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물이 되어버린 투자자-50화 (50/138)

49화 열번째 투자 02

“죄송합니다. 설명이 짧았네요. 그럼, 다시 말씀드릴게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에 오르내리고 있는 김한수! 그게 바로 저입니다.”

[···롤러코스터 국제유가, 한국인 김 모씨 천문학적 수익 올려···]

“···혹시 이건가요?”

잠시 후, 그녀는 자신의 앞에 있던 노트북을 통해 그 기사를 검색했다.

어제오늘, 엄청 언론이 떠들어댔으니.

김민주 변호사도 모를 수가 없다.

내가 바로 긍정의 표시를 하자, 이때 그녀의 얼굴에선 바로 당혹함의 흔적이 역력해지고 있었다.

“이건 명함인데, 뭘 이야기하는지 혹시 아시겠어요?”

그러면서 나는 미래증권 최수경 전무의 명함을 꺼내 내밀었는데.

미래증권발 기사들.

미래증권 최수경 전무한테 확인해 보라는 내 제스처였다.

그 명함을 한번 쳐다보던 김민주 변호사는 이때 날 쳐다보지도 않고.

자신의 앞에 있던 노트북 키보드를 다시 빠르게 두드렸다.

그리고 잠시 뒤.

내 목소리는 갑자기 거기서 들려왔다.

미래증권 홈페이지에 접속한 듯.

인터뷰 중인 내 목소리는 아주 요란하게 들려오고 있었고.

그 목소리에 잠시 집중하던 그녀는 고개를 들어 다시 날 쳐다봤다.

그러고는 안경을 고쳐 쓰더니.

마치 새로운 사람을 쳐다보듯.

더 또렷해진 눈동자로.

날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

“대충 아시겠습니까? 믿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앞선 변호사 추천 건과 별개로 로펌 ‘설천’과는 기업 법무 자문 계약을 꼭 맺을 생각이니까요. 다양한 양질의 법적 조언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정말 자문 계약을요?”

약간 묘하게 떨리는 듯한 김민주 변호사의 목소리.

“그리고 이건 별개의 건인데, 업무상 발생한 손해 배상에 대한 상담도 좀 받고 싶습니다. 이 일은 지인의 일이지만 지인의 일을 제가 도울 생각이라 법적 절차를 좀 자세히 알고 싶거든요”

그러고는 2주 전에 만났던 후배 정덕의 상황에 대해서도 간단히 이야기했다.

사실, 이 건은 김민주 변호사의 주 업무 분야가 아니었다.

그러나 나한테 잠시 홀린 듯.

그녀는 집중해서 듣더니.

자신의 견해를 차분하게 밝혔다.

“···당연히 위법적 행위입니다. 선생님께서도 잘 아시는 것처럼, 법원 확정판결 없이 임의로 손해 배상액을 절대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 사안은 퇴직금을 임의로 상계처리한 점도 있고, 임의로 지불 각서를 받은 점도 있는데, 근로기준법 42조 위반입니다. 또한, 제 생각에··· 손해 발생 근거가 명확하지 않을 경우, 공장 측에서 법정 소송을 한다고 해도, 공장 측이 승소할 가능성은 아주 낮습니다. 저희 최병우 변호사님과 수임 계약을 하신다면 금방 해결될 수 있는 그런 사안 같습니다.”

역시 똑똑하다.

김민주 변호사!

내 입가의 미소는 짙어졌다.

#

“아, 갑자기 시간이 좀 길어질 것 같은데. 김 변호사님! 그렇다면 혹시 지금 시간이 되신다면, 최병우 변호사님도 뵙고 싶고, 대표 변호사님도 시간 된다면 꼭 뵙고 싶습니다.”

“그럼, 손해 배상 건과 자문 계약 건을 같이 처리하시려고요?”

“네!”

“아아, 그러시다면··· 우선, 스케쥴을 제가 한번 확인해 볼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네.”

“그리고 선생님! 잠깐 생각해 보니까··· 이번 상담료는 받지 않는 걸로 하겠습니다.”

