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도약하다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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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주씨, 저한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요?”
“심각한 이야기는 아니라서 편안하게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럼 저희 사무실에서 커피 한잔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1층 카페에서? 아차차! 그러고 보니, 손님들이 오셨는데 음료수 하나 못 드렸네요. 하하! 저희가 이럽니다.”
“대표님. 번거롭지 않게 1층으로 가셔서···.”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그러고는 나는 사무실 안으로 뛰어들어갔고.
지갑을 들고서 다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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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1층 카페.
우리는 먼저 주문을 했고.
그 뒤, 한쪽 창가 자리로 가서 앉았다.
“어때요? 여기 상당히 넓죠?”
내가 먼저 말을 걸자, 박현주는 좌우를 살핀 뒤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여기 몇 번 와 봤는데. 위치적으로 좀 좋은 것 같아요.”
“와! 잘 아시네요! 위치상으로 아주 좋죠. 그리고 점심때가 되면 저 끝까지 아마 줄을 설 겁니다.”
그러자 입가에 미소가 짙어지는 박현주.
“아마 저도 그중의 한 명일 텐데···.”
“아, 현주씨도요? 하하, 몇 번이 아니라 자주 오셨나 보네요?”
“네. 미래증권과 가깝기도 해서.”
“그럼, 담에 오시면, 꼭 연락 주세요. 제가 또 커피 대접할게요.”
“감사합니다.”
“참, 잠시만요.”
나는 얼른 일어나, 주문한 커피 등을 플라스틱 쟁반에 받아 왔다.
이때, 박현주도 얼른 일어났고 다가오더니.
나한테서 플라스틱 쟁반을 받은 뒤.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놨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잠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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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쩐 일인지 좀 여쭤봐도 될까요?”
“네. 말씀드릴게요. 내일 워크샵 때문에 몇 가지 전달 사항이 있는데···.”
아, 워크샵?
“원래 전화 드릴까 하다가, 마침 방문 건이 생겨 직접 말씀드리려고요.”
그러고는 박현주는 내일 워크샵 일정에 대해 다시금 설명했고.
몇 가지 주요 사항도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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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홍콩 투자은행의 저명한 금융인 몇 분이 특별 게스트로 참석하실 겁니다. 그때 투자유치 설명이 있을 예정인데 자세한 것은 그때 공개될 거라고 합니다. 그래도 미리 숙지하고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분들은 대체 어떤 분이죠?”
그렇게 질문하며 나는 곧장 큰 호기심을 드러냈는데.
그런데 바로 그때.
1층 로비를 지나가던 누군가와 순간적으로 눈이 마주쳤다.
최세진 상무였다.
그는 날 쳐다보며 갑자기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에 실소한 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박현주는 의아해하며 뒤돌아봤다.
이때, 최세진 상무는 흠칫하며 눈이 아주 커졌고.
박현주는 최세진 상무를 바로 알아보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자 최세진 상무도 목인사를 했는데.
별다른 관심이 없는 듯 박현주는 이내 몸을 돌렸다.
그러나 서류 가방을 손에 든 정장 차림의 최세진 상무.
그는 계속 박현주를 쳐다봤고.
주춤거리며 1층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혹시 최세진 상무님 잘 아세요?”
두 사람이 서로 인사하기에 잠시 후 내가 그렇게 묻자,
박현주는 날 한번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잘은 몰라요. 근데 언제 들어왔대요?”
"네?"
"미국에 가셨다고 들었는데."
그러고는 그녀는 더는 관심이 없는 듯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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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아까 하던 이야기들 계속할게요.”
“네. 현주씨. 말씀하세요.”
“특별 게스트는 영국계 버드블란코 투자은행의 IBD(Investment banking division) 부문 Product group 수석 디렉터이신 리처드 콜린 이사님과 중국계 CPC파이낸셜의 젠펑 찬 부사장님이십니다.”
“아, IBD 프로덕트 파트라고요?”
“네.”
“근데 그쪽은 인수합병, restructuring(구조조정), 레버리지 파이낸셜, DCM(debt capital market, 채권) 등을 다룰 텐데, 혹시 DCM 관련하여 투자유치 제안이 있나 보죠?”
