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물이 되어버린 투자자-44화 (44/138)

43화 한남동 거물 02

<37>

타다닥. 탁! 탁! 탁!

거칠게 들려오는 키보드 소음.

그 소음은 빠르게 번져나갔다.

새벽 3시 12분.

무척 고요해진 시각.

작은 숨소리마저 거칠게 들려오는.

대다수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그 시각.

쉴 새 없이 마우스 클릭을 하며.

각 프로그램 데이터 분석치들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총 8대의 모니터들.

홈 트레이딩 관련된 모니터들.

해외 선물 및 옵션 시황을 보여주는 모니터들.

실시간 해외 주가 차트, 각 프로그램 데이터 그래프가 산출되어 나오는 모니터들.

이런 모니터들을 하단에 4대 두고.

그 위에 총 4대의 모니터를 올려.

총 2단으로 만들어놓은 상태다.

나는 다시 선물 호가창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WTI유 선물 호가.

이 호가가 거의 71달러 선을 터치할 때 콜 옵션 매수에 나섰고.

현재, 선물 호가는 더 무섭게 위로 치솟고 있는 상태다.

급격한 우상향 흐름.

결국, 좀 전에 86달러 선을 터치했고.

어느덧 87달러 저항선을 향해.

물밀 듯이 치고 올라오는 중이다.

#

바스락.

사탕 하나를 까서 입에 넣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집중했다.

한남동 저택에서 어느덧 이틀째.

낮에 구매한 반 팔의 여름 후드티를 입고 있는 나는 후드티 모자를 슬쩍 눌러 쓴 상태에서.

계속 집중했다.

타닥! 탁! 탁! 탁!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렸고.

두 눈이 정신없이 모니터들을 오가며 계속 눈싸움을 벌였다.

호가창의 물량을 간간이 매수하기도 했고.

다시 털어내기도 했고.

그렇게 호가 이동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이제 슬슬 마무리해야겠는데.’

현재, 장마전선이 한반도를 뒤덮은 상태라 바깥엔 비가 내리고 있을 텐데.

지하 1층 서재.

이 공간에 작업실이 있다 보니 빗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사실, 비 오는 날, 빗소리가 잘 들리지 않은 건 답답한 일인데.

다행히 이번 투자는 이제 거의 마무리될 수 있는.

바로 그런 포지션에 이미 도달한 상태였다.

#

따각! 따각! 따각! 따각! 따각! 따각!

잠시 후, 선물 호가가 89달러 선을 터치하자 쉴 새 없이 옵선 매도 주문들이 던져졌다.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실제, 일부 주문들은 그렇게 던지는 것과 동시에 바로바로 거래 체결되었는데.

그 와중에 선물 호가는 더 뛰었고.

어느덧 대망의 90달러 선을 돌파하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선물 호가는 잠시 정체했는데.

마치 숨 고르기를 하는 듯한 그런 시간 같았고.

이때, 내 매도 주문은 계속해서 장내에 쏟아지고 있었다.

#

행사가 77.5달러짜리 972계약.

행사가 78달러짜리 2,876계약.

행사가 78.5달러짜리 2,590계약 등.

도합 19,867계약이 각 호가창에 분산되어 쏟아졌고.

물량 정리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현재, 빛처럼 오르내리는 옵션 호가들.

그리고 그때마다 거래는 위아래를 오가며 번개같이 체결되고 있었다.

#

그리고 잠시 뒤!

예-쓰!

예-쓰!!

예-쓰!!!

갑자기 고함을 지른 뒤.

예쓰!! 예쓰!! 예쓰···!!

다시 고함을 질렀고.

벌떡 일어나 두 주먹으로 넓은 데스크를 쾅! 소리가 나게 두드렸다.

그사이, 선물 호가는 어느덧 91달러 선까지 치솟고 있었고.

변함없이 거대한 선물 매수세가 시장에 밀려들고 있다.

#

‘이럴 때가 아니지. 바로 수익을 확인해야지.’

따각! 따각! 따각!

빠르게 클릭하고 난 뒤.

