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물이 되어버린 투자자-22화 (22/138)

22화 명성을 얻다 01

<18>

2010년 5월 초.

미국 시각으로 오후 3시가 가까워질 무렵, 미국 다우 존스 산업평균지수, 일명 다우지수가 불과 몇 분 만에 900포인트가량 급락한다.

지수의 순간 폭락, '플래시 클래쉬'로 인해 증시는 이때 큰 충격에 빠져들게 된다.

장 초반 10,850선에 달했던 지수.

그 지수는 순간 998.50선으로 폭락했고.

폭락 직후 가파른 상승을 하면서 다시 세 개의 장중 고점을 찍게 된다.

이후 10,600선을 터치했다가 다시 하락하지만.

결국, 10,500선을 회복한 뒤, 초급등 초급락의 장은 그렇게 끝나게 된다.

이후, 미국 다우존스지수의 흐름은 한 달간 무척 불안해지는데.

가파른 하락과 가파른 상승에 대한 이유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훗날, 그 이유는 밝혀진다.

영국인 선물 트레이더.

주로 시세 조종을 하며 수익을 쌓던 그는 초단타 매매를 하되.

대규모 선물 매도 주문을 내면서 시세를 혼란시키는 방법으로 상당한 수익을 냈다고 한다.

이때, 사용된 기법은 레이어링 기법(layering).

대규모 매도 주문을 각각 다른 호가에 동시에 몰아넣고.

스푸핑(spoofing), 즉 시장 교란 행위를 통해 공포감을 조성하는 시세 조종 방식을 썼다.

실제, 주가 거래에서도 이런 레이어링 기법은 주가 하락의 촉진제다.

위쪽 호가대의 매물 벽이 무시무시하게 쌓이게 되면 자연스럽게 매도 우위로 전세가 굳어지고.

심리적으로 취약한 투자자들은 물량을 쏟아내게 된다.

특히, 주식보다 변동성이 크고 더 위험한 선물 시장에선 그 효과가 엄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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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외인들이 공매도 때릴 때도 그 레이어링을 쓴단 말이야.

공매도도 전략이다.

가격을 낮춰서 수익을 내려는 전략.

그래서 대다수 외인들은 그런 시세 조종 방법 등을 주가를 후려치는 데 종종 쓰기도 하고.

결과적으로 엄청난 공매도 수익을 누리게 된다.

물론, 국가에선 ‘시세 조정’이라는 좋은 말로 그런 공매도를 포장하고 있으나.

공매도가 ‘시세 조종’의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더 엄격하게 그런 불법들을 제지해야 할 것이다.

#

그럼 내 포지션은?

점점 더 깊어지는 밤.

이 날, 반 팔 차림의 나는 세 대의 모니터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며.

문제의 그 플래시 클래쉬가 터지길 기다렸다.

물론, 아직 시간은 많다.

현재 지수 흐름은 아주 완만한 하락세.

10,823.35포인트.

10,822.67포인트.

10,823.05포인트.

10,822.48포인트.

10,822.74포인트.

그런데 이런 지수 흐름이 갑자기 주저앉으며, 지수 10,000선이 깨질 줄은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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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런 게 참 기가 막힌단 말이야.

하루하루가 변수 투성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꼬라박으면, 아무리 뛰어난 선물 투자자들도 지옥을 맛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진득하게 기다리면 다시 원점을 회복할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러나 선물 투자는 확실히 다르다.

옵션 투자는 더더욱 다를 수밖에 없다.

일례로 선물 투자의 경우, 마이너스 3%대 폭락해도 실제 느껴지게 되는 체감 온도는 마이너스 60%대다.

레버리지 20배가 들어갈 경우, 폭락의 체감은 대략 20배 상승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폭락의 발생은 선물옵션 시장에선 그저 원폭이 터진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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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팔짱을 끼고서 생각을 정리한 뒤.

나는 재빨리 옵션 주문을 넣었다.

