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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물이 되어버린 투자자-40화 (40/138)

40화 WTI 오일 옵션 쇼크 02

“내가 도와줄게.”

“네?”

“노무사 비용이랑 필요하다면 변호사 비용, 내가 부담할게.”

“네? 형이 왜요?”

“그럼 3천만 원은 어떻게 갚으려고? 그게 가능하냐? 어머니한테 생활비는 어떻게 보낼 거고?”

그러자 풀이 죽으며 녀석은 고개를 숙였다.

“내가 한번 잘하는 사람 찾아서 그쪽 공장 일을 한번 확인해 볼게. 그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가만히 있어.”

“형.”

“암튼, 나한테 맡겨! 내가 알아서 확인 좀 해 볼게!”

그렇듯 내가 강하게 말하자, 녀석은 그저 수긍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 보면, 정말 뭔가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문득, 저번 편의점에서 박소희가 취중에 했던 말들도 떠올랐다.

사장이 미쳤다?

그렇게 그 취중 말들을 연결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뭔가 일들이 있는 게 분명했다.

사실, 회사 부도까진 앞으로 대략 2년 6개월 정도 남은 상태다.

비록 사장의 비리가 그때 발각된다지만.

정덕의 말들을 듣다 보면, 재료에서부터 이미 뭔가 문제가 발생한 것 같았다.

즉, 내가 아는 그때와 뭔가 달라진 것 같은데.

혹시 모를 변수가 발생해서 미래의 일이 조금 달라진 것인가.

훗날, 원료 대금과 화학 반응기 대금 등, 영수증들을 조작해서.

10억 원의 횡령 사건이 있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지만.

좀 더 이른 시기인 지금.

무언가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설마 나비 효과 같은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그 효과를 촉발할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걸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과거와 바뀐 점?

내가 좀 더 일찍 공장에 사표를 냈다는 것.

그거뿐이었다.

#

'근데 그렇다면 정말 내가 원인인가?'

아니면, 혹시 진짜 뭔가 다른 이유가 있나?

직감적으로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무언가 있는 듯한 느낌.

마치 진흙탕 속에 감춰진 어떤 보물 같은 것을 우연히 엿보게 된 듯한.

마치 그런 호기심이 생겨났는데.

또한, 무언가 알 수 없는 거대한 돈 냄새가 나는 것 같았고.

한편, 정덕에 대한 걱정과 함께 알 수 없는 기시감 같은 것도 갑자기 들기 시작했다.

<34>

“···야! 많이 좋아졌네. 이제 산 사람 같다?”

“씨! 내가 죽을 것 같았냐?”

언제나 무뚝뚝한 녀석, 공고 친구 유강석.

유강석의 집 앞.

어느덧 밤 10시가 다 된 시각이다.

근데 녀석은 그래도 고생을 많이 했는지 눈 밑엔 다크서클이 진하게 드리어져 있다.

눈동자도 다소 침울하다.

헤어 스타일도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두툼한 앞머리로 이마를 가리고 있었고.

시선은 줄곧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누나는 어때?”

문득 내가 그렇게 묻자, 허름한 단독 주택에서 걸어 나온 녀석은 이내 앞장서서 걸었다.

“시발, 내가 앤 줄 알아.”

그렇게 갑자기 성을 내는 녀석.

나는 재빨리 움직여 보조를 맞춘 뒤.

고개를 돌려 녀석을 쳐다봤다.

그래도 강석이 누나는 내가 강석이를 만난다고 하니.

흔쾌히 강석을 밖으로 보내주었다.

우리는 지금 편의점으로 가는 길이다.

저 멀리 위치한 가로등 하나.

그 불빛만 주변을 밝힐 뿐.

골목길 전체가 대체로 무척 어둡지만.

우리는 별로 개의치 않았고.

나는 강석에게만 집중했는데.

반면, 강석은 자신의 감정에만 집중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지금 강석은 계속 낮게 투덜거리고 있었고.

자신의 거친 감정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었다.

“인마, 애처럼 군 게 대체 누군데? 아직도 넌 사춘기냐? 누나가 너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너도 잘 알잖아? 넌 누나한테 절대 그러지 마라.”

“아으씨!”

순간, 강석은 머리를 더 숙이며 자신의 머리를 뻑뻑 긁었다.

“야! 죽다 살아났는데 아직도 그 모양이냐? 인마! 정신 좀 차려!”

녀석은 비장 동정맥 문합술 수술을 했고.

간 일부를 절단했다.

나름 대수술이었고.

아직 완전히 나은 것도 아니다.

