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열한 번째 투자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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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죄송합니다. 저희 사장님이··· 그게 죄송한데 바이어들이 갑자기 또 일정을 바꾸는 바람에 이게 좀 힘듭니다. 좀 전에 사장님과 함께 바이어들이 회사를 나갔다고 합니다. 죄송스럽지만, 차라리 그냥 다, 다음에 오시는 게······.”
그러나 척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아는 조상구 부장.
총무팀 조상구 부장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
한편, 내가 눈짓하자, 최병우 변호사는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럼 할 수 없겠군요. 오늘 일정은 다 틀린 것 같은데. 조 부장님! 이제부턴 의뢰인님의 뜻에 따라 법적 절차를 시작하겠습니다. 구태여 저희가 회사의 움직임을 따라갈 필요가 없습니다. 의뢰인님, 일어나시죠.”
최병우 변호사는 일어나자고 했고.
내가 일어서자.
놀란 듯, 눈이 동그래지는 조 부장.
“조 부장님. 주요 주주를 무시했다간 어떻게 되는지 곧 아시게 될 겁니다.”
순간, 굳어버린 조 부장.
“나가시죠. 의뢰인님.”
최병우 변호사는 손짓했고.
나는 조상구 부장을 차갑게 쳐다본 뒤.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현재, 공장에서 임원들 다음으로 힘을 가진 인간, 조상구 부장.
그는 뭔가 꿀리는 게 있는 듯.
안색이 아주 심하게 변했는데.
한편, 나는 그 첫 공장 방문 이후, 모든 법적 처리를 최병우 변호사에게 일임했다.
내가 바쁜 것도 있지만.
최병우 변호사의 스타일.
그게 나름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사이.
점점 무더워지는 2010년 7월의 시간은 어느덧 저물어가고 있었다.
<46>
“···네! 그럼 제가 로펌으로 가겠습니다. 설 대표님 뵐 일도 있고 해서···.”
2010년 8월 2일 월요일.
땡볕 더위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오후 4시쯤.
로펌 ‘설천’ 사무실에 들러, 로펌 공동대표 설종근 대표와 잠시 만났다.
내가 설립한 투자사.
아직 투자사로서 인가받지 않았으나.
법인으로서는 이미 존재하고 있다.
‘KH투자파트너스.’
어느덧 명함까지 파서 손에 쥐게 된 나.
설종근 대표와 만나자마자 먼저 명함부터 건넸다.
“대표님, 제 명함이 나왔습니다.”
“아, 그래요?”
하얀 머리카락의 설종근 대표.
그는 나이가 많아 개인적인 수임 계약을 받지 않는다.
주로 법무 계약 등의 서류 작업 외에도.
법무법인의 재정 부분 등을 총괄하고 있다.
‘설천’은 바로 설종근 공동 대표와 천성훈 공동 대표가 함께 설립한 명문 로펌이었다.
“KH투자파트너스 김한수 대표! 하하, 하하하! 앞으로 큰 기대가 됩니다. 투자계의 큰 별이 되실 겁니다.”
인자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설종근 대표.
“감사합니다. 대표님.”
저렇듯 인자한 모습을 보이는 저 사람이 전직 검찰총장이었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조용하고 담백한 노인일 뿐.
“혹시 법무 부분 외에도 다른 부분에 대해서 필요한 점들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저희 로펌의 고객은 저희가 책임지고 항상 도움을 드리는 게 당연합니다.”
“아, 감사합니다. 대표님.”
나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서서 머리를 숙였다.
비록 내가 이 로펌의 고객이지만.
인생의 원로급 선배인 설종근 대표한테 머리를 숙이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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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천 공동대표 설종근 변호사와 만나 이야기를 마친 뒤.
나는 곧이어 김민주 변호사를 다시 만났고.
잠시 후, 그녀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단아한 정장 스커트 차림에 안경을 끼고 있는 김민주 변호사.
그녀는 언제나 자세의 흐트러짐이 없는 그런 모습이었다.
“대표님. 이쪽입니다.”
“네.”
잠시 후, 우리가 도착한 곳은 이 복합빌딩의 3층 식당가.
