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철광왕 01
<70>
“어때요? 수능은 잘 보셨어요?”
외투를 벗은 뒤, 자리에 앉은 박현주.
워크샵에서 봤던 화려한 드레스의 박현주가 아니라.
막 퇴근을 한 회사원 박현주의 모습이었다.
튀지 않고 그저 차분한 모습.
이것도 무척 보기에 좋았다.
“네. 시험은 잘 치렀습니다.”
“혹시 채점은 하셨어요?”
채점이라.
약속 시간에 맞춰 이곳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오느라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
“아직 안 했습니다.”
“아, 그래요? 혹시 저 때문에?”
“아뇨. 아닙니다. 맛있는 저녁 먹고 집에 들어가서, 그때 천천히 채점해도 늦지 않습니다.”
“아, 그래도 궁금하시겠네요?”
“하하. 괜찮습니다.”
“시험은 잘 치신 것 같아요?”
“네. 뭐, 그럭저럭.”
“근데 시험은 언제 끝났어요?”
“아침 8시 40분에 시작했는데, 오후 6시 5분에 끝났습니다.”
“와, 엄청 시간이 길구나.”
“현주씨도 아마 수능 때 그렇게 봤을 걸요?”
“지금은 잘 기억도 안 나요. 그럼, 시험 끝나자마자 바로 여기로 오신 거네요.”
“네.”
웃으며 내가 대답하자, 박현주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일부러 수줍은 듯 그런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
“참, 주문부터 하죠.”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어서.
파스타, 피자, 음료 등, 이런 것들을 잠시 후 주문했다.
그 주문을 마친 뒤, 박현주는 날 가만히 쳐다보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고.
그러고는 자신의 외투에서 뭔가를 꺼냈다.
안주머니에 있던 뭔가 서류 같은데.
그걸 손에 들고는 자리에 앉았다.
이후, 그 서류를 나한테 내밀었다.
“혹시 이거 보셨어요?”
도대체 뭔가 싶어 서류를 받은 뒤, 나는 즉시 확인하던 중.
순간, 나도 모르게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지고 말았다.
오늘 자 인터넷에서 게재된 기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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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광석 선물 10% 폭등!]
“···오늘 아침 싱가포르 거래소(SGX)가 개장되자마자 철광석 선물은 크게 폭등했고, 철광석 선물 12월물은 장중 10% 고점까지 치솟으며, 8%대의 폭등세를 보이는 열연, 철근 등과 더불어 고공행진 중이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재고 수요 확보가 증가하면서 철광석 선물가격은 앞으로 크게 오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특히 중국 현지 조강 생산량도 크게 늘어나면서···.”
와아, 맙소사.
철광석 관련 기사였다.
그런데 철광석 선물이 오늘 폭등했다고?
입이 떡 벌어지다가.
박현주가 날 유심히 쳐다보고 있어.
정신이 번쩍 들며, 억지로 감정을 다스렸다.
그러나 속으로 진짜 미칠 것만 같았다.
도대체 내가 얼마나 벌게 되는 거지?
철광석 선물 12월물의 폭등세.
내가 가지고 있는 대형 물량들을 흘리지 않고 꽉 잡고 있다 보니.
철광석 선물 호가가 심상치 않게 변한 게 분명했다.
‘구리, 아연 쪽도 마찬가지네.’
그렇듯 갑자기 광물의 전성기가 시작되고 있다.
이 시대 주요 자원으로 부상한 철광석 등의 광물들.
특히, 중국의 성장과 더불어 철광석 수요는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현안이 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철광석 종목에 선제적으로 투자한 자금은 대략 4,500억 원.
엄청난 돈이 투자됐고.
이미 그 수익은 엄청나게 폭발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또다시 선물 호가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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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회귀 전보다 더 빨라.’
이미 자산 1조 원을 넘어섰고.
곧 자산 2조 원, 3조 원에 다다를 것 같았다.
특히, 선물 10% 상승이란 옵션 시장에선 그냥 천문학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것과 다름없다.
앞서 코스피200지수에서도.
고작 8포인트가 떨어지는 과정에서.
나는 1,853억 원의 수익을 봤다.
그런데 현재, 선물 10% 상승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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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너무 표정이 밝아지신 것 같은데?”