“네? 무슨···?”

“그래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요. 대신에 제가··· 젊은 변호사 한 분을 추천해드려도 될까요?”

“그래 주신다면야 제가 고맙죠.”

그러자 차분하게 날 쳐다보던 김민주 변호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회의실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43>

‘확실히 목소리, 이름을 커밍아웃해 두길 잘 했어.’

어느덧 1층을 향해 빠르게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

나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로펌에서 머문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졌는데.

대표 변호사는 다른 일정이 있어 만나지 못했지만.

최병우 변호사를 만났고.

손해 배상과 관련된 상담을 받았다.

최병우 변호사는 아직 수임 계약을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조치는 쉽게 해결될 수 있다고 했다.

아직 법적 소송이 들어간 것도 아니라서.

시정 조치를 요구할 수 있고.

설령 각서를 썼다고 해도.

강요 요소가 들어가 있다면.

절대 지불 의무가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변호사 한 명 끼고 공장으로 쳐들어가면 그걸로 당장 해결된다는 말이잖아.’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나니.

나는 갑자기 조금 일을 더 크게 벌이고 싶은 생각이 생겨났다.

정덕이한테서 들었던 이야기들.

취중에 박소희가 했던 말들.

나중에 대단한 사람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오는 박소희의 모습도 함께 생각나자.

그 화학 공장에 대해 내가 몰랐던 게 많이 있었던 것 같았고.

좀 더 알고 싶은 생각이 부쩍 커지게 되었다.

‘확실히 감춰진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나름 잘 나가던 공장이 20억 원 어음을 처리하지 못해.

갑자기 부도 처리된 것도 이상했고.

그 와중에 10억 원 횡령 사건이 발생한 것도 이상했다.

당시엔 공장이 부도 처리되자 더는 돌아보지 않고 공장을 떠났지만.

다시 돌이켜 보면 이후의 이상한 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설마 공장 부지가 노른자위에 해당되나?’

#

잠시 후, 지하 5층에 도착한 뒤.

나는 다시 벤츠 운전대를 잡았다.

‘근데 확실히 수상하단 말이야. 잘 나가던 공장이 갑자기 부도처리가 됐고, 공장이 채권자들 손에서 공중분해가 됐단 말이야.’

우선, 정덕이를 다시 만나야겠다.

나는 엔진 시동을 걸기 전에 스마트폰을 잡았다.

그리고 바로 정덕이한테 연락을 취했다.

지난 2주간 너무 바빠 잠시 잊고 있었으나.

다행히 정덕의 상황은 잘 풀릴 것 같았다.

그런 좋은 소식이 있다 보니, 바로 전화를 했고.

잠시 후, 정덕과 연락이 되었다.

#

한강대교와 마포대교, 그 사이에 있는 여의도한강공원.

어느새 밤이 되었고.

가까운 마포대교는 가로등 불빛으로 반짝이고 있으며.

강 너머 빌딩 건물들의 불빛은 새카만 한강을 다양한 색채로 물들이고 있었다.

장마가 거의 끝나가는 여름의 밤.

선선한 바람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으나.

잠시 후, 나는 주차를 마친 뒤, 한강공원 강가 쪽으로 걸어갔다.

택배 일을 마친 정덕이 한강공원에서 보자고 해서 여기로 나왔고.

잠시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던 중.

누군가 저 멀리서 크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니.

대략 최정덕, 녀석의 모습이었다.

‘뭐야? 돗자리도 깔아놨네.’

얼른 뛰어가던 중, 정덕이가 깔아놓은 돗자리가 보였고.

그 위에 음식과 소주병들이 잔뜩 보였다.

“형! 여기! 여기!”

다시 손짓하며 외치는 녀석.

“야, 무슨 일이야? 그거 술 아냐?”

내가 다가서며 손으로 소주병을 가리키자, 정덕은 씩 웃었다.

“내가 형한테 술 한번 사준 적이 없잖아. 날마다 얻어먹기만 하고.”

