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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물이 되어버린 투자자-17화 (17/138)

17화 초단기 부자가 되다

<13>

2010년 1월 12일 화요일.

새벽부터 눈이 펑펑 내리더니 고시원 건물은 온통 새하얗게 변했고.

골목길도 눈이 수북하게 쌓였다.

에휴, 새벽 운동은 틀렸다.

운동복을 입고서 고시원 밖으로 나왔던 나는 멍하니 새벽하늘을 쳐다보다가.

주머니를 뒤졌다.

담배라도 필 생각.

그러나 운동하려고 나온 사람이 담배를 가지고 나올 이유가 없다.

할 수 없이 입맛만 다신 채 도로 방으로 들어가려다가.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는 눈이 너무나도 하얗게 빛나고 있어 나도 모르게 몸을 숙였다.

사람들이 아직 지나가지 않아 무척 깨끗한 눈.

그 차가운 눈을 두 손으로 한 움큼 집어 드는데.

이때, 갑자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아, 이거 참! 무슨 눈이 억수로 오냐?”

고개를 돌렸다.

현재 고시원 총무 일을 하고 있는 30대 중반의 남자.

총무 정교 형이었다.

“무슨 일이고? 오늘 일찍 일어났네?”

어느덧 육 년째 살고 있는 고시원.

워낙 한곳에 오래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진 총무.

그 총무는 고개를 돌려 날 힐끔 쳐다봤다.

“전 보통 이 정도 시간 때에 일어나는데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고개를 돌린 총무는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와아, 미치겄네. 어떻게 다 쓸어내지?”

총무의 답답함이 계속될 정도로 눈은 계속 쌓이고 있었다.

“참! 한수씨! 이거 좀 도와줄 수 있어?”

“네?”

“식권 하나 줄게. 좀 도와주라.”

그 식권이라는 게 인근 복지관 구내식당 식권인데.

특별히 총무한테 매달 조금 지급되는데 그중의 하나를 주겠다는 것이다.

그나마 공짜 밥을 먹을 수 있어 옛날 같아선 넙죽 제안을 받아들였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공부할 게 있어서 좀 바쁜데요.”

“공부? 한수씨 공장 다니잖아?”

“그만뒀어요.”

“뭐? 거길 왜 그만둬?”

“공부하려고요.”

“공부?”

이때 총무는 바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더벅머리를 긁적이다가 바로 되물었다.

“그 나이에 무슨 공부? 혹시 공시 준비?”

나는 고개를 저었다.

“공시(공무원 시험)가 아니면 뭐? 사법고시는 아닐 테고? 또 무슨 시험이 있나?”

그러나 구태여 정확하게 대답할 이유가 없어 나는 씩 웃었고.

그러자 총무는 알겠다며 역시 씩 웃었다.

“하긴, 아직 속 편하겠네. 실업급여도 따박 따박 나올 기고. 그거 다 타 먹을 때까지 취업할 필요도 없을 기고. 그래서 바쁘다고?”

“좀 이따가 학원도 가야 해요.”

“학원? 학원 다니고 있었나? 아고, 그럼 대체 누구한테 도와달라고 하지?”

여전히 펑펑 쏟아지고 있는 하얀 눈.

“정교 형! 제가 7시쯤에 다시 나올게요. 그때 눈 그치면 30분 정도 도와드릴게요.”

“와아! 역쉬 한수씨! 우리 한수씨 밖에 없다니까! 저번에 여자 빤스 도둑 잡을 때도 도와주더니, 진짜 고맙대-이!”

언제나 경쾌한 총무의 목소리.

나는 살짝 목인사를 한 뒤, 도로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잠시 뒤.

다시 모니터에 집중했다.

천연가스 선물 호가 변화에 다시 집중했고.

내가 지정해 둔 목표가에 천연가스 호가가 서서히 다가서는 것을 가만히 주시했다.

저 지정가에 도달하게 된다면 자동 매수주문이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그 지점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

앞으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현재 호가는 5.464달러.

내가 목표로 하고 있는 5.360달러와는 아직 거리가 있는 지점이었다.

앞으로 호가는 더 떨어져야 한다.

매도 포지션인 나는 그래야 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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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 05분 37초.

미국에서도 썸머타임이 없는 이 시기.

이런 선물 투자는 주중 아침 8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계속 거래가 가능하다.