잠시 후, 이번 WTI유 콜 옵션 투자에 대한 수익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나는 그 모니터를 마치 뚫어지라 쳐다봤다.

나이스!

정말 대단하다.

이 정도 수익이라면, 투자사가 아니라 그냥 자산운용사를 차려도 될 것 같았다.

그 정도로 날아갈 듯 기뻐하던 나는 잠시 후 담배 하나를 들고서.

얼른 1층 현관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점점 더 가늘게 들려오는 빗소리.

정원은 비에 젖어 있었고.

아주 컴컴한 하늘 때문에 정원 주변 조명은 유난히 빛나고 있다.

‘빗소리 좋네. 잔잔하고.’

톡. 톡. 톡.

마치 조그맣게 노크를 하듯.

한쪽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무척 매력적이었고.

사방에서 복합적으로 들려오는 잦은 빗소리 역시 아주 기분 좋게 내 귀에 들려왔다.

결국, 담배 필 생각을 멈추고.

현관 지붕 아래 서서.

그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나는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나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또 아침부터 수능 공부도 해야 하고.

잠 잘 시간이 별로 없을 것 같다.

주변을 쭉 훑어본 뒤.

집 정리 같은 건 아침에 대충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 기분 좋은 새벽이야. 무척 기분 좋은.'

터져 나올 것 같은 웃음을 참으며.

나는 내 침실 방으로 뛰어갔다.

<38>

올 여름 장마철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장마철은 계속되고 있었고.

어제까지 흐렸던 하늘이 그래도 조금 개이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수요일 아침.

나는 간단히 토스트 등으로 아침을 먹은 뒤.

지하 1층 서재에서 각 선물 호가들을 확인했다.

그러던 중, 나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집 입구의 초인종을 누가 누른 것 같았다.

“누구세요?”

상대를 확인했고.

상대가 확인되자마자 즉시 정문을 열어줬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자동차 소리가 집밖에서 들리더니.

다시 현관 쪽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얼른 뛰어나갔다.

#

“···안녕하세요? 고객님. 다행히 시간 맞춰 올 수 있었는데, 지금 나가실 수 있으세요?”

격식을 갖춰 인사를 한 뒤, 날 쳐다보며 묻는 미래증권 김성민 차장.

그 순간, 나는 아차 싶었다.

“아아, 죄송한데, 제가 준비를 다 못했는데.”

“혹시 투자 중이셨나요?”

“···네.”

“이해합니다.”

“그럼, 잠깐만 기다려주시겠어요?”

나는 얼른 뛰어들어가 옷을 갈아입었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기다려주던 미래증권 김성민 차장과 박현주 사원.

두 남녀는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날 쳐다봤다.

나는 바로 외쳤다.

“가시죠. 늦겠네요.”

“네. 이쪽으로 오세요.”

은은한 블랙 리무진.

세단보다 조금 긴, 그 리무진 뒷좌석 문을 김성민 차장이 열어주었고.

나는 뒷좌석에 앉았다.

그리고 다시 대화는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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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오늘 인터뷰 날입니다. 질문지에 맞춰 준비하신 대로 말씀만 해 주시면 됩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굴 공개는 하지 않고, 목소리만 편집해서 저희가 홈페이지에 올릴 겁니다. 그건 이미 합의된 거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문 보도는 오늘 중으로 보도자료가 배포될 것입니다. 아마 오늘 밤이 지나면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되실 겁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마 전 유가 옵션에 투자하신 것도 보도자료에 포함될 겁니다.”

어느덧 대략 열흘 전에 끝난 WTI유 유가 옵션 투자.

그 결과를 말하는 것이다.

“제 수익 금액도 보도자료에 포함된다고 했죠?”

“네. 다른 투자들보다 최신 투자인 유가 투자 쪽은 정확하게 수익금이 공개됩니다. 2억 335만 달러. 현 환율가치를 따졌을 때, 원화 2,440억 원. 그렇게 보도될 겁니다.”

고개를 조금 끄덕이다, 나는 시선을 돌렸다.

다시 창밖을 쳐다보다가.

문득, 미래증권 최수경 전무와 통화했던.

