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대박 이삿날 01
<35>
고시원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조용히 방 정리부터 했다.
내일 드디어 이삿날이다.
책상을 좀 정리했고.
옷들도 정리했다.
그 외는 모두 버릴 것들뿐.
근데 시간이 너무 늦어져 버릴 것들을 그냥 옮겨도 될지 모르겠다.
아마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울릴 테고.
옆방도 그렇지만.
아래층에서도 뭔가 울리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럼, 내일 아침에 할까.
잠시 망설였다가.
결국, 방 정리하는 걸 멈췄다.
‘그냥 샤워나 하자.’
그래서 수건 한 장과 샴푸 등을 들고서 공용샤워실에 들어갔고.
고시원에서의 마지막 샤워를 마쳤다.
한결 시원해진 상태.
각종 잡념들도 아주 시원하게 씻겨져 나갔다.
'결국, 이 하늘 아래에 의지할 것은 내 자신 밖에 없어.'
결국, 내가 더 커져야 한다.
그리고 내가 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투자부터 잘 해보자.
그래서 다시 의지를 다졌고.
기분 좋게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잠시 뒤, 내 컴퓨터 앞, 모니터 앞에 다시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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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새 컴퓨터랑 모니터들을 아직 안 샀네.’
어느덧 구식이 되어버린 눈앞의 컴퓨터.
이 컴퓨터는 내일 아침 해체해서 버릴 생각.
아직 쓸 수 있는 모니터들은 고시원 총무한테 넘길 생각이다.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그리고 새 컴퓨터와 모니터는 금방 사면 될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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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사도 가는 마당에 슬슬 비서진들도 모아야겠어. 결국, 쓰레기였던 이들은 다 걷어내고, 괜찮은 사람들만···. 조관형 변호사! 그래, 먼저 조 변호사부터 찾아봐야겠어.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렇게 머릿속으로 질문했으나.
답은 이미 내 머릿속에 있었다.
조관형 변호사의 와이프.
그 와이프가 대형 로펌 ‘설천’의 변호사다.
그녀는 오랫동안 ‘설천’ 변호사로 활약했고, 나중에 ‘설천’ 대표 변호사가 된다.
그런 ‘설천’을 통한다면 그 와이프를 만날 수 있고.
조관형 변호사와도 연결될 수 있다.
‘지금쯤 성질을 못 이겨 검사 옷을 벗을 텐데.'
넉살 좋고 재치 좋은 한국대 법대 출신의 조관형 변호사.
때로는 예리하기도 하고.
날 졸졸 따라다니며 투자를 배우려고 했던 그런 사람이기도 했다.
투자 마인드가 있는 그런 법조인이다.
그럼 이사부터 하고.
정리가 거의 다 되면.
로펌 설천에 연락해서 상담 신청부터 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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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투자로 넘어가서······.’
서둘러 생각을 정리한 나는 드디어 WTI유 선물 호가창과 옵션 호가창들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선물·옵션거래.
그 시세 변화 등을 유심히 확인하다가.
잠시 팔짱을 끼며 나는 관망했다.
그리고 시간은 다시 유유히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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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깊어지는 밤.
‘11시 35분!’
팔짱을 풀고, 나는 다시 뚫어지라 호가창을 응시했다.
그렇게 호가창을 계속 쳐다보다 보니, 괜히 눈이 아프다.
그래서 슬쩍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는데.
그런데 바로 그 무렵.
호가 흐름이 갑자기 이상해졌다.
두 눈에 이채를 발하며.
두 눈에 힘이 팍! 들어갔고.
타다닥! 소리를 내며 재빨리 타이핑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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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진짜 이상한 흐름.
위험 징후.
차라리 지금이라도 헷지를 해야 하나.
리스크 분산!
그리고 이때.
점점 더 선물 호가창으로 밀려드는 대형 박스권 매물들.