“니가 무슨 돈이 있냐? 그리고 나도 돈이 없어서 별로 사준 것 같지도 않은데.”

“형. 앉아요. 술 한잔해요.”

얼른 내 팔을 잡더니 앉자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마주 보며 앉았고.

정덕은 후라이드 반, 양념 반 치킨이 들어 있는 치킨 배달 상자를 활짝 열었다.

“우와아, 치킨?”

“형, 식사했어요?”

“아니, 아직 안 했어.”

그러자 갑자기 한숨을 푹 내쉬는 정덕.

“형!! 도대체 형은 왜 그렇게 살아요?”

“응?”

“밥 좀 제대로 챙겨 먹고 다녀요! 그러니까 살도 안 찌지.”

“인마, 니가 할 소리가 아닌데? 니 얼굴, 얼마나 상한지 너는 모르지?”

“형! 조금만 지나봐. 다시 돌아온다니까. 지금 적응하느라 내가 바빠서 그렇지.”

“에휴. 택배 일이 많이 힘들지? 혹시 공장 일보다 힘들어?”

“뭐, 힘든 건 비슷한데··· 마음이 좀 그랬죠.”

“야, 이제 괜찮다니까!”

“···형. 고마워요.”

“내가 좀 더 빨리 움직일걸. 아무튼. 미안하다.”

“아뇨. 제가 바보 멍충인데···.”

“야, 그러지 마.”

서둘러 달래려고 내가 어깨를 잡자, 순간 울컥하며 고개를 숙이는 정덕.

하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공장에선 고졸이라고.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때로는 일반 직원들한테 천대받기도 한다.

퇴사 전, 정덕은 좀 더 심하게 당했던 모양이다.

“야, 그 일은 잘 해결될 거야. 아까 통화한 대로 같이 가서 해결하자. 법적으로 너한테 그럴 수 없다고 들었어. 원한다면 내가 복직하는 것도 알아봐 줄게.”

그러나 정덕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형. 복직은 싫어요.”

“싫다고? 왜?”

정덕은 고개를 들었다.

충혈된 눈이지만, 녀석은 억지로 웃는다.

“형. 그 이야긴 그만하죠.”

그러고는 얼른 닭 다리 하나를 집어, 나한테 내미는 녀석.

“아니, 그건 니가 먹어.”

“아뇨. 전 양념으로 먹을게요.”

“그래. 알았어.”

나는 씩 웃었다.

“근데 웬 소주? 치킨에 맥주 아냐?”

그러자 녀석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종이컵에 각각 소주를 따랐다.

“형, 택시 타고 왔어요?”

아차!

그 순간!

나는 흠칫했는데.

벤츠를 타고 왔기 때문이다.

아직 정덕이한테도 공개하지 않은 사실.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나 정덕은 아무 생각이 없는 듯 소주가 든 종이컵을 들었고.

가볍게 서로 컵을 부딪친 뒤.

단숨에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그러고는 예전의 정덕의 모습으로 돌아가.

쉴 새 없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점점 더 깊어지는 밤.

모처럼 마시게 된 소주.

얼굴은 화끈거렸고.

취기는 점점 더 올라왔다.

사실, 예전에 공고 친구들과 삼겹살집에서 소주를 마신 뒤.

정말 오랜만에 마시는 소주였고.

슬쩍 옆을 쳐다보니, 소주 8병이 거의 다 비워진 상태였다.

#

“···형. 나도··· 앞으로 잘 살 수 있겠죠? 흑흑.”

“···형. 요즘은 그냥 살고 싶지가 않아. 많이 힘들고···.”

“···형. 고마워. 절대 잊지 않을 게. 죽어도···.”

“···형. 우리가 반장님 옆에··· 반장님 옆에 계속 있어야 했는데··· 아아···.”

“···형. 그 조상구 부장 말이야. 이상한 사람들 만나는 거··· 내, 내가 봤거든···.”

