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물이 되어버린 투자자-45화 (45/138)

44화 한남동 거물 03

<39>

“저 사람인가?”

“네.”

선물사업부 김청준 팀장의 대답.

그 대답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 뒤.

미래증권 김인범 부사장은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딱딱하던 표정은 금방 부드럽게 변했다.

“반갑습니다! 김인범입니다!”

우선, 악수부터 했다.

눈앞의 남자.

요즘 임원들 사이에서 소문이 무성한 바로 그 남자다.

1억 원 남짓한 투자금으로 수천억 원을 거머쥔 행운의 남자.

그 행운이 대체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겠으나.

그는 최근에 다시 유가 옵션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근데 너무 액수가 커.’

심각할 정도로 수익이 크다.

큰 도박이나 다름없는 파생 투자.

그 투자에서 거둔 수익이라 더더욱 놀랍다.

‘근데 평범해 보이는데?’

그런 별난 행운(?) 때문에.

머리엔 두 개의 뿔이라도 있을 것 같았는데.

그저 일반인이었다.

#

“아, 김인범 부사장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서 정말 영광입니다!”

순간, 갑자기 눈이 커지며 표정이 갑자기 환해지는 남자.

비록 자신이 호스트(host)나 다름없지만, 마치 스스로 호스트인 양 그는 자신을 반겨주고 있다.

표정 제스처도 크고, 목소리도 무척 커졌다.

그 목소리는 귀에 속속 들어오고 있었으며.

듣기에도 무척 좋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그렇듯 의외로 첫 인상 자체가 나름 만족스러웠는데.

김인범 부사장은 애써 웃으며 대꾸했다.

“하하. 젊으신 분이라고 들었는데, 역시였군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다소 낮은 어조.

그렇게 조용히 대꾸했는데.

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부사장님! 혹시 예전에 ‘킵(KIB) 투자 파트너스’를 운영하시지 않았습니까?”

순간, 김인범 부사장은 흠칫 놀랐다.

도대체 그걸 어떻게 알았지?

혹시 최수경 전무가 자신의 참석 사실을 알려줬나.

그래서 미리 확인을 했나?

그래서 최수경 전무 쪽을 슬쩍 쳐다봤는데.

이때, 최수경 전무도 약간 놀란 듯 그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럼, 아니란 말이지? 그럼 어떻게 알고?’

“흠, 어떻게 안 겁니까? 벌써 10년 전의 일인데···.”

“IMF 시절! 아주 유명하셨던 거! 그거 모르면 투자계에서 간첩 아닙니까?”

“간첩이라? 하하. 제가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저 작은 일을 했을 뿐인데.”

“인수합병으로 작은 회사들을 살렸고, 그 덕분에 전대미문의 수익을 올리시지 않았습니까?”

“아뇨! 제가 그 정도는 절대 아닙니다. 어디 김 선생님 수준까지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당시의 물가 가치를 생각한다면 저는 제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아, 그래요? 그게 아닌데···.”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것과 달리, 갑자기 입꼬리가 선명해지는 김인범 부사장.

그의 양쪽 입꼬리는 어느새 위로 치솟고 있었고.

얼굴은 가식적인 부드러움에서 벗어나, 대번 환하게 밝아진 상태다.

단 몇 번의 대화.

그것만으로도 김인범 부사장은 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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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잘 됐다.

멀리서 봤을 때, 아주 딱딱하던 표정이던 중년인.

50대 중반의 나이인 김인범 부사장이었다.

사실, 최수경 전무와의 점심 식사 자리에 그가 나와 있는 것은 정말 의외였는데.

그렇다고 이런 갑작스러운 참석을 꼭 결례라고 할 수도 없다.

이번 점심은 내 인터뷰과 관련된 미래증권의 감사함 표시 자리였고.

더 높은 직위의 인사가 나오는 것은 더 강한 감사함의 표시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첫 대면이라고 할 수 있다.

어색할 수도 있고.

다소 딱딱할 수도 있는데.

