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황제의 귀환 01
<24>
하늘을 찌를 듯 높은 고층 빌딩들.
그 빌딩들 사이로 삼삼오오 오가는 사람들.
자본주의 욕망이 가득한 증권가.
그 여의도 증권가의 높은 건물들을 쳐다보며 오가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선망과 욕망을 다시 품게 된다.
이 여의도 증권가에는 각종 금융 투자 회사들이 잔뜩 몰려 있다.
그런데 거기서 방향을 틀어 그 너머를 바라보면, 한강 투신자살의 대명사로 알려진 마포대교가 자리 잡고 있다.
한강 다리 투신 자살자들 중에서 세 명 중의 한 명꼴로 이곳 마포대교에서 자살한다고 한다.
그 마포대교와 내가 서 있는 곳은 거리상 그리 멀지 않은데.
그러고 보면, 이 일대는 욕망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이며.
환호성과 비통함이 교차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마포대교에서.
남들과 다르게 권총 자살했던 나.
잠시 먹먹해진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깊게 심호흡했고.
손목시계를 통해 현재 시각을 확인했다.
곧 점심시간이 가까워진다.
직장인들이 각 빌딩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빨리 움직여야겠어.
그래서 나는 좀 더 발걸음을 빨리한 뒤.
어느 공인중개사 사무실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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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미래증권이라고요?”
잠시 후, 여의도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 임대 사무실 매물들을 확인하던 중.
갑자기 걸려온 휴대폰 전화.
그 전화를 받자마자, 낯선 사람은 자신의 신분을 이야기했는데.
미래증권 소속 선물영업팀 김청준 팀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었다.
우선, 팀장급의 간부가 직접 전화를 했다는 사실에 좀 놀랐고.
이어지는 전화 목적도 다소 의아한 일이었다.
“고객 감사 목적이라···? 근데, 그런 일에 구태여 미팅 시간을 잡을 필요가 있을까요? 네? 플래티넘 등급요?”
그 순간, 나는 귀가 솔깃했는데.
현재 미래증권 계좌 소유주로서 골드 등급으로 책정되어 있는 내 위치.
이걸 파격적으로 상승시켜 플래티넘 등급으로 올려주겠다는 것이다.
이 등급은 수수료 제로!
선물옵션거래를 하는 데 있어 생각보다 만만찮은 비용 중의 하나가 수수료인데.
그 비용이 앞으로 2년간 제로가 된다면, 그만큼 꿀을 빠는 일이 된다.
그래서 바로 관심이 커졌는데.
그러나 보이스 피싱이 아닌가 하는 그런 의심도 문득 들었다.
“네! 그렇다면, 제가 직접 회사를 방문할게요. 마침 제가 여의도에 있어서.”
낯선 사람이 직접 날 찾아오겠다는 것도 부담스럽고.
그 사람이 보낸 리무진을 타는 것도 무척 부담스러운 일이다.
때마침, 여의도에 있다 보니 그런 제안을 했고.
그러자 상대는 바로 내 제안을 받아들었다.
미래증권 본사 1층, 오후 1시.
잠시 뒤, 전화를 끊은 뒤, 나는 잠깐 생각을 정리했다.
‘수수료 제로?’
플래티넘 등급 상향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바로 이 수수료 제로 건은 절대 놓치기 쉽지 않은 제안이다.
갈수록 내가 치르게 될 수수료 비용이 엄청나게 될 텐데.
수수료 제로는 정말 큰 이익이 될 수밖에 없다.
‘진짜 개이득이란 말이야.’
그래서 이런 중요한 일을 함부로 할 수가 없다.
상대가 진짜 미래증권 직원인지 가서 보면 알 테고.
한편으론 겸사겸사 인맥을 만들어놔도 좋을 것 같았다.
향후 내 투자사가 설립되면, 투자 업무는 복잡해질 것이다.
거대 증권사와의 업무 협조는 필수적.
일석이조.
‘그래,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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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좋은 매물 나오면 바로 연락 주십시오.”
잠시 후, 나는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 나왔다.
내가 원하는 사무실 규모는 좀 더 넓은 공간이다.
대략 30명 정도 직원들이 일할 수 있는 공간.
최근, 수요가 늘기 시작한 소형 사무실과는 차이가 있다.
펀드 매니저 출신, 애널리스트 출신들이 각자 독립해서 소형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각자 투자 행위를 진행하는데.
