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KH투자파트너스 초대박 04
<68>
“···김한수씨, 거기 앉으세요!”
오후 2시 30분.
“아, 갑자기 부른 것은 수능이 이제 얼마 안 남아서 주요 요점들을 다시 알려드리려고요.”
“네, 말씀하십시오.”
“요즘 공부하느라 많이 힘들죠?”
“아, 아닙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입시컨설팅학원의 상담실.
이번에도 이곳 공동대표인 중년의 컨설턴트가 내 상담을 맡았다.
“먼저, 여기 보시면, 언어영역, 수리, 외국어, 사탐, 과탐 영역 등, 나름 점수들이 좋아요. 퍼센티지도 나쁘지 않고. 한데 뛰어날 정도로 좋진 않아요. 이 점수대 가지곤 한국대가 위험해요.”
지난 10월 모의고사 성적과 최근에 치른 사설 모의고사 성적표 등.
각종 성적표들이 펼쳐져 있었고.
이 성적표들을 가리키며.
중년 컨설턴트는 그렇게 따끔하게 평가했다.
“그래도 여기 들어올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지지 않나요?”
“네. 그 점은 확실히 느낍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주요 문제 유형들을 분석해서 문제의 틀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게 최상위권으로 진입하는 시작입니다.”
항상 하는 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똑똑하시니까 다시 말씀드리죠. 여기 보시면, 수리 영역 쪽에 계속 약한 부분들이 있어요. 그래서 생각보다 점수가 안 나오고 있고···.”
그때부터 세세한 코멘트들이 쭉 이어졌다.
그리고 잠시 뒤, 그녀는 문제 폭탄을 나한테 안겼다.
묵직한 분량의 인쇄물.
그걸 받은 뒤 나는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섰다.
‘와아, 근데 진짜 공부할 게 정말 많네.’
“그럼, 서연이 들어오라고 하세요!”
“네.”
대답한 뒤 나는 상담실 밖으로 나갔고.
이때, 조용히 밖에 서 있는 한 여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긴 머리를 뒤로 묶고 안경을 쓰고 있는 여학생.
한편, 그 여학생은 내가 뭔가 말하기도 전에 새침한 모습으로 그냥 상담실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힐끔 쳐다본 뒤 등을 돌렸다.
그러고는 받은 문제지들을 면학실의 내 지정 좌석에 올려놓은 뒤.
면학실 밖으로 나왔고.
잠깐 계단 쪽으로 이동해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
‘아까 최병우 변호사님한테서 콜이 온 것 같던데.’
뭔가 전달 사항이 있나.
그러고 보면, 김도철 전 사장, 조상구 전 부장 등의 법정 공판 건은 어떻게 되고 있을까.
공장에 저질 원료를 납품시켰던 조상구 전 부장.
다만, 죄를 뉘우치며 반성문을 쉴 새 없이 쓰고 있는 김도철 전 사장과 다르게.
조상구 전 부장은 아직도 완강한 편이라고 했다.
‘아, 여깄다. 최병우 변호사님.’
나는 즉시 통화버튼을 눌렀다.
#
“네! 변호사님. 잘 지내세요?”
“하하, 잘 지냅니다. 아, 다름이 아니라, 조상구 전 부장과 관련해서 전달상황이 좀 있습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검찰에서 듣게 된 이야긴데, 조상구 부장이 대표님을 한번 꼭 뵙고 싶다고 한답니다.”
“네? 저를요?”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데. 아! 혹시 필요하다면 제가 같이 가 드리겠습니다.”
“혹시 무슨 일일까요?”
“아, 거기까진 제가 아는 게 없습니다.”
“그럼, 그 면회 건은 지금 당장 결정하지 않아도 되죠?”
“네. 충분히 생각하시고 결정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그럼,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그리고 김도철 전 사장 쪽은 좀 어떻습니까?”
“음, 계속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최대한 형량을 줄이려고 많이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조만간 공판 일정도 잡힐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다음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네, 들어가십시오.”
잠시 후 전화는 끊은 뒤, 나는 쓴 미소를 지었다.
외부 세력과 결탁한 주요 내부 인물은 조상구 전 부장이다.
박소희도 그쪽과 관련되었지만.
그러나 박소희는 현재 주요 증인이 된 상태다.
그런데 특이점은 조상구는 외부 세력이 없다고 주장했고.
다만, 업무상 횡령, 직장 내 사문서 위조, 업무방해, 강요, 증거인멸 교사 등.
