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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물이 되어버린 투자자-37화 (37/138)

37화 WTI 오일 옵션 쇼크 01

후줄근한 복장.

한쪽 머리가 짓눌린 부스스한 모습.

얼굴이 다소 크고,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는 모습.

그런 외형 때문에 여태 몰랐는데.

대충 나랑 비슷한 키였고.

체격도 비슷해 보였다.

또한, 제대로 먹지도 못한 듯.

허리사이즈는 나보다 더 가늘어 보인다.

참 희한한 일이다.

왜 이런 세세한 모습들이 과거엔 보이지 않았을까.

고시원 벽면을 통해 서로의 숨소리마저 들리지만.

결국, 관심의 눈 자체가 한동안 퇴색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에휴, 이걸 보면 알겠어.

나도 그땐 많이 힘들었던 거야.

여하튼, 잠시 뒤.

나는 130만 원짜리 명품 정장 한 벌을 통째로 가져왔고.

넥타이에 와이셔츠까지 가져와 건넸다.

“급한 게 아니라면, 드라이클리닝한 뒤 입으세요.”

한편, 이것저것 건네받은 그는 잠시 멍하니 정장 옷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고, 고맙다.”

약간 목소리가 떨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현저히 낮아진 자존감 때문에.

이런 부탁조차 하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아까 그 계단의 소리는 나한테 그런 부탁을 하려고 뛰어오다가.

그런 발소리를 냈던 모양인데.

그러나 막상 날 보게 되자, 그는 저절로 몸을 돌려 피했던 것 같았다.

에고! 사는 게 이렇게 힘들다.

#

“혹시 담에 또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나는 웃으며 그렇게 말한 뒤.

그가 옆으로 물러서자, 천천히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

나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컴퓨터와 모니터를 켰다.

우연인 듯 옆방 아저씨한테 도움을 주게 되자, 괜히 내가 더 흐뭇해졌다.

그래서 기분이 더 좋아져, 다시 내 투자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어느덧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

나는 이제 아홉 번째 투자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32>

유가(油價)···.

국제 유가.

이 국제 원유 유가는 우리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원유는 일차적으로 에너지 동력으로 사용되지만.

원유의 파생 물질은 자동차, 건설, 전자 업종에까지 사용되며.

특히, 원유 가공과 관련된 밀접 분야인 화학, 섬유 분야에서는 핵심 원료로써 활용될 수 있다.

각종 플라스틱 제품, 섬유 제품, 페인트 제품, 세제, 화장품, 의약품, 비료, 농업 제품 등.

다양한 제품들이 바로 원유 가공을 통해 제조된다.

원유 정제 공정에서 증류되어 얻는 나프타 물질.

이 나프타가 800도 고온에서 열분해 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화학물질들을 만들어내고.

이들이 화학반응을 통해 다른 형태의 화학물질들로 변형되면서.

각 기반 산업들의 핵심 소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중요한 가치가 있어. 글로벌 경기를 예측하는 자료가 될 수도 있고.’

현재, 유가는 변동폭이 적다.

대체로 안정세에 들어가 있다.

뉴욕상업거래소 서부텍사스산 원유 WTI.

이 선물의 유가는 올 초에 81.51달러를 기록한 이후, 소폭의 등락이 오가는 중이다.

전 거래일 종가는 72.14달러.

올 초에 비하면 유가가 하락한 것으로 보여지나.

그 하락 폭은 그리 세지 않았고.

차트상 점진적 하락 외에도 중간중간 부분 상승도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현재 중요한 것은 바로 유가 전망치다.

미래 유가의 흐름.

즉, 이런 미래값은 원유 선물과 원유 옵션의 가치를 결정하게 된다.

그렇다면 현시점에서의 유가 전망은?

현재, 글로벌 경기 침체기가 끝난 상황이라.

회복이 가속화되는 시기이고.

각 국가의 산업력도 점차 회복되고 있다.

특히, 산업적 수요에 따라 원유 수요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원유 가격도 점진적 상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즉, 코스피 지수 상승만큼이나 이것도 시대적 조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역설이 발생한다.

