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부자는 즐겁다
#
“선생님, 공사는 거의 다 끝났습니다. 오늘 중으로 다 정리하고, 저녁엔 전체 청소 작업까지 꼼꼼하게 다 끝낼 겁니다.”
“그럼, 이사 시기는 언제 가능할까요?”
“페인트 냄새 등이 좀 남아 있어서, 내일보다는 모레 정도. 일정이 정 급하시다면 내일 이사를 하셔도 됩니다.”
“내일요?”
“네. 근데 되도록 모레 정도가··· 좀 더 낫지 않을까요? 페인트 같은 냄새가 충분히 빠지려면.”
“아, 그렇군요.”
내가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짓자, 박유진의 표정도 한층 밝아졌다.
“그리고 정원 이쪽을 보시면 각 조명을 최대한 많이 설치해뒀습니다. 이런 조명을 자동 버튼을 통해 켜면, 야간에 주변이 환하게 밝아집니다. 잠깐 보시겠어요?"
탁!
"어때요?"
순간 갑자기 요란한 빛들이 곳곳에서 쏟아졌다.
아직 대낮이라서 조명 효과가 뚜렷하진 않으나.
밤이 되면 정원 전체가 아주 환해질 것 같았다.
'와! 이렇게 되면 혼자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 것 같은데.'
"네! 좋습니다!"
"그럼 이제 안으로 들어가서 보시겠어요? 자! 이쪽으로 오세요!”
무척 싹싹한 그녀.
거침이 없다.
“괜찮아요. 신발 신고 들어오셔도 돼요. 저녁에 전체 청소를 꼼꼼하게 할 거라서.”
“네.”
신발을 신은 채로 나는 안으로 들어섰다.
예전에 봤던 저택의 모습.
구조적인 측면에선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훨씬 더 심플해졌고.
훨씬 더 깔끔해진 모습이다.
벽면은 화이트로 통일했는데.
그녀가 추천했던 하얀 프랑스제 소파는 이미 거실 한쪽에 배치되어 있었다.
한편, 한쪽으로 보이는 화이트 우드 톤의 벽면 포인트.
그 포인트 때문에 그나마 지독한 화이트의 압박감에서 벗어나 있었고.
집 전체가 흡사 우아하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카펫은 여기다 나중에 깔아드릴 텐데. 아! 이쪽도 보세요. 공사 시안대로 창틀 공사를 했는데 아주 깔끔하죠? 밖에서 보이는 정원 분위기를 해치지도 않고. 별장이 아니라 아담한 집 분위기가 더해졌어요. 그리고 여기 버튼을 누르시면, 거실 커튼 전체 혹은 일부분을 자동으로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고···.”
박유진 사장이 설명하는 동안, 나는 계속 주변을 살폈다.
사실, 한쪽 벽면에는 거대한 거실 창이 있었는데.
그걸 검은색 창틀로 이어진 하단 6개 창과 상단 1개의 창으로 개조했다.
전반적인 화이트색 분위기 속에서.
한쪽 벽면에 검은색 창틀이 있다 보니, 이것도 포인트가 되는 느낌인데.
확 열려 있는 느낌의 하나의 거실 창이 이제 여러 개로 나뉘자, 다소 복잡한 듯하면서도.
그럼에도 나한텐 안정감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쪽 미술품은 제가 일부러 걸어둔 건데 나중에 바꾸실 거면 언제든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그녀가 가리키는 다른 벽면.
거기엔 검은색 계통의 심플한 미술 판형 작품 두 개가 나란히 걸려 있는데.
화이트와 블랙의 조화를 완벽하게 만들어내는.
거실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오오, 저는 정말 좋은데요!”
“아,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저 미술품 덕분에 더 완벽해진 것 같고, 안목이 정말 탁월하신 것 같습니다.”
내가 일부러 강하게 칭찬하자, 박유진은 날 힐끔 쳐다보더니 씩 웃었고, 그러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전체적인 조형 구도도 확실히 괜찮아 보입니다.”
“그럼, 이쪽은 어떠세요?”
“아아···.”
“보시면, 여기 리프트는 화이트 색채지만, 자연 느낌이 슬쩍 나죠?”
“네. 그렇네요.”
