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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물이 되어버린 투자자-19화 (19/138)

19화 초대형 투자

<15>

늦은 밤 10시.

학원과 도서관을 돌다가.

나는 드디어 고시원에 복귀했다.

우선, 피곤하다.

수능 공부하는 게 만만찮은 일인 데다가.

거기다가 투자를 병행해야 한다.

그래도 할 수 없지 뭐.

빠듯한 시간에 투자해야 하지만.

남들 못지않게 투자할 자신이 있다.

잠시 후, 나는 이것저것 차트와 정보들을 각 모니터에 띄웠다.

오늘 타깃으로 삼게 된 종목.

바로 곡물 종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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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이 해는 특히 세계 곡물 가격의 새로운 전환점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

전적으로 시장에 의존하는 원칙이 아니라.

각 정부의 곡물 정책들에 따라 세계 곡물 공급량이 바뀌게 되고.

결국, 곡물 가격 급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2010년 6월, 7월에 변곡점이 있기 전까지 곡물 가격은 여전히 하락 추세였다.

미 농무부(Ministry of Agriculture) 발표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중립종 쌀 가격은 2010년 4월 기준으로 봤을 때 전년 대비 40%가량 하락하게 되고.

캘리포니아 중립종 쌀 1톤당 가격은 728달러를 기록하게 된다.

태국산 장립종 쌀 역시 비슷한 패턴이다.

2010년 4월 기준, 전년 대비 9%가량 가격 감소와 함께 1톤당 521달러 가격 수준으로 하락한다.

이런 쌀 시장 외에도 옥수수, 대두, 대두박, 밀 등도 2010년 중반까지는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는데.

이런 곡물 가격이 2010년 6월, 7월을 기점으로 해서 크게 상승하게 되고.

그 여파는 향후 10여 년간 지속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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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종목은?

잠시 고민하다가.

최종적으로 하나의 선택지를 잡았다.

밀!

왜냐하면, 밀 가격 역시 그 변곡점을 기준으로 무섭게 급등하는데.

밀 선물의 시세 변화 추이가 좀 더 뚜렷하게 기억에 남아있었고.

그 때문에 밀을 최종 투자 종목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이런 밀의 갑작스러운 가격 급등 원인은 의외로 단순하다.

가뭄과 고온 등의 이상기온 현상.

그로 인해 밀 생산량이 줄어들고.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이 자국 시장 안정화를 위해 곡물에 대한 수출 쿼터제를 도입하게 되는데.

특히, 밀의 수요를 자국으로 한정하면서.

국외 밀 수출을 금지하고.

그래서 밀 가격 급등은 그렇게 시작된다.

2010년 10월, 우크라이나 역시 곡물 수출 쿼터제를 도입하게 된다.

세계 곡물은 연일 급등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그런데 이런 투자에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2010년 곡물 선물 차트에서, 시세 하락과 시세 상승의 하단 변곡점이 뚜렷이 존재하고 있고.

선물옵션 투자가들에게 있어서는 마치 꿈 같은 그래프가 그려지게 된다.

수많은 투기자금이 이곳으로 몰려들 수밖에 없고.

투기 시장에선 엄청난 수익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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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투자 기간은?

곧이어 턱을 쓰다듬으며 나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가.

몇 개의 숫자를 종이 위에 쓱쓱 적어 봤다.

그러다가 즉시 두 줄을 그어 숫자들을 지웠다.

그래, 좀 더 길게 하는 게 낫겠다.

곡물 자체의 가격 변동 폭이 단기 급등, 단기 급락의 추이가 아니라.

좀 더 긴 시간이 요구된다.

미래를 아는 이상, 다소 위험하긴 해도 좀 더 묵혀 두는 투자가 필요하다.

더군다나 최근엔 수능 공부에 초점을 맞추느라 투자 시간도 제한적이다.

그렇다면 투자 기간을 좀 더 길게 잡아 두고.

유지증거금을 최대한 크게 잡아 두면 될 것이다.

그래야 투자가 중간에 청산되지 않고 지속될 터.