회귀 전, 과거에 최수경 전무한테서 들었던 일화를 풀어놓자, 김인범 부사장의 표정은 어느새 바뀌었다.

“근데 도대체 어떻게 아신 겁니까?”

후덕한 미소를 지으며 묻는 김인범 부사장.

“아, 투자 공부를 하던 중, 우연히 알게 된 분한테서 듣게 됐었습니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인수합병 덕분에 많은 회사가 IMF 때 살아남았다고 들었습니다.”

“하하, 그렇군요. 근데 도대체 그분이 누구신지 좀 궁금하군요. 저는 그저 냉혹한 기업 사냥꾼으로만 알려졌는데, 그렇다고 해도 이미 지난 일··· 구태여 그 오명을 바꿀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고는 그는 다시 물었다.

“근데 이것도 궁금하군요. 어떻게 절 바로 알아보신 겁니까? 제가 아무리 이름을 이야기했다고 해도.”

“부사장님! 전설적인 투자자들과 인수합병 전문가들을 바로 알아보는 것은 당연합니다. 저는 하루에 투자하는 시간을 빼고는 늘 공부합니다.”

사실, 수능 공부를 하는 것이지만.

그걸 알 리가 없는 김인범 부사장.

그 말에 그는 더 유심히 날 쳐다보고 있었다.

#

그리고 잠시 뒤.

“부사장님, 이제 앉으시죠. 식사하시면서 이야기 나누도록 하시죠.”

최수경 전무가 자리를 권했고.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앉아.

그때부터 차분하게 담소를 나누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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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프랑스 요리는 언제나 먹기가 참 그렇다.

아주 천천히 나오고.

아주 조금씩 나온다.

그 때문에 답답하기도 하고.

때로는 지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한 번씩 작은 만족감을 주는데.

약간 드라이한 프랑스산 와인도 마시면서.

우리는 식사 중에 좀 더 느긋하게 대화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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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투자사를 설립하실 거면 혹시 다른 투자금이 필요하시진 않습니까? 그런 좋은 일이라면 저도 조금이나마 참가하고 싶은데?”

어느덧 대화가 무르익자.

김인범 부사장은 짙은 눈썹 아래, 눈동자가 강하게 빛났다.

영리한 투자자들은 항상 타이밍 시점을 잘 알아보는데.

김인범 부사장은 확실히 영리했다.

그러나 나는 바보가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우선, 100% 제 지분으로 시작할 겁니다. 운용자금 유치는 차후에 오픈할 거라서, 지금 당장은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차후에 저희 투자사에 자금을 맡기신다면, 부사장님의 성향에 맞춰 고객별 맞춤 투자를 진행해드릴 수는 있습니다.”

“하하! 투자 자문, 투자 서비스 같은 건가요? 근데 제가 원하는 것은 그런 게 아닌데. 어쨌든 선생님의 의도는 잘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선생님의 그런 의지를 제가 절대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당연히 존중해야죠! 그래서 아쉽지만, 잠깐···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 선생님께 조금 소개를 하도록 할께요. 아, 최 전무님! 제가 임시로 맡고 있는 IB투자본부, 여기서 다루는 본부 투자금이 혹시 얼만 줄 아십니까?”

그렇듯 갑자기 질문을 받게 된 최수경 전무.

그녀는 김인범 부사장을 한번 쳐다본 뒤 바로 대답했다.

“국내 포함, 글로벌 시장에서 최대 2조 혹은 3조 규모로 알고 있습니다.”

“보다시피 아직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글로벌 IB은행들과 비교한다면 무척 부족하죠. 그래도 저희는 주로 항공기, 선박, 에너지 등 산업 인프라와 관련한 대체 투자에 집중하고 있고, 비상장 주식 투자, 그리고 CB(전환사채) 혹은 BW(신주인수권부사채)와 같은 메자닌 투자 등도 주로 많이 하고 있습니다.”

직접적인 주식, 선물 등의 투자가 아니라.

기업 성장을 염두에 둔 다양한 투자들을 진행하고 있다는 말이다.