이런 소형 ‘부티크’ 사무실의 수요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런 사무실은 인원 숫자가 많아야 10명 남짓한 수준인데.
이런 시류에 따라, 여의도 일대 빌딩마다 이런 소형 매물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들은 현재의 증시 상황과 절대 무관하지 않다.
2007년, 2008년 기점으로 증시불황과 위험성은 많이 해소되었고.
작년 2009년은 증시 활황의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갈수록 증권가로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있었고.
그로 인해 점차 경쟁이 심화되면서.
안전 종목에서 하이 리스크 종목으로 갈아타려는 투자자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또한, 서점가에서도 투자 열풍이 불었는데.
고위험성 선물옵션 분야의 서적들.
그런 서적들까지 불티나게 팔리게 되는.
바로 그런 시기가 현재의 2010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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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아마 저 빌딩이 미래증권 빌딩인 것 같은데.’
높이 치솟아 있는 매끈한 빌딩.
그 옆으로 한성증권 빌딩이 위치하고 있는데.
바로 그 옆, 지척에 있는 빌딩은 미래증권 본사 건물일 것이다.
나는 그 빌딩을 잠시 쳐다본 뒤.
뚜벅뚜벅.
그렇게 걸었고.
마침내 미래증권 본사 빌딩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어수선해졌다.
반팔 차림의 직장인들이 여기저기서 밀려 나왔고.
드디어 점심시간의 시작을 알리는 듯.
사방이 인산인해가 되었다.
역시나 점심 무렵, 증권가의 모습은 진풍경이다.
우르르 몰려나오는 직장인들.
그러나 그 시각, 바쁜 트레이더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패스트푸드 등으로 간단히 식사를 대신할 것이다.
정신없이 오가는 증시 현황.
트레이딩 관련 각종 모니터들, 해외증시 및 선물옵션 시황 관련 모니터들, 개별 주가 차트 등 실시간 그래프가 바뀌는 관련 모니터들을 번갈아가며 쳐다보다 보면, 감히 점심을 제대로 먹을 시간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한편, 순식간에 인파에 둘러싸였다가.
나는 그 인파에 뒤섞여 대충 앞으로 걸었고.
그리고 잠시 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식당가 쪽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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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은 뭘 먹지?’
마침 현재 시각을 확인해 보니, 약속 시각인 오후 1시간까진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어느 설렁탕 집으로 바로 들어갔다가.
너무 사람이 많아 바로 나왔고.
몇 번 그렇게 식당가를 두리번거리다가.
마침내 어느 분식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그냥 간단히 김밥에 라면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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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휴, 또 라면이다.’
물론, 언제 먹어도 나쁘지 않은 조합.
라면과 김밥의 조합.
그땐 화학 공장을 다니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으느라.
평상시엔 늘 이렇게 밥을 먹었는데.
그나마 공장에선 점심과 저녁을 무상으로 줬고.
그 덕분에 정말 악착같이 저축할 수 있었다.
월세가 싼 고시원에서 살다 보니 더 비용을 아낄 수 있었고.
최초의 투자금도 그렇게 마련된 것이다.
‘근데···.’
어느덧 나는 2천억 원대 부자가 되지 않았나.
수백만 원짜리 한 끼를 아무렇지도 않게 먹을 수도 있고.
돈을 펑펑 쓴다고 해도.
아마 내 평생에 2,574억 원을 다 쓰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은 별다른 느낌이 없다.
한때 1조 원에 이르렀던 내 자산.
그런 자산과 비교한다면, 지금의 자산은 그저 적당히 만족할 정도.
정확하게 말한다면, 아직 부족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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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후우.
잠시 후, 나는 막 나온 뜨거운 라면을 후후 불어가면서 먹었다.
라면의 MSG 감칠맛은 확실히 입맛을 자극하는데.
거기다가 김밥 하나를 입에 넣자, 저절로 미소가 생겨났다.
수백만 원짜리 음식처럼 이 맛이 아주 대단한 맛이기 때문이 아니라.
여의도 이곳에서 이렇게 먹다 보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게 참 요물딱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입은 점점 더 비싼 음식을 찾게 될 테지만.
다시 누릴 수 없는 이 충만감은 내 마음의 배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래! 대략 반년이 걸렸다.’
황제 개미가 다시 여의도에 입성할 자금을 모으기까지···.
‘그래! 대략 반년이 걸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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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아, 김청준 팀장님?”
어느덧 오후 1시.
거의 약속 시각에 딱 맞춰, 미래증권 빌딩 1층으로 들어섰고.
