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물이 되어버린 투자자-75화 (75/138)

73화 제가 바로 김한수 대표입니다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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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준씨! 어때요?”

파생팀 사무실.

이 넓은 사무실에 아직 팀원이 2명 밖에 없다.

임범준. 김찬우.

투자사 경력 2, 3년이 전부인 파생팀 직원들.

무척 조촐한 분위기다.

그래도 그들은 선물거래 중개사 자격증이 있는 상태이고.

코스피200지수 선물·옵션, 개별주식옵션, 국채선물, 미 달러선물 등.

선물·옵션 트레이딩 분야에 있어 실무 경력도 갖고 있다.

한편, 나는 지수 차트, 종목 차트, 선물 차트, 옵션 차트 등을 각각 가만히 쳐다봤고.

밀려드는 수급을 쳐다보며.

잠시 후, 단호한 표정으로 외쳤다.

“제가 지금부터 몇 가지 지시 좀 해도 되겠습니까?”

서로 얼굴을 쳐다보던 두 사람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11월물 옵션 만기일인 건 아시죠?”

원래, 옵션 만기일은 마녀의 날이다.

오늘은 폭락하는 마녀의 날.

하지만 이런 옵션 만기일에도 변수가 있다.

G20 정상회의 서울 개최.

‘그럼에도 증시 급락?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야.’

코스피는 최소 보합 내지 소폭 상승의 자리에서 끝나는 게 적절해 보였는데.

이게 곧 무너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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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나는 차트 내 특정 물량 흐름들을 계속 쳐다봤고.

급변의 조짐들이 좀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현재 코스피200 지수는 255포인트.

그런데 이 포인트가 갑자기 무너지며.

종가에선 8포인트가량 추락하게 된다.

기껏 8포인트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다.

왜냐하면, 현재는 누구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연말 코스피 2,000포인트를 위한 지루한 상승의 장.

콜의 득세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중인데.

반면, 풋은 한동안 외면받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상승 하락의 역전이 발생한다면, 수익의 향방도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풋의 가치가 0.01이었을 때.

갑자기 호가 8포인트 변화가 생긴다면.

8 / 0.01 = 800.

무려 800배 수익 격차가 발생한다는 걸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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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느덧 동시호가 진입을 코앞에 둔 시각.

오후 2시 49분 57초.

그때부터 초침은 더 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

58초.

59초.

그리고 찰나.

대격동의 장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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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여기 좀 보세요!!”

갑자기 여기저기서 날 불렀고.

좌우로 시선이 분산되었다.

어느새 확 바뀐 실물 코스피 종목들의 호가창 모습.

장 마감을 위한 동시호가대 진입과 더불어 호가창은 그렇게 바뀐 건데.

특히, 주식운용팀 김규리씨가 한쪽 모니터를 손으로 가리키며 다시 고함을 질렀다.

“매도 물량이 왜 이렇게 많죠?”

실제, 모니터에는 코스피200 대형종목 한곳이 미친 듯이 몰려든 대형 매도 물량들 때문에 선명한 파란 불이 들어온 상태다.

“갑자기 전쟁이라도 났나? 왜 이러지?”

“대표님, 제가 보는 종목들은 모조리 다 마이너스인데요?”

어떻게 플러스였던 것이 하나같이 마이너스가 될까?

직원들은 내내 황당하다는 듯 그런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특히, 종가 보합세였던 종목들.

그런데 동시호가대에 진입하자마자.

[명성전자]

[하이딕스]

[대현]

[명성디에스]

[명성물산]

[CK텔레콤]

[POSKO]

[대현모비스]

등등.

이런 종목들의 주가들도 줄줄이 마이너스 3%에서 마이너스 4%대로 떨어졌고.

일부 대형종목은 마이너스 2%에서 3% 범위에서 주가가 급락하며 온통 파랗게 물든 상태다.

알고는 있었지만.

순간 전이를 하듯 현실이 되었다.

갑자기 온통 파랗게 변한 듯한 한국 증시.

마치 한국증시에 폭탄 러쉬가 시작된 듯한 모습이었고.

파란 폐허는 한국증시를 무섭게 짓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옵션 쪽의 변화도 심상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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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누군가 미친 듯이 물량들을 집어삼키는데요?”

