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물이 되어버린 투자자-92화 (92/138)

90화 핵무기 03

<88>

KH투자파트너스 회의실.

쿵칭페이 홍콩 선물 투자사 대표 마빈 칭은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모든 것에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이다.

이곳은 철광석 파동을 주동한 남자가 경영하는 회사다.

그러나 회사 분위기도 이상하고, 모든 게 새것 같다.

‘창립한 지 얼마 안 됐다고 하더니, 깨끗하긴 한데. 사람들도 별로 없고. 마치 유령회사 같은 느낌인데.’

그렇다고 페이퍼 컴퍼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이곳엔 분명히 몇몇 직원들이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

공개적으로 외부 투자유치도 하고 있다.

‘설마 킴, 아니 김한수는 정말 랜드브리지 캐피탈의 하수인일까?’

그렇다면 이번 사태의 핵심도 나단 메이어 킴 이사가 아닐까.

마빈은 문득 그런 생각들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또 단정할 수도 없다.

랜드브리지 캐피탈의 유령이 그렇게 언론에 나설 이유가 없기 때문.

‘김한수 대표는 이미 한국에서 상당히 유명한 투자자야.’

이름이 알려졌다.

한국에 와 보니, 더 확실히 알 것 같다.

이미 투자 거물이 되어버린 김한수 대표.

은밀한(?) 랜드브리지 캐피탈 입장에선 그런 공개성을 띨 이유가 하나도 없지 않은가.

‘그럼···.’

정말 개인적인 능력이란 말인데.

마빈은 슬쩍 이마를 만졌다.

처음 김한수 대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자신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랐었다.

그런데 회사를 직접 찾아와서 보니, 그리고 현재의 사무실 모습을 직접 보니.

그 놀람은 점점 더 소름이 되고 있다.

점점 더 강하게 마빈의 피부에 와 닿고 있다.

‘회사 자체의 능력도 아니고 팀웍 능력도 아니고, 그렇다면 김한수 대표 본인의 능력이란 말인가.’

마치 자신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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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많이 기다리셨죠?”

잠시 후, 회의실로 나타난 남자.

그는 정장에 하얀 와이셔츠 차림이지만, 넥타이는 매지 않았다.

인상이 무척 좋은 편인데.

눈빛도 나쁘지 않다.

서글서글한 눈빛.

호감이 절로 만들어지는 그런 얼굴이다.

마빈은 그런 남자를 유심히 쳐다보다가.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갔다.

간단히 악수했고 명함도 주고받았다.

“불쑥 찾아왔음에도 만나 뵙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 대체 무슨 일 때문에 여기까지 오신지 모르겠지만,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마빈 칭 대표님이 정말 맞으신 거죠?”

마빈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뒤, 김한수 대표를 다시 쳐다봤다.

김한수 대표는 자신보다 키가 크다.

이때, 그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대표님은 홍콩에서 정말 유명하신 분이시더군요. 투자 수익도 엄청나시고. 젊은 투자사 대표들 중에서도 발군의 능력을 발휘하시는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 분이 갑자기 찾아오셔서, 저는 너무 놀랐습니다.”

아마 인터넷에서 자신을 찾아봤나 보다.

홍콩에서 거둔 성공 때문에.

자신은 수많은 인터뷰를 했고.

미국 ‘포브스’지가 선정하는 ‘30세 이하 영향력 있는 젊은 인재’에 선정된 적도 있다.

미 ‘더타임’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된 적도 있다.

그리고 즈완 그룹의 사위로 인정받기 전, 홍콩 여배우들과 수많은 염문을 뿌리기도 했다.

마빈은 씩 웃었다.

눈앞의 한국인.

사실, 실적 면에선 자신보다 더 뛰어나다.

그래서 친교 목적의 방문이었다면, 자신 역시 지금 그를 칭송하며 찬사를 퍼부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여기에 온 것은 실적 자랑을 하려고 온 게 아니다.

타인으로부터 칭찬을 듣기 위해 온 것도 아니다.

“흠! 그럼, 과한 서론은 그만하고 이제 오늘 방문 목적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때, 자신도 모르게 조금 딱딱한 말투가 흘러나왔는데.