차트가 그 조류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지금 선물 차트 속의 유가.

그 유가는 최초 상승 출발했으나 서서히 하락 국면으로 나아가며.

조만간 유가가 전 거래일 대비 마이너스대로 추락할 것만 같은 그런 상황이었다.

#

‘아아, 더 떨어지네.’

현재 WTI유 선물의 호가는 72.35달러.

최초 73.86달러에서 거래되던 선물 호가는 점점 더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매도세가 갈수록 커지고 있었고.

호가는 계속 주저앉았다.

72.25달러.

72.16달러.

그리고 잠시 뒤.

전 거래일 종가인 72.14달러를 찍은 뒤.

선물 호가는 더 아래로 떨어졌다.

72.06달러.

72.01달러.

그리고 마침내 72.00달러 호가 지지선이 깨질 것만 같았다.

#

‘그럼 오늘도 하락장인가?’

이 선물 시장에서도 오늘까지 하락한다면, 무려 7거래일 연속 하락장이 펼쳐지고 있는 중이다.

내가 본 여러 자료에서는 누구랄 것도 없이 유가 상승을 예고하고 있지만.

시장 반응은 확실히 달랐다.

시장은 냉혹한 하락장의 지옥이 펼쳐지고 있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늘 혼란스럽다.

예측과 실제가 다르기 때문.

그 때문에 한순간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단기와 중단기, 중기, 장기의 차이점을 투자자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기적 하락과 상승은 조류의 흐름이 아니라.

제3자의 의지에 따라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시세 조종 같은 것도 그 예가 되고.

단기적 이벤트 발발 같은 것도 그 예가 될 수 있다.

#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접근하는 게 좋을까.

현명한 방법이란 무엇일까.

나는 다시 좀 더 꼼꼼하게 분석을 진행했다.

‘그래, 유가 시장도 역시 대단한 투기판이라고 할 수 있어. 그만큼 개입 세력들도 많고.’

투기 자금이 많다는 것.

아주 위험한 요소다.

#

아! 72.00달러!

그리고 바로 그때.

드디어 72달러 지지선이 깨져 버렸다.

그런 지지선이 깨지자.

WTI유 선물 호가는 더 빠르게 가라앉고 있었고.

어느새 71.26달러 위치까지 주저앉아 버렸다.

완전한 하락 국면으로 바뀌었고.

7거래일 연속 하락장이 거의 확정되는.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

조용한 침묵의 고시원 방.

개미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듯한 침묵.

그 침묵 속에서 나는 그 차트 추이를 계속 바라보며.

좀 더 상황을 정리했다.

'그래, 오펙(OPEC)의 원유 감산 정책, 이건 아직 유효하잖아.'

그리고 또 있다.

연중 7월이 되면, 항상 추운 연말을 생각해야 된다.

대체로 많은 나라들이 연말이 되면 추워진다.

그래서 갈수록 원유 소비량이 증가한다.

언제나 끊이질 않고 이어지는 중동 지역의 불안정한 정세.

리비아의 정치 불안 문제는 최근 이슈화가 되고 있다.

그리고  중국 같은 신흥국의 석유 수요량은 글로벌 경기 회복세와 더불어 갈수록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렇듯 순풍에 돛을 단 듯.

유가는 상승할 수밖에 없는데.

실질 차트는 딱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눈앞의 WTI유 선물 차트 역시 딱 그런 모습이다.

#

71.10달러?

‘와아, 그새 또 떨어졌네.’

잠시 후, 나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일단, 무조건 달릴 생각.

풋 옵션이 잠식하고 있는 세상.

지금은 차트를 보는 게 아니라 시대적 조류를 보면서 투자를 결정했다.

'대충 기억나는 게, 확실히 오를 가능성 있어. 2010년도 유가는 확실치 않지만.'

그리고 잠시 뒤.

서부텍사스산 원유 WTI의 선물 호가창을 계속 확인하다가.

선물 호가가 71.09달러를 찍는 순간.

타닥! 탁! 탁! 탁!

고시원 방의 고요를 깨는 소리가 들렸다.

일제히 그 주문들을 호가창에 던졌다.