일반 지점에서 지수 급락을 생각한다면, 풋 옵션이 유효하고.

최하단, 급락 지점에서 다시 지수 상승을 생각한다면, 콜 옵션이 유효하다.

선택지는 둘 중의 하나.

물론, 전부를 다 공략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시세 흐름을 정확하게 알지 않고선 불가능한 전략이라.

괜히 시세 조종 세력으로 몰리고 싶지 않은 나는 딱 한 가지 선택지를 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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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각, 새벽 1시 25분.

고시원에서 나온 나는 츄리닝 차림으로 곧장 근처 편의점으로 들어섰다.

아직 지수 원폭(?)이 터지기까진 시간이 남아있었고.

그래서 편의점에서 이것저것 계산한 뒤, 한쪽 창가 자리에 앉았다.

이때, 문득 내 옆자리를 쳐다보니, 누군가 컵라면을 먹은 뒤 이것저것 국물을 흘린 자국이 가득했다.

휴지가 있으면 바로 닦을 텐데.

이런 곳에선 따로 비치된 휴지가 없다.

그래서 여행용 티슈를 하나 살까 망설였으나.

의미 없는 일 같아서 그냥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한 무리의 여자들이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고.

잠시 뒤, 띡! 띡! 소리가 나더니.

계산대에서 계산을 마친 듯.

이쪽 창가 라인 쪽으로 다가왔다.

“은혜야, 저기 앉자.”

“야, 좀 더럽잖아. 옆으로 좀 땡겨.”

이때, 어수선함에 고개를 들어 옆을 쳐다봤는데.

여자들은 내 우측 옆으로 자리를 잡은 뒤 앉고 있었다.

다만, 옆자리가 지저분해서.

좀 더 떨어져 앉고 있었고.

그 모습을 슬쩍 쳐다보던 중, 순간적으로 어느 여자와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어? 생각보다 이쁜데?

순간,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뒤늦게 여자들 쪽에서 알콜 냄새가 풍겨 왔다.

그러고 보니, 다들 직장에 다니고 있나 보다.

튀지 않고 소박하지만 깔끔한 오피스룩을 하고 있었고.

술자리를 같이했던 모양인지 각자 취기가 얼핏 드러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그 여자한테서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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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저기 혹시?”

이때, 분명히 나한테 말을 거는 것 같았는데.

계속 쳐다보면 무안해질까 봐.

잠시 내 컵라면 쪽을 가만히 쳐다보던 중.

나는 의아해하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순간, 다시 시선이 부딪혔다.

크고 새카만 눈동자.

그 눈동자로 그 여자는 날 빤히 쳐다보고 있었고.

그러다가 입이 약간 벌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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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죠?”

“······.”

“혹시 저 모르겠어요?”

다시 묻는 여자.

이때, 나는 그 여자를 빤히 쳐다봤는데.

검정 정장 치마에 하얀 블라우스, 그리고 검정 가디언을 걸친 여자.

그 여자는 현재 안경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 저 안경 때문에 내가 바로 알아보지 못했나 보다.

앗!

순간, 나는 깜짝 놀랐고.

눈이 저절로 커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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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시겠어요?”

“······.”

“맞죠? 김창식 반장님 밑에서 계시던···.”

“···네.”

“근데 죄송한데, 혹시 성함이···?”

“···김한수입니다.”

“아! 맞아요. 한수씨!”

나는 쓴 미소를 지으며, 눈앞의 여자 박소희를 다시 쳐다봤다.

공장 경리과 직원 박소희.

취기 때문에 두 볼이 약간 불그스름하게 변한 그녀.

도대체 무슨 인연이 있기에 이 여자를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되는 걸까.

작년 크리스마스이브 때, 공장 사람들과 함께 삼겹살집에서 술을 마셨고.

그때 김창식 반장님 때문에 합석하게 됐던 저 경리과 박소희.

