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물이 되어버린 투자자-63화 (63/138)

61화 거물 등장-철광석 독점 02

<56>

“···한수야, 도대체 이게 말이 되냐?”

밑도 끝도 없이 질문부터 던지는 김창식 반장.

“반장님,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그리고 죄송합니다. 자주 연락을 못 드려서···.”

“···니가 도대체 무슨 돈이 있다고···?”

한편, 낮게 깔리는 듯한 목소리.

무척 저음이었다.

그래서 집중하지 않으면 잘 들리지도 않는 그런 목소리였다.

화를 내는 건지.

불안한 목소리인지.

그것도 바로 판단할 수가 없다.

“반장님! 혹시 회사 일 때문인가요?”

최병우 변호사를 통해 공시가 됐을 테고.

아마 소문은 파다하게 퍼졌을 것이다.

또한, 오늘 아침엔 조관형 변호사가 공장 출근을 했을 것이다.

경영진들의 구속으로 풍비박산이 나버린 공장.

그래서 공장 직원들은 조관형 변호사의 등장에 놀라며 크게 주목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무척 불안할 것이다.

새로운 경영진이 나타났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니가··· 사, 사장이나 다름없다며?”

여전히 낮은 목소리지만 이번엔 약간 목소리 톤이 거칠어졌고.

다소 떨리고 있었다.

“반장님! 근데 왜 이렇게 목소리가 작으세요?”

“아, 지금 여기··· 사무실. 강 과장이 밖에 있어 내가 좀···.”

그래서 김창식 반장의 목소리가 작아졌나 보다.

여전히 생산관리직 간부의 눈치를 보고 있는 김창식 반장.

‘에휴, 나이가 많아지니, 반장님은 더 눈치가 보이나 보다.’

비록 상대가 젊은 과장이라고 해도.

생산직 고졸 직원들의 근무평정에 그들은 이런저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편,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더 늦기 전에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이미 일어난 일이고.

이젠 돌이킬 수가 없다.

“네. 그렇게 됐습니다. 반장님.”

“하지만 니가 무슨 돈이 있다고? 설마 돈을 훔친 것은···.”

그 말에 나는 즉시 실소하면서.

이내 사정을 알 것 같았다.

하긴, 고졸 생산직 직원이 월급 받아서 얼마나 돈을 모으겠는가.

그런 고졸 직원이 퇴사했고.

이후 갑자기 나타나 회사를 인수했다.

하늘같이 우러러보던 저 꼭대기 위에.

내가 갑자기 올라선 것이다.

김창식 반장은 아마 경악했을 테고.

도저히 믿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전화를 하는 것이다.

“반장님! 전 절대 훔친 적도 없고, 빌린 적도 없습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반장님! 저번에도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제 일은 제가 알아서 잘 하고 있다고.”

“그래도 이게 도대체 말이 되냐?”

조금씩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김창식 반장.

“반장님! 저는 투자일을 하고 있습니다!”

“투자? 무슨 투자?”

“주식 투자 같은 거 혹시 아세요?”

“주식? 그럼 니가 그걸 했다고? 그 위험한 걸 했다고?”

“네. 좀 아시나 보네요?”

“내가 예전에 주식 투자 잘못해서 수억 원 날린 사람을 봤어.”

“하지만 저는 돈을 벌었습니다.”

“근데 그럴 수가 있나? 인사팀 박춘구 대리 알지? 인마! 그 박 대리가 작년에 주식으로 3천만 원이나 날렸어! 박 대리가 서울에서 꽤 좋은 대학 나온 거 알지? 그런 사람도 돈을 날린다고!”

“반장님. 투자는 절대 학벌 순이 아닙니다.”

“학벌 순이 아니라고? 야! 그것도 공부 같은 거 아냐? 멍청한 놈은 절대 못 하는 거.”

“아, 아닙니다. 투자는 그런 게 아닙니다.”

“아니긴? 무슨! 뭐가 아니라고 그래? 주식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걸 도대체 나더러 믿으라고? 그게 도대체 말이 돼?”