그러자 상대는 흠칫하며 이내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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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김한수 대표는 자리에 앉아 업무 다이어리를 펼치고, 펜을 꺼냈다.

자신의 자리에 앉은 마빈은 그런 김한수 대표를 가만히 주시했는데.

그 와중에 그는 계속 머릿속으로 생각들을 이어 나갔다.

‘근데 저 사람은 과거가 특이하단 말이야.’

대학을 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불과 일 년 전, 작은 공장에서 일하던 일개 생산직 노동자였다고 한다.

단 일 년 만에 김한수 대표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 되었다.

그러나 일개 공장 노동자가 저렇게 빨리 변할 수 있나.

그 때문에 국가안전부에선 랜드브리지 캐피탈 혹은 다른 글로벌 헷지 펀드의 유령 내지 대리인일 거라며.

그런 의혹도 이미 제기한 상태다.

‘여하튼 무슨 말을 하는지 한번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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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 대표님, 제 말투가 딱딱해도 잠시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의아한 표정을 하고서 자신을 쳐다보는 김한수 대표.

“저는 김한수 대표님의 투자 행위에 대해, 오늘 깊은 우려를 표하고자 여기로 왔습니다.”

“네?”

순간,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바로 들려왔다.

그러나 마빈은 표정을 일부러 딱딱하게 한 뒤 흔들림 없이 계속 말했다.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하고서 내린 결론.

김한수 대표의 옆에서 자신이 염탐하고 스파이 짓을 하다간, 자신은 영락없는 중국 국가안전부 요원이 된다.

그러나 자신은 요원이 아니라 투자사 대표가 아닌가.

스스로 그 일에 흠뻑 빠져들 이유가 없다.

또한, 국가안전부에서 왜 자신을 김한수 대표한테 보내려고 했는지.

그것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봤다.

‘당이 나서기엔 아직 사이즈가 작단 말이야. 36억 달러? 우리 경제 규모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지.’

그럼에도 자신을 여기로 보낸 이유.

김한수 대표한테 가서 스파이 짓을 하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직접적인 충고를 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물론, 김한수 대표의 의중을 확인해 보라고 했으나.

그런 의중 확인만 갖고선 절대 이 일은 끝날 수가 없다.

앞으로 중국 정부의 심기를 거슬리게 하지 말라는.

그런 충고를 전하는 게 더 낫지 않은가.

즉, 대륙의 경고를 전하면서.

한발 물러서라는 제안.

그 제안을 하고 나면, 자신 역시 더는 귀찮지 않게 될 것이다.

“정확한 경로에 대해선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김 대표님께서 철광석 투자를 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 순간, 표정이 조금 변하는 김한수 대표.

그 모습을 마빈은 냉정하게 쳐다봤다.

“아시겠지만, 거대한 선점은 우리 대륙 경제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짓이었습니다.”

“대륙 경제? 아아, 다소 듣기 힘든 말씀이신데, 도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위험한 투자는 큰 투자 수익을 남길 수 있으나 더 큰 위험을 좌초할 수 있다, 그 이야깁니다.”

그러고는 마빈은 뚫어지라 쳐다봤는데.

바로 상대에 대한 위협 목적인 것 같았다.

그러나 마빈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남모를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귀찮다. 귀찮아. 왜 나한테 이런 일을 시켜? 그렇다고 당의 뜻을 무시할 수도 없고. 에이씨, 모르겠다. 내가 내 식대로 수습하면 되겠지. 누구도 이 정도는 못할 거야.’

마빈은 다시 고개를 들어 김한수 대표를 쳐다봤고.

마지막 용건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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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것도 한번 보세요.”

다시 눈빛이 살아나던 마빈.

그는 서류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건넸다.

그러자 김한수 대표의 옆에 앉아 있던 나이 많은 남자가 다가와 그 서류를 받아서 갔다.

마빈은 잠시 후 김한수 대표가 그 서류를 다 볼 때까지 지켜봤는데.

‘역시 놀라는군.’

깜짝 놀라는 김한수 대표의 모습.

마빈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제가 판단한 귀국의 증시 흐름입니다. 제가 조금 보탬을 했습니다만, 저도 수익을 챙기고 갈 겁니다. 다만, 앞으로 중국에 대한 투자도 대략 이런 식으로 진행했으면 좋겠습니다.”