각종 패스트푸드 식당과 세련된 요리점이 섞여 있는 곳인데.
멀리서 스타벅스 간판도 보이고 있었다.
“저쪽입니다.”
우리는 스타벅스를 스치고 지나갔고.
곧이어 도착한 곳은 남미식 에스프레소 전문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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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가 우아하면서도 산뜻하네요.”
남미 느낌이 살짝 나는 듯.
특유의 노란색과 주황색이 잘 어우러진 현대식 카페다.
“대표님. 이쪽으로 오세요.”
우리는 창가 쪽 자리를 잡았다.
“잠시만요.”
그러고는 김민주 변호사는 폰을 꺼내 바로 전화했다.
남편 조관형 변호사한테 전화하는 것이다.
잠시 후, 뭔가 대화하더니.
그녀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거의 다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약속 시각 5분 전입니다. 대표님.”
5분 전?
내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해 보니, 정말 5분 전이었다.
그사이, 우리는 카페 직원이 가져온 메뉴 북을 잠시 쳐다봤는데.
‘난 이게 좋겠다. Cortado Suave Cacao.’
에스프레소에 우유, 생크림, 카카오 파우더가 올려져 있는데.
우유와 에스프레소의 조합이 멋진 에스프레소 메뉴다.
김민주 변호사도 잠시 메뉴를 쳐다본 뒤.
고개를 들었고.
그러다가 갑자기 두 눈이 약간 커지더니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바람에 나도 고개를 돌렸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팡! 터져 나올 뻔했다.
조관형 변호사였다.
부리부리한 눈.
인상을 팍 쓰고 있는 모습.
짧게 깎은 머리에 가벼운 정장 슈트를 입고 나타난 그.
그는 한여름임에도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변호사로서 격식을 갖춘 모습.
특히, 두 눈에 힘을 빡! 주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계속 웃음이 밀려왔다.
와, 진짜 반갑다.
“관형씨! 여기!”
김민주 변호사가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웃으며 조관형 변호사는 천천히 다가왔다.
그제야 나는 일어섰고.
몸을 돌렸다.
잠깐 서로를 탐색하듯 눈이 부딪혔고.
조관형 변호사는 약간 몸을 숙인 뒤, 공손하게 손을 내밀었다.
“조관형입니다.”
“네. 김한수입니다. 반갑습니다. 아, 여긴 제 명함입니다.”
아싸! 오늘 명함을 가져오길 정말 잘 하지 않았나.
조관형 변호사는 내 명함을 받은 뒤.
잠시 유심히 쳐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민주씨! 늦지 않았지?”
그러고는 김민주 변호사한테 말을 거는 조관형 변호사.
“1분 전.”
그제야 그의 입꼬리가 다시 올라갔다.
잠시 후, 우리는 각자 자리에 앉았다.
에스프레소를 각자 주문했고.
에스프레소가 나올 때까지 그때부터 담소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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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씨한테서 이야긴 들었습니다. 투자를 통해 큰돈을 버셨다고요? 근데 이렇게 젊으신 분인 줄은 몰랐습니다.”
내 눈을 빤히 쳐다보며 말하다가.
그는 슬쩍 다른 이야기도 꺼냈다.
“혹시 결례가 아니라면, 제가 알아둬야 할 것 같은데, 혹시 학번이 어떻게 되십니까?”
나이를 바로 묻지 않고.
학번으로 돌려서 묻고 있는 조관형 변호사.
그러나 나는 그 질문에 나이로 대답했다.
“현재 26살입니다.”
“아, 그러시구나.”
“그리고 이번에 수능을 치른 뒤, 잘 되면 11학번이 될 겁니다.”
“네? 수능요?”
약간 놀란 목소리.
“네. 최종 학력이 현재 고졸입니다.”
“아.”
짧은 탄성.
그러고는 조관형 변호사는 김민주 변호사를 쳐다봤다.
김민주 변호사도 의외인 듯 날 쳐다봤다.
내 개인정보까진 그녀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 이번에 수능을 보시려고요?”
“네. 지금 준비 중입니다.”
“투자 일을 하시지 않으세요?”
“투자 일도 하죠. 공부도 하고.”
