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공장을 인수하다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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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검사장. 하하, 잘 지내는가? 부탁 좀 했으면 하는데.”
“아아, 형님,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우리 중요한 고객이 계신 데, 일이 좀 생겨서 말이야. 자네가 이번 건을 좀 도와준다면 내가 절대 그 은혜는 잊지 않겠어.”
“하하, 형님께서 부탁하시는데 제가 당연히 도와 드려야죠. 사실, 저도 임기가 얼마 안 남았습니다. 거기 자리 하나 자-알 마련해 주십시오.”
“자리? 자리라고 했나? 하하! 우리 김 검사장이 온다면, 우리 로펌 대표님들께선 쌍수를 들고 환영할걸. 김 검사장 같은 급이 우리 간택을 받을 필요가 없지.”
“아, 아닙니다. 요즘 설천 분위기 좋은 거 저도 자-알 압니다.”
“그런가? 암튼, 내가 술 한잔 살게.”
“그럼 그때 뵙고, 한번 회포를 풀도록 하죠.”
“좋지. 좋지. 아, 그리고 우리 직원들을 통해 곧 고소장을 접수시킬 건데, 자네가 좀 보면 바로 알 거야. 이 사안은 검찰에서 무리 없이 일을 진행할 수 있는 아주 매끈한 건이야. 내가 봤을 땐 아주 구린 회산데, 횡령, 배임, 회계장부 조작, 근로기준법 위반 사실까지 몽땅 다 엉켜 있어.”
“근데 회사가 좀 큰 회삽니까?”
“아니. 코스닥 기업인데 생산 제조업 분야의 중소기업.”
“아, 그래요? 그럼 서류 들어온 거 확인하고, 배정식 부장검사한테 그 일을 맡기겠습니다.”
“배정식 부장?”
“네. 저번에 한번 봤을 겁니다. 조용하면서도 무서운 친구. 일 처리 하나는 똑똑 부러지죠.”
“하하, 고맙네. 자네만 믿겠어.”
“형님! 그럼, 조만간 연락드릴게요!”
그러고는 전화가 끊어졌는데.
최병우 변호사의 입가엔 미소가 피어올랐다.
자신은 부장판사 출신이긴 하지만.
김 검사장은 학교 후배인 데다가.
아주 오래전에 함께 고시반 생활을 했었다.
그래서 친동생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무척 가까운 사이의 후배다.
‘흠, 이 정도면 내가 할 일은 충분히 한 것 같은데.’
전관 특혜, 그리고 인맥.
이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설천에서 자신은 초고액 연봉을 받게 된다.
바로 이게 자신이 일반 변호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고.
바로 자신의 특기이자 강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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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
한편, 학원가에서 수능 강의를 듣던 나는 얼마 전에 치렀던 사설 모의고사 결과를 배부받았다.
이곳은 재수학원이다 보니.
정규 모의고사 외에도 사설 모의고사 등을 볼 수 있는데.
그 때문에 실력 변화를 틈틈이 점검할 수 있다.
‘근데, 성적이 좋아지긴 한데, 역시 좀 부족해.’
약간 아쉬운 듯한 성적.
하긴,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시간 자체가 무척 부족했다.
실제 공부가 시작된 것은 올 1월 초순.
겨우 7개월 남짓 공부를 했고.
그 기간 동안 수능 범위 전체를 다 숙지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전체 공부해야 할 범위는 넓은데, 공부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래도 이 정도라면, 중위권 대학은 어쩌면 갈 수 있겠는데.’
그러나 아직 상위권 대학 입학까진 요원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이대로 실망할 이유도 없다.
11월 수능까진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그리고 성적이 계속 오르고 있다는 것도 중요하고.’
올 초만 해도 대략 바닥권.
그러나 이 짧은 시간 안에 이 정도 성적으로 오른 것만 해도 가히 놀라운 일이다.
공부에도 가속이 붙는다.
그리고 그런 부스터들이 자신한텐 있다.
긴 인생을 관통하며, 점점 더 늘어나고 더 날카로워진 집중력.
그리고 각종 투자 분석 등을 진행하면서 얻게 된 이성적 판단력과 논리력 등.
이런 것들은 수능 공부를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그래도 역시 좀 부족해.’
갈증.
