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물이 되어버린 투자자-70화 (70/138)

68화 도약하다 03

<63>

“현주야, 가자!”

샵에 도착한 미래증권 박지훈 상무.

그는 손짓한 뒤, 박현주와 함께 샵에서 나왔다.

동생이 어느 남자와 순간 인사하는 것을 슬쩍 봤지만.

크게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냥 아는 사람을 샵에서 만났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저 샵은 아주 유명한 곳이니까.

유명인들이 들끓을 수밖에 없다.

“현주야, 혹시 놔두고 온 거 없지?”

“···없어.”

그런데 그로부터 약간 시간이 흐른 뒤.

운전 중이던 박지훈 상무는 순간 브레이크를 힘껏 밟을 뻔했다.

대신에 그는 요란한 비명을 질렀다.

#

“···야아!! 박현주!! 너 지금 뭐라고 했어!! 그 사람이 김한수 대표라고???”

시원하게 도로를 달리던 박지훈 상무.

그는 순간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그래!! 그 턱시도!!”

멋진 턱시도를 입고 있던 남자.

동생 박현주와 인사하던 남자.

그 사람이 바로 선물 거물 김한수 대표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젊은 사람이었다니!

너무 놀랍기도 했고.

너무 아쉽기도 했고.

그래서 그는 운전 중에 자신의 머리를 꽉 잡으려다가.

얼른 손을 내렸다.

워크샵 참석을 위해 단정하게 정리한 머리를 엉망으로 만들 순 없기 때문이었다.

근데 아까 슬쩍 봤던 그 남자.

뭔가 인상 자체가 심상치 않은데.

뒤늦게 그 남자의 정체를 알려준 동생 박현주가 많이 야속하기만 하다.

“야!! 박현주!! 넌 도대체 왜 이제서야 말해 주는 거야!! 지금껏 그렇게 물어봐도 모른 척하더니!!”

박지훈 상무의 목소리는 다시 커졌다.

“김 대표가 그렇게 젊은 사람이었어? 근데 절대 공개가 안 된다며? 나도 절대 알아선 안 된다며? 최 전무님도 무조건 함구하라고 하셨다며?”

한편, 뭔가 생각에 빠진 듯.

박현주는 내내 말이 없었고.

그녀는 계속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메이크업으로 인해 유난히 청초한 모습을 하고 있어.

그 분위기의 파급력은 상당했고.

박지훈 상무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운전에 다시 집중했다.

‘에휴, 내가 저 박현주를 이길 수가 없지. 그래. 내가 참는다. 착한 내가···.’

자신은 아버지 박승남 미래증권 고문을 많이 닮았지만.

동생 박현주는 성격상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그래도 박지훈 상무는 운전하면서 아쉬운 듯 계속 투덜거렸다.

“···어쨌든 그 사람이 김한수 대표라는 거지?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확실히 눈도장 찍었어. 근데 생각해 보면, 선물사업부, IB투자본부, 자기들끼리만 관리하겠다는 거잖아! 우리 사업부도 엮일 수 있잖아! 우리도 선물 투자에 관심이 있다고! 김 대표가 필요하다고! 근데 좀 이상하네. 갑자기 왜 그러지? 왜 갑자기 엠바고가 풀렸을까? 하아! 도대체 무슨 일이지?”

그래서 박지훈 상무는 호기심도 생겼고.

김한수 대표에 대한 관심도 더 커지게 되었다.

더군다나 이제 얼굴도 아는데, 언제나 만날 수 있지 않은가.

#

“근데 오빠. 나 지금 피곤한데. 잠깐 눈 좀 감고 있을게.”

한편, 이때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

박지훈 상무는 잠시 멈칫했다가.

날렵한 턱선을 살짝 들었다.

“야! 무슨 일이 있어? 근데, 엠바고는 왜 풀린 거야?”

다시금 질문을 던진 박지훈 상무.

그런데 이때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 들려왔다.

“음, 워크샵 참석 자체가 외부 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의지잖아. 오늘 저녁 이후, 아는 사람들은 다 알게 될 거야···. 아마 투자회사를 아주 크게 하실 생각인가 봐···.”

그렇듯 뜻밖의 답변을 듣게 된 박지훈 상무는 바로 백미러를 쳐다봤다.

메이크업 덕분에 너무 아름답게 변한 동생 박현주.

평상시에 이쁘긴 해도 저 정도는 아닌데.

여자의 변신은 정말 경이로울 지경이다.

그러나 다시 입을 꾹 닫은 동생이 가만히 눈을 감고 있어.

그는 미간을 찌푸린 뒤 역시 입을 닫았다.

#

박지훈 상무가 조용해지자, 그녀는 살짝 눈을 떴고.