내가 그렇게 다시 묻자, 박현주는 바로 놀란 듯 날 쳐다봤다.
“아, 잘 아시네요? 대충 저도 그렇게 들었는데 맞을 겁니다. 근데 혹시 DCM에 대해서도 잘 아세요? 혹시 DCM의 글로벌 규모에 대해서도 혹시 아세요?”
“대략 6조 달러 정도. 그 정도 규모가 아닌가요?”
“아, 아시네요. 수익 규모는요?”
“글로벌 기준에서 160억 달러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박현주는 다시 놀란 듯 눈이 약간 커졌다.
이 정도 세세한 수치까지 기억하는 내가 확실히 다르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럼 DLS(derivative linked securities)에 대해서도 잘 아시겠네요?”
“DLS, 으음. 파생결합증권이죠. 신용, 금리, 실물 자산, 원자재지수, ETF, 부동산 등. 이런 기초자산에 투자하고, 특정 범위 내에서만 변동이 생기면 약정 수익을 얻는 투자 방식이죠. 근데 먼저 DCM을 강조하시는 걸 보니, 혹시 DCM과 연관된 새로운 DLS 상품에 대한 투자유치 건인가요?”
“네. 맞습니다. 자세한 것은 그때 들어보시면 알겠지만, 새로운 채권 발행과 이것과 연계된 파생상품들을 출시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럼, 1타 2피? 아니지 그 이상이겠군요.”
금융가들은 정말 머리가 좋다.
하나의 행위를 순식간에 몇 개의 행위로 둔갑시켜버린다.
그때마다 자금들이 들어오게 되고.
계속 수익을 뽑아먹게 된다.
“하긴, 시기상 DCM이 다시 활발하게 끓어오를 시기죠.”
“그렇죠! 글로벌 경기 회복세도 있고.”
“근데 홍콩 IB은행들이 한국에까지 와서 홍보를 한다? 와! 우리 위상도 많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아무리 글로벌 IB 기업금융이 다시 불타오른다고 해도.”
“대표님. 근데 우리가 더는 금융 후진국이 아니지 않나요?”
그래, 그렇긴 하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보유하고 있는 자본력에 비하면, 대한민국의 금융·투자 실력은 아직도 열세!
우리나라 증시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외국인들이 한번 움직이게 되면 주가지수는 늘 심하게 출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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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희 미래증권에선 올 초부터 글로벌사업본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지에 대한 IB 서비스, 매니지먼트, 소싱 쪽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어요. 김인범 부사장님의 IB투자본부와는 별도의 사업본부입니다.”
“네, 아주 좋은 전략이군요. 그렇다면 그쪽 IB은행들과 관련 협력사업들을 진행할 수도 있고··· 아, 아니지! 이미 협력 중이시군요?”
“네. 맞아요. 바로 이해하시네요.”
“아아, 근데 현주씨는 정말 많이 아시는 것 같습니다. 이미 고객관리 업무를 넘어서신 것 같고.”
내가 슬쩍 칭찬하자, 박현주는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 표정은 금방 사라졌고.
커피를 조금 마신 뒤.
그녀는 잠시 후 다른 이야기들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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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일 저녁 워크샵에는 어떻게 가실 건가요?”
“아아, 저는 입시컨설팅 학원에 좀 들렀다가, 시간 맞춰서 출발할 생각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그럼, 현주씨는요?”
“저는 토요일이라 친구 좀 만났다가··· 샵에 들러 메이크업, 머리 손질도 하고 갈 생각인데···.”
이때, 내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박현주는 그런 날 유심히 쳐다보다가.
갑자기 그녀의 두 눈에선 이채가 돋아났다.
“대표님! 혹시 대표님도 헤어 관리하시고, 거기 가시는 게 어떠세요?”
“헤어? 이 머리요? 이 머리 스타일이 좀 이상한가요?”
“아, 아뇨. 그렇진 않은데···.”
그러면서 애매한 시선을 보내는 박현주.
할 수 없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겠네요. 생각해 보니까 대충하고서 가는 건 이상하겠네요. 워크샵이라는 명칭만 붙었지 그냥 파티라고 했죠? 으음. 그럼 저도 시간을 좀 써야겠군요.”