저번 주 통화 내용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

“···그러니까 추가 요구사항들이 있으시다고요?”

“네! 그렇게 해주신다면 음성 공개까지 허락하겠습니다.”

“대체 어떤 겁니까?”

“사실, 제가··· 곧 투자사 설립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역할은 투자자문, 투자일임 등, 그런 업종에 포커스를 맞출 생각이고, 투자자에 따른 맞춤형 투자 서비스도 제공할 생각입니다.”

“그럼, 자산운용사 설립과는 거리가 있군요?”

“네. 그건 설립 요건도 무척 까다롭고. 아직 펀드 운용 쪽까진 사업을 확대하기가 힘들죠. 차근차근 성장할 생각입니다.”

“그럼, 어떤 도움이 필요하신지···?”

“1인 투자사 설립이야 쉽지만, 금융투자업을 생각할 땐 인가 요건들이 있지 않습니까? 저 혼자서 그 일들을 진행할 수도 있지만, 다른 일들도 좀 있다 보니···. 전무님! 그래서 말씀드리는 건데, 그 일들을 조금 도와주신다면···. 죄송한데 제가 하는 일들이 좀 많습니다.”

“그럼, 투자자문, 투자일임? 이런 부류의 업종들인가요? 근데 이런 업종들은 인가받기가 쉬울 텐데요? 물론, 도와드릴 수는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투자사 인가 과정에서는 최대한 넓게 업종들을 잡아볼 생각입니다. 물론, 인가 이후, 업무는 단계단계 밟아갈 생각이고요. 그리고 또 부탁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앞으로 미래증권과 업무협약 형태를 맺고 싶은데···.”

“업무협약? 그건 또 왜죠? 혹시 저희가 얻는 게 있을까요?”

“먼저··· 제가 개인적으로 드릴 수 있는 제안은, 저희 투자사에서 국내 주식 투자, 국내 선물 투자 등, 국내 투자는 오로지 미래증권을 통해서 진행하겠다는 겁니다.”

“말씀은 고마운데, 투자자문사 일까지 하시게 된다면, 저희 미래증권과 나중에 경쟁하시게 될 텐데. 혹시 그건 아십니까?”

“하하! 전무님, 그게 말이 되나요? 저희랑 경쟁이라뇨? 미래증권에서 자문형 랩(wrap)으로 큰 수익을 올리고 있는 거 잘 압니다. 아직 저희는 그런 쪽 접근이 힘듭니다.”

“알겠습니다. 근데 고객님은 갈수록 제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위험한 투자를 거뜬하게 성공하신 것도 대단하지만, 이제 투자사 설립까지 생각하시고. 대체 어디까지 하실 생각인가요?”

“그냥 돈 버는 일입니다.”

“0.001% 투자자의 말씀인데, 단순히 돈 버는 일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아! 시간이 없어서 좀 더 듣겠습니다. 말씀하시고 싶은 거, 혹시 더 있으신가요?”

“네. 마지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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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딜은 성공했다.

한편, 리무진 좌석에 앉아 나는 팔짱을 끼고서 잠시 창밖을 쳐다봤다.

점점 더 밝아오는 아침 도심의 모습.

그 모습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로부터 잠시 뒤.

내 인터뷰가 진행될 스튜디오에 도착했고.

아나운서 출신의 중년 사회자가 질문하면.

내가 대답하는 식으로 인터뷰는 간단히 진행되었다.

이후, 목소리들은 아주 깔끔하게 녹음되었는데.

그 목소리들은 편집되어 미래증권 홈페이지에 게시될 예정이다.

한편, 2시간 남짓 이어지던 인터뷰는 마침내 끝이 났고.

그렇게 인터뷰가 끝날 무렵.

갑자기 뒤쪽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최수경 전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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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셨습니다. 고객님!”

오셨구나.

인터뷰를 마친 나는 최수경 전무와 악수했고.

잠깐 담소를 나누며.

그녀의 임원 전용 에쿠스 차량을 타고서 함께 이동했다.

곧이어 도착한 곳은 어느 특급호텔 프랑스 요리 전문점.

그런데 그곳엔 뜻밖의 손님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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