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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 많았습니다!”

“대표님, 근데 엄청 용감하시던데요?”

“···아, 제가 봤을 땐 강민정씨가 더 용감한 거 아닙니까?”

“아뇨. 아닙니다. 대표님. 저는···.”

“아! 그럼, 그 이야긴 잠시 그만하고, 이제 여기서 벗어나죠. 많이 지체됐습니다.”

우리는 눈을 털어낸 뒤, 각 차량에 탑승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무려 한 시간 넘게 도로에서 시간을 더 보낸 뒤.

우리는 마침내 여의도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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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 내린 눈.

그 눈 때문에 여의도 일대는 온통 하얗게 변한 모습인데.

어느덧 해가 저무는 도심.

거의 제설 작업은 완료되었지만.

이제 심한 교통 체증이 시작되고 있다.

한편, 꽤 시간이 흐른 뒤.

샤워를 하고 옷들을 갈아입은 나는 그런 도심의 모습을 창가에서 가만히 쳐다보다가.

짧은 한숨을 내쉰 뒤.

다시 투자자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어느덧 저녁 8시가 다 되어갈 무렵.

갑자기 내 스마트폰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즉시 화면을 켜고.

발신자를 확인하던 순간, 나는 약간 흠칫했다.

강태원.

공고 친구, 강태원.

바로 그 녀석이었다.

하! 이 자식 오랜만인데.

근데 잘 지내고 있을까.

그러나 강석이한테서 사정 이야길 듣고서 거리감이 느껴지던 녀석.

그래도 통화 버튼을 누르자.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김한수! 잘 지냈냐? 야! 근데 강석이가 내 이야길 제멋대로 아주 이상하게 했다며? 인마! 나 그런 데 안 있어! 우리 사장님, 비서 출신 펀드매니저야! 저번 달에 외국계 ‘도이치DB자산운용’ 공동대표도 됐고! 야, 근데 X같다! 니가 그 김한수였다며? 야아! 존나 세상 좁다···.”

그렇게 정신없이 강태원은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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