“턱시도 가져오세요. 제가 다니는 샵에서 입으시면 돼요.”
“아, 근데 그래도 될까요?”
“제가 대표님 예약도 잡아드릴게요.”
“근데 저번에도 제가 편의를 받았는데.”
“저는 담당자입니다. 편안하게 생각해 주세요.”
“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예약 시간 알려주신다면, 그 시간에 맞춰 샵이란 곳에 가겠습니다.”
그렇게 정리가 되자, 박현주는 살짝 웃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이만 일어날게요.”
이때, 긴 머리카락이 살짝 흩날렸고.
비록 긴 정장 바지 차림의 오피스룩이지만.
세련된 옷차림인 그녀는 새카만 눈동자로 날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여 나한테 인사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테이블 위의 쟁반을 손에 들었다.
내가 얼른 빼앗으려고 하자, 그녀는 어느새 반납대로 걸어갔고.
커피잔, 쟁반, 쓰레기 등을 재빨리 정리한 뒤 몸을 돌렸다.
“예약 시간은 제가 오늘 중으로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대표님, 그럼 내일 뵙죠.”
“네. 현주씨. 그럼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그러고는 다시 인사한 뒤.
우리는 조용히 헤어졌다.
<62>
다음 날.
가을의 기운이 조금 더 짙어지고 있는.
미래증권 워크샵 당일.
나는 아침부터 무척 바빴다.
주로 KH투자파트너스, 회사 업무 때문이었다.
조관형 변호사한테 일들을 많이 맡긴다고 하지만.
우리 두 사람의 전문 업무 분야는 확실히 달랐다.
그는 검사 출신의 변호사일 뿐.
결국, 투자사 직원 업무들을 좀 더 세세하게 조율하는 과정에선 무조건 내가 주도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하게 될 직원들.
그들에 대한 각종 업무 지시 사항들을 나는 직접 타이핑해서 프린트했고.
그걸 다시 조관형 변호사한테 보여주면서 완벽하게 숙지하도록 했다.
그런데 일들이 그걸로 끝난 게 아니었다.
조관형 변호사가 맡고 있으나.
대강화학에서 넘어온 수많은 결재 서류들.
그 서류들을 일일이 다시 확인해야 했고.
자금 출납과 회계 현황 등은 더 꼼꼼하게 점검해야 했다.
‘와아, 역시 회계사와 세무사 일이 중요해. 근데 대강화학 건은 그냥 회계 서비스를 인소싱해서 맡겨도 될 것 같은데. 지금은 CP(기업어음) 들어오는 것만 신경 쓰면 될 테고.’
실제, 대강화학 서류들은 특별한 영업 기밀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런 방식이 훨씬 더 효율적일 것 같았다.
‘그리고 젊은 회계사들을 우리 회사에서 고용할 수 있다면 더 좋을 텐데.’
그런데 그게 어디 쉽겠나.
몸값 좋은 그들이 아직은 이런 신생 회사에 들어올 리가 없다.
여하튼, 그런 지시들을 조관형 변호사한테 했고.
그 와중에 일들을 서둘러 마쳤는데.
어느덧 오후가 되자.
나는 서둘러 강남으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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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오세요! 선생님 오셔서 기다리세요!”
잠시 후, 입시컨설팅학원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후다닥 뛰어서 안으로 들어갔고.
그때부터 거의 3시간 남짓.
연속으로 미친 듯이 과외 교습을 받았다.
워낙 비싼 입시 과외이다 보니.
저절로 집중했는데.
그 교습을 마친 뒤.
그곳 면학실에서 공부 중인 전국 등수의 학생들을 힐끔 쳐다본 뒤.
나는 아쉬움을 달래면서 그곳에서 나왔다.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수능 입시일.
‘하아! 불안한 데.’
공부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계속 불안한 마음이 없잖아 있다.
그렇다고 다른 일들을 전혀 무시할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어. 우선은 9월 말까진 방법이 없어. 이후, 미친 듯이 수능만 파자!’
한편, 잠시 뒤.
나는 시간에 딱 맞춰.
박현주씨가 예약한 그 샵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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