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연말 풍성하게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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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의 수익성은 위탁매매 수수료와 펀드판매 수익으론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위험을 사고팔 때 수익이 창출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DCM(부채자본시장, 채권) 중심의 기업 IB 업무와 증권사 고유의 자금을 이용한 투자 행위인 ‘자기매매’를 통해 고수익 창출이 이어질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한세증권 사이즈에선 DCM 진출도 그리 쉽지 않고, 현재 위탁매매 수수료에만 의존하고 있습니다. 부활할 방법은 펀드와 ‘자기매매’ 뿐이죠. 아, 대표님. 드세요!”
“···그럼 최 상무님 생각은, 앞으로 한세증권이 펀드판매와 자기매매 투자에 더 집중하겠다, 그런 말씀이신가요?”
“네! 우선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들도 쉽지 않죠. 저는 요즘 DLS와 ELS 쪽 설계·출시를 준비하고 있는데 실무적인 부분에서 많이 막힙니다. 직원들도 많이 힘들어 하고 있고. 이런 것들은 출시가 문제가 아니죠. 잘 설계해서 수익률을 확보하는 게 중요한데, 대충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한정식집.
최세진 상무와 단둘이서 식사를 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참, 나단 킴 이사님은 어떠세요?”
그리고 한참 뒤, 나는 궁금한 점도 슬쩍 물어봤다.
“두문불출하다가, 요즘 외출이 좀 잦아졌습니다. 이유는 모르겠고.”
외출이 잦다?
뭔가 일들을 시작했나.
그럼 나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최 상무님. 어느덧 시간이 좀 많이 된 것 같은데, 혹시 저한테 물어볼 게 있지 않습니까?”
“아! 그렇죠! 네. 있습니다.”
잡설은 충분했다.
잠시 후, 최세진 상무는 안경을 고쳐 쓴 뒤, 가방에서 뭔가 서류를 꺼내 나한테 정중하게 내밀었다.
“원래 제가 김 대표님의 상황을 먼저 확인했다면, 제 선에서 ‘외부 자문위원’ 급으로 제의를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최경욱 부사장님께서도 그 일을 아신 터라, 부사장님과 협의했고 좀 더 나은 제안서를 가지고 왔습니다.”
“제안서요?”
“네. 한번 보세요.”
서류를 쫙 펼쳐봤다.
한세증권 기업투자본부 최경욱 부사장 명의로 작성된 서류인데.
그런데 그 제안이 정말 뜻밖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이 커졌다가 최세진 상무를 쳐다봤다.
사내이사 제안??
“좀 파격적이죠?”
“네. 갑자기 좀 놀랐습니다.”
투자컨설팅본부 상무이사.
상무이사 자리 제안이었다.
“근데 제가 어떻게 여길?”
“괜찮습니다. KH투자파트너스 대표이사 자리는 유지하시고, 틈틈이 상무이사 업무를 보시면 됩니다.”
“그렇다고 해도···.”
“컨설팅 부문이라 일이 그렇게 많지도 않고. 짧은 시간 안에 상호 시너지 효과도 상당히 클 겁니다.”
“근데 저도 생각할 게 있어서, 바로 확답 드릴 순 없고···.”
“네. 깊이 생각해 보시고 알려주십시오. 김 대표님이 대단한 부자이시긴 하지만, 좋은 경험을 얻을 수 있는 그런 기회도 될 겁니다. 그리고 나중에 몇 가지 서류들도 필요한데, 주총에 안건을 올리기 전에 여러 입사 서류들이 필요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 중에 최종 학위증명서, 대학성적증명서, 이력서, 경력 확인증, 동종업계 추천서 2부, 그리고···.
그렇듯 줄줄 이어지는 설명들.
그런데 이때, 나도 모르게 실소가 튀어나왔다.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대학성적증명서라고 했다.
결국, 나는 잠시 후 귀를 닫았고.
그저 피식 웃기만 했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대학졸업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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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도청 확인은 끝났습니까?”
잠시 후, 식사를 마친 뒤, 나는 다시 사무실로 복귀했다.
이때, 김성태 팀장은 KH투자파트너스 사무실 전체를 빠르게 확인했고.