“어떡하죠? 그렇게 믿지 않으시면 저도 말할 수가 없는데.”

“야! 내가 널 무시하는 게 아니잖아!! 세상이 지금 그렇잖아!! 우리들끼리 으샤으샤해 봤자, 뒤에서 얼마나 따갑게 쳐다보는데. 너도 잘 알잖아!! 우린 공장 밥이나 처먹고 도저히 위로 올라가질 못해! 내가 반장이랍시고 관리직들한테 존중받는다고 해도, 젊은 간부들 눈치를 얼마나 보는지 너도 잘 알잖아. 이런 상황인데, 도대체 무슨 주식으로 돈을 벌어?”

“반장님, 근데 너무 흥분하신 거 아닙니까?”

“내가 뭘 흥분해?!! 내가 허튼소리를 한 것도 아닌데!!”

“근데 한 가지 잊고 계신 게···.”

“뭐?!!”

“반장님! 어쨌든 제가 공장을 인수한 것은 사실입니다.”

사실, 김창식 반장이 너무 놀라, 너무 흥분한 것 같았고.

그래서 감정을 좀 추스르라는 의미에서 나는 그렇게 말을 던졌는데.

그 반응은 잠시 후 엄청났다.

뭐라고 고함을 더는 지르지도 못했고.

스마트폰 너머로 계속 괴상한 호흡 소리만 들려왔다.

오랜 공장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평소에도 젊은 관리직 간부들을 무척 의식했던 김창식 반장.

따지고 보면, 그런 그가 회사 사장이나 다름없는 나한테 크게 고함을 지른 것이다.

“아, 반장님. 이제 진정하시고 들으세요. 아무래도 전화상으로는 쉽지 않은 것 같은데.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저녁에 한 번 뵀으면 합니다.”

“···으음···.”

“제가 공장으로 가겠습니다! 근처에서 식사를 같이하시든지, 아니면 좀 더 근사한 곳에서···.”

그리고 그 순간,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니. 근사한 곳은 무슨! 거기 삼겹살집. 밤 8시. 그럼 그쯤에서 보자.”

이때, 나는 다시 물어봤다.

“근데, 거기보다 더 좋은 곳에서···.”

“아니다. 아냐!”

다시 좀 더 센 목소리가 들려왔다.

“니가 돈을 벌었으면 니 돈은 니가 아껴. 니가 공장을 샀으면 얼마나 돈을 많이 썼겠어? 내가 그렇게 염치없는 놈이 아니다. 아무튼, 난 심장이 떨려 죽겠어. 아까 전, 조 뭐시기 변호사님이 여기 오셔서 네 이야기를 많이 하고 갔어. 그러고 나니까, 관리직 애들이 내 눈치를 계속 보고 있어.”

어? 반장님 눈치를 본다고?

“과장, 차장, 부장할 것 없이 내 눈치만 보고 있어. 근데 내가 사장도 아닌데, 내 눈치를 볼 것도 없잖아? 암튼, 여기 작업하던 애들도 지금 좋아서 난리다. 니 이름 외치면서 박수치면서 작업하고 있어. 암튼, 저녁에 보자. 그, 그만 끊자.”

그러고는 전화는 끊어졌다.

그런데 그렇게 통화를 마친 뒤.

나는 피식피식 웃다가.

이내 기분이 좀 이상해졌다.

잠시 통화하면서.

공장 현장으로 돌아간 듯한.

그런 느낌이 살짝 들기도 했으나.

작업반 애들이 내 이름을 부르면서.

박수 치며 좋아했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갑자기 가슴이 쌔 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잠시 갈피를 못 잡다가.

담배 하나를 들고서.

나는 밖으로 나왔다.

#

‘···근데 괜찮겠지?’

쏟아지는 햇빛.

여름 날씨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한편, 나는 현관 지붕 아래에 서서.

하늘을 쳐다보다가.

잠시 후,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유!

내가 뱉은 하얀 담배 연기는 요란하게 춤을 추며.

그렇게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다.

#

‘어쨌든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는 말인데.’

순식간에 지분을 확보했고.

아직 임시 주총이 열린 것은 아니지만.

