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명성을 얻다 02
<19>
새벽 2시.
다시 고시원 내 방에 앉았다.
거래 체결 내역을 다시 확인했고.
턱을 쓰다듬으며 현재 호가 변화에 주목했다.
10,816.56포인트.
소폭 하락했으나.
아직까진 특별한 변화가 없다.
현재 내가 주워 담은 것은 풋 포지션의 다우존스지수 옵션들이다.
기초자산은 다우존스지수.
6월 만기물을 타깃으로 했고.
이 옵션들은 계약단위에 10달러(승수)를 곱해주면, 옵션 가치를 계산할 수 있다.
E-Mini 다우존스지수 옵션은 5달러를 계약당 곱해주는데.
나는 중규모 형태의 옵션 종목들을 공략했고.
지수 포인트 10,500선 주변의 풋옵션들을 잔뜩 구매해뒀다.
그리고 잠시 뒤.
기다리던 ‘플래시 클래쉬’.
지수 대폭락의 시간이 그로부터 얼마 뒤 찾아들었다.
#
그 시작은 바로 E-mini S&P500 선물 매도에서부터 시작된다.
갑자기 우르르 쏟아지는 선물 매도.
그 순간, 당황하던 미국증시는 갑자기 경색되기 시작했고.
최근에 발표된, 그리스 국가부채 사태에 대한 위험성이 시장에 다시 파다하게 퍼지면서.
악재 도미노 현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시장은 갑자기 큰 공포 분위기에 빠져들었고.
미국과 한국이라는 물리적 거리가 있음에도.
고시원 작은 방에서 투자하는 내가 그 급변을 느낄 정도로 미국증시는 무척 위태로운 모습으로 변해갔다.
#
와아, 진짜 터지네!
과거엔 경험하지 못했던 헤비급 클래쉬!
주가지수 폭락 사태!
어이없는 촉발점으로 시작됐지만.
이 순간, 그 공포는 엄청났다.
미래를 몰랐다면 나 역시 서둘러 보유 물량을 팔아치웠을 그런 상황이었다.
지수가 뚝뚝 떨어진다.
이게 도대체 말이 되나.
10,540선으로 떨어졌던 다우존스지수가 어느새 10,250선으로 떨어지는데.
그게 단 몇 초가 걸렸을 뿐이다.
시장은 무섭게 공포심에 젖어 들었고.
선물 시장에서는 호가 거래가 거의 빛처럼 진행되며.
선물 호가는 쏜살같이 위아래를 오갔다.
직접 호가를 보면서 거래를 하는 것은 순간적으로 불가능해진 상황.
옵션 프리미엄 호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가지수 상승시 수익이 터지는, 행사가별 콜 옵션은 이때 그 가치가 무섭게 폭락하고 있었다.
일부 종목은 그 호가가 어느새 0.10달러 선으로 주저앉고 있었다.
그러나 반대 개념인 풋 옵션은 지금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주가지수 급락으로 인해 풋 옵션의 가치는 급등했고.
풋 옵션 보유자들이 수익 실현을 위해 청산을 시도하며 매물을 내놓자, 그 매물이 시장에 쌓이면서 풋 옵션 가치는 일시적으로 크게 하락하기도 했다.
이게 바로 선물옵션의 특이성이란 말이야.
사실, 주식거래에선 주가의 급등 혹은 급락은 실질적인 수익 혹은 손해로 이어지지만.
파생상품 시장에서의 이런 급등과 급락은 더 많은 변화를 야기한다.
이를테면, 잠시 후 그런 변화들이 호가창에서도 나타났다.
다우존스지수가 마침내 10,000선의 하방 지지선을 깨는 순간, 그때 호가의 역전 현상이 갑자기 발생하고 있었다.
#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지금 팔아봤자 제값을 못 받아.
이번 크래시 플래쉬를 촉발한 것으로 나중에 밝혀질 선물 트레이더.
그 역시 이번 사태로 엄청난 수익까진 얻지 못했다고 한다.
대략 10억 원가량의 시세 차익이 고작.
왜냐하면, 이런 급등과 급락의 장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시장 회복력이다.
선물 호가와 옵션 호가는 미래를 보는 관점이 있는데.
이런 상품은 만기일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고.
그 만기일 내에 온갖 변화가 있더라도 최종점은 결국 결정된다. 항상 만기일 기준으로써 말이다.
그 때문에 지수폭락의 수혜는 초단기로 끝나고 말았다.
사실, 보통 사람들은 풋 옵션의 가치가 지수 최하단점에서 최대가 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러나 이 최하단점은 풋 옵션 가치 폭락의 시작점이 된다.
더군다나 급등과 급락시 옵션 가치는 현재 실물 자산(주가지수)의 흐름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순간순간 바뀌는 미래 가치에 더 의존하게 되고.