그 때문에 선물거래를 시작한 사람은 거의 하루 전부를 투자 시간으로 잡을 수밖에 없는데.

점점 더 피를 말리는 투자이고.

그래서 폐인이 되기에 딱 좋은 그런 투자이기도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지지부진하게 계속 이어지고 있던 호가 변화.

그 호가가 갑자기 5.406달러로 찍는 것 같더니

더 내려가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매도 물량.

그 물량이 쏟아지면서.

호가를 더 낮춰버렸고.

호가는 5.376달러까지 쭉 내려가 버렸다.

5.376달러?

거의 목표가에 근접한 수치다.

나도 모르게 눈이 커졌고.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호가창을 계속 응시했다.

#

5.376달러.

5.370달러.

5.363달러.

5.373달러.

5.365달러.

5.377달러.

5.368달러.

그 촘촘한 구간 내에서 틱이 번개같이 움직이고 있었고.

매도 물량이 다시 많아지면서 격렬한 틱 이동이 발생하고 있었다.

오늘 종가가 결정되기 전.

다시 격렬한 거래가 이루어지는 모습인데.

바로 그때.

마치 팡! 하는 소리가 터지듯 자동 주문이 실현되었다.

[매수 주문가 5.390달러]

[매수물량 160계약]

즉, 호가가 5.360달러를 터치하는 순간!

바로 위쪽 호가대의 여러 물량들을 노리며 매수주문이 들어갔다.

사실, 160계약은 적지 않은 계약이다.

직접 보면서 물량을 담으려고 한다면, ‘어어어’ 하는 순간, 타깃 포인트를 놓칠 수가 있다.

그 정도로 호가가 미친 듯이 위아래로 움직이기 때문.

그러나 그 위쪽 호가 타깃점을 잡고서 매수주문을 넣자, 잇달아 거래 체결 알림들이 모니터에 떴다.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주문체결량: 56계약]

[주문체결량: 92계약]

[주문체결량: 138계약]

[주문체결량: 156계약]

[주문체결량: 160계약]

특히, 워낙 각 호가대의 물량들이 갑자기 많이 나온 터라.

순식간에 160계약 매수가 완료되었는데.

내가 가지고 있던 ‘매도 포지션’은 이때 바로 청산이 되었다.

즉, 160계약 매도, 160계약 매수가 성립되며 포지션 제로가 된 것.

또한, 이런 매수매도 행위로 인해 큰 수익도 발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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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매도 호가: 6.100달러]

[평균 매수 호가: 5.372달러]

[계약 건수: 160계약]

그리고 내 계좌에 잡히는 플러스 수익은 수수료와 환차손 손해를 제외하고 대략 116만 달러다.

즉, 이 시대 원화 가치로 환산한다면, 대략 13억 원 남짓한 수익인데.

그러나 당분간 선물 투자를 진행할 생각이라 달러 상태를 계속 유지할 생각이고.

결과적으로, 기존에 달러로 환전했던 내 자산에 116만 달러를 합치자, 전체 자산규모가 170만 달러(대략 19억 원)로 합산되었다.

아아, 성공은 성공인데 조금 아쉽다.

천연가스 생산량은 현재 과잉이기 때문에.

천연가스 선물 호가는 계속 추락할 것이다.

2010년 이후, 만성적인 하방 압박에 시달리는 게 바로 천연가스 종목.

그러나 1월 21일 만기물에 투자한 상태라 지금으로선 청산할 수밖에 없었고.

다섯 번째 투자이자, 첫 번째 선물 투자였던 이 투자는 그렇게 끝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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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 형! 삽 하나 주세요!”

그리고 잠시 뒤.

고시원 창고에서 고무장갑을 끼고 긴 작업 장화를 신고 밖으로 나온 나는 그때부터 눈 치우기 작업을 시작했다.

총무는 바로 옆에서 긴 빗자루를 이리저리 쓸며 고시원 주변 골목길 눈을 치웠고.

새하얀 눈들이 한쪽으로 치워지자, 점점 골목길 바닥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렇게 일을 하는 동안, 고시원 사람들이 하나둘 건물에서 걸어 나오다가.

우리를 힐끔 쳐다봤고.

내 옆방에 사는 40대 초반의 아저씨 역시 걸어 나오다가 나하고 눈이 마주쳤는데.

움찔하던 그는 이내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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