가만히 창밖을 쳐다봤다.

‘아, 좀 이상하네. 마음이.’

갑자기 감정이 뚝 가라앉는데.

이게 참 희한한 일이다.

자신을 증권사 일반 직원으로 대하는 그의 모습에서.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행위들을 몇 번 했는데.

문제는 아까 대형 거울 앞에서 웃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쿵쿵 뛰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알 수 없지만, 무척 강해 보이는 그 자신감.

거울에 비친 그 자신감은 또한 알 수 없는 매력들을 발산했는데.

그런데 그걸 보고 나자, 갑자기 불안해진 것이다.

이상하게도 불안해졌다.

그 기분이 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박현주는 뭔지 모르는 그런 불안함에 휩싸였고.

기분이 좋은 듯하면서도 좋지 않은 듯.

뭔가 역설적인 상황에서.

그녀의 기분은 축 가라앉고 있었다.

<64>

“···아아! 저기 잠시만요. 혹시, 아! 저기 김한수 대표님 맞으시죠? 혹시 좀 전에 봤는데 혹시 기억나세요? 아, 맞습니다. 박현주! 하하! 정말 반갑습니다! 제가 박현주 오빠, 박지훈입니다. 그때 인사드렸어야 했었는데. 그럼, 다시 인사드릴게요. 미래증권 글로벌사업본부 박지훈 상무입니다.”

특급호텔 그랜드 홀.

한편, 조금 전, 이 홀에 입장한 나는 이내 먹먹한 표정을 하고서 좌우를 두리번거리다가.

결국, 갈팡질팡하는 상황이 되었다.

워낙 홀이 큰 데다가.

드레스 코드에 맞춘 사람들이 각자 흩어져 돌아다니다 보니.

뭘 해야 할지 잠시 막막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누군가가 정신없이 뛰어왔고.

날 보자마자 그렇게 인사하고 있었다.

바로 박지훈 상무.

아까 샵에서 잠깐 봤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

“···아, 박지훈 상무님! 반갑습니다.”

여하튼 그는 박현주의 오빠.

그래서 나는 웃으며 친근하게 대했는데.

그러자 그의 목소리가 더욱더 커지고 있었다.

“와아, 진짜 뵙고 싶었습니다! 정말 김한수 대표님 맞으시죠?”

내 신분을 다시 확인하는 그의 모습이 조금 이상했지만.

나는 다시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김한수입니다.”

“와아! 진짜 반갑습니다.”

넉살 좋게 웃으며.

곧장 악수를 청하는 박지훈 상무.

그러고는 우리는 명함을 서로 교환했다.

#

“근데 박 상무님, 혹시···?”

잠시 후, 내가 슬쩍 말을 끊으며 여운처럼 말을 흘리자, 이때 박지훈 상무는 바로 알아들은 듯 대답했다.

“현주는 곧 올 겁니다. 의상 좀 정리하고 온다고 해서.”

“아, 그렇군요.”

“근데 김 대표님, 제가 말을 좀 빙빙 둘러 하는 걸 싫어합니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희가 부탁을 좀 하고 싶습니다! 혹시 다음에 저희한테 시간을 한번 내주실 수 있습니까?”

“아, 시간이라고 하시면, 대체 무슨 일 때문에?”

“사실, 저희 글로벌사업부가 요즘 여러 사업들을 벌이고 있는데, 버드블란코 투자은행의 수석 디렉터 리처드 콜린 이사님과 CPC파이낸셜의 젠펑 찬 부사장님과 함께 진행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근데 나중에 두 분이 그 사업과 관련하여 발표도 하시겠지만, 그러나 남들이 모르는 돌발 변수 같은 리스크들이 숨어 있습니다. DLS(derivative linked securities) 투자에 실물 선물 투자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게 불확실성의 리스크가 아주 큽니다. 특히, 변동성이 아주 심하게 터지지 않을까 싶어 저희는 대표님의 혜안이 좀 필요합니다. 투자자가 크게 돈을 날릴 수도 있습니다.”

“아, 그래요? 저도 DLS에 관심이 갔는데, 그럼 언제 시간을 한번 잡아보도록 하죠. 저도 궁금한 게 있고.”

“하하. 정말 감사합니다!”

무척 고마워하며 바로 머리를 숙이는 박지훈 상무.

의외로 소탈했고.

직설적이었다.

조용하고 침착한 박현주와는 달랐고.

그냥 성격 자체가 다른 것 같았다.

그의 나이는 대략 30대 초중반.

그리고 무척 활발한 모습이었다.

#

여하튼 잠시 뒤, 아름다운 드레스 복장의 박현주가 조인하면서.

그때부터 우리는 세 사람이 함께 돌아다니게 되었다.