“이건 패턴이 심플해서, 나중에 들어오게 되는 가구의 원색적인 느낌도 많이 중화시켜줄 겁니다.”
한편, 그녀는 설명하면서 이곳저곳 날 안내했고.
그사이 저택 2층 공간과 지하 1층까지 모두 둘러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지하 1층에 위치하게 된, 나만의 서재 공간을 잠시 가만히 쳐다보다가.
다소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응시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지하 1층에 서재를 만드신 것은 좀 특이한데, 혹시 특별한 이유가 있으세요? 보통 여기는 헬스 기구들을 놓거나 각종 취미 공간으로 활용하시던데···.”
“아, 지하라서 조용할 것 같고, 또한 집중하기도 좋을 것 같고. 그래서 서재로 쓸 생각인데, 근데 좀 우중충하죠?”
“아뇨.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명들을 밝게 설치했는데···.”
탁!
갑자기 밝아지는 주변 조명들.
사방이 아주 환해졌다.
“네! 확실히 밝은 것 같네요.”
“그리고 이런 조명들 외에도 서재 벽면의 인테리어 쪽도 나름 신경을 썼습니다.”
“아, 무척 마음에 듭니다.”
나는 미소를 보인 뒤, 다시 설명했다.
“확실히 이런 인테리어 조건에선 여기가 서재로서 안정감이 좀 있을 것 같네요.”
“근데 안정감이라면? 대체 어떤 의미에서요?”
“아, 그냥 제 취향입니다!”
사실, 투자 자체가 의외로 무척 거친 일이다.
그저 컴퓨터 앞에 앉아 매수 주문을 넣거나 매도 주문을 넣다 보면, 다소 조용한 작업 같지만.
이건 투자와 투자가 서로 싸우는 격렬한 전쟁터나 다름없다.
이런 투자판에서 누군가에게 갑자기 연민이 생겨 알 수 없는 누군가를 동정하게 될 때, 그때 자신은 그날로 패잔병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렇게 됐을 때, 누가 과연 자신을 동정해줄까.
어쩔 수 없이 투자판의 세상은 차갑게 돈이 오가는.
그저 냉혹한 세계이고 또한 전쟁터일 뿐이다.
"···참고로 여기가 딱 고정된 느낌도 들고 확실히 조용해서 마인드 컨트롤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전 집중할 때 아주 조용한 곳을 좋아하거든요.”
“그래도 만족하시니까 다행입니다.”
“아, 그리고 운동 같은 건, 스포츠센터에서 하려고요.”
그러자 박유진 사장은 갑자기 두 눈을 반짝거렸다.
“다니시는 스포츠센터가 혹시 있으세요? ”
“아뇨. 특별한 곳은 없고, 나중에 한 번 찾아보려고요.”
그렇게 말하자, 박유진은 갑자기 자신의 휴대폰을 꺼냈다.
“혹시 이전에 다니신 데는 없으세요?”
“네. 이곳저곳 있긴 한데···.”
물론, 회귀 전에 내가 다녔던 스포츠클럽들이다.
그래서 대충 얼버무렸는데.
그러자 그녀는 갑자기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혹시 좋은 데 추천해드려도 될까요?”
“추천요?”
“네!”
순간, 나 역시 웃고 말았다.
바로 이런 모습.
언제나 적극적인 여자.
그리고 나는 그녀의 저런 적극성이 항상 마음에 들었다.
“혹시 어디가 좋을까요?”
“먼저, 제가 질문부터 드릴게요. 스포츠클럽과의 접근성을 고려하여 이 근처에서 다니고 싶으신지···? 아니면 소셜한 부분까지 생각하신다면, 좀 더 멀리 가시는 게 좋을 텐데.”
후자는 강남 특급호텔 피트니스클럽을 이야기하는 게 분명했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 그런 곳을 정말 많이 다녔었는데···.
거기서 운동하다 보면,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때로는 옆에서 운동하는 사람과 가볍게 이야기하다가.
제법 좋은 정보들을 얻기도 한다.
또한, 투자유치를 하기도 한다.
물론, 대다수의 경우, 그저 조용히 운동만 하지만.
그럼에도 그땐 내가 어느 정도 유명세를 가졌던 터라.
저절로 사람들이 나한테 몰려들곤 했었다.
‘아, 그게 괜찮긴 한데. 아직은 아니지.’
