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물이 되어버린 투자자-20화 (20/138)

20화 눈 내리던 날

<16>

사실, 옵션은 현시점에 해당되는 호가가 있고.

미래 시점에서 매수 혹은 매도 기회를 실현할 ‘행사가’라는 게 있다.

그래서 ‘행사가’ 500달러짜리(밀 100부셸 기준) 풋옵션은 만기일이 도래했을 때.

밀 100부셸을 500달러에 팔 수 있는 권한을 말하는 것이다.

이 권한의 가격이 현재 옵션 호가가 되겠고.

행사가 500달러짜리 풋옵션의 현재 호가는 0.1달러 선이다.

실제 370계약을 매수하는 데 있어, 이 호가 0.1달러(100부셸 기준의 현재 호가)에 50을 곱해주면 되는데.

밀 100부셸 × 50 = 5,000부셸(1계약), 즉 1계약 조건을 맞추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때 매수 비용은 0.1달러(100부셸 기준의 현재 호가) × 50 × 370계약 = 1,850달러.

총 370계약의 옵션을 매수하는 데 있어, 1,850달러가 지출되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행사가 505달러짜리 풋옵션. 옵션 평균매수 호가 0.3달러, 362계약.

행사가 510달러짜리 풋옵션. 옵션 평균매수 호가 0.4달러, 430계약.

행사가 515달러짜리 풋옵션. 옵션 평균매수 호가 0.9달러, 326계약.

행사가 520달러짜리 풋옵션. 옵션 평균매수 호가 1.3달러, 475계약.

행사가 525달러짜리 풋옵션. 옵션 평균매수 호가 2.5달러, 352계약.

행사가 530달러짜리 풋옵션. 옵션 평균매수 호가 3.3달러, 310계약.

행사가 535달러짜리 풋옵션. 옵션 평균매수 호가 5.2달러, 230계약.

내 계좌에는 그렇듯 체결된 풋옵션 수량이 주르르 나열되었다.

여하튼, 그런 풋옵션 매수가 끝나자.

전체 풋옵션 매수 규모는 대략 21만 6천 달러에 달했다.

그나마 시세 변동성의 장이 열린 터라, 옵션 물량이 쏟아졌고.

상당한 물량을 확보할 수 있었으나.

문제는 더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었다.

수요과 공급에 따라 움직이는 시장의 제약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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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 이 정도면 됐어.

증거금 레버리지를 쓴 것도 아니기 때문에.

투자가 청산당할 우려도 없다.

실제, 옵션 호가는 갑자기 극단적으로 변할 수도 있는데.

몇 분 사이에 수백% 상승할 수도 있고.

갑자기 바닥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증거금률이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면 투자 유지가 어려워진다.

뭐, 지금은 강제 청산 염려가 없으니까.

그냥 원금 투자다.

그래서 좀 더 편안하게 5월, 6월까지 계속 지켜보면 된다.

그만큼 부담감이 없는 상태였다.

#

근데···.

그렇다면 몇 달 뒤.

대체 수익은 얼마나 나올까.

문득 궁금해졌다.

턱을 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볼펜을 손에 들고서 간단히 계산해 봤다.

내가 생각하는 선물 호가 목표는 430달러 선.

사실, 내가 매수한 풋옵션의 ‘행사가’는 주로 500달러 선에서부터 535달러 범위에 있다.

그렇다면 내가 왜 이런 옵션들을 매수했을까.

현시점에서의 선물 호가는 550달러 선.

그 때문에 내가 매수한 이 풋옵션들의 현재 가치는 그저 마이너스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시간이 쭉 흐른 뒤.

이를테면, 선물 호가가 430달러 선까지 추락하게 되면.

‘행사가’ 500달러짜리 풋옵션은 선물을 500달러에 팔 수 있는 권한이기 때문에.

이때는 비싸게 팔아서.

순수하게 500달러(행사가) – 430달러(미래 호가) = 70달러의 수익이 발생할 수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선 헐값(0.1달러)이었던 풋옵션.

이게 가치 변화가 크게 발생하는데.

0.1달러였던 풋옵션이 최대 70달러 선까지 가치가 상승하게 된다.

즉, 70달러 / 0.1 달러 = 700배.

그렇듯 엄청난 수익이 터질 수 있다.

미래를 바라보는 옵션.

그 옵션의 힘은 그저 무시무시하고.

미래를 정확하게 바라보는 투자자에게 엄청난 수익을 안겨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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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반대 경우도 있다.

투자가 성공하게 되면 엄청난 이익이 담보되지만.

투자가 실패할 경우, 원금은 그대로 제로에 수렴하게 된다.

물론, 투자 전략에 따라 원금을 넘어서는 엄청난 피해가 생길 수도 있다.

즉, 천문학적인 피해가 발생하고.

금융 기업은 도산할 수도 있고.

개인은 바로 파산할 수도 있다.

옵션은 총 4가지 매수 방법이 있는데.

콜옵션 매수.

콜옵션 매도.