현재, 이곳 홀은 여기저기 하얀 테이블마다 뷔페식 음식들이 차려져 있고.

은쟁반에 칵테일 혹은 샴페인 등을 든 남녀 웨이터들이 돌아다니며 서빙을 하고 있었다.

한편, 각종 유럽풍의 소파와 의자들은 여기저기 군락 형태로 흩어져 있는데.

그런 자리마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고.

그곳을 중심으로 하나의 작은 사교 모임이 형성되고 있었다.

한편, 저 너머 한쪽.

바이올리니스트들은 은은한 바이올린 연주를 이어가고 있는데.

그 옆으로 여러 현악기들이 보였고.

나비넥타이를 맨 웨이터들이 긴장된 표정을 하고서 한쪽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사실, 어느덧 저녁 7시가 훨씬 지났지만.

실제 행사는 밤 8시부터라고 했다.

지금은 소규모 사교의 장이었다.

#

“···대표님, 느낌은 어떠세요?”

박현주다.

일부러 웃는 것 같은 그녀의 표정.

이제 박명식 회장의 손녀라는 게 완전히 공개된 터라.

나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회장님께선 확실히 소셜한 부분을 중요하게 여기시나 봅니다. 이곳은 그저 사업과 투자를 위한 사교 무대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드네요.”

“근데 젊은 사람들도 많이 온 것 같지 않아요?”

박현주는 슬쩍 여기저기 눈짓했다.

나도 모르게 그쪽을 쳐다본 뒤 씩 웃었다.

“네. 세대가 다 섞여 있다 보니 분위기가 좀 특이하네요.”

이때 날 유심히 쳐다보던 박현주는 갑자기 다른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대표님, 그럼, 저쪽으로 먼저 가시겠어요?”

“네?”

의아해하며 그쪽을 쳐다보자.

박현주는 다시 설명했다.

“저쪽에 계신 분이 JS인베스트먼트 김대호 이사님 같은데.”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짧게 탄성을 지르며 빤히 쳐다봤다.

JS인베스트먼트 김대호 이사.

그가 나한테 연락을 취했다는 것을 박현주는 이미 알고 있는 듯.

일부러 김대호 이사의 위치부터 나한테 알려준 것이다.

“감사합니다. 현주씨.”

그리고 잠시 뒤.

우리는 좀 더 빠른 걸음으로 그쪽으로 걸어갔다.

한편, 그 와중에 나는 문득 묘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러고 보니까, 내가 김대호 이사를 만나게 되면, 내 얼굴이 공개되는 거네.’

가만히 있어도 다시금 유명세가 터질 상황.

하지만 그게 싫지도 않고 좋지도 않았다.

평생 숨어 살 게 아니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서.

나처럼 큰돈을 벌어들이는 사람들.

어쩔 수 없이 치를 수밖에 없는 유명세였다.

물론, 그런 게 싫어 그늘 속에서 내내 숨어 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욕심 많은 내가 ‘명예’ 같은 것을 절대 손에 쥘 수가 없다.

회귀 전에는 나는 국회의원까지 했었는데.

그러고 보면, 나는 참 욕심이 많은 사람이 아닌가.

여하튼 잠시 후, 우리는 그쪽에 도착했다.

#

‘와아, 참 오랜만이다. 김대호 이사님! 여기서 보게 되다니.’

JS인베스트먼트 김대호 이사.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의 그.

그는 무딘 듯하면서도 날카로운 눈으로 누군가를 쳐다보며.

내내 대화하다가.

갑자기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낀 듯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금방 눈이 커졌다.

“아, 박 상무님! 하하, 박현주 선생님도 오셨군요!”

눈이 마주치자마자 바로 박현주와 박지훈 상무를 알아보는 김대호 이사.

그러고는 그는 고개를 돌려, 동행자인 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잠시 시선이 흔들렸다.

내가 낯설기 때문일 것이다.

그 때문에 잠시 의아함과 고민이 오가는 듯했고.

김대호 이사는 박지훈 상무를 쳐다봤다.

“박 상무님, 혹시 저분은?”

그리고 바로 그때.

박지훈 상무는 날 한번 쳐다본 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갑자기 턱을 살짝 올리며 요란하게 외쳤다.

“이사님! 정말 모르겠어요?”

그 말에 다시금 날 빤히 쳐다보는 김대호 이사.

그러나 다시 고개를 저었다.

“하하! 진짜 모르시구나! 아까 현주를 통해 이야긴 들었습니다. 두 분! 그럼 인사하시면 되겠네요. 먼저, 이분은 JS인베스트먼트의 전설적인 김대호 이사님! 그리고 이분은 최근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5천억 원 투자자 김한수 대표님!”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주변 사람들까지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지며 날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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