기존 경영진이 초토화가 된 상황이라.

명분과 지분이 있는 나는 이 공장을 이미 인수한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내가 보낸 조관형 변호사를 누구도 무시할 수가 없을 것이다.

#

‘근데 조 변호사님이 적절하게 날 언급하셨나 보네. 다들 많이 놀랐겠다. 소문만 무성하다가 내가 진짜 등장했으니까 말이야.’

그렇다면 나는 영웅인가.

아니면 빌런인가.

못된 경영진을 쫓아냈지만.

문제는 내가 이 공장을 계속 가동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공장 인수는 명목일 뿐.

현재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바로 공장 부지다.

‘에이 참! 그래서 다시 머리 아프네.’

왜냐하면, 나 역시 공장이 어떤 곳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단순한 투기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일하며.

같이 웃고 울며.

함께 생존하는 바로 그런 곳이 아닌가.

‘근데, 할 수 없지. 가치란 게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르니까.’

그래도 공장 직원들을 구제할 방법은 반드시 찾아야 한다.

인간적 도리로서 말이다.

그리고 다행히 아직 시간이 많다.

공장 역시 당장 문을 닫지도 않을 거고.

도시개발사업 역시 시행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

잠시 후, 나는 담뱃불을 끈 뒤.

현재 시각을 확인했고.

저택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어느덧 가까워지고 있는 SGX 개장 시각.

그때부터 나는 다시 바빠지기 시작했다.

<57>

끼룩. 끼룩.

저 멀리.

저 멀리 유유히 날아가는 하얀 갈매기들.

아름다운 카리브 해에 있는.

쿠바 남쪽의 영국령 케이맨군도.

이 케이맨군도의 푸른 해변을 향해 드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너무나도 맑고 깨끗한 파란 하늘은 수평선 위로 넓게 펼쳐져 있다.

일 년 내내 따뜻한 케이맨군도.

그런데 이곳 케이맨군도에는 ‘아팔루사 펀드’와 연계된 ‘팔로미노 펀드’ 외에도.

‘랜드브리지 펀드’라는 유명한 글로벌 헷지 펀드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런데 이 펀드가 이곳에 위치한 것은 다소 형식적인 면이 있는데.

케이맨군도 자체가 빛나는 조세회피 지역이기 때문이다.

각국의 가중된 납세 의무를 피하려고 모여든 핫머니들의 천국.

높은 하늘과 미친 듯이 뜨거운 햇볕 아래.

그 수많은 글로벌 투기 자금들은 케이맨군도로부터 움직이고 있었고.

전세계를 향해 힘차게.

그리고 끝없이 뻗어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

한편, 하얀 요트가 정박되어 있는 곳.

그 순간, 요란한 엔진 소리가 들리더니.

수십억 원대에 달하는 늘씬한 노란 슈퍼카 한 대가 빠르게 달려왔다.

그 슈퍼카는 요트 근처에서 갑자기 멈춰섰고.

잠시 후, 가슴팍이 거의 드러난 반팔셔츠를 입은 중년 남자가 그곳에서 내렸다.

그러자 요트 앞에 서 있던 두 명의 남자가 황급히 다가가 인사했다.

“이사님. 이쪽입니다.”

그러면서 무척 서두르는 듯한 금발의 두 남자.

그러나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검은 머리의 중년 남자는 씩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시간은 많아. 이미 벌어진 일을 수습하는 일인데.”

그러고는 중년 남자는 희미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즐기며, 천천히 요트 쪽으로 다가갔다.

이제 이 요트를 타고서 바다를 건널 예정인데.

그랜드 케이맨 노스 사운드의 스팅레이시티(stingray city)로 향할 예정이다.

그리고 잠시 뒤.

요트 뱃머리에 서서, 카리브해의 뛰어난 경치를 쳐다보던 그는 우웅! 하는 소리를 듣더니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네. 접니다. 수석 이사님! 지금 가고 있는 중입니다. 으음. 근데 이제야 제가 필요한 모양이군요? 알겠습니다. 좀 있다가 뵙도록 하죠.”