“···그 일이··· 그 일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우리 공장이 사라지면··· 하, 뭐라더라. 뻥뻥 뚫린다고··· 뻥뻥···.”

“···형. 한잔 더 마시자. 아이씨, 술 다 떨어졌어···.”

“···졸린다··· 졸려··· 하아··· 하아··· 좀 자야겠어···.”

어느 순간, 내 어깨에 기댄 채 정덕은 곯아떨어져 버렸다.

나도 소주를 상당히 마신 터라.

취기와 함께 잠이 몰아쳤으나.

한순간, 나도 모르게 두 눈에 힘이 팍! 들어가고 있었다.

정덕이 취중에 기이한 말들을 뱉었는데.

그건 내가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때 느꼈던 기시감이 뭔지, 순간 어렴풋이 잡히는 듯한 느낌이었고.

알 수 없는 돈 냄새가 갑자기 내 코앞에서 강하게 진동하는 것 같았다.

‘확실히 뭔가 있어.’

잠시 후, 인상을 팍 쓰며 나는 지난 기억들을 억지로 억지로 헤집다가.

이내 이마를 꽉 쥐었다.

취기 때문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내내 어렴풋했던 한 가지가 지금은 좀 더 확실해졌다.

‘내 퇴사 문제가 아니었어.’

내가 퇴사하는 바람에 나비 효과가 생긴 게 아니라.

회사가 도산하기 전까지.

이런저런 불량 사태가 많았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어느 순간 익숙해져 버려, 크게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던 문제들.

거기다가 내가 맡았던 생산라인도 몇 번이고 터질 뻔했던 일들이 뒤늦게 기억이 났다.

갑자기 안개가 걷히듯.

그런데 그때의 나는 정덕이와 다르게 운 좋게 그 순간들을 모면했던 것 같았다.

‘결국, 누군가 공장을 망하게 할 생각이었어.’

대체 무슨 이유로?

그 이유를 아직 알 수가 없다.

‘근데, 대충 알 것 같기도 하고···.’

술 때문에 잠시 끙끙거리면서도.

나는 계속 그 생각을 이어 나갔다.

‘결국, 공장이 망한 뒤, 거긴 나중에 완전히 변했단 말이야.’

복합단지가 들어섰다.

복합타운이 들어섰다.

결국, 이것도 이권 문제였을까.

단순 어음 문제와 횡령 문제가 아니었고.

다만, 특이한 점은 복합타운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서울시가 해외 자본을 크게 유치했고.

상당한 해외 자본이 그곳으로 흘러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해외 자본이 다시 자국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엄청난 수익이 붙은 자금이 해외로 유출됐다는 것이다.

합법의 탈을 쓰고서.

그 누구도 의심치 않는.

완벽한 국부(?) 유출의 현장이었던 것.

그럼 설마 이게 박소희와 관련된 일들일까.

조상구 부장도 이상하고.

갑자기 늘어난 공장 불량률도 이상하고.

정덕이 때문에 뭔가 사건들이 눈에 띄게 되었으나.

과거에 묻혔던 일들을 다시 곰곰히 따져봤을 때.

확실히 수상한 게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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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혹시 이게··· 그 은밀한 투자 같은 거?’

주식, 선물, 옵션 투자만이 투자가 아니다.

실물 자산에 대한 직접 투자, 대체 투자 등.

미래증권 김인범 부사장이 주로 하는 투자들 역시 아주 대단한 투자 기법이 아닌가.

‘이거 참. 뭔가 커넥션들이 있어.’

하긴, 주식판에도 작전주 세력들이 있고.

파생시장엔 투기성 헷지 세력들이 있다.

이런 데도 그런 게 없을 리가 없다.

‘하!’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실소하고 말았다.

설마 이런 곳에서도 지긋지긋한 외인들이 이미 들어와 있단 말인가.

하긴, 이것도 투자인데.

불법이 섞여 있지만, 이것도 역시 투자였다.

수천 억 원에서 수조 원이 오갈 수도 있는 그런 투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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