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저택 구매, 그리고 와인
<23>
“···네! 매물에 나온 대로 계약하죠.”
한남동 저택.
내가 과거에 살았던 그 저택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
그곳에 위치한 집을 최종적으로 선택했다.
이 집은 주변 시세로 치면.
대략 105억 원 정도.
급매로 나온 물건이라 대략 90억 원 정도에서 거래가 성사되었다.
새하얀 외벽.
그 벽 너머로 잘 가꿔진 녹색의 나무들이 저택을 둘러싸고 있고.
일층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서게 되면, 바로 화사한 정원이 나타난다.
대리석 기둥이 저택 건물 모퉁이마다 세워져 있고.
하얀 느낌과 노오란 느낌이 어우러져 있는 이 저택은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집 전체 분위기는 모던하면서도 각 공간이 아주 넓게 잡혀 있다.
공간 구조도 아주 특색이 있다.
특히, 응접실에서 외부 문을 열고 나가면, 작은 정원이 나타나는데.
완전히 독립된 그 작은 정원은 너무나도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 나도 모르게 탄성이 튀어나올 정도다.
그곳, 작은 연못에서는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노닐고 있고.
주변에 자리잡은 각종 수석들.
꽃과 나무들의 배치 역시 아주 훌륭했다.
작은 ‘나무 벤치’도 있다.
“사장님,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주시겠어요?”
“네. 여기서 기다릴게요.”
좀 전, 내가 구매 의사를 즉시 말하자, 공인중개사는 바로 휴대폰으로 집주인한테 연락을 취했다.
한쪽에 서서 휴대폰 대화를 하던 그는 이내 통화를 마친 뒤, 아주 환하게 웃으며 다시 다가왔다.
“여기 정원은 참 별세상 같죠? 하하! 겨울철에 눈이 오면 아주 환상적이라고 집주인께서 말씀하시네요.”
이쁘긴 이쁘다.
공간 자체가 내 마음에 쏙 든다.
“집주인은 30분 내로 사무실로 오겠답니다. 우리도 바로 사무실로 들어가죠.”
그래서 저택 밖으로 나왔고.
잠시 뒤, 공인중개사의 차를 타고서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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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계약금은 준비되셨습니까?”
자리에 앉자마자 슬쩍 묻는 중년의 공인중개사.
“매매금의 10% 정도, 그 정도면 충분하죠?”
“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는 웃으며 다시 말했다.
“아시다시피 이 매물은 급매라서 언제든 입주가 가능한 물건입니다. 혹시 이사 시기는 언제쯤 하실 생각이신지?”
벼락치기처럼, 저택을 보자마자 바로 매수를 결정한 나.
회귀 전엔 살았던 곳이라 이미 그 주변 동네를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렇게 결정한 것인데.
공인중개사는 뒤늦게 이것저것 묻고 있었다.
“···저야 뭐, 최대한 빨리 된다면 더 좋죠.”
“근데 바로 입주하실 거라면, 간단히 청소 작업만 하고 들어가실 건지, 그게 아니면 인테리어를 하고 들어가실 건지 그것도 결정해야 될 텐데요.”
아, 인테리어?
순간, 나는 잠시 생각했다가.
그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 이사하는 거.
새로운 곳에서 살게 되는 건데.
집 자체를 좀 더 깨끗하게 정리하고 들어가는 것도 절대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 제가 이쪽에서 아주 잘 하는 인테리어 전문업체를 소개해줄 수 있는데, 그건 어떻습니까?”
“괜찮은 곳인가요?”
“유진 인테리어!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잠시만요.”
떠오를 듯 말 듯.
회귀 전 기억 속에 있는 어느 인테리어 업체.
그 업체와 ‘유진 인테리어’라는 이름이 몇 번이고 교차되다가.
어느 순간 짧게 탄성을 질렀다.
“아, 유진? 박유진씨가 사장으로 있는?”
그 순간, 깜짝 놀라는 공인중개사.
“오오, 아시네요? 어떻게 아세요? 혹시 인테리어 계약을 맺으신 적이 있으세요?”
그러면서 그는 날 빤히 쳐다봤다.
순간, 나는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회귀 전의 일이었고.