곧이어 이상 없음을 알렸다.
“도청 장치 등은 아직 없습니다.”
그럼 다행이다.
“김 팀장님, 수고했습니다. 그럼, 우리 바로 나가죠.”
잠시 후, 우리는 사무실 불을 모두 끄고 밖으로 나왔다.
어느덧 밤 9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
“그럼, 저희는 좀 늦었지만, 교대를 하겠습니다.”
그렇게 경호원 교대도 이루어졌고.
김성태 팀장 등은 퇴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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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김성태 팀장을 대신해서.
류대식 경호원이 이제 벤츠를 운전했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은 목동의 모 방송국 근처의 카페.
아마 오늘 점심때가 막 지나갈 무렵.
회계·인사팀 안세연씨는 놀란 목소리로 전화를 연결시켜 줬는데.
SBC 방송국 PD가 직접 전화를 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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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늦은 시각에 귀한 분을 오라 가라 해서 죄송합니다. 화제성 기사가 터진 터라 시간을 끄는 건 좋지 않고, 혹시 양해해 주신다면 지금 여기서 대표님의 상황을 좀 더 자세히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SBC 방송국 PD는 조심스럽게 말했고.
나는 흔쾌히 응했다.
사실, 무슨 작업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김 작가! 질문지는 가져 왔지? 몇 장?”
“서른 장 정도 됩니다.”
“그럼, 괜찮으시면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SBC 방송국 근처 카페.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때부터 작가와 PD는 취재 목적으로 쉴 새 없이 질문 공세를 이어 나갔다.
일종의 스토리 메이킹 작업인데.
그 일들을 마치고 나서, PD는 무척 만족해 했다.
“그럼 저희가 다시 연락드릴게요. 밤늦게 너무 수고가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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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끝났다.’
어느덧 두 시간 정도 됐나.
사실, 방송 출연은 호불호가 나뉘는데.
그럼에도 적어도 나한텐 도움이 된다는 것을 회귀 전에 나는 습득했다.
'웃긴 게 이 시대는 강도를 잡은 용감한 사람들보다 잘 생긴 강도가 더 인기가 높단 말이야.'
그래서 그런 외적인 측면에다가.
특별한 스토리가 추가된다면.
무조건 나한테 이익이 될 수밖에 없다.
공고 출신.
지독한 가난.
이런 입지적인 스토리는 항상 나한테 개이득이 됐다.
‘에휴, 그때 힘들게 산 게 자랑도 아닌데.’
그래도 그 덕분에 나는 회귀 전, 국회의원에 당선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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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제 한남동으로 가죠.”
밤 늦은 시간.
긴 하루 일과가 거의 끝난 듯.
그렇게 차는 다시 출발했다.
<85>
2010년 12월 6일 월요일.
점점 더 한파는 그 강도가 높아지고 있었고.
어느덧 굵직굵직한 일들을 이제 코앞에 두게 되었다.
모레 수요일은 수능 성적표가 배부되는 날인데.
그리고 그다음 날인 목요일 12월 9일.
이날은 코스피 지수 선물옵션이 동시에 만기되는 날이다.
국내 지수선물, 국내 지수옵션, 국내 개별주식선물, 국내 개별주식옵션 등.
국내 파생물 전체가 만기되다 보니, 이른바 ‘네 마녀의 날’이다.
그래서 그 긴장감이 이미 여의도 증권가에는 빠르게 퍼졌는데.
지난 11월물 만기일에 나타났던 악몽과 불안함이 다시금 증시를 뒤덮는 듯했다.
‘하지만 흔들릴 이유는 없어.’
사실, 이번 주, 다음 주까지 해서 나는 열네 번째 투자, 미국 개별주식옵션 투자를 제외한 모든 물량들을 정리할 생각이다.
그런데 이미 나는 엄청난 수익권에 들어가 있지 않은가.
구태여 시세 흐름에 흔들릴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이제 시작해야 할 것.