왜냐하면, 그런 곳은 내부 시설이 너무 좋다 보니, 한 번 거길 가게 되면 쉽게 거길 벗어날 수가 없다.
운동도 하고, 사우나도 하고.
이것저것 시설들을 활용하다 보면, 시간도 대체로 많이 걸린다.
현재 수능 준비도 병행하고 있는 나.
이런 나에게 있어 주변이 다양해지는 것은 대체로 좋지 못하다.
“그냥 저는 가까운 데가 좋은데요. 혹시 어디가 좋을까요?”
“그렇다면 가까운 곳에 위치한, 괜찮은 클럽을 소개해드릴게요. 시설도 깨끗하고, 많이 붐비지도 않고. 사용하시는 데도 불편함이 없을 겁니다.”
“아, 감사합니다.”
“잠시만요.”
그러고는 그녀는 바로 전화를 했다.
피트니스 클럽에 직접 전화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일부러 대답하듯 소리냈고.
그래서 상대방의 대답을 내가 다시 들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역시 재치가 있는 여자다.
“선생님! 이 정도인데 어떠세요? 혹시 직접 통화해 보시겠어요?”
“네. 제가 할게요. 주세요.”
그러자 박유진은 자신의 휴대폰을 나한테 넘겼고.
나는 잠시 통화한 뒤, 다시 그 휴대폰을 돌려줬다.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뇨. 필요한 거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반경 3km 근방. 여긴 제가 모르는 곳이 없거든요.”
“하하, 이쪽에 사셨나 보네요?”
“네. 이 동네 출신이죠.”
이미 아는 이야기다.
그러나 슬쩍 물어봤고.
박유진 사장이 예전에 살았던 집도 얼핏 기억이 났다.
여기서 400m, 500m 정도 떨어진 곳이다.
그렇다고 아주 훌륭한 저택은 아니었다.
단독 2층 주택.
그저 아담한 크기.
아마 지금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을 것이다.
#
잠시 후, 나는 이제 혼자서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내가 앞으로 살 집이다.
이 집에 좀 더 익숙해지려고.
나는 다시금 꼼꼼하게 살펴봤고.
다시금 만족감이 나타났다.
이전 집주인의 흔적이 모두 사라졌다.
마치 새집 같은 느낌이 들었고.
이런 변화는 절대 싫지 않았다.
‘그래, 인테리어를 하길 잘 했어.’
조금 늦게 이사하더라도.
기다리는 대가는 확실히 달콤한 법.
투자든 뭐든, 어떤 것이든 간에.
그런 기다림은 결국 인생의 율법과도 같다.
‘근데 나도 참 대단하단 말이야.’
수천억 원의 자산이 있음에도.
지난 몇 주간 나는 고시원에서 계속 버텼다.
어느덧 좁은 고시원에 적응이 된 것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대체로 조용한 분위기인 그 고시원에 나름 만족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곳이 얼마나 좁은가.
이 저택과 비교한다면.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좁은 곳.
‘그래도 추억 속의 고시원인데···.’
아주 고생했던 곳.
고생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던 곳.
특히, 다시 돌아온 상황에서.
아마도 그래서, 나는 선뜻 고시원을 나갈 수가 없었나 보다.
아무리 답답하고 지독해도.
그 묵은 정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그래도 이젠 이사 준비를 해야겠어. 참! 이럴 때가 아니지. 이것저것 사야 할 게 많은데···.’
그간 투자를 진행했고.
대부분은 수능 공부에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잊어버린 이사 준비.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한다.
물론, 고시원에선 특별히 가져갈 게 없다.
내가 입을 옷들 몇몇을 제외하곤 말이다.
컴퓨터와 모니터도 새로 구매할 생각이고.
기존에 쓰던 컴퓨터는 이사 당일 해체해서 버릴 생각이다.
그래서 잠시 후, 나는 벤츠를 타고서 바로 밖으로 나왔다.
시원한 차량 에어컨 때문에.
여름 날씨임에도 차 내부는 무척 쾌적했고.
그런 상태로 유유히 도로를 달린 끝에.
잠시 후, 나는 강남의 어느 백화점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쇼핑을 시작했는데.
워낙 살 게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천억 원대의 부자다운, 통 큰 쇼핑이 시작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