근데, 어떡하지.
웃지 않으려고 해도.
웃지 않을 수가 없다.
그냥 폭발할 것만 같은 웃음들.
그 웃음들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다.
그래서 나는 바로 화제를 돌렸다.
“하하하! 하하하! 투자가 참 재밌는 거 같아서요. 갑자기 이렇게 폭등하기도 하고, 또 폭락하기도 하고. 근데, 현주씨! 왜 이런 기사들을 저한테?”
“아아, 저는 대표님한테 좀 필요하신 기사가 아닌가 해서.”
서로 알면서도 서로 모른 척하고.
그렇게 하다 보니, 그게 좀 거시기하다.
그래도 내가 철광석 투자를 한 것은 명확하게 공개된 게 아니지 않은가.
박현주한테도 마찬가지다.
물론, 나에 대한 강력한(?) 심증은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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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나는 가볍게 머리를 숙였고.
그때부터 내 머릿속 생각은 저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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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어떻게 저녁을 먹었는지 모르겠고.
박현주와의 저녁 식사를 마친 뒤.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철광석 관련 기사들을 모조리 검색해서 다시금 확인했고.
상황 파악을 재빨리 마쳤다.
잠시 보합 상태로 흘렀던 철광석 호가.
그러나 12월물 철광석 선물 호가는 결국 밀려드는 수요를 버티지 못하고 폭발했다.
호가는 한없이 치솟아 버린 것이다.
투기성 자금들도 엄청나게 쏟아진 것 같았고.
중국 당국 외에도 중국 내 관련 산업체들도 이 철광석 선물 시장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수많은 자금 유입은 결국 선물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원동력이 됐다.
‘근데 중국에선 무조건 재고량 확보에 혈안인 것 같은데.’
주요 항구마다 철광석 재고량이 쉴 새 없이 쌓이고 있다고 한다.
결국, 최고치까지 가득 쌓아둘 생각인 것 같은데.
국가 산업을 위해선 철광석 물량이 최대한 필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케이! 이렇게 수급 펀더멘털이 확실한데 무슨 걱정이야. 결국, 조만간 새로운 연중 최고점을 찍게 될 거야.’
그런데 이런 상황은 또한 역설적으로.
좀 더 이른 시기에 모든 물량들을 정리할 순간이 다가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점을 찍게 되면 뭐든 단기적으로 밀려 내려올 수밖에 없어.’
그래서 고점을 향한 상승기를 주목해야 한다.
그 상승기에 물량들을 처분한다면 제값을 받고 팔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장이 끝난 싱가포르 거래소(SGX)의 지난 철광석 선물 차트들을 유심히 분석했고.
옵션 호가의 추이도 세세히 확인했다.
‘근데 정말 디데이가 곧 닥칠 것 같은데.’
턱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생각하다가.
잠시 후, 나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며 백팩을 뒤졌다.
그러고는 얼른 수능 수험표를 꺼냈다.
수험표 뒤에 적어 둔 답안들.
그 답안들을 잠시 쳐다보다가.
그때부터 서둘러 가채점을 시작했다.
심장은 두근두근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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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벨!
책상 위에 올려둔 스마트폰.
그 폰을 한번 쳐다본 뒤.
잠시 후, 나는 발신자 번호를 확인했다.
강남 입시컨설팅학원에서 걸려온 전화다.
아! 내 점수가 궁금한가 본데.
에휴.
나는 씩 웃다가.
잠시 후, 통화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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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안녕하세요?”
“혹시 가채점했어요?”
통화가 시작되자마자 바로 점수부터 묻는 컨설턴트.
중년의 아줌마, 학원의 공동대표, 내 담당 컨설턴트였다.
“네. 했습니다.”
“몇 개나 틀렸어요? 오늘 시험이 ‘불수능’이라고 다들 난리가 났던데.”
불수능?
하긴, 생각보다 어려운 시험이었다.
역대급 어려운 시험 중의 하나가 바로 2011학년도 수능 시험이다.
근데 어떡하지.
회귀빨이라는 게 정말 무섭다.
회귀 전의 나는 늦은 나이에 수능 공부를 시작했고.
그렇게 수능 시험을 준비하다 보니.