바로 코스피 지수 콜옵션 물량들에 대한 청산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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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코스피 시장은 무척 조용했습니다. 장 초반, 코스피 대형주에 기관의 매수세가 몰리면서 소폭 상승했으나 장 후반, 외국인 매도세가 몰리면서 0.18% 하락하며 1,953.64포인트에서 장을 마감했습니다. 네 마녀의 날을 앞두고서 급격한 변동성의 장이 예상됐으나 다소 무난하게 장은 마무리됐습니다. 오늘 기관은 2,598억 원을 순매수했고, 외인은 1,395억 원을 순매도했으며···.”
역시 별다를 게 없다.
지난달의 옵션 쇼크 사건 때문에 다들 지극히 조심하는 분위기.
그리고 다음 날도 비슷했다.
“···오늘 코스피 시장은 상승 출발하여 상승 마감했습니다. 기관은 2,851억 원을 순매수했고, 외인은 1,389억 원을 순매도했습니다. 코스피 지수는 전날 대비, 8.88 포인트 오른 1,962.52포인트를 기록했습니다···.”
그렇듯 무난한 장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고.
특히, 12월물 만기일을 앞두고서.
나는 지난 월요일부터 콜 옵션 물량들을 서서히 장내에 풀기 시작했다.
이때, 프로그램 매도 방식을 통해 물량들을 장내에 흘려보냈는데.
내가 보유한 콜 옵션 계약 건수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좋은 호가에서 전체 청산을 마칠 때까진 다소 긴 시간이 소요될 것 같았다.
한편, 옵션의 실물 자산인 코스피200지수는 257포인트대에서 소폭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는 중이다.
다만, 만기일 당일의 옵션 호가 변화가 염려되어.
나는 계속 물량들을 풀어나가면서.
포지션청산 과정을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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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아직도 멀었어.’
그리고 다음 날 수요일.
하얀 첫눈이 서울 전역을 뒤덮던 날.
나는 집무실 모니터를 통해, 프로그램 매도 방식으로 청산되고 있는 코스피200지수 콜 옵션 물량들을 계속 쳐다봤다.
그러다가 점심때가 막 지날 무렵.
아주 두꺼운 외투를 입고서 나는 잠시 외출했다.
오늘 수요일.
수능 성적표가 배부되는 날.
그래서 나는 일반고등학교가 아닌 교육청에 들렀고.
거기서 수능 성적표를 배부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강남 입시컨설팅 학원으로 향했다.
성적표를 받는 즉시.
다시 입시컨설팅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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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이게 뭐야.”
호호호!
호호호!
“정말 잘 나왔네.”
“너무 잘 나왔어.”
쉴 새 없이 웃는 중년의 컨설턴트.
내 성적표를 보면서 저렇게 기분이 좋을까.
한편, 그녀는 내가 그 김한수냐고 몇 번이고 묻기도 했는데.
그러고는 또 저렇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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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죄송한데. 제가 시간이 없어서.”
“아, 미안. 미안해요. 그럼 바로 배치표를 보도록 하죠.”
드디어 점수별, 등급별, 지원학교·지원학과 배치 참고표를 펼쳤다.
그러고는 유심히 쳐다보고 있는데.
컨설턴트는 갑자기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국대 경영학과? 아니면 정치외교학과? 어디가 좋을까?”
잠깐의 고민.
나는 간단히 손가락으로 경영학과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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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턴트는 10억 원의 선입금액 중에서 내가 사용한 교습비를 제외하고 7억 3천만 원 정도를 계좌 입금해줬다.
지난 8월부터 수능 때까지의 교습비가 대략 2억 7천만 원 정도 사용된 것 같았고.
한 달 평균 대략 9천만 원 정도 교습비가 발생한 것 같았다.
“큰 도움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마지막 감사의 인사도 전한 뒤.
나는 상담실에서 걸어 나왔다.
그런데 그때.
“선생님!”
갑자기 누군가 외치며 내 옆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는데.
“···어머! 한서연! 너 많이 이뻐졌네!”
순간, 익숙한 이름이 들리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며 그 쪽을 쳐다봤다.
긴 머리를 뒤로 묶고 안경을 쓰고 다니던 재수생.
그 재수생은 어느새 새카만 생머리를 풀고, 긴 외투에 짧은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쟤가 아마 언어, 수학, 외국어 영역에서 모두 만점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신기한 듯 쳐다보다가.
이내 방향을 틀었고.
나는 계단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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