좀 더 훗날에 인연을 맺게 되는 유진 인테리어 사장, 박유진.
그러고 보니, 박유진 사장이 지금은 한층 젊을 때다.
몇 살이나 됐을까.
서른 살 남짓?
아마 지금은 인테리어 사무실을 오픈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인 것 같은데.
그런데 눈앞의 이 공인중개사는 어떻게 박유진 사장을 추천하게 됐을까.
그래서 내가 더 호기심이 커지는 그런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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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는 아까 오면서 도롯가에서 사무실 간판을 본 것 같은데···.”
“그래요? 저는 박유진 사장이 제 조카 같아서 추천해드린 건데···. 근데, 사장 이름까진 어떻게 아시고?”
유진 인테리어라고 해서, 사장 이름이 ‘박유진’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공인중개사는 그걸 묻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나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변명했다.
“오기 전에, 인테리어 사무실 같은 것도 좀 확인해 보고 왔거든요.”
“아! 그렇군요! 그럼 차라리 잘됐네. 기억하시는 걸 보면, 마음에 드셨나 본데···?”
“뭐, 나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 요즘 그 인테리어 사무실에서 요 근방 인테리어를 도맡아 하고 있거든요. 나중에 직접 보시면 아시겠지만, 사장이 아주 싹싹하고 머리도 아주 좋습니다. 주변 사장님들, 사모님들한테서 칭찬도 자자하고.”
이때, 내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더 신나게 떠들어댔다.
“···시공 시간도 아주 짧은 편이고, 자재도 최고급으로만 쓰다 보니, 고객 만족도가 꽤 높죠. 잘 하니까 뭐 소문이 잘 나는 겁니다. 어때요? 한번 만나 보시겠어요?”
순간, 나는 피식 웃었다.
간간이 와인 한 잔 같이 마시는, 그런 사이까지 진전됐던 박유진 사장.
회귀 전에는 결혼하지 않고 내내 독신이었던 나는 너무 바빠 그 정도 선에서만 이성 관계를 유지했는데.
박유진 사장은 그런 애매한(?) 이성 친구들 중의 한 명이었다. 물론, 그녀는 연상이었다.
“네! 좋습니다.”
잠시 후,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공인중개사의 입가엔 이내 미소가 피어올랐다.
아마도 이런 계약 연계를 통해, 그는 적당한 커미션을 챙기는 것 같았다.
여하튼, 인테리어 부분까지 결정한 뒤, 나는 조금 더 기다렸고.
어느덧 집주인이 나타나자, 그때부터 부동산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금은 즉시 인터넷 은행을 통해 이체됐고.
나머지 잔금은 다음 주에 모두 치르기로 결정했다.
모든 게 속전속결.
그렇듯 바로바로 일이 끝날 무렵.
유진 인테리어 사장 박유진, 그녀가 마침내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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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여의도로 가죠.”
잠시 뒤, 인테리어 상담을 마친 뒤, 나는 바로 그곳에서 나왔고.
곧바로 택시를 타고서 여의도로 향했다.
물론, 인테리어 계약 건도 특별한 문제 없이 끝났다.
새카만 눈동자에 총기가 가득한 그녀.
갈색의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약간 작업복 차림으로 나타난 그녀는 무척 진지했고, 아주 싹싹했다.
회귀 전 기억이 있는 나는 혹시라도 실수할까 봐 아주 조심했고.
최대한 무뚝뚝하게 대했는데.
박유진 사장은 내내 웃은 모습을 잃지 않았다.
저게 바로 박유진 사장 나름의 친절한 고객 응대 방식인데.
실력도 아주 뛰어나다 보니, 갈수록 사무실은 번창하게 되고.
나중에 그녀의 사무실은 중대형급 인테리어 회사로 거듭나게 된다.
그래, 아직은 아니다.
사무적 관계.
고객과 사장.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큰 관심을 두지 않고.
나는 잠시 후 여의도에 도착했다.
사실, 집 계약 이후 강남 자동차 매장으로 갈까 하다가 방향을 틀었는데.
내 투자 사업을 위한 임대 사무실 공간을 찾아보고자, 이곳 여의도에 도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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