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명성을 얻다 03
<20>
덥다. 더워.
이곳 고시원은 중앙 냉방 시스템이 가동된다.
아직 한여름이 시작되지 않은 6월 초순.
그러나 이곳은 월세가 워낙 싸다 보니, 이 시기의 더위에는 냉방 자체가 가동되지 않는다.
각 방에선 선풍기를 틀고 있으나.
묵은 때와도 같은 그 후끈한 공기를 탈탈 털어낼 수가 없다.
아침부터 방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선풍기를 틀고 있으나 숨이 가빠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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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사 갈 때가 진짜 된 것 같다.
이곳에서 지난 겨울을 보냈고.
어느덧 여름 초입으로 접어들고 있는 시기가 되었다.
충분히 살 만큼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오늘 밤.
모든 투자를 정리하고 나면······.
순간,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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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갑자기 왜 태원이한테서 연락이 왔지?
휴대폰을 꺼내 나는 잠시 확인해 봤다.
이른 아침에 이렇게 일찍 전화할 이유가 없는데.
고시원 방이 너무 더워.
좀 전에 공용샤워실로 가서 아침 샤워를 하고 돌아왔는데.
돌아와 보니, 무음, 무진동 상태인 휴대폰에 부재중 통화가 떠 있다.
고등학교 친구 강태원이 전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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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슨 일이지?
술 마시자고 전화 준 건가?
아니지, 내가 수능 공부한다는 거 이제 알 텐데.
그럴 리는 없을 테고.
갑자기 무슨 일이지?
나는 얼른 옷을 갈아입었고.
수능 책들이 가득 든 백팩을 등에 메고서 얼른 밖으로 나왔다.
여기선 통화를 하는 건 무척 힘들다.
방음이 되지 않은 공간.
그래서 곧바로 고시원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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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무슨 일이야? 아침부터?”
잠시 뒤, 고시원 밖, 골목길을 걸으며 통화가 시작되었고.
이때, 특유의 거친 목소리가 바로 들려왔다.
“야, 시발, 강석이 그 개새끼 말이야!”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욕설부터 하는 태원.
“···시발 새끼가 지 분수를 알아야지, 왜 거길 나가? 시발!”
“도대체 왜? 왜 또 화가 났어?”
“젓 같아서 내가 미치겠다고! 시발!”
도대체 무슨 일일까.
아침부터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태원.
“도대체 무슨 일인데?”
다시 묻자, 그제야 사정 이야기를 꺼냈다.
“강석이 지금 병원에 있어.”
“병원? 무슨 일로?”
“시발! 그 새끼, 칼빵 맞았어! 그 개새끼가!”
“칼빵?”
“시발! 존나 병신 새끼! 지가 뭔데 거길 들어가? 아으, 시팔! 지금 응급 수술 중이다. 개새끼, 존나 위험한 거 같던데···.”
“야! 무슨 일인데? 쫌 자세히 말해!”
“아으-씨! 존나 병신 새끼! 그 새끼, 장 사장 식구로 들어갔다가, 신 동호동파 행동대장 쑤시러 들어갔다가 오히려 칼빵 맞았다잖아! 시발! 졸라 멍청한 새끼!”
장 사장?
식구?
신 동호동파 행동대장?
칼빵?
갑자기 어찔어찔했다.
조폭 이야기인가?
유강석, 그 자식이 설마?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번에 강석이와 만났을 때.
녀석은 자신이 곧 스카웃 된다는 말을 했다.
그 스카웃이란 게 바로···.
당시 내가 의심했던 대로 무척 위험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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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이! 이 미친 새끼!
순간, 나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도대체 나이가 몇 갠데.
아직도 주먹질이란 말인가.
내 숨결은 점점 더 거칠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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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금 어떻게 된 건데?”
목소리가 자연 커졌고.
회귀 이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지난날의 스트레스마저 갑자기 폭발하며 내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야!! 강태원! 그 시발 새끼 살아 있어?”
“시발! 나 지금 병원 가는 중이야. 가보면 알겠지.”
“그럼, 연락은 누가 줬는데?”
“누나가 울면서, 시발···.”
“하! 시발, 젓 같네.”
고등학교 이후, 되도록 욕설하는 걸 피했던 나.
그러나 이번에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거칠게 보냈던 공고 시절.
그 시절이 재현되면서 내 입에서도 심한 욕설들이 튀어나왔고.