약속 장소인 안내 데스크로 다가서자, 바로 몇몇 남녀가 반응했다.
40대 초반, 30대 중반의 나이로 보이는 남자들.
그리고 짧은 오피스 치마에 얇은 반팔 블라우스를 입은, 어느 아리따운 여직원.
그들 모두 미래증권 직원임을 알리는 명찰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고객님! 제가 바로 김청준 팀장입니다! 이쪽은 저희 팀 김성민 차장이고, 여긴 박현주 사원입니다.”
“반갑습니다. 고객님. 김성민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박현주입니다.”
세 사람이 무척 공손하게 인사하자, 나는 좀 얼떨떨해졌는데.
일대일 미팅인 줄 알았는데.
직원 세 사람이 나오자 좀 당혹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무척 바쁜 증권사 팀장까지 직접 나왔다.
그것 역시 다소 이례적인 일이었다.
“네. 저는 김한수라고 합니다.”
가볍게 악수한 뒤.
잠시 후 그들은 각자의 명함을 건넸다.
그러나 나는 아직 따로 명함이 준비된 게 없다.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명함이 없어서.”
“아뇨. 괜찮습니다. 자! 이쪽으로 가시죠! 제가 방문객 명찰도 이미 준비해뒀습니다. 여깄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따로 신분증을 제출할 필요도 없었고.
김청준 팀장이 건네는 명찰 목걸이를 목에 건 뒤.
나는 곧바로 게이트를 통과했고.
엘리베이터 앞에서는 어느 직원의 도움을 받아 바로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그럼, 바로 16층으로 가시죠. 그쪽에 저희 부서가 있고, 귀빈 회의실도 거기에 있습니다.”
귀빈 회의실?
나도 모르게 묘한 느낌이 들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점입가경으로 뭔가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데.
단순히 등급 상향을 위한 면담이 아니라.
뭔가 분위기가 다른 것 같았다.
거기다가 고개를 들어 엘리베이터 위쪽을 쳐다보니, ‘임원 전용’이라는 글자가 정확하게 박혀 있었다.
그렇다면 이 엘리베이터는 임원 전용 엘리베이터?
‘아! 그렇지!’
그러니까 아까 1층에서 다른 직원들은 이쪽 엘리베이터를 탈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고.
힐끔힐끔 날 쳐다본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까.
거기다가 팀장을 포함한 세 명의 직원이 날 위해 마중 나왔다.
순간.
모락모락.
의심이 커졌고.
그 때문에 김청준 팀장의 뒤통수를 째려보던 중.
갑자기 뇌에서 작은 스파크가 일어나듯.
갑자기 현재 상황을 깨닫게 되었다.
‘하! 이거 참나!’
이 사람들은 내 수익률을 정확하게 알고 있나 보다.
하긴, 내 투자는 모두 미래증권을 경유하고 있으니까.
더군다나 이 시기는 증권사와 선물사 간의 일대 혈투가 벌어지는 그런 시기가 아닌가.
점유율을 지키려는 쪽과 빼앗으려는 쪽의 치열한 혈투가 벌어지는 시기.
그런 시기에 내가 툭! 튀어나왔으니.
자연 눈길을 끌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쪽입니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무척 공손하게 귀빈 회의실로 안내했고.
귀빈 회의실 내, 지정된 자리에 착석하자.
이것저것 물건들을 나한테 가져왔다.
음료수와 간식거리도 있었고.
임원 비서실 여직원은 각종 쇼핑 백들을 가져와 내 앞에 내려놨다.
“고객님! 이건 화장품 세트이고, 이건 명품차 세트입니다. 이건 피곤하실 때 드시면 좋은 공진단 선물 세트입니다.”
그렇듯 각종 진짜 선물(?)들에 둘러싸이게 됐는데.
그 와중에 나는 계속 이 상황을 최대한 유리하게 만들고자 궁리했다.
어쨌든 내 주 종목은 선물옵션이다.
지금 이 시기의 내 가치.
그게 상당히 높다는 것을 나는 더 강하게 인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잠시 뒤.
일단의 직원들이 귀빈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는데.
이때, 나는 흠칫하며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장 앞장서서 들어오는 사람.
그 사람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다.
물론, 미래의 내가 알게 될 사람.
바로 미래증권 선물사업본부 최수경 전무.
훗날, 미래증권 대표이사가 되는, 바로 최수경 사장의 모습이 내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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