사실, 이곳 학원가에서 공부하면서 기본기를 닦았지만.
역시 한계가 있다.
또한, 정신없이 공부하는 재수생들을 보면서.
자극도 되어 더 열심히 공부를 하긴 했으나.
어쨌든 이 시기가 되자, 한계가 점점 더 명확해진다.
즉, 이곳에서의 공부는 이미 피크에 달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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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나는 사설 모의고사 점수표를 가방에 넣은 뒤.
조용히 밖으로 나왔고.
복도에서 스마트폰을 들고서.
이것저것 투자 관련 인터넷 기사 상황도 살펴봤다.
그리고 뒤늦게 확인한 거지만.
문자가 이미 와 있었는데.
발신자는 바로 최병우 변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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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도대체 무슨 좋은 일일까.
‘아! 사람을 궁금하게 만드네.’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결국, 나는 바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곧바로 통화는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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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감사합니다. 변호사님. 그렇게 되면 생각보다 상황 파악이 빨라지겠군요? 알겠습니다. 소식이 나오면, 다시 연락 주십시오. 그리고 경호원들은 최대한 위장해서···네! 감사합니다.”
잠시 뒤.
나는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상으로 현재 상황을 파악했고.
최병우 변호사가 손을 쓴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대강화학 일은 앞으로 급물살을 타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상황상, 각서 파기뿐만이 아니라, 정덕이가 피해 보상까지 받을 수 있다고?’
그렇게 된다면 일차적으로 무척 만족스러울 것이다.
‘확실히 설천에 일을 맡기길 잘 했어.’
그러고는 나는 다시 스마트폰을 손에 들었고.
잠시 후, 발신 버튼을 누른 뒤.
누군가와 서둘러 통화를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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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후 5시.
강의 하나를 더 들은 뒤, 나는 대치동 재수학원에서 바로 나왔다.
저녁 7시.
박소희와 그 시각 약속이 있어 슬슬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아직 이른 시간.
그럼에도 중간에 잠시 들를 곳이 있었고.
그래서 나는 좀 더 빨리 움직였다.
학원가 근처 유료주차장에 도착한 뒤.
나는 그곳에 주차해둔 벤츠에 탑승했고.
그러고는 빠르게 달려.
잠시 후, 내가 도착한 곳은···.
대형 20층 상가 건물에 위치하고 있는, 강남의 어느 유명 입시컨설팅 학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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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희는 저희 연구소만의 학습 플랜에 따라 1타급에 준하는 컨설턴트들을 학생들한테 배정하고 관리하는 곳입니다. 근데, 최소 1년 이상의 학습성향 분석과 각종 컨설팅을 통해 학생들을 정밀하게 관리합니다. 근데,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는지 모르겠는데, 분기가 지난 터라 추가 학생 모집은 현재로선 불가합니다. 지금은 8월이잖아요?”
입시상담 컨설턴트.
중년의 여자는 화장기 짙은 얼굴로 유창하게 설명했다.
그러니까 ‘연구소’로 지칭되는 이곳 입시 컨설팅 학원에서는 지금 날 받아줄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피식 웃을 뿐.
바로 일어서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있어 입시는 돈 자체였고.
이들은 돈을 벌고자 이렇게 초고액 입시 컨설팅 학원을 차린 것이다.
나는 돈이 많다.
그리고 이곳은 돈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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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아시다시피 수능 11월까진 얼마 남지도 않았어요. 저희도 실적이란 게 있고, 여기까지 힘들게 찾아오셨는데,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상담에서 여자는 다시 불가능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나 이때도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자 잠시 뒤, 여자는 좀 더 다르게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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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이라고 하셨죠?”
“네.”
“스물여섯이라··· 사실, 그런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하는 게 많이 힘든 걸 저도 잘 알겠는데. 지금 가져온 모의고사 성적들은 저희 연구소 학생들 기준, 최하위권 성적입니다. 아시겠어요?”
표정이 조금 굳어지지만.
그래도 예의를 잃지 않고 말하는 여자.
워낙 잘난 학부형들을 자주 만나다 보니.
그런 예의가 저절로 몸에 익게 된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예의는 나한테도 예외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내가 처음 만나자마자, 내가 가지고 있던 투자사 대표 명함을 즉시 건넸기 때문이다.