“근데, 둘 다 힘든 일이 아닌가요? 저보고 지금 공부하라고 하면, 전 못 할 것 같은데요.”
“네. 둘 다 어렵죠. 그래서 시간이 많이 부족합니다. 여기, 조 변호사님의 도움이 그래서 절실히 필요합니다.”
김민주 변호사와 내 대화를 유심히 듣던 조관형 변호사.
그는 우리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살짝 웃었다.
“근데 좀 특이한 느낌입니다. 경직된 분위기에 있다가, 이런 젊은 보스를 뵙게 되니 마음이 쿵쿵 뛰네요. 하하! 그리고 참! 제가 좀 전에 결례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네?”
“아까 질문한 거 말입니다. 참고로, 저는 절대 선입견 같은 건 없습니다. 검사복 입고 있으면서 졸라게, 아 죄송합니다. 부장님한테 졸라게, 하하, 이거 참! 말이 입에 익다 보니, 어쨌든 졸라게 깨지고 힘들었죠. 우리 김 변, 민주씨도 잘 아는 이야깁니다.”
나도 모르게 웃었다.
넉살 좋고, 아주 적극적이고.
변호사답지 않은 또 다른 열정가.
역시 내가 봤던 모습과 별반 다른 게 없었다.
잠시 후, 나는 몇 가지 질문을 더 했고.
차분하게 대답하는 그의 모습을 확인한 뒤.
앞으로 일하게 될 사무실에 대해서도 잠깐 이야기했다.
“···사무실 위치는 여의도입니다. 한세증권이 위치하고 있는 빌딩. 한세 빌딩인데 7층 전부가 저희 사무실입니다. 임대 계약도 설정됐으나 제가 요즘 이것저것 바빠진 터라, 사무 집기들을 아직 넣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현재 사무실은 아주 황량합니다.”
“아, 그럼, 제가 그 일을 맡겠습니다. 제가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변호사님께서요?”
“네! 변호사라고 해도 그냥 직원이 아닙니까? 검사 쥐꼬리 같은 월급 받고도 밤샘 근무를 수없이 했는데, 하하! 큰 연봉을 받는 입장에서 제가 그 정도 못하겠습니까?”
역시 화끈하다.
“그럼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또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그러고 보면, 나도 참 대단하다.
큰 형님뻘 되는 검사 출신의 변호사.
그런 사람을 오라가라 하면서 투자 사업을 크게 벌였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이전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크게 시작되는.
바로 그런 도약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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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날.
으스스한 새벽.
새벽에 일어나 서재에서 해외선물옵션 현황을 확인한 뒤.
각종 종목 분석을 계속하다가.
크게 기지개를 켰다.
목 주변 근육을 풀면서 나는 잠시 밖으로 나왔다.
한낮의 무더위가 조금 가시는 듯한 선선한 바람.
그 바람이 이때 어디선가 불어왔다.
그 바람에 살짝 빠져들었다가.
한참 정원을 가만히 쳐다보던 중.
여기저기 잡초들이 많아 자라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참, 여기도 일이 있네. 정원 관리. 맡기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나날이 일들이 많아지고 있고.
여기저기 손이 많이 가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일들이 많아질수록.
다행히 일들이 빠르게 분산되고 있다.
대강화학 일은 최병우 변호사한테 맡겨놨고.
한세 빌딩 사무실 세팅 건은 조관형 변호사한테 맡겨놨다.
투자사 인가 건은 미래증권 윤정민 대리가 전담하고 있다.
‘그럼, 저건 어떡하지?’
박유진 사장한테 연락해 볼까.
그녀는 이 동네에 대해 잘 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피트니스 클럽 소개해준 곳도 가봐야 하는데.
‘일들이 너무 많아.’
그래서 아직은 감히 피트니스 클럽까진 생각할 수가 없다.
'할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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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
나는 다시 서재로 돌아왔고.
다시금 해외 선물 현황을 쭉 살펴봤다.
그렇게 현황 파악을 하던 중 갑자기 손이 바빠졌고.
순간, 머릿속으로 강타하는 기억들.
그 기억들을 떠올리다가.
두 눈을 반짝이며.
드디어 열한 번째 투자를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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