각종 혐의로 구속기소된 상태다.
‘근데 왜 날 만나자고 했지?’
확실히 외국인이 개입된 사건인데.
그러나 외국인 세력은 꼬리를 자르고 사라진 거나 다름없는 상태다.
‘음, 앞으로 공장 부지 프로젝트로 다른 데 신경 쓸 틈이 없는데. 하긴, 그 전에 조상구를 한번 만나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그러나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열세 번째 투자와 수능을 앞둔 상태.
그래서 당장 신경을 쓸 틈이 없다.
‘우선, 수능 이후로 미루자.’
그렇게 정리를 마친 뒤
나는 현재 시각을 다시금 확인했고.
이후, 학원 건물을 빠르게 빠져나왔다.
#
“리스트레또(ristretto)로 주세요.”
잠시 후, 나는 학원가 중심부의 어느 카페로 들어갔고.
거기서 에스프레소 종류인 리스트레또를 주문했다.
그러고는 창가 쪽에 앉았고.
이것저것 구상하는 와중에 30분 정도 기다리자.
화연종합건설 이용훈 변호사가 마침내 약속 시각에 맞춰 나타났다.
한편, 내가 이용훈 변호사를 만나려는 이유는 바로 시행사 법인 등록 건 때문이다.
사무실 확보와 자본금 확보.
이런 것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시행사 등록 과정에선 법적으로 최소 전문인력 2인이 필요한 상태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감정평가사, 공인중개사, 법무사.
그리고, 세무사, 건축사, 토목 전문가, 자산운용 전문인력 등.
이런 전문가들이 여기에 포함되는데.
화연종합건설 이용훈 변호사는 이런 시행사 일에 잔뼈가 굵은 부동산 개발 전문 변호사였다.
#
“아, 반갑습니다. 변호사님.”
“하하, 유명하신 분이 직접 연락을 주셔서 제가 어젯밤 잠을 설쳤습니다. 하하하!”
일부러 유쾌하게 웃으며 날 쳐다보는 50대 초반 나이에 호남형의 이용훈 변호사.
정장에 넥타이 차림인 그는 악수를 마친 뒤 내 앞에 앉았고.
이때 나는 즉시 일어나, 마실 음료에 대해 물어봤다.
그러고는 즉시 카운터로 가서 음료를 주문하고 나는 돌아왔다.
#
“하하! 대표님, 많이 바쁘신가 봅니다? 일 처리가 아주 빠르시네요.”
“아, 제가 좀 동작이 빠르죠?”
“네. 하하하!”
“근데, 좀 더 좋은 곳에서 뵀어야 했는데. 소탈하게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저야 뭐, 시행사 법률 자문 부문에 조금 이력이 있다는 거지, 어디 대표님과 비교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죄송합니다.”
“하하, 아닙니다. 저도 이런 카페 같은 곳을 즐겨 찾습니다. 그리고 저는 큰 부자도 아닙니다. 제가 미래증권 워크샵에 초대를 받았던 것은 이전에 몸담았던 시행사 쪽에 제 지분이 좀 있다 보니 초대를 받은 것뿐입니다.”
화연종합건설 이용훈 변호사.
그는 바로 미래증권 워크샵 참석 멤버였다.
그때 명함을 주고받았고.
그때 알게 된 사람.
물론, 그것은 현시점 기준, 표면적 관계일 뿐.
사실, 이용훈 변호사는 회귀 전에 내가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당시, 내가 이끌던 투자회사에 그는 상당한 투자금을 맡겼고.
그 때문에 다년간 얼굴을 맞대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른 척, 나는 대화를 시작했다.
#
“근데 PF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통해, 2조 4천억 원 자금을 조달하신 경험이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아, 부동산 PF 사업 말입니까? 혹시 대표님은 해 보신 적이?”
“아뇨. 아직 없습니다.”
“그렇죠. 젊으시니까 다 하시긴 무리죠. 근데, PF 사업은 항상 느끼지만, 꼭 늑대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늑대?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하하, 대주(자금 대출 은행), 시행사, 시공사가 더 좋은 위치에 서고 싶어 항상 난리거든요. 물어뜯고 싶고, 더 먹고 싶고. 특히, 시공사는 PF 대출이 끼면 회사 재무제표가 나빠지니까 무조건 시행사를 끼고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이것저것 흔들어대죠.”
“단순하진 않군요.”