그리고 잠시 뒤.

선물옵션 호가창을 띄웠고.

시카고 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되고 있는 밀.

연질 적동소맥(SRW)의 선물 호가를 다시금 확인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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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거 왜 이렇게 됐지?

현재 호가는 555.52달러.

살짝 상승했다가 다시 추락하는 호가.

이 호가는 전일 대비해서 쉴 새 없이 하락하고 있는 추세다.

그런 호가 흐름을 잠시 쳐다보다가.

갑자기 뭔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2010년 1월.

새해의 선물 첫 거래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밀 가격은 꾸준하게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그 추이는 단기 상승세일 뿐이다.

그런데 그런 상승세가 끝나고 밀 선물 호가가 축축 처지는 모양새인데.

호가 등락의 기울기를 즉각 확인해 보니, 점점 더 폭락 조짐이 선명해지고 있다.

2010년 6월까지 쭉 이어지는 대형 하락장.

그 하락장의 시작점이 바로 오늘이란 말인가.

순간, 갑자기 싸한 느낌이 들었다.

숨이 가빠왔다.

그 주춤거림도 잠시.

나는 서둘러 주문 창을 띄웠고.

2010년 7월 만기물 ‘시카고 SRW 밀 옵션’ 주문을 찾은 뒤.

재빨리 주문 정보를 채워 넣었다.

그러고는 주문 내역을 빠르게 확인한 뒤, 서둘러 마우스 클릭을 했다.

따각!

그로부터 1초, 2초, 3초···.

그 시간이 무척 더디게 가는 듯.

주문체결을 기다리는 내 긴장도는 극도로 높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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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사이, 선물 호가는 더 떨어졌는데.

밀 100 부셀(= 밀 2,720kg) 기준의 호가는 550.17달러가 되었고.

곧이어 호가 550달러 선이 깨질 것 같았다.

현재, 나는 그런 호가 하락에 초점을 맞추되.

일반적인 선물 투자가 아니라.

옵션에 모든 주문을 던졌다.

특히, 풋옵션을 선택했는데.

풋옵션은 호가가 크게 하락할 경우 큰 수익이 발생하는 그런 투자 방식이다.

한편, 이 옵션 계약의 단위는 밀 5,000부셸이고.

현재 호가창의 옵션 호가는 밀 100부셸 기준이 되므로.

옵션 1계약 매수시, 옵션 호가에다가 50을 곱해줘야 한다. 즉, 5000부셸 = 100부셸 × 50.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쳐 1계약 매수 호가가 나오게 된다.

즉, 선물이나 옵션은 항상 계약단위가 최소 1계약(5000부셸) 단위인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잠시 뒤.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모니터에는 쉴 새 없이 거래 체결 알림창이 떴다.

이때.

두근. 두근.

심장은 거칠게 뛰었고.

나는 미친 듯이 집중하며 알림창을 쳐다봤다.

사실, 앞선 주식 투자나 선물 투자는 마치 예행연습이나 다름없다.

옵션 투자는 극단적!

천문학적인 수익이 발생하기도 하고.

때로는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

둘 중의 한 곳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는.

그저 도박과도 같은 투자.

투자가 아니라 투기라고 해야겠지.

그래서 전문 투자자들은 한 포지션에 절대 올인할 수가 없다.

반드시 헷지 전략으로써 리스크를 분산시켜야 한다.

그래서 처음 옵션을 접하는 초보자들은 한 몫 크게 먹으려고 위험 투자를 했다가.

단 몇 분 혹은 몇 시간 만에 원금 전체를 날릴 수도 있다.

그 때문에 옵션의 실질적인 투자는 헷지라고 할 수 있고.

충분한 투자자금을 선물과 각 옵션에 고루 분산시켜 리스크를 낮추되 그 과정에서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올인!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그로부터 3초 뒤.

마침내 풋 포지션 옵션 매수가 완전히 끝났는데.

바로 클릭하자, 내가 매수한 옵션 현황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이때!

다시금 내 심장은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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