#

“···혹시 너, 돈 좀 있냐?”

한편, 몇 분간 대화가 끊겼다가.

강석은 그렇게 갑자기 불쑥 물으며 날 쳐다봤다.

인상을 쓰면서 쳐다보는 녀석.

한쪽 눈이 마구 찡그려진 상태다.

근데 왜 돈이 필요할까.

“돈은 왜?”

“50만 원. 50만 원만 빌리자.”

“50만 원? 빌려서 뭣 하려고?”

“씨팔, 집에서 나가려고.”

“야! 진짜 너는 항상 똑같네.”

“···시발, 죽겠다. 누나 때문에···. 울고불고. 아직도···.”

“야!! 당연한 거 아냐!! 내가 그때 수술 대기실에서 봤어. 진짜 안쓰럽더라. 동생이란 새끼는 칼빵이나 맞고, 도대체 넌 정말 조폭할 생각이었어?”

“몰라도 돼! 새꺄!”

“새꺄! 나도 알고 싶지 않아! 뭐? 신 동호동파 행동대장??”

내가 비꼬며 말로 꼬집자, 강석의 얼굴은 잔뜩 굳어졌고.

그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태원이한테서 들었는데, 경찰 수사에 협조하고 있다며?”

“씨발, 쪽 팔려!”

“뭐가 쪽팔려?”

“······.”

“야! 니 살 궁리나 해! 장 사장이라는 사람은 벌써 튀었다며? 원래 수배자 명단에 있었다던데? 야! 도대체 지금이 어떤 시댄데, 아직도 칼 장난을 해? 사람 죽이고 구역 흡수할 생각이었어? 너는 그걸로 훈장(?) 달고 싶었고? 인마! 니가 이용당하는 건지 알면서도 그런 거냐? 이 바보야! 이 멍충아!”

“야! 이-씨! 그만해! 새꺄!”

갑자기 낮게 으르렁거리며 눈빛이 살벌해지는 강석.

순간,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내 주먹을 풀었다.

일부러 억한 말들을 계속 던져봤는데.

강석의 태도는 아직 바뀐 것 같지 않았다.

비록 누나와 태원의 노력(?) 덕분에 경찰 수사에 협조하고 있지만.

강석은 이런 상황 자체를 노골적으로 싫어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한 그는 무척 불안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찌하겠나.

결과적으로 그는 장 사장이라는 사람의 뒤통수를 후려친 거나 다름없다.

장 사장 쪽에선 강석이 배신자가 된 거고.

신 동호동파 쪽에서는 여전히 강석이 상대편 칼잡이일 뿐이다.

#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컵라면을 먹고 싶다는 강석.

그래서 우리는 어느덧 편의점에 들어섰는데.

컵라면을 각각 하나씩 산 뒤.

편의점 앞, 플라스틱 테이블 앞에 앉았고.

서로 마주 보며 앉았다.

한편, 자리에 앉을 때 복부 쪽을 슬쩍 만지며 신경을 쓰는 강석.

아마 누군가의 칼이 더 깊이 뱃속에 들어갔다면.

그 칼이 뱃속에서 좀 더 심하게 비틀어졌다면.

아마 강석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자꾸 왜 그래? 씨! 넌 몰라도 돼.”

“뭘 몰라? 니가 불안해 보이니까 계속 묻잖아.”

“···알아서 할 테니까···.”

조금 고개를 든 채, 으르렁거리는 녀석.

에휴, 계속 대화를 해 봐도 계속 제자리다.

멍청한 녀석.

아직도 사춘기 같다.

내가 고등학교 때, 죽도록 패서 강태원 그놈은 사람이라도 만들었는데.

눈앞의 강석이한텐 그러지 못한 게 다소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성인이 돼서 뒤늦게 주먹질을 할 수도 없고···.

‘그래. 그때 나도 엄청나게 맞았는데.’

거의 죽는 줄 알았다.

태원이한테 맞아서 거의 죽을 뻔했다.

#

“···인마! 앞으로 누나도 생각하고, 니 조카도 좀 생각해라. 누나가 너 때문에 얼마나 우는지 알잖아! 이제 우리도 26살이야. 고등학교도 꽤 오래전에 졸업했다고! 야! 이제 좀 유치해지지 말자!”

그러나 강석은 말이 없다.

“야, 차라리 태원이랑 같이 일하는 게 어때?”

“······.”

“태원이 밑에서 그냥 일하고, 경찰 수사도 적극 협조하고. 야! 어쨌든 태원이가 인맥빨이 있으니까 넌 그 옆에 있어. 니 커버는 쳐 줄 거 아냐?”