“호가? 호가는 어때요?”

“계속 오릅니다!”

순식간에 풋 옵션의 호가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규리씨, 지금 몇 시죠?”

“2시 52분 34초입니다.”

그사이, 호가는 더 뛰고 있었고.

계속 갱신되고 있었다.

“250 행사가 풋! 호가 1.99까지 올라갔습니다!”

점점 더 호가는 올라가고 있었고.

나는 계속 그 호가 변화를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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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다소 답답한 점은 동시호가 시간대이기 때문에, 정확한 코스피200 지수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각 주가 종목의 동시호가는 계속 변하는 중이고.

그래서 코스피200지수의 예상치는 깜깜이가 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급변 속에서.

현재 옵션 호가창에선 엄청난 거래가 빗발치고 있었고.

그 결과, 내가 봤을 때, 옵션 호가들은 실물 자산인 코스피200지수로부터 점점 더 괴리되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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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리씨! 몇 시죠?”

“2시 55분 56초입니다.”

그사이 다시 호가는 폭등했다.

행사가 250 풋 옵션 기준, 호가는 2.99까지 치솟았고.

잠시 후, 호가가 3.25에 도달했다.

‘이건 괴리가 엄청난데.’

내가 아는 오늘 종가 기준이라면, 호가 2.50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행사가 250 풋의 호가는 이미 3.25를 넘어서며 폭등했고.

미친 장세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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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준씨! 찬우씨! 주문 좀 넣도록 하죠!”

잠시 고민을 마친 뒤.

나는 즉시 외쳤다.

행사가별 풋 옵션들의 매도 호가를 제시했고.

지수와의 괴리 현상을 고려해서 최대한 호가를 높여서 시장에 던졌다.

이후, 두 사람의 손놀림은 아주 빨라졌다.

타다닥. 탁! 탁! 탁! 탁!

정신없이 마우스 클릭과 키보드를 두드렸는데.

주식운용팀 팀원 김채경과 김규리는 업무 지원을 위해 바로 옆에서 그들의 매도 주문 현황을 계속 체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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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빛처럼 움직이는 속도전의 매수·매도 행위들.

프로그램 매수와 매도 속도들은 너무 빨라.

감히 인간의 눈으로는 따라잡기 힘들 정도다.

이때는 냉철한 판단.

지독한 자기 확신 없이는 거래를 할 수가 없다.

이미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그런 광기의 영역에 들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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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곧 저희가 잡힐 것 같은데요···.”

그사이 더 올라온 호가.

사실상, 많이 괴리된 호가였지만.

그 호가대의 우리 물량이 매수 세력에 의해 잡혀 버렸다.

물밀 듯이 밀려드는 매수 세력들.

‘와아, 먹성 한번 죽이네!’

그때부터 미친 듯이 우리의 풋 옵션 물량들을 집어삼켰고.

지난 일주일간 우리가 매집했던 풋 옵션들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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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잠시 뒤.

사무실은 갑자기 깊은 정적에 빠진 듯.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는데.

충격도 컸고.

콜의 세계가 미친 듯이 풋의 세계로 바뀌는 것을 모두가 지켜본 터라.

투자에 대한 냉소와 당혹감도 더욱더 커진 상태다.

대체 이게 무슨 투자인가.

똥값이었던 풋이 순식간에 금값으로 바뀌는 도박일 뿐.

그러고는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

지독한 정적이 잠시 흐르다가.

드디어 오늘의 코스피200지수 종가가 눈앞에 나타났다.

247.51포인트.

혼동 장세 속에서.

코스피200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2.99% 급락한 채 장이 마감된 것인데.

마이너스 2.99% 포인트를 찍고.

오늘 장을 끝낸 것이다.

다만, 장내의 너무 과도했던 열기 때문인지.

실물지수 값에서 아주 괴리된, 상당히 비싼 값들을 받고서 풋 옵션들을 우리가 팔았다는 것이 잠시 후 드러났다.

물론, 아직 옵션 시장은 다 끝난 게 아니다.

오후 3시 5분부터(2010년 기준) 옵션 동시호가가 시작되는데.

