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물이 되어버린 투자자-49화 (49/138)

48화 열번째 투자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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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세 번째 사무실로 계약하겠습니다.”

“네? 세 번째요? 한세 빌딩으로요?”

“네.”

“임대료가 상당히 비싼데, 괜찮겠습니까?”

뒤늦게 걱정해 주는 공인중개사 아저씨.

그제야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계약 바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요? 하시겠다고요? 그럼 몇 가지 금지 조항이 있는데 그것도 지금 말씀드릴게요.”

그러고는 몇 가지 설명을 이어 나갔다.

“···한세 빌딩은 인테리어 자체를 따로 할 수가 없습니다. 사무 가구 같은 것들이 대체로 붙박이들이 많아서 그냥 그대로 써야 합니다. 다만, 청소 작업 같은 건, 입주 전에 아주 깔끔하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그럼, 그냥 들어가야 한다는 그런 말씀인가요?”

“네! 다만 의자 같은 거. 이동성이 있는 것들은 따로 가져오셔야 합니다. 아까 보셨지만, 사무실에 고정된 선반 같은 것들은 절대 빼서 새로 리모델링할 수 없다는 겁니다. 새로 도색하는 것도 절대 안 됩니다. 물론, 커튼 같은 것은 새로 달아도 되겠지만···.”

이것저것 조항들이 엄격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오히려 좋은 점들도 있다.

조금만 준비해도, 지금 당장 입주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출입 카드 같은 것도 빌딩 관리업체에 요청하면 바로 제공해드릴 겁니다. 회사 로고와 카드 형태만 결정해 주시면 금방금방 발급됩니다.”

이 점도 괜찮았다.

“좀 특이하긴 한데, 괜찮네요.”

“그래서 장단이 있죠. 이런 게 싫어서 그냥 일반 빌딩으로 가시는 분들도 꽤 많으시죠. 제가 듣기론 한세증권 회장님께서 이런 제약을 걸어뒀다고 하더군요. 나중에 한세증권이 커지게 되면, 임대 공간들을 모두 수거해서 직접 쓰려고 말입니다.”

“네, 그렇군요.”

“그래도 하시겠어요?”

“네! 하겠습니다.”

과거에 나는 작은 투자사들이 모여 있는 첫 번째 빌딩 같은 곳에서 사업을 시작했었다.

그곳에서 아등바등 투자하며.

다른 투자사 대표들과 전우애 같은 것들도 많이 다졌었다.

그러나 거기도 장단점이 있다.

고만고만한 인맥을 넓히는 데는 좋지만.

거기서 황당한 경우를 겪기도 했다.

투자사 대표들.

이들 중에는 아주 성실하고 뛰어난 사람들도 있으나.

개중에는 사기꾼들도 섞여 있다.

왜 사기꾼이 사기꾼이겠는가.

평상시, 사기꾼은 절대 사기꾼처럼 보이지 않는다.

사기꾼처럼 보이는 사기꾼은 그저 양아치일 뿐.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제대로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다.

나는 절대 멍청한 사람이 아니어서.

절대 사기를 당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당해보지 않고선.

절대 모르는 게 바로 사기꾼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고학력 사기꾼들은 좀 더 무시무시하지.’

그래서 이번에는 좀 더 위쪽으로 표적을 겨냥하기로 했다.

내가 만들 회사.

이 회사가 가질 최초 목표.

나는 이걸 ‘한세증권’의 연 수익으로 잡기로 했다.

‘그래. 그 정도는 잡아야 크게 날아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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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잠시 뒤.

그때부터 무척 일들이 바빠졌다.

사무실 계약이 그렇게 시작되자, 계약은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가 아니라.

한세 빌딩 2층 빌딩관리사업부 회의실에서 진행되었다.

이것저것 확인하고.

이것저것 기재하고.

중간에 미래증권 윤정민 대리한테 전화해서 팩스로 몇몇 서류를 받기도 했다.

또한, 보증금 지급을 마친 뒤.

계약 사항을 다시 듣는 동안.

대략 한 시간 정도가 더 소요되었다.

여하튼 사무실 임대 계약을 그렇게 마친 뒤.

그곳에서 나왔고.

그때부터 나는 힘껏 액셀을 밟으며.

로펌 ‘설천’이 위치하고 있는 강남 삼성동 쪽으로 이제 방향을 틀었다.