“근데 제가 들은 바는, 선생님은 주로 파생 시장 쪽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실물 투자와 대체 투자도 나름 흥미롭죠. 전망을 보고서 회사를 키워나가는 것도 역시 흥미롭고 수익도 아주 쏠쏠하죠.”

투자 전략은 역시 다양하다.

그 다양한 투자에 대해서 그는 이야기하고 있었고.

잠시 뒤, 뜻밖의 말을 꺼내고 있었다.

“사실, 투자 성공 확률이 극도로 낮을 때, 대다수 무너집니다. 그러나 한 번도 아니고 벌써 여러 번 그걸 증명하신 거 아닙니까? 나이는 젊어도 선생님의 타고난 감각을 존중합니다. 그래서 제안을 하고 싶어 이 자리를 찾았습니다.”

제안이라? 무슨 제안을?

“혹시 저랑 같이 일을 한번 해 보시겠습니까?”

그러면서 갑자기 뜻밖의 제안을 했는데.

옆에 있던 최수경 전무가 순간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다.

최수경 전무는 전혀 몰랐던 일 같았다.

“저는 미래증권 지분을 갖고 있는 경영자 중의 한 명입니다. 선생님께서 투자사를 설립하시겠다고 하시니, 함께 작은 일들을 한번 진행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저희가 보통 대형투자를 할 땐, 자체 투자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공동 투자 형태를 취하기도 합니다. 이런 방식이 시너지 효과를 주기도 하고, 생각보다 효과도 좋습니다. 어떻습니까?”

“그러니까 투자 컨소시엄 참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개별 사안에 따라. 개별 계약에 따라. 다만, 협력 업체로 저희가 먼저 지정해 두면, 여러 기회들이 주어질 겁니다.”

근데 이거 정말 좋은 일이 아닌가.

미래증권이라는 대형 회사와 협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아직 나는 회사 사무실도 없다.

그러나 내 재력과 투자 감각만을 보고서 그런 제안을 하고 있었다.

“근데 부사장님, 앞으로 최 전무님을 통해 미래증권과 업무협약을 맺기로 되어있는데, 그것과 상충되지는 않습니까?”

“아뇨. 그렇진 않습니다. IB파트의 협력 회사 지정이라서 단순 업무협약 형식의 MOU와는 다릅니다.”

“그럼, 협력은 사안별 별도 계약이라는 말씀이시죠?”

“네. 저희도 그 방식이 편하고, 협력사도 그 방식이 좋을 겁니다. 케이스별로 사안을 확인한 뒤 협력사가 전략적으로 협력을 결정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 두말할 게 없다.

투자의 다변화.

영역의 확대.

투자 범위가 훨씬 더 커지게 될 것이다.

주식도 하고, 선물도 하고, 옵션도 하고.

다른 투자도 하고.

점점 더 IB은행 급으로 회사가 성장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바로 고맙다고 했고.

그러자 김인범 부사장은 환하게 웃으며 다른 제안을 다시 했다.

“그럼 이쪽도 관심이 있으시겠군요. 9월 말에 열리는 전문 컨퍼런스에 한 번 오시겠습니까? 제가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는 작은 컨퍼런스인데, 외국인 투자자들도 이때 많이 오고, 정부 관계자들도 두루 참석합니다.”

“그런 자리가 있었습니까? 초대해주신다면 당연히 가고 싶습니다.”

“역시 적극적이셔서 참 좋군요. 하하! 그럼, 제가 일정을 한번 보내드릴게요. 그리고 추가해서 선생님한테 도움이 될 수 있는 비즈니스 투자자 배지도 같이 보내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나는 다시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러고 보면, 인맥이 인맥을 만든다고 한다.

지금은 딱 그런 느낌이었다.

한편, 고상한 프랑스 요리들이 나오는 동안, 투자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대화가 더 진행되었고.

그렇게 식사를 마친 뒤.

나는 다른 일들이 있어, 최수경 전무와 함께 미래증권 본사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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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무렵.

미래증권이 작성한 보도자료는 각 언론사에 일제히 배포되었는데···.

자료를 접하게 된 기자들은 그때부터 갑자기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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