그러자 강석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때 강석의 눈빛이 약간 이상해졌다.

날 빤히 쳐다봤다.

대체 왜 저러지?

“김한수.”

“왜?”

“태원이··· 무슨 일 하는지 넌 모르지?”

“무슨 일 하는데?”

“참 나!”

“야! 뭔데?”

그러나 다시 입을 꾹 닫은 강석.

그래서 나는 다른 방법으로 녀석을 회유했다.

“태원이가 나한테도 같이 일하자고 하던데.”

“······.”

“내가 먼저 들어갈까? 상황 좀 먼저 확인하고 너한테 알려줄까?”

그러자 강석은 결국 반응했다.

“새꺄! 난 틀렸다고 해도 넌 절대 태원이한테 가지 마!”

“왜? 왜 안 된다는 거야?”

“시발, 태원이 그 새끼! 왜 그렇게 인맥빨이 좋겠어? 이유가 있어. 이유가···.”

“무슨 이유?”

“그 새끼, 나랑 같은 건달이야.”

“건달? 무슨 소리야?”

“자기는 아닌 것처럼 하겠지. 시팔, 태원이 보스가 큰손인데···.”

“큰손?”

“종로 쪽에서 세를 잡았다가 지금은 강남으로 옮겼어. 큰 자금을 관리하던 비서였던 여잔데. 사업체를 꾸려 이것저것 이상한 사업들을 하고 있어. 근데 그 여자 뒤에 건달, 양아치, 경찰, 검찰, 정치인, 기업인들, 거미줄처럼 다 엉켜 있어.”

순간, 나도 모르게 입이 저절로 벌어졌고.

이내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불안 불안하더니.

강태원도 그런 곳에 몸담고 있단 말인가.

정확하게 알지 못해, 사실 지금껏 가만히 있었는데.

진짜 미칠 일이었다.

그러고 보면, 그래서 내가 어느 순간부터 이런 친구들을 멀리했던 것 같다.

주먹을 쓰던 녀석들.

아무리 노력해도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흘러가고 있었고.

교도소 인생을 벗어날 수가 없다.

이때, 나는 너무 답답해져 입을 닫았는데.

그사이, 강석은 컵라면 뚜껑을 벗긴 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라면을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근데···.

도대체 이 녀석, 어떡하냐.

한쪽 조폭은 이를 갈며 강석을 죽이고 싶어 하고.

다른 한쪽은 강석의 배신에 치를 떨고 있을 것이다.

조폭에 스카웃됐다가.

이도 저도 아닌, 멍청한 신세에 놓인 녀석.

일회용 인생.

왜 이렇게 바보 같을까.

정덕의 일도 그렇고.

유강석의 일도 그렇고.

태원의 일도 그렇고.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서 내가 과거엔 미친 듯이 제도권에 들어가려고 그렇게 발악했던 걸까.

사실, 고졸 학력만으로도 성공한 사람들이 이 사회엔 제법 많지만.

실제,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물론, 잔잔하게 사는 것도 괜찮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살 수가 없다.

눈앞의 강석이처럼.

한 판 크게 일을 도모하려는 도박 근성이 나한테도 있고.

태원이가 가진 거칠고 집요한 면모도 내 핏속에 살아있다.

금수저가 아닌 흙수저인 우리 멍청이들.

그런 우리는 지금 발악하고 있다.

그렇게 발악해야만 더 위로 올라갈 수 있으니까.

그래서 더욱더 고통스럽다.

‘그래. 이제 정리 좀 하자.’

그때부터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짐짝 같은 녀석들.

그래서 과거엔 헌신짝처럼 버리고.

이기적인 모습으로써 완전히 모른 척했는데.

알고 나니 당연히 관심이 간다.

너무 위험해 보이는데 그렇게 관심이 안 가면 그건 사람도 아니겠지.

그저 냉혈 인간이겠지.

그러나 역시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어.

결국, 자신들의 인생일 텐데.

나는 손목시계를 한번 쳐다봤고.

미적미적하며 라면을 먹다가.

어느덧 강석이가 라면을 다 먹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난 바빠서 좀 가봐야겠어. 다음에 전화할게.”

그러고는 녀석과 바로 헤어졌다.

여하튼 이제 고시원으로 돌아가야겠다.

내일 이사가는 것도 준비해야 하고.

앞선 WTI유 옵션 투자도 마무리해야 한다.

들끓는 혈기, 날아오르고 싶은 욕망들.

그런 욕망들이 어우러지며, 점점 더 밤은 깊어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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