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물이 되어버린 투자자-28화 (28/138)

28화 황제의 귀환 02

<25>

“···솔직히 말씀드리면 정말 놀랐습니다. 개인 투자자들 중에서 지수옵션 파트로 최대 100배까진 수익률이 터진 경우도 있으나, 그땐 투자금이 수천만 원대에 불과했죠. 이런 경우는 정말 손을 꼽을 정도예요.”

잠시 후, 인사를 마친 뒤 자리에 앉은 최수경 전무는 그냥 솔직하게 말하고 있었다.

미래증권을 통한 내 투자 행위.

내가 얻게 된 수익률을 그녀는 가감 없이 말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나도 모르게 내 태도가 과거의 모습으로 조금 돌아왔다.

지독한 패닉 상태에 빠졌던 그때의 내가 아니라.

여의도 증권가의 전설로 불렀던 김한수.

그때의 김한수로 복귀하는 듯한 느낌이 슬쩍 들었다.

“감사합니다. 전무님. 갑자기 이런 백화점 선물들을 많이 주셔서 몸 둘 바를 몰랐는데. 미래증권의 영업 스타일이 조금 마음에 듭니다.”

“호호. 마음에 드셨다니까 다행인데, 근데 좀 아쉽네요. 저희는 우수 고객에 대해 적극적인 프로모션을 제공하고 있는데, 그게 고객님의 기대에 좀 미치지 못했나 봅니다?”

“아, 물론, 플래티넘 등급 상향도 마음에 듭니다. 다만, 갑자기 연락을 주셔서 좀 당황스러웠고. 사람 심리상 약간의 거북함도 좀 생깁니다.”

“어머, 죄송합니다. 저희가 고객님께 불편함을 끼쳤나 보군요. 근데 솔직히 말씀드린다면, 제가 꼭 뵙고 싶었습니다.”

“전무님께서요?”

“네. 그리고 직접 뵙고 나니,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입가에 미소를 보이는 최수경 전무.

그러면서 날 빤히 쳐다보고 있었고.

내 동작 하나하나까지 챙기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다.

“근데 혹시 아직 대학생인가요?”

그런 정보까진 미래증권 데이터베이스에 없다 보니, 최수경 전무는 호기심을 갖고서 물었고.

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수능 준비 중입니다.”

“그럼 대학 졸업 후, 다시 학교로?”

“아뇨. 최종 학력은 고졸입니다.”

“아!”

놀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최수경 전무의 좌우에 앉아 있던 김청준 팀장, 김성민 차장, 박현주 사원 등도 놀란 듯 날 쳐다봤다.

“그럼 혹시···? 아, 결례인 줄 알지만, 좀 여쭤봐도 될까요?”

“네. 말씀하세요.”

“그럼 투자하시기 전, 다니시던 직장이···?”

“네. 공장에 다녔습니다.”

“공장?”

그 낯선 단어에 최수경 전무를 포함해서 다들 표정이 조금 이상해졌는데.

이때, 최수경 전무가 갑자기 웃으며 화제를 바꿨다.

그 바람에 분위기는 다시 돌아왔다.

“호호, 정말 뜻밖이군요. 근데 도대체 어떤 비결이 있었을까? 기관 투자자도 아닌 개인투자자가 20억 원 남짓한 돈을 선물옵션에 모조리 쏟아 넣는다? 너무 리스크가 커서 절대 쉬운 일이 아니죠.”

그 말에 나는 한쪽 입꼬리를 씩 올리며 대답했다.

“한 방에 확 가려면, 그거 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저 운이었다? 그 말씀인가요?”

실제, 무모한 개인투자자들은 한 방을 노리고서 선물옵션 투자에 뛰어든다.

그리고 99.99999%가 쪽박을 차게 된다.

흔히, 주식 투자에선 해당 종목이 상폐를 당하더라도 원금 제로가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상폐 종목은 정리매매가 진행될 수 있어 일부분이라도 투자금을 건질 수 있다.

그러나 선물옵션 시장에선 원금 제로의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리고 그래야 그 돈은 누군가한테 집중될 수 있고, 누군가의 독식도 가능해진다.

“네. 운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가 없죠. 투자에선 ‘운’을 손에 쥐지 못하면, 절대 큰돈을 만질 수 없다는 거. 전무님께서도 잘 아실 겁니다.”

그렇다면, 나는 대형 행운을 손에 쥔 것인가.

한편, 내가 그런 말을 하자, 한쪽 끝에 앉아 있던 박현주 사원은 날 뚫어지라 쳐다봤다.

그 시선이 아주 강렬했다.

힐끔 그쪽을 쳐다본 뒤.

나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반면, 손해 보지 않는 게 바로 투자자의 실력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럼 고객님께선 손해 보지 않으실, 그런 자신이 있으셨다는 말씀인가요? 혹시 다른 전문가들처럼 차트를 보는 특별한 요령 같은 게 있으신가요?”

최수경 전무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계속 질문을 던졌다.

“하하. 죄송합니다만, 영업 비밀입니다.”

“네?”

“미래증권에서도 회사 영업 비밀은 절대 공개하지 않을 텐데요?”

“어머, 역시 다른 점이 있으셨군요. 고객님의 자신만만한 눈빛에는 반드시 합당한 이유가 있겠죠. 그래서 더 궁금해집니다. 참! 김 팀장님!!”

“네. 전무님.”