지금 코스피200 옵션 시장은 거대한 혼란 뒤, 서서히 진정되고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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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준씨.”

“네?”

“찬우씨!”

“네!”

“자! 우리 수입 집계합시다!”

잠시 후, 나는 씩 웃으며 좌우를 쳐다본 뒤 그렇게 주문했다.

혼돈과 광란은 이미 우리의 곁을 떠난 상태다.

이젠 냉정과 열정을 품어야 할 상황.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직원들은 재빨리 수익집계를 시작했는데.

조금 뒤.

“459억 원! 총 459억 원 수익이 났습니다!”

459억 원?

나쁘지 않다.

그런데 그때.

수익을 이야기하지 않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임범준.

그는 말을 못 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들 그를 쳐다봤는데.

임범준의 모니터 옆으로 후다닥 뛰어간 김채경.

그녀가 오히려 경악하며 크게 외쳤다.

“1,394억 3,443···.”

결국, 냉정은 사라지고.

열정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누구랄 것 없이 입이 벌어지고 있었고.

다시 터질 것만 같은 정적이 장내에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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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수익!

1,853억 원.

풋 옵션 투자액은 8억 4천 300만 원.

그러나 무려 220배! 1,853억 원의 수익이 터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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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자! 이제 우리 정리 좀 하죠! 범준씨, 찬우씨, 규리씨, 채경씨. 거기 자리에 앉으세요.”

나는 직원들을 각자 자리에 앉게 한 뒤.

웃으며 팔짱을 꼈다.

그러고는 좌우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 일은 우리 회사에 있어 기념비적인 일입니다. 오늘 범준씨, 찬우씨, 무척 수고 많았습니다.”

“아, 아닙니다. 대표님! 그냥 대표님 지시에 따랐을 뿐입니다.”

나는 피식 웃은 뒤 또 말했다.

“규리씨! 채경씨! 옆에서 두 분을 잘 도와주셨습니다.”

그러고는 좌우를 고루 쳐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 우리 회사에서 큰 수익을 올렸습니다! 회사가 크게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와 저로선 무척 기쁩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 같이 회식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좀 나누도록 하죠. 어떻습니까?”

수익 잭팟이 터졌다.

이런 날 회식을 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언제 회식하겠는가.

다만, 내가 문제일 뿐.

수능이 진짜 코앞인데.

“그리고 범준씨와 찬우씨는 수익 내역 등을 다시 결산해서 전자결재로 올려주세요.”

“네! 대표님!”

“규리씨와 채경씨는 다시 원래 업무로 복귀하세요.”

“네!”

그러다가 갑자기 김채경이 손을 들었다.

“근데 대표님.”

“네?”

“저기 질문이 있는데··· 혹시 대표님은 그···?”

“네? 무슨 질문이죠?”

“아, 아닙니다.”

내가 빤히 쳐다보자, 이전과 달리 갑자기 표정이 변하며 고개를 숙이는 김채경.

의아했으나.

더는 질문이 없어.

그렇게 정리한 뒤.

나는 잠시 후 오피스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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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갑자기 만감이 교차한다.

적절한 순간, 적절한 대처로 큰 수익을 뽑는 데 성공했다.

회사 자본금이 갑자기 아주 커지게 됐다.

‘근데, 약간의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으음. 직원들이 내가 누군지 알아챈 것 같은데.’

좀 전, 김채경의 표정을 다시 떠올린 뒤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잠시 후, 현재 시각을 확인했고.

생각을 다시 정리했다.

내가 회사 대표라서 면전에선 일부러 입을 꾹 닫고 있는 것 같은데.

자기들끼리 이미 수군거리기 시작한 것 같았다.

이런 투자에 대해 큰 성공을 했던 비슷한 케이스는 이미 있지 않은가.

하필이면, 이름조차 같다.

동명이인이라고 주장하기엔 좀 뭣한 상황.

‘으음. 적어도 철광석까진 팔고, 그때 언론에 얼굴을 드러내도 늦지 않아. KH투자파트너스를 좀 더 세게 띄우려면 적어도 그렇게 해야겠지.’

그래서 우선은 내 얼굴을 아는 사람만 아는 식으로.

우선, 그렇게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회식 때 직원들한테 당분간 양해를 좀 구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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