“네! 그런데 시행사는 원래가 영세하다 보니, 그럴싸해 보여도 한계가 많습니다. 특히, 조금만 스탠스가 흔들려도 분쟁이 발생하죠. 그래서 저는 이걸 조율하고 예방하는 역할을 주로 맡고 있습니다.”
“혹시 지금 계신 화연종합건설 쪽 일은 괜찮습니까?”
“아, 요즘 사업성이 좀 떨어지면서 저도 거기서 손을 털 생각입니다. 돈줄도 말랐고. 부동산 경기도 안 좋다 보니···. 그래서 지방으로 눈길을 잠시 돌렸지만, 역시 지방 쪽도 생각보다 좋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혹시 복합타운 같은 도시개발 사업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아, 복합타운이라! 그런 사업이 나온다면 당장 해야죠! 워낙 대형이라 새로운 부동산 경기를 이끌 수도 있고, 일반 아파트 분양과는 게임이 안 되죠.”
“그럼,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조심스럽게 제안을 좀 해도 되겠습니까?”
“아, 제안이라고 하시면?”
살짝 눈이 커지는 이용훈 변호사.
“제가 요즘 도시개발 쪽에 관심이 큽니다.”
그러자 묘한 탄성을 지르는 그.
“그래서 시행사 법인설립부터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필요하시겠군요?”
“네. 맞습니다.”
그러자 잠시 묵묵히 생각하다가.
이용훈 변호사는 날 빤히 쳐다봤다.
“제가 궁금한 게 있는데.”
“네, 말씀하십시오.”
“혹시 대표님은··· 재벌가 출신입니까?”
그렇듯 난데없는 질문이 나오자, 나는 좀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무슨 의도인지 깨닫고 이내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왜냐하면, 지난 미래증권 워크샵 이후 믿거나 말거나 식의 기사들이 우수수 쏟아졌는데.
[5천억 옵션 승자! 재벌 3세로 추정]
그런 식으로 유언비어 기사들이 쭉 퍼진 것이다.
나는 그저 우스울 뿐이다.
한편, 잠시 뒤.
그 제안을 마친 나는 더는 시간을 끌 수가 없어 자리에서 일어섰고.
이용훈 변호사와 힘껏 악수했다.
이때 그는 최대한 빨리 결정해 주겠다고 했고.
만약 미래증권이 이 사업에 일부 참여한다면.
더욱더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
한편, 그 일들을 마치고 그곳에서 나온 뒤.
나는 다시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서둘러 입시컨설팅학원으로 걸어갔다.
그 와중에 몇 군데 전화번호를 검색했고, 통화버튼도 눌렀다.
그러다가 미래증권 박현주씨한테도 전화를 하게 되었다.
#
“현주씨! 혹시 지금 바쁘세요?”
“아, 아니에요.”
“그럼, 제가 짧게 말씀드릴게요. 혹시 수능 끝나고 시간 되시면 저녁 식사 어떠세요? 제가 이런저런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미처 보답을 못 드린 것 같아서.”
“아, 대표님, 전 괜찮은데.”
“아뇨. 부탁드릴게요!”
“뭐, 그렇다면 저는···.”
“현주씨! 그럼, 승낙하신 거로 알겠습니다!”
“네.”
“그럼, 제가 나중에 다시 전화 드릴게요.”
무척 조용한 박현주의 목소리.
그렇게 통화를 마친 나는 피식 웃은 뒤.
서둘러 입시컨설팅학원 안으로 들어섰다.
#
그리고 그로부터 시간은 다시 빠르게 흘러갔고.
이후, 일주일의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리고 어느덧 코스피 폭락의 장이 예고된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한편, 나는 이날 점심 무렵 회사에 도착했고.
조관형 변호사와 대강화학 업무에 대해 논의를 마친 뒤.
조용히 대기하다가.
내 사무실에서 파생팀 직원 임범준씨의 전화가 걸려오길 가만히 기다렸다.
미처 차트 변화를 몰랐던 사람인 양.
그렇게 흉내를 내기 위해.
나는 숨을 죽이며 기다렸고.
그리고 어느덧 오후 2시 45분이 지나가던 순간.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났다.
이때, 서둘러 전화기를 잡았다.
#
“여보세요?”
“대표님!! 정말 죄송한데, 좀 오셔야 될 것 같습니다. 지금 코스피 주요 종목에서···.”
그래, 차트를 안 봐도 안다.
눈더미처럼 매도세가 불어나고 있을 터.
그게 바로 시작이었다.
그 순간, 긴 기다림이 끝나자.
나는 데스크를 탁! 치며 벌떡 일어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