<42>

‘아마 저쪽인 것 같은데.’

로펌 ‘설천’ 본사 사무실이 있는 삼성동 어느 빌딩.

그 주변은 여러 법무 법인들이 밀집한 곳인데.

거기서 테헤란로를 타고서 5km가량 쭉 직진하면, 서울중앙지검, 대검찰청, 서울지방법원, 대법원 등이 나타나게 된다.

잠시 후, 나는 그 빌딩에 도착했고.

지하 5층까지 내려가 주차장에 주차한 뒤.

곧이어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32층까지 올라갔다.

[법무법인 ‘설천’]

그 본사 사무실은 32층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치 호텔 로비와 같은 그런 느낌이 먼저 들었다.

무척 아늑하면서도 현대적 인테리어가 아주 빛나는 곳.

한쪽 벽면에는 ‘SEOLCHEON’이라는 영문 글자가 아주 멋지게 각인되어 있는 곳이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잠시 후, 데스크의 여자 직원은 공손하게 물었고.

나는 김민주 변호사와 상담 약속을 잡은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자 소파에 앉아 잠시 기다리라고 했고.

얼마 기다리지 않아.

다른 여자 직원이 다가오더니 안쪽 회의실로 날 안내했다.

그곳은 깨끗하면서도 원목 자재들의 은은한 느낌이 감도는 회의실인데.

작은 창들이 연결된 한쪽 벽면은 도심의 모습이 펼쳐져 있다.

32층 고층이라서 그런지 경관이 무척 좋은 그런 중소형 회의실이었다.

한편, 나는 소형 원탁 테이블 한쪽 자리에 가서 조용히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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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료는 어떻게 드릴까요? 커피, 아니면 녹차···.”

“아이스 넣어서 커피로 주세요. 가능할까요?”

시원하게 마시고 싶어서 그렇게 주문했는데.

직원은 공손하게 인사한 뒤 밖으로 나갔다.

사실, 여기서 한 시간 상담을 받는데.

필요한 비용은 무려 2백만 원이다.

단순 상담만으로도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는 곳.

그런 곳에서, 잠시 아이스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자.

그로부터 5분 뒤.

정확하게 오후 5시 정각에 맞추어.

검정 정장 차림의 무척 똑똑해 보이는 여자가 나타났다.

무척 젊어진 모습.

내가 잘 알고 있는 판사 출신의 김민주 변호사.

30대 중반의 단아한 용모에 안경을 끼고 있는 그녀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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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선생님. 이런 투자사 운영과 법적 자문과 관련된 상담은 사실 제 고유 업무 분야가 아닙니다. 법적 문제가 발생한 것도 아직 없으신 것 같고, 단순히 저희 로펌과 법무 자문 계약을 체결하고 싶어 오신 거라면, 상담이 아니라 신청을 하시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변경해드릴까요?”

잠시 후, 간단히 인사를 마친 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는데.

다소 작은 목소리지만.

정확하게 사안을 확인하고자 그녀는 그렇게 물었고.

나는 바로 입을 열었다.

그러고는 신설 투자사에 관한 이야기들 외에도.

향후 생길 수 있는 법적 문제들을 좀 더 현명하게 처리하고자.

회사-로펌 간의 기업 법무 자문 계약을 체결하고 싶다는 의사를 다시 한번 알렸다.

그러면서도 이쪽 전반에 대한 실무적 법적 상담을 받고 싶다는 내용도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근데··· 그런 투자와 관련된 일들은 저희 로펌에서도 전문 변호사님들이 계십니다. 펀드PE 분야의 담당 변호사님들도 계시는데, 차라리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는 건 어떨까요? 저는 주로 금융자산 분야를 맡고 있고, 그래서 원하시는 상담이 잘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말에 나는 즉시 손을 저으며 웃었다.

“하하, 아닙니다. 금융자산뿐만이 아니라 펀드PE 등, 좀 더 넓게 보면서 상담을 받고 싶어서 김민주 변호사님한테 상담 신청을 드린 겁니다.”

그렇게 말한 뒤, 그때부터 좀 더 자세한 사안들을 꺼냈다.

지금 내 입장에선 별다른 사안들이 없지만.

회귀 전, 내가 경험했던 일들을 다른 형식으로 물어보며.