그리고 그때부터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

'근데 수능은 잘 칠 수 있을까?'

'무슨 학과로 진학할까?'

'올해 전체 수익 목표는 대체 얼마로 잡아야 할까.'

한편, 주문 성사를 기다리는 와중에 나는 잡념이 많아졌는데.

그러던 중, 문득 묘한 생각이 들었다.

'아직 인터뷰를 안 했네.'

내가 이것저것 너무 바빠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그러고 보니 그사이, 여러 사건들이 있었다.

[대한민국! 짝! 짝! 짝! 짝짝! 대한민국!!]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대한민국 16강 진출!

그 쾌거를 우리나라가 달성했고.

월드컵 특수가 한참 지속됐었다.

#

'이상하네. 아직도 감감 무소식인데.'

너무 바빠 잠시 잊고 있었는데.

아직 미래증권 인터뷰를 하지 않은 것이다.

'박현주씨한테 전화해 봐야 하나.'

그렇게 생각을 마치던 중.

다시 이상한 생각이 들었고.

각 포털 사이트와 구글 등에 내 이름을 슬쩍 검색해 봤다.

'아, 별다른 건 없네.'

특별한 정보가 뜨지 않는다.

그런데 혹시나 해서.

좀 더 세세하게 검색해 봤다.

저번 곡물 선물 투자.

그리고 다우존스지수 풋 옵션 성공.

이런 투자와 관련하여 이것저것 검색해 봤다.

그런데 주르르 이어지는 모니터 화면의 정보량에 나는 깜짝 놀랐고.

나는 다시 놀라고 말았다.

#

우와, 이게 대체 뭐야!

내가 모르는 사이, 내 기사가 터진 것이다.

어느 포털 사이트.

몇 페이지야? 대체?

내 기사 숫자.

무려 50개를 넘어서고 있었고.

구글에서도 역시 기사가 수십 개나 뜨고 있다.

일간지 신문기사들도 무려 십여 개에 이르고 있었고.

각종 블로그에서도 이번 대박 사건에 대한 기사들이 포워딩되어 있었다.

[다운존스지수 풋 옵션 초대박]

[美 증시, 전문투자자 천문학적인 수익을 터트려]

[JS 김대호 이사 논평, “美 파생시장은 천재들의 놀이터”]

[美 증시 급락장, 풋옵션 최고 500배 초대박···]

[美 증시, 2천억 수익! 글로벌 시장 규모에 놀라···]

[풋 옵션 대박, 다우존스 지수 급락에 ‘초대박’]

[파생투자 우려 확대, 일확천금을 꿈꾸는 투자자들에게 경고···]

대략 6월 말경에 터져 나온 그 기사들.

다행히 그것들은 찌라시 형태에서 좀 더 구체화된, 그런 형태의 기사였다.

수익자의 국적도 없고 그저 수익에 관한 기사뿐.

이런 형태의 기사는 이 바닥에서 자주 나오는 기사인데

그러고 보니.

지난 6월 중순부터 시작된 남아공 월드컵 한국 경기.

그 시기를 피한 듯.

뒤늦게 이런 기사들이 터진 것 같았다.

#

'아아, 기사가 터지긴 터졌네. 나중에 내 인터뷰 기사까지 터지면 더 대박이겠어. 수익자가 한국인으로 알려지면 더 파장이 클 것 같고. 근데 앞선 기사에선 미래증권 언급이  하나도 없었어. 더 큰 걸 바라나?'

여하튼 나는 검색을 마친 뒤.

잠시 후, WTI유 콜 옵션 계약 물량들이 차곡차곡 내 잔고에 쌓여가는 것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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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근데, 좀 더 기다려야 하나. 그래, 담배나 한 대 피고 와야겠다.’

그래서 잠시 뒤, 담배 한 개비를 들고서.

나는 조용히 고시원에서 나왔고.

여름치고는 시원한 밤공기에 이내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그 기분 탓인지.

구태여 담배를 피지 않아도 될 것 같았고.

골목길에서 서서 몇 번 주변을 배회하다가.

잠시 후,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이제 투자를 서서히 마무리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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