풋옵션 매수.

풋옵션 매도.

이렇듯 총 4가지 방법이 있다.

현재, 내가 선택한 투자는 바로 풋옵션 매수.

그래서 내 포지션은 풋옵션 매수 포지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풋옵션들을 내가 매수할 수 있었던 것은 카운터 파트, 풋옵션 매도자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내 풋옵션 투자가 성공하게 된다면.

원금의 몇십 배, 몇백 배, 몇천 배 등의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는데.

그런 수익은 대체 어디에서 오겠는가.

바로 풋옵션 매도자한테서 오게 된다.

그래서 풋옵션 매도자들은 이때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다행히 옵션 시장에서 매도 포지션을 취하며 옵션 물량을 주로 공급하는 쪽은 대체로 IB은행 등의 글로벌 투자사와 대형, 중소형 투자사들인데.

개인투자자들은 매도 포지션이 되는 걸 최대한 피하는 게, 리스크 관점에서 나을 수 있다.

여하튼, 매수 포지션에서의 투자 성공은 천문학적인 수익이 보장되고.

투자 실패는 최대 원금 상실로 끝나게 된다.

그러나 매도 포지션에서의 투자 성공은 옵션 매매 차익에 해당되는 수익이 생기고.

투자 실패는 그저 천문학적인 피해로 이어지게 된다.

그 때문에 매수 포지션이 훨씬 더 매력적이지만.

모두가 매수포지션에 서려고 하면, 반대로 매도 포지션(공급자)은 품귀가 되어 옵션 물량이 돌지 못할 테고.

옵션 호가는 오히려 천정부지로 치솟게 될 것이다.

그러니 매수포지션이 꼭 정답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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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로부터 시간은 다시 빠르게 흘러가 어느덧 2월 중순이 되었는데.

밤새 펑펑 내렸던 하얀 눈이 새벽에 이르러 뜸해졌고.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하던 그 새벽.

정옥순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전화가 요양병원으로부터 갑자기 걸려왔다.

<17>

“···아! 어서 들어가세요!”

정옥순 할머니가 머무는 2106호실.

요양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부랴부랴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그로부터 잠시 뒤.

내가 가만히 지켜보는 가운데.

할머니는 천장을 가만히 주시하다, 두 눈을 그렇게 뜬 채로 운명하셨다.

옆에서 마지막 배웅을 했으나.

나는 친손자 김상길이 아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친손자를 보지 못했던 할머니.

할머니는 그저 안타까운 모습으로 그렇게 세상을 떠난 것이다.

잠시 후, 흰 천이 얼굴을 덮었고.

의사의 확인 과정을 거친 뒤 사망 판정이 내려졌다.

그렇게 그 일이 끝난 뒤.

한참 지나서 장례와 관련된 직원들도 나타났다.

“···장례 절차는 고인께서 미리 약정해둔 게 있어 그대로 진행될 겁니다.”

회귀 전에도 그랬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다를 게 없다.

“근데 상주 역할 하시는 거 괜찮으신가요? 간호사 선생님한테서 이야긴 들었습니다.”

“네! 제가 당연히 해야죠.”

회귀 전에도 내가 상주 역할을 했다.

내가 아들도 아니고 친손자도 아니다.

그러나 정옥순 할머니한텐 다른 친족들이 없어, 내가 당연히 마지막 길을 모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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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잠시 뒤.

요양병원 지하 장례식장.

이 장례식장은 건물 지하 2층에 있는데.

그사이 사체는 영안실로 들어갔고.

영정 사진 등이 빈소에 들어오며.

다소 침울한 장례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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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님! 고인께서 3일장을 계약하신 건 아시죠?”

“···네.”

“아, 아시는군요. 사실, 여기가 좀 비좁잖아요. 그래서 대체로 거의 하루 만에 다 끝나는데, 고인께선 무조건 3일장을 하시겠다고 하셔서···. 조문객이 거의 없을 것 같으면 그냥 짧게 하는 것도 괜찮다고 말씀드렸는데, 끝끝내 3일장을 하겠다고 하시더군요.”

“···네.”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대로 납골당 안치 비용까지 포함해서, 모든 장례 비용은 고인께서 다 정리하셨습니다. 그리고 식사 때마다 육개장 50인분이 나갈 텐데, 아마 부족하진 않을 겁니다···.”

과거에 들었던 그 설명들.

다시 내 귀에 들려왔다.

이후, 장례 절차 등에 대한 설명을 좀 더 들은 뒤.

나는 상주 복을 입고 빈소에 들어가 한쪽 자리를 지켰다.

그때부터 가만히 기다렸으나.

딱히 찾아올 조문객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식사 때마다 육개장 50인분이 제공된다고 하는데.

다소 이치에 맞지 않은 조합이다.

그러나 나는 이게 뭔지 잘 알고 있다.

요양병원의 의사, 간호사, 직원들을 위해 준비한 할머니의 정성.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조금 이따가 할머니가 날 위해 준비한 선물도 곧 도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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