그 정도로 감정은 격앙되었다.
왜냐하면, 칼빵이 뭔지는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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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새벽 3시, 유강석은 응급실에 들어갔다고 한다.
현재 수술이 진행 중인 병원은 강남에 위치한 삼일대 병원.
그때부터 나는 좀 더 빨리 걸었고.
잠시 후, 잠깐 버스를 탔다가.
바로 전철로 갈아탔다.
택시를 탈 경우, 아침 출근 지옥 때문에 시간이 늦어질 것 같아.
그렇게 한 끝에 마침내 강남 삼일대 병원에 도착했다.
<21>
한편,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강태원을 만났다.
수술 대기실로 즉시 가자는 강태원을 만류한 뒤.
곧장 응급실로 들어갔고.
거기서 담당 의사를 잠깐 만나, 사정 이야기를 간략히 들을 수 있었다.
칼이 비장 동정맥 등에 심한 손상을 입혀 출혈이 심각했고.
간 쪽 손상도 심해, 조금만 늦게 병원에 왔다면 수술 전 사망 가능성이 컸다고 한다.
그 정도로 위험한 상태였고.
긴급 수혈과 몇 가지 검사 이후, 운 좋게 응급 수술실로 즉각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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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았네. 시발 새끼.”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고.
응급실에서 나오자마자 내가 욕설부터 하자, 이때 태원이 슬쩍 어깨동무를 했다.
“시발. 그래서 너 안 부르려고 했는데···. 저번에 강석이랑 따로 만났다며?”
“시발! 개새끼! 그 개새끼가 그러던?”
“아으씨! 졸라 인간미 넘치네. 그런 말투, 졸라 오랜만에 듣네.”
그 순간, 나는 흠칫하며 눈이 약간 커졌고.
곧바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칼빵’이라는 말에 내가 너무 흥분했고.
그래서 잠시 이성을 잃었던 것 같다.
아차!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입을 닫았다.
“이야아! 우리 한수! 진짜 옛날 모습 나오는데!”
“······.”
“옛날엔 니가 내 위에까지 올라갔어도 지금은 완전 다른 거 알지? 시발, 그래도 오랜만에 니 욕설 들으니까 졸라 좋다.”
그 말에 나는 다시금 정신을 차렸고.
속으로만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보면, 고등학교 때의 그 기억들은 아주 오래되었지만.
저 까마득한 밑바닥에서부터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데 있어.
강력한 힘이 되었고.
또한, 지독한 근성이 되었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잠시 뒤.
우리는 차가운 기운이 흐르는 듯한 그 수술 대기실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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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수술 안 끝났죠?”
강석의 누나.
무척 수심이 가득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고.
그 옆으로, 코흘리개 아이가 좁은 벤치에 누워 곤히 잠든 모습이다.
아이는 강석의 조카였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쳐다보며, 그 질문의 답을 기다렸는데.
누나는 긴 한숨을 내쉬더니 마침내 대답했다.
“수술이 좀 길어질 것 같대.”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이때 반대편 벤치 쪽을 슬쩍 쳐다봤다.
나는 고개를 돌렸고.
그 벤치에 앉아 있는 두 명의 남자들과 눈이 마주쳤다.
날카로운 눈빛들.
그러나 그쪽 세상 사람들의 눈빛과는 달랐다.
바로 알아차렸다.
형사들인가 보다.
나는 다시 누나를 응시했다.
“그럼, 수술이 언제쯤 끝날지 모르는 겁니까?”
이때,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누나.
그 얼굴만 봐도 지금의 상황을 대충 알 것만 같았고.
그 순간, 나는 가슴 속 답답함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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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나가자.]
잠시 후, 태원이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게 힘든 듯 잠시 밖으로 나가자고 했고.
나는 조용히 일어나 녀석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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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강석이 개새끼. 수술 끝나고도 힘들겠는데. 형사가 두 명이나 붙었잖아.”
“도대체 어떻게 된 건데? 혹시 자세히 알아?”
잠시 후, 병원 밖 흡연구역.
담배를 태우며 이것저것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내가 봤을 때, 저런 건 두 가지 이유야. 강석이가 노렸던 새끼가 떡이 됐거나. 아니면 냄새 맡고 강석이를 통해 장 사장을 잡으려고 하는 것 같은데.”
“장 사장?”
“강석이 그 새끼가 들어간 데. 그곳 오야붕.”