“플래티넘 다이아 등급. 그 조건이 어떻게 된다고 했었죠?”

갑자기 플래티넘 다이아 등급에 대해서 언급되자.

나는 귀가 솔깃해지며 최수경 전무와 김청준 팀장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플래티넘 다이아 등급은 플래티넘 등급 중에서 매달 최소 거래금액이 2천억 원, 그게 일 년간 지속되면 등급 업그레이드가 되어 2년간 플래티넘 다이아 등급이 제공됩니다.”

“그럼 플래티넘 등급은요?”

“일 년 최소 거래금액은 2천억 원입니다.”

그제야 나는 내가 플래티넘 등급으로 상향되는 이유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거래금액으로 보면, 이미 2천억 원을 돌파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플래티넘 등급도 놀랍지만.

플래티넘 다이아 등급은 그저 넘사벽이었다.

“혜택은 어떻게 되죠?”

“플래티넘 등급은 수수료가 전액 무료입니다. 플래티넘 다이아 등급 역시 수수료가 무료이며, 분기별로 퍼스트클래스 국제항공권 2장이 지급되며, 목적지는 해외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그 외에도 플래티넘 다이아 멤버십카드가 발급되며, 사내에서만 활용되는 기업 분석 보고서 등을 실시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물론, 비밀 엄수와 관련된 동의서에 반드시 사인하셔야만 가능합니다.”

“자! 그럼 이제 진짜 이야기를 할까 하는데, 고객님! 저희 회사의 제안을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그러면서 최수경 전무의 눈빛이 갑자기 강렬해지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바로 눈치챘다.

최수경 전무가 일부러 김청준 팀장한테 질문들을 던진 거고.

그 대화가 바로 오늘 만남의 핵심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본래, 고객님께 플래티넘 등급 상향과 몇 가지 제안을 드리려고 했었는데. 젊지만 보통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어요. 사실, 이 바닥에 있다 보면 눈빛만 봐도 사람들을 알아볼 수가 있죠. 그만한 실적이 있다면, 더더욱 그렇죠.”

최수경 전무는 말을 이어 나갔다.

“우선, 플래티넘 다이아 등급은 개인 투자자 몇 분을 제외하곤 대다수 투자사 대표 분들에게 부여되는 등급입니다. 그래서 직설적으로 말씀드릴게요. 한시적이지만, 일 년간 멤버십을 드리겠습니다. 다만, 조건이 있어요. 실명 공개는 하지 않더라도, 저희 회사에서 진행하는 인터뷰에 응해 주시고, 각종 언론 홍보에 조금 도움을 주신다면, 저희도 최선을 다해 고객님께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나한테 플래티넘 다이아 등급을 주겠다는 말이다.

2년 정규 기간이 아닌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1년의 기한이 주어진다.

수수료 무료.

퍼스트클래스 항공권 발급.

각종 정보 혜택들.

그리고 정확히 의미를 알 수 없는 멤버십카드 발급까지.

순간, 나도 모르게 미소가 피어올랐다.

사실, 이런 걸 주지 않더라도.

최수경 전무와의 인연(?)을 생각한다면, 최수경 전무를 도울 수 있다.

더군다나 투자사를 세우기로 마음먹은 나.

그런 나에게 있어 대중적 지명도가 높아지는 것은 오히려 즐거운 일이 아닌가.

물론, 일확천금의 대상자로 찍혀, 증권가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은 좋지 않지만.

그럼에도 과거에도 경험했던 일이다.

딱히 두렵지도 않다.

한편, 내가 갑자기 선명한 미소를 짓자.

최수경 전무의 표정 역시 갑자기 확 밝아지고 있었다.

#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호호, 계속 말씀드렸지만 저희가 더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건 제 개인 명함인데, 언제든 한번 연락 주세요. 제가 꼭 저녁을 대접하고 싶군요.”

50대 초반 나이의 여장부, 최수경 전무.

그녀는 나한테 명함을 건넸고.

나는 그 명함을 챙겨 내 지갑에 잘 넣어뒀다.

“근데, 전무님! 저도 건너 건너 이런저런 이야길 듣다 보니, 대충 업계 동향을 잘 아는 편인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개인정보를 이런 식으로 활용해도 되는 겁니까?”

“아아, 그게···.”

“아무리 업계 사람들이 다 하는 영업 관행이라고 해도 좀···.”

“그 점은 죄송합니다. 고객님! 그래서 더 솔직하게 말씀드린다면, 그 정도로 저희가 좀 다급합니다. 올해까지가 어쩌면 기회인데, 선물 점유율을 여기서 더 높이지 못한다면 앞으로가 더 힘들어지겠죠.”

어느덧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하던 최수경 전무.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계좌 개설시 고객님께서 최초 동의하신 선택 조건을 바탕으로 정보 확인이 된 거였고, 저희는 당사자 동의 없이 개인 정보를 외부 유출하는 경우가 절대 없습니다. 그점은 꼭 믿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또··· 그 멤버십카드 건은 사장님 결재가 떨어지면 바로 알려드릴게요. 박현주씨가 그 카드 혜택 건도 같이 맡아서 안내해 드릴 겁니다.”

내가 쳐다보자, 박현주 사원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다시 최수경 전무를 응시한 뒤 입을 열었다.

“어쨌든, 뭐든 시원시원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혜택을 받는 입장인 만큼, 미력하지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그러고는 악수한 뒤.

나는 이번에도 ‘임원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1층으로 내려갔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