그런데 그녀는 훗날의 횡령범이자 내가 다녔던 회사를 도산시킨 원흉이 아닌가.

그러나 지금은 무척 활발하게 웃으며 대화를 걸고 있었다.

“이 근방에 사세요?”

“···아, 네.”

“어머, 이웃사촌이었네!”

“네?”

“저는 요 앞 태성빌라에 사는데. 한수씬 어디 사세요?”

태성빌라?

고시원에서 5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빌라.

그 주변엔 중소형 빌라들이 많았다.

그래도 고시원보다도 훨씬 더 나은 곳.

그러고 보면, 여기서 공장까지 버스 몇 정류장밖에 되지 않는다.

이쪽 동네가 무척 월세가 싸다 보니.

공장에 다니는 집 없는 미혼자들이 이쪽 동네에서 살다가.

돈을 모은 뒤,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고 해서.

나 역시 최초 그런 이야길 듣고서 이곳 고시원에서 살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여자도 그런 부류일까.

그래서 호기심이 생겼으나.

그런 호기심보다는 이내 나는 냉정함을 되찾았다.

처음의 당혹스러웠던 기분도 그렇게 사라졌고.

내 얼굴은 다소 차갑게 변했는데.

내 대답도 다소 쌀쌀맞게 변했다.

“요 앞, 고시원에 삽니다.”

“어머, 저기 고시원요?”

시설도 형편없고.

월세가 아주 싼 곳.

공용화장실, 공용세면장, 공용샤워실 등.

모든 게 열악한 곳.

즉, 내 답변은 내가 그런 곳에 살고 있으니 그냥 신경을 끄라는 직설적인 신호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 여자는 아주 이상한 여자다.

아주 활기차게 다시 말했다.

“저는 저번 달에 여기로 이사 왔는데, 앞으로 종종 보게 되겠어요!”

그러고는 또 말했다.

“근데 한수씨! 월급 정산분과 퇴직금은 잘 받으셨죠? 제가 바빠서 연락을 미처 못 드렸는데.”

이미 꽤 지난 일이다.

김창식 반장님 덕분에 그 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계좌에 입금됐다.

“음, 잘 받았습니다.”

“아, 다행이다.”

“······.”

“아, 죄송해요. 라면 드세요.”

내가 컵라면 뚜껑을 뜯어낸 뒤 잠시 미적거리자, 박소희는 그제야 물러섰다.

그러고는 소리 죽여 다른 여자들과 뭔가 수군거리는데.

혹시나 내 이야기를 하나 싶어.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웠다가.

이내 인상을 팍 쓰며 컵라면 먹는 일에만 나는 집중했다.

하! 나도 참 문제야.

보기 싫은 사람은 왜 그렇게 보기가 싫지?

아마 그때(회귀 전) 공장이 문을 닫았을 때, 내 충격도 상당히 컸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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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라면을 먹은 뒤, 나는 일어섰다.

이때, 박소희가 날 쳐다봤으나 굳은 표정으로 살짝 고개를 까닥인 뒤, 나는 바로 편의점에서 나왔다.

그러고는 문득 다른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조만간 이곳을 벗어나야겠다.

곡물 옵션 투자가 다음 달이면 끝날 텐데.

오늘 다우존스지수 옵션 투자까지 마무리되면, 투자금과 수익 정리를 깔끔하게 마칠 수 있을 것이다.

그 절반을 현금화해서.

수능 이후, 올 연말부터 시작될 본격적인 투자 행위를 위해 투자사를 세울 생각이고.

회귀 전, 내가 지난 10년간 살았던 저택, 바로 그 옆집으로 이사할 생각이다.

그런데 내가 살았던 그 집이 아니라 옆집으로 이사하고자 하는 것은 거기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지금 그 집엔 어느 외국인 가족이 살고 있을 텐데.

바로 한국지사 발령 때문에 한국으로 온 제임스 케럴든 싱가포르 골든 뱅크 이사(director)가 그곳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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