그 위협적인 모습들 때문에 갑자기 모든 거래가 잠시 주춤했다.
선물 매도 주문들을 윗 호가대에 쏟아내면서.
실제 거래 없이 시세를 혼란시키는 방법, 바로 레이어링 기법(layering)인데.
이런 방법은 위쪽 매도 호가대에 대형 매물들을 층층이 쌓아두고.
최저가에 다시 대형 주문들을 넣어두는 형태로 실전에 응용될 수 있다.
시장을 교란시키는 시세 조종 방식!
그런 레이어링이 나타나자.
잠시 후, 시장은 반응했다.
하방으로 선물 매도가 터졌고.
선물 호가는 주르르 미끄러지며 주저앉았다.
다른 쪽, 풋 옵션 매수는 폭발적으로 치솟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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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유가가 정말 하락하나?’
그렇게 된다면 정말 큰 일이다.
유가 하락이 기정사실화 된다면, 내 모든 투자금을 날릴 수가 있다.
그러나 아슬아슬한 기억 속의 남아 있는 2010년도 유가 관련 미래 지식들.
애매하지만 그 미래 지식의 모습은 꼭 그렇지가 않다.
투자 행위를 하지 않았던 2010년도의 지식.
다소 불안하지만, 그래도!
‘우선, 헷지부터 준비하자!’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서둘러 몇 가지 전략을 짰다.
가장 먼저 풋 옵션 매수부터 시작하려고 했는데.
그때, 장중 조짐이 다시 이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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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거래물량이 이상한데···.’
각 호가의 잔량과 물량 변화.
그 변화가 내 프로그램을 통해 분석됐고 내 시야에 들어왔다.
일례로, 이런 경우가 여기저기서 목격되었다.
어느 매도 호가에 쌓인 계약 물량.
이게 900개에서 955개로 늘어나더니.
다시 932개로 줄어들었다가.
대략 900개로 원점 회귀했다.
빛살 같이 오갔던 거래들.
그 흐름을 보지 못했다면, 현재 잔여 물량을 원점으로 봤을 터.
그래서 하방 압박이 절대 풀리지 않은 것으로 봤을 테지만.
1초 구간 내.
매도 물량을 잡아먹는 숫자는 교묘하게 늘어나고 있다.
다시 프로그램들을 돌렸다.
한편, 그사이, 풋 옵션 쪽은 쉴 새 없이 매도 물량들이 튀어나오고 있고.
매수세도 아주 폭발적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WTI유 선물에서는 갑자기 알 수 없는 변화가 발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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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션은 적나라하게 반응해. 그러나 선물은 달라. 상대적으로 보폭이 좁아. 그래서 다루기가 쉽지.’
선물 계약을 넣었다 뺐다 하는 인간들이 여기저기서 보이기도 했고.
더 세세하게 구간별 거래량과 주문 잔량 등.
각종 거래 현황을 각 주문별로 분류하자, 뭔가 흐름이 잡히고 있다.
나는 다시 각 호가별 잔량과 계약 건수를 프로그램을 통해 확인했고.
각 시간에 따른 풋 옵션과 WTI유 선물 거래량의 차이를 계속 모니터링했다.
탁! 탁! 타닥!
이때, 몇 가지 변수를 프로그램에 넣었고 다시 프로그램을 돌렸다.
그리고 잠시 뒤.
나는 즉시 방향을 선회했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역시나!
이 시기의 ‘풋’은 지옥행 막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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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다시 시작된 콜 옵션 매수!
나는 풋 옵션 매수가 아니라.
콜 옵션 매수 선택지를 다시 잡았다.
그로부터 대략 40분이 지날 무렵.
두근, 두근.
심장은 거칠게 뛰었고.
긴장감은 갈수록 고조했다.
그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더 고조될 때.
마른 침이 스르륵 넘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선물 호가창에서 나타난 대역전의 변화.
설마 '성스러운 '콜'은 드디어 도래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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