“···음. 그래서 저희는 선생님을 도저히 받을 수가 없는데, 그래도 아쉬움이 큰 것 같으니까 제가 간단히 10분 정도라도 조언을 해 드릴까요?”
그러나 이때 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필요가 없다고요?”
“네. 애초에 제가 여길 찾은 목적은 단순 컨설팅이 아니라, 과목별 선생님들을 찾을 목적이었으니까요.”
“선생님? 아, 그렇게 표현하시는 게 아닌데. 저희 선생님들은 ‘교육 컨설턴트’들입니다.”
그게 뭐가 다를까.
그러나 그렇게 지칭하고 있으니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그 여자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사실, 눈앞의 이 중년 여자는 이곳 컨설팅 학원의 공동대표다.
자녀들을 모두 한국대 의대에 입학시켰다고 했고.
강남 모 학원을 운영하다가.
지금은 이곳 컨설팅 학원을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는 중이다.
한편, 스멀스멀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들.
당시의 나는 투자 성공으로 돈을 많이 번 상태에서, 이곳을 처음 찾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수능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땐 대략 무척 힘이 들었다.
교육 컨설턴트들이 무척 집요한 인간들이었고.
매번 수많은 과제들을 내주었다.
그런 공부를 하다 보면.
개인 투자 자체를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처음부터 이곳을 찾지 않았다.
‘여긴 석 달 수능 단기 족집게 코스가 가장 핵심이야. 그러나 단순 족집게 아니지. 석 달간 주요 물량으로 밀어 부치니까.’
특히, 이곳 학생들 중에서 한국대 입학이 아슬아슬한 학생들.
한국대 의대 등, 최상위권 학과 입학을 원하는 학생들.
그런 학생들한테 초고액 과외가 제안되는데.
지금이 바로 딱 그런 시기였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때의 나는 그런 은밀한(?) 기회를 얻지 못했다.
당시의 나는 그런 초고액 과외가 의미가 없을 정도로 공부 실력이 조금 부족했기 때문인 것 같았고.
또한, 이런 것들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뒤늦게 그걸 알고서 얼마나 아쉬워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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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진짜네!”
“10억 원. 선입금 확인되셨죠?”
“아, 네! 확인했습니다.”
“그럼 바로 스케쥴 좀 잡아주세요.”
“네. 그래야죠. 근데, 이건 그 전에 꼭 말씀드릴게요.”
나는 의아해하며 쳐다봤다.
무슨 더 할 말이 있나?
“우선, 선입금에 대해선 과목당 매달 교육비를 정산하고, 수능 이후 전체 정산 처리가 될 테니까 그 선입금액에 대해선 전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선입금에 비해 사용액이 적으면 나중에 환불됩니다. 그리고 반드시 아셔야 할 점은 여기컨설턴트들은 자택 방문 교육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사실, 알면서도 나는 일부러 물어봤다.
“저희 선생님들이 무척 바쁘답니다. 연봉만 해도 일인 기업 수준이 되시는 분들이 꽤 계시고. 방송 출연도 하시다 보니, 시간 자체가 많이 없으세요. 그래서 학생들은 이곳에 와서 꼭 공부해야 합니다.”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하면, 이곳 자체도 퍼실리티가 나쁘지 않다.
한국대 최상위권 학과 입학을 노리는 학생들이 이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이곳 면학실은 미친 듯이 공부에만 몰두하는.
그런 학생들이 존재하는 그런 광열의 현장이라고 해야 하나.
‘아마 전국 500등 안에 드는 학생들일 텐데.’
그래서 나는 이곳 컨설팅 학원에서 교육을 받기로 했고.
잠시 후, 몇 가지 계약서 사인도 했다.
내가 중간에 끼어든 터라.
설령 한국대 입학에 실패하더라도.
여기서 공부했다는 사실을 절대 함구하기로 하는 각서형 계약서였다.
여하튼 그런 계약서 사인을 마친 뒤.
나는 그곳에서 나왔고.
잠시 뒤, 퇴근길에 엉켜 힘들게 운전하다가.
거의 시간에 맞춰.
고시원 근처에 도착했다.
그러고는 약속 장소인 편의점을 향해 나는 서둘러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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