대화의 시간을 보냈고.

이때, 김민주 변호사는 차분하게 대답하면서도.

약간 놀란 눈으로 날 쳐다봤다.

나이는 아주 젊어 보이는데.

내가 법적 관련해서 이것저것 아는 게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느덧 상담 시간 20분 정도 남았을 때.

나는 드디어 그녀에게 미끼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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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님! 말씀은 잘 들었는데. ‘설천’과의 법무 자문 계약을 체결하더라도, 제 입장에선 추가적으로 좀 더 활동적인 젊은 변호사 한 분을 꼭 모시고 싶습니다. 혹시 진취적이면서도 투자 자체에 대해 전혀 거부감이 없으신 그런 분이 혹시 있을까요? 그런 분이 있다면, 상담 범위를 벗어나지만, 혹시 저한테 추천해 주실 수는 없습니까?”

한편, 잠시 입을 닫고 차분하게 뭔가를 생각하다가.

김민주 변호사는 다시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혹시, 회사에 소속될 기업 변호사를 찾고 계시는 건가요?”

“네. 같이 일할 수 있는 변호사분을 저는 찾고 있습니다. 근데 제가 현시점에선 드릴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보니, 적어도 변호사 연봉만큼은 업계 최고 수준으로 드릴 수 있습니다.”

그 말에 김민주 변호사는 유심히 날 쳐다봤다.

업계 최고 수준의 연봉이라는 말.

그 말에 그녀는 호기심이 조금 생긴 것 같았다.

“그럼 결례가 아니라면 여쭤봐도 될까요? 연봉은 대체 어느 수준까지 생각하시는 건가요?”

“우선, 30대 초중반의 법조인이면 좋겠고. 계약은 최소 3년 계약. 첫 1년간 세전 3억 원. 나머지 2년간 세전 5억 원입니다. 합의에 따라 그 수준 이상으로 계약갱신도 가능합니다.”

그 순간, 좀 놀란 듯.

김민주 변호사의 눈이 커졌다.

보통 이런 로펌의 초임 변호사의 연봉은 2010년 기준, 대략 1억 원 내외.

그나마 업계에서 상당히 많이 받는 연봉이다.

물론, 경력이 엄청 뛰어난 고위직 법조인들은 단숨에 수십억 원의 연봉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경력이 짧은 검사, 판사 출신의 젊은 변호사들.

그들은 초임 변호사보다 많이 받지만.

생각보다 연봉이 높지 않다.

내가 제시한 연봉은 김민주 변호사의 현재 연봉보다 훨씬 더 높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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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5억 원이라면 상당히 고액인데, 혹시 조건이 있습니까?”

“특별한 조건은 없고. 아주 활동적인 분을 찾고 있습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도 끄떡없는 바로 그런 분 말입니다. 혹시 이게 좀 추상적인가요?”

“네. 다소 추상적입니다.”

“그럼 이렇게 말씀드리죠. 30대 초중반 정도의 나이. 그리고 며칠 밤을 샐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적극적인 분. 이 정도면, 좀 더 이해하기 쉽겠죠?”

그녀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다른 질문을 던졌다.

“회사는 아직 설립되지 않은 거죠?”

“네. 그렇지만, 곧 설립될 겁니다.”

“하지만 회사 설립이 안 된 상태라, 누구도 다른 변호사분을 추천하기가 좀 곤란할 겁니다.”

그러면서 슬쩍 관심이 사라지는 듯한 김민주 변호사의 모습.

순간,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나는 손을 저으며 몇 가지 확인을 했다.

“잠시만요. 좀 확인할 게 있는데. 혹시 저랑 나눈 이야기들은 변호사 비밀 유지 의무에 포함되는 겁니까?”

그러자 그녀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경우도 법적으로 모두 비밀 유지 의무에 해당됩니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럼 좀 더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그러고는 팔꿈치를 회의 탁자에 올린 뒤 손가락 깍지를 꼈다.

씩 웃으며 나는 말했다.

“제 이름이 김한수입니다.”

“네?”

“제가 바로 김한수입니다.”

“네에?”

“하하, 제가 바로 김한수라고요.”

“으음,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무표정하던 김민주 변호사.

그녀는 처음으로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그런데 이어지는 내 말에 그녀의 두 눈이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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