하얀 담배 연기를 힘껏 뿜어낸 뒤, 태원은 계속 말했다.
“시발, 병신 새끼! 채권추심질하면서 주먹 좀 썼다고, 젓만한 새끼가 어디 감히 그쪽으로 넘어가?”
점점 더 인상을 팍팍 쓰고 있는 태원.
쭉 찢어진 그의 눈매는 마구 일그러지고 있었다.
“에이, 씨팔! 암튼, 내가 한 번 더 자세히 알아볼게! 필요하면 내가 나서서 정리도 해 보고.”
“진짜 니가 할 수 있어?”
“몇 번 건너뛰면, 형사과장하고 연결될 수 있어. 우리 사장님 인맥이 엄청나거든. 어쨌든 내가 알아서 할게. 시발! 근데 진짜 문제는 경찰이 아니야! 장 사장 같은 개새끼들이거든.”
잠시 뒤.
탁! 탁!
담뱃대를 손가락으로 쳐서 하얀 재를 털어낸 뒤, 태원은 담뱃불을 껐다.
“야! 난 여기서 점심때까지 있을 거거든. 넌 어떡하래?”
“나도 여기서···.”
“야! 봤잖아! 지금 대책 없는 거! 기다리는 거밖에 없어! 여기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공부해야 된다며? 누나도 내가 케어할 테니까 어서 너는 가서 공부나 해.”
“야! 그게 말이 되나?”
“무슨 말이 안 돼? 새꺄! 그냥 가! 가라니까! 뭣 하러 두 사람이나 죽칠 필요가 있냐? 누나한텐 이야기해 둘 테니까, 일 생기면 바로 오면 되잖아! 정 불안하다면, 저녁에 와서 그 새끼 얼굴이나 보든지.”
학원에 가서 공부하라는 태원이의 재촉.
잠시 티격태격하다가.
그래도 다시 수술 대기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로부터 대략 두 시간 뒤.
수술은 마침내 무사히 끝났고.
환자는 이제 회복실로 들어간다는 간호사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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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점심 무렵.
병원에서 나온 나는 태원과 헤어졌다.
그러고는 곧장 학원으로 향했고.
그로부터 저녁이 되자, 잠깐 병원에 들렀다가.
다시 독서실로 향했다.
이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 어느덧 밤 10시가 될 무렵.
나는 고시원 내 방으로 돌아왔는데.
과거엔 몰랐던 이번 사태를 다시금 떠올린 뒤, 내내 쓴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가 잡념을 지운 뒤.
다시 모니터에 집중했다.
각 옵션 창을 띄웠고.
내가 투자 중인 거래 종목들의 직전 거래 호가들과 시세 추이 차트 등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자정이 지나갈 무렵.
탁! 탁! 타다다닥···.
빠르게 주문을 입력했고.
밀 선물 호가가 마침내 430달러 선을 돌파한 뒤 425.25달러까지 추락하자.
일제히 그 옵션 물량들을 털어냈다.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쉴 새 없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주문체결 알림들.
그렇게 포지션들이 청산되기 시작하자.
내 잔고의 현금 양이 무섭게 급증했다.
순식간에 잔고가 10만 달러를 넘어서더니.
233,590달러.
403,559달러.
998,230달러.
1,239,593달러.
3,593,189달러.
7,693,009달러.
9,190,102달러.
그렇듯 삽시간에 900만 달러에 육박하고 있었고.
이건 원화 가치로 치면, 대략 백억 원가량 되는 돈이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마침내 천만 달러를 돌파하고 있었고.
무섭게 치솟던 숫자는 11,912,530달러를 찍고서 멈춰섰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은 거칠게 뛰었다.
곡물 투자는 성공했고.
엄청난 수익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곧이어 이어지는 지수선물 풋 옵션 포지션 청산 작업들.
잠시 후, 미국 다우존스지수가 장중 9,950선까지 미끄러지는 순간.
드디어 지수선물 풋 옵션 물량들도 일제히 털어냈다.
그때부터 또다시 잔고 숫자가 미친 듯이 바뀌기 시작했다.
마치 더 많은 숫자를 찍어내려고 발악하듯이.
휙! 휙! 휙!
눈이 현란할 정도로 숫자는 빠르게 변해갔다.
거의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나는 미친 듯이 내 잔고 변화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사이, 시간은 어느새 새벽 5시를 향해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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