그렇게 전화를 끊은 뒤.

중년 남자는 수평선 위로 낮게 깔린 하얀 구름 떼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그로부터 30분 뒤.

마침내 스팅레이시티(stingray city)에 도착하게 되었다.

#

한편, 그가 요트에서 내렸을 때.

이번에도 여러 사람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특히, 누군가 즉시 다가왔고.

그는 웃으며 바로 악수를 청했다.

“킴! 어서 오게. 이쪽으로 가지.”

그 말에 중년 남자, 아니 킴 이사는 씩 웃으며 함께 움직였다.

그리고 그렇게 걷던 중.

킴 이사는 이태리계 안토니아 이사를 슬쩍 쳐다봤고

잠시 후, 짓궂게 입을 열었다.

“안토니오. 이번에 사업이 털렸다고 하던데, 에바 가보르 이사에 대한 징계는 언제 진행되나?”

굵직한 쿠바산 시가를 입에 물며.

함께 걷던 안토니아 이사.

킴 이사의 그런 지적에 안토니오는 킴 이사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진정해! 킴! 넌 너무 날카로워! 가보르 이사의 징계가 먼저가 아니라, 우리 펀드의 상황 수습이 먼저지.”

“그렇다고 바뀌는 것은 없을 텐데?”

“실은 그게 메인이지. 그래도 한국의 도시개발 사업에 끼어 들어가려고 했던 건 전략상 괜찮았어. 한국의 아파트 도시 사업은 그냥 머니 파티야! 다만, 좀처럼 우리가 들어갈 수가 없어. 우리가 들어갈 수만 있다면, 황금을 캘 수가 있는데.”

“그래서 날 부른 이유는?”

“자네 전문 있잖아.”

“내 전문?”

“수석 이사님께서 말씀하시겠지만, 다시 기술자가 필요한 시대가 왔어. 앞으로 우리 펀드에서 좀 세게 진행해 보려고. 그래서 요즘 가장 만만한 곳이 어딘지 아나?”

“중국?”

“국가주도만 아니라면 금융적으로 봤을 때 가장 취약하지. 그러나 중국으로 들어가기 전, 워밍업부터 해봐야지.”

“어딜 치려고?”

“매번 흔들어 봤는데, 아주 취약한 곳이 있더군. 증시가 너무 약해. 우리가 움직일 때마다 너무 쉽게 증시 지수가 출렁이는 곳. 하하! 한국으로 들어간다. 본격적으로.”

지략가이자 야심가, 안토니오 이사.

그의 언급에 새카만 머리의 중년인 킴 이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한국이라?”

“관심이 있나? 네 아버지의 나라가 한국이라고 했잖아?”

그 말에 킴 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혼혈이다.

한국인과 유대인의 피가 섞인.

그래서 모계 혈통에 따라 자신은 현재 유대인일 뿐이다.

“그래서 내 기술을 다시 쓰겠다고?”

“브라보! 바로 그거야!”

킴 이사의 특기는 LBO(leverage buy out), 그린메일링(green mailing), 여론 조작, 턴어라운드(turn around) 등 다양했다.

이런 것을 속칭, ‘기술’이라고 한다.

LBO 기술은 기업을 인수한 뒤 그 기업의 자산을 담보하여 자금을 다시 빼는 기법인데.

이때, 그 회사를 보유하되, 추가 자금을 이용해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이다.

그린 메일링(green mailing)은 대량의 주식을 매수한 후 경영권 위협을 통해 기업 오너와 빅딜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대량의 주식을 다시 오너에게 넘기면서, 막대한 시세 차익을 창출하는 그런 방식이다.

그리고 여론 조작. 일반적인 주가 조작 방식.

한편, 턴어라운드는 저평가 기업을 인수한 뒤 기업 회생 절차 이후 기업을 다시 팔아치우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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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 회의 끝나고 바로 출장 준비하면 될 거야. 한국에선 멍청한 한세증권과 협력하고 있으니까 적응하는데 어렵지 않을 거야.”

안토니오 이사는 그렇게 말한 뒤.

쿠바산 시가를 다시 입에 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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