강력한 자금을 가진 글로벌 헷지 세력의 의도에 따라 더 크게 급변할 수도 있다.
#
와! 진짜 엄청나구나!
한편, 심리적 거대 저항선, 다우존스 지수 10,000선이 드디어 깨지게 되었는데.
이때, 급락의 변화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풋 옵션 가치가 갑자기 폭락하기 시작했고.
반면, 콜 옵션의 가치가 폭발하듯 상승하기 시작했다.
또한, 엄청난 자금이 밀려들며.
지수선물의 하방 매도 압박을 저지하기 시작했다.
마치 초월적 장벽이 순간적으로 세워진 듯.
추락은 저지되었고.
결국, 다우존스지수는 최하단 9,980.5포인트를 기점으로 이제 무섭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상승세가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바로 이때가 최고의 기회였다.
풋 옵션 가치의 급락.
콜 옵션 가치의 상승.
빛처럼 오가는 거래들.
프로그램 매매로 진행되는 수많은 파생 거래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엄청난 거래량이 터지고 있었다.
사실, 선물 시장과 옵션 시장은 제로섬 게임의 시장이다.
누군가 매물을 내놔야 누군가 매수할 수 있다.
즉, 무한정 매물이 쏟아지는 게 아니다.
누군가 선물옵션 시장에서 단 한 번의 투자로 수천 조의 돈을 벌었다?
그건 말도 안 되는 개소리다.
공급이 있어야 수요가 있고.
누군가 돈을 벌게 되면, 누군가는 돈을 잃게 되는 구조.
그게 바로 파생상품 시장인 것이다.
#
우와! 어쨌든 진짜 터졌다!
지금 쓸어 담을 때다!
미친 듯이!
사실, 투자에서 돈을 벌려고 할 때는 언제나 대다수의 생각과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놀란 투자자들이 풋 옵션을 털어내며 청산하려고 할 때.
바닥에 떨어진 100달러짜리 지폐를 빗자루로 쓸어 담는 기분으로.
그 풋 옵션들을 미친 듯이 쓸어 담았다.
어느새 지수가 10,300선을 회복한 뒤, 지수는 더 높게 치솟고 있었고.
초단기 급등에 놀란 풋 옵션 보유자들은 조금이라도 이익을 남기기 위해 각자의 포지션 청산을 시도하느라 호가창은 지금 엉망진창이 된 상태였다.
그 와중에 점점 더 종이 쪼가리가 되는 풋 옵션 물량들은 쉴 새 없이 시장에 나왔고.
줍자! 줍자!
미친 듯이 줍자!
나는 쉴 새 없이 매수 주문을 넣었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그렇게 주문을 계속 넣다 보니, 어느새 자금은 부족해졌다.
지금 당장 레버리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아쉽지만 물러섰다.
역시 옵션 투자에선 레버리지를 쓰는 게 무척 부담스럽다.
옵션 호가 변동폭은 너무 극단적.
순식간에 증거금률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바로 강제 청산을 당할 수도 있는데.
이런 투자에서 그런 리스크를 짊어질 필요는 없다.
결국, 전체 규모 140만 달러에 달하는 투자를 모두 마쳤고.
그제야 나는 조금 물러서,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다우존스지수 변화를 가만히 지켜봤다.
#
10,650선?
와! 원점 회복 기세가 그렇게 무섭더니.
결국, 다우존스지수는 10,650선을 찍고 있다.
이때, 호가창에도 변화가 생겼다.
뒤늦게 투자자들이 풋 옵션 물량을 사려고 뛰어들고 있으나.
물량이 거의 씨가 말라 버린 상태.
물론, 풋 옵션 호가는 아주 저렴한 상태다.
그러나 물량 자체가 거의 없다.
결국, 그런 시장 상황은 다시 급변을 만들어냈다.
다우존스지수가 다시 추락하기 시작했고.
결국, 10,520선에서 종가로 찍은 뒤 장은 마감되었다.
그런데 그게 바로 시작이었다.
플래시 클래쉬 이후 무척 불안정해진 미국증시.
미국증시는 그때부터 하락으로 이어졌고.
그로부터 한 달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동안, 다우존스 지수는 다시 10,000선이 깨지더니 더 밑으로 밀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또한, 올 초에 진행했던 밀 선물의 호가도 급락세가 심상찮다.
어느덧 430달러 선까지 근접한 밀 선물 호가.
그렇듯 끊임없는 폭락이 이어지는 가운데.
마침내 2010년 6월 초순이 되자.
나는 여섯 번째 투자와 일곱 번째 투자를 정리하게 되었다.
어느덧 거대한 산처럼 쌓여 버린 수익들.
그 수익들을 이제 내 품으로 끌어안을 그런 시간이 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