공부량도 많았지만.
과거 수능 시험지들을 상당히 많이 봤다.
당시의 나는 그 수능 문제들을 정성 들여 분석했고.
특히, 출제 의도 분석에 총력을 기울여준 사람이 바로 이 아주머니, 이 컨설턴트였다.
몇 년 뒤의 이 아주머니.
이 컨설턴트가 날 그렇게 도와줬는데.
그러다 보니, 2011학년도 수능 문제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았으나.
당시, 그토록 미친 듯이 파고들었던 문제들에 대한 이해력 덕분에.
오늘 수능 시험을 치르는 과정에서도 문제들이 크게 난해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기시감 같은 것들도 몇 번씩 느껴지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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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시험은 나쁘지 않게 본 것 같습니다.”
“몇 개 틀렸냐고요?”
다시 직설적으로 물어보는 컨설턴트.
“만점은 아닙니다.”
희미한 기억만으론 절대 만점을 받을 수가 없다.
“수학에서 2개 틀린 것 같고, 언어는 한 개···.”
그렇게 설명들이 이어졌고.
잠시 후, 컨설턴트는 환호했다.
뭔가 외치는데.
귀가 얼얼한 지경.
그러고는 그녀는 또 외쳤다.
이번에 수능을 같이 봤던 재수생 서연.
그녀가 언어, 수학, 외국어 영역에서 모두 만점이 나왔다는 것이다.
나 역시 시험을 잘 봤다고 그녀는 계속 난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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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근데 기분은 좋네.
요즘 뭔가 왜 이렇게 잘 되지.
어느덧 대학 입학도 현실이 되고 있다.
하긴, 회사 일을 제외하곤 무조건 공부만 했는데.
이젠 적어도 내가 원하는 것을 또 가질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것.
그건 대학 입학의 낭만과 즐거움이 아니었고.
오로지 종잇조각 하나였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고.
괜찮은 대학의 대졸 학력.
바로 그 졸업장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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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확 당기네.
하나가 끝났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이제 수능 공부는 완전히 끝난 것.
그래서 지난 피곤함들이 우르르 몰려들 것 같았지만.
오히려 몸이 약간 붕 뜨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이 느긋해지자.
주변 사람들이 조금씩 생각났다.
얼마 전, 공장 퇴직금과 일부 월급 등을 받게 된 정덕이가 떠올랐고.
공고 친구들, 유강석, 강태원도 머릿속에 떠올랐다.
‘근데 정덕이는 잘 지내고 있을까? 저번에 그 호텔에서, 내가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좀 했던 것 같은데···. 근데 내가 공장 사장이 된 것도 알 텐데, 왜 연락이 없지?’
녀석의 상황이 궁금하기도 했고.
강석과 태원이 역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전화나 한번 해 볼까?’
문득 그렇게 고민하다가.
잠시 후, 나는 서재에서 벗어나, 저택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주변 조명들을 환하게 켜자, 정원이 아주 환하게 밝아졌다.
얼마 전부터 정원 관리를 맡기고 있는 터라.
주변 정원의 모습은 훨씬 더 깔끔해진 상태다.
‘근데, 이럴 땐 밤새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좀 과하지 않게 와인 같은 걸 마시는 것도 괜찮은데.’
이때,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유진 인테리어의 박유진 사장 같은 여자다.
‘근데 지금은 안 친하니까.’
내가 바빠 교류할 틈이 없다.
그래서 스마트폰을 꺼내 만지작거리다가.
박현주 전화번호를 잠시 쳐다봤다.
‘괜찮을까?’
저녁 먹고 헤어졌는데.
또 만난다?
‘아니지.’
역시 당사자한테 부담감을 줄 것 같았다.
결국, 고개를 저은 뒤.
차가워진 늦가을의 바람을 좀 더 쐬다가.
나는 저택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아무래도 내일부터 다시 바빠질 것 같은데.
하루 내내 시험 보느라 오늘은 피곤한 터라.
나는 일찍 자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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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날.
긴 달콤한 잠을 자며.
모처럼 조금 늦게 일어났는데.
다시금 깜짝 놀랄 소식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도 장 초반 폭등했다는 철광석 선물 호가.
그렇듯 다시금 철광석 가격이 폭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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