한편, 김한수 대표의 두 눈이 반짝이고 있었고.

마빈은 그제야 안도해 했다.

‘민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대체 뭐겠어? 고함지르고 싸울 수도 없고. 또한, 유령인지도 모르는 저 인간과 내가 구태여 싸울 이유도 없고.’

당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 마빈.

이제 귀찮은 일이 끝났다고 생각한 마빈은 그제야 표정이 밝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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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어느 대형주 종목들.

엄청난 매수 기록들이 주르르 이어져 있는데.

최근 일주일 사이에 일어난 대형 매수 기록들이다.

정말 놀라운 일.

최근의 코스피 급등.

그럼, 저 인간이 주도했단 말인가.

나는 그 서류를 보고서 놀라면서, 마빈 칭을 다시 봤다.

'그럼, 코스피 흐름을 정확하게 예측했단 말인가?'

그리고 도대체 이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앞선 경고성 말투와 후반부의 서류는 완전히 역설적이다.

채찍과 당근?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중국 정부가 이런 식으로 유화 정책을 쓴다고?

좀 당혹스러웠다.

대륙 경제? 위협? 좌초?

이런 말투들이 더 중국스럽지 않은가.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중국인답지 않은 중국인 마빈 칭을 더 주목하게 되었다.

어딘지 모르게 귀찮아하던 표정이 역력했던 마빈 칭.

사실, 안내 데스크의 연락을 받았고.

전화 통화를 조금 한 뒤, 나는 상대가 누군지 다시 확인해 봤다.

쿵칭페이 홍콩 선물 투자사, 대표 마빈 칭.

중국 즈란 그룹의 사위가 될 남자라는 기사도 있었고.

홍콩에선 이미 ‘투자 신성’, ‘투자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것도 확인했다.

그때 깜짝 놀랐고.

문전박대할 수가 없어 회의실로 직접 부른 것인데.

뜻밖의 위협을 받았고.

또한, 생각지도 못한 정보도 얻게 되었다.

이번 코스피 상승은 바로 홍콩 투자자 마빈 칭이 주도한 일이었다.

#

“대표님, 그럼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용훈 전무는 마빈 칭이 나가자, 바로 나한테 물어봤다.

내가 철광석 투자를 했다는 것도 어렴풋이 알게 된 이용훈 전무.

그러나 그 수익이 얼마인지 이용훈 전무는 절대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내 대응이 궁금한 모양인데.

그러면서도 그는 내가 신기한 것 같았다.

중국 정부가 나한테 경고를 보냈다는 그 사실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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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좀 웃기지 않습니까?”

“네?”

“중국이 자랑하고 영국이 사랑했던 홍콩이 과연 언제까지 아시아 금융중심지 지위를 누릴 수 있을까요? 중국이 홍콩 측 인사를 저한테 보낸 걸 보면, 여전히 홍콩의 힘을 믿고 있다는 거겠죠. 그러나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대표님, 그럼 어떻게 하실 겁니까?”

“재밌는 방법이 생각이 났습니다. 아직 공개할 순 없지만.”

내가 턱을 쓰다듬으며 웃자, 이용훈 변호사는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건 너무 쉽게 그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바로 자원 전쟁.

그러고 보면, 실물 자산인 광물의 거래는 그만큼 무시무시한 힘이 있지 않은가.

즉, 내가 철광석 투자를 쥐고 있을 때.

무시무시한 ‘핵무기’를 잠시 쥐고 있었던 거였다.

절대적으로 돈을 추종하는 돈의 사역마, 글로벌 헷지 펀드들과 비슷한 파워를 갖게 됐던 것이고.

그리고 그런 무시무시한 핵무기는 언제든 다시 투자의 과정에서 파생될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좀 더 건드려볼까.

상대가 무서워할 때.

돈주머니는 더 두터워지는 법.

그리고 나에 대한 두려움도 글로벌 헷지급으로 커질 것이다.

혹시 위험하지 않을까.

'방법은 있어. 페이퍼 컴퍼니.'

문득, 나는 새로운 전략들을 계속 떠올리며.

생각이 깊어졌는데.

아마 중국은 내가 새로운 투자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것을 안다면, 훗날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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