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경리과 여직원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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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오전 10시 정각.
그 시각에 맞춰 주가 차트는 더 크게 꿈틀거렸다.
기업 경영과 관련된 주요 사실이 갑자기 언론에 공개되면서 주가 차트에 큰 영향을 주었고.
거센 매수세와 끈질긴 매도세가 갈수록 격렬하게 사투를 벌였다.
결국, 내 예상대로 설거지가 맞긴 맞았다.
툰미디어가 던진 인터넷 보도자료들.
[툰미디어, 최대주주 변경]
[세진스튜디어, 툰미디어 경영권 인수]
[툰미디어, 세진스튜디어 자회사 편성]
세진그룹 계열사이자 국내 3위권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세진스튜디오.
이 회사가 툰미디어 지분 52% 인수를 통해 경영권을 확보했다는 보도자료가 그렇게 배포되었고.
그런 기사가 터지자마자 엄청난 매도세가 줄을 이으며.
주가는 다시 4,400원(+12.53%)대로 주저앉았다.
그런데 그렇게 주가가 하락하자마자, 다시 거센 매수세가 일어났다.
대기업이 경영에 나선다면, 툰미디어 입장에선 큰 기회가 되는 것.
그래서 그걸 큰 호재로 볼 수 있으나.
호재가 발표되는 순간, 그 재료의 가치는 소멸된다.
다만,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이 시장.
이 시장의 반응은 확연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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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00원
4,405원
4,395원
4,410원
4,425원
4,405원
정신없이 주가가 오르락내리락 하지만.
좀처럼 떨어지지도 않는다.
다만, 주가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특정 주문가를 넣어서 주식 매수가 불가능할 정도로.
등락은 번개같이 일어나고 있었고.
어느 순간, 주가는 제멋대로 날아다니며.
더 큰 폭의 변동이 발생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거래량은 더 폭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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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가 4,475원(+14.45%)!
와! 이게 진짜 가능한 일인가.
오전 10시 24분 36초.
좀 전, 4,320원까지 잠시 주저앉았던 주가.
지독한 손바뀜이 동반된 끝에 주가는 다시 무섭게 치솟아 올랐고.
상한가 인접 위치까지 치솟았다.
이때, 저점에서 사서 고점에서 팔았던 개미들은 득의양양해하며 사라졌고.
고점에서 사서 저점에서 털고 나왔던 개미들은 손해를 만회해보려고, 아래쪽 호가대에 매수 주문을 쏟아냈다.
이때 누군가 그 애매한 하방 지지선에 큰 힘을 보태자, 차트 흐름은 다시 변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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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정신이 없네.
이때, 나는 빗발치는 매수, 매도 공세 속에서 흐름을 놓치지 않고 계속 모니터링했다.
확실히 누군가 움직이고 있다.
그걸 반증하듯 상방 매수 거래 체결 숫자는 늘어나고 있었고.
하방 지지선을 노리며 집중적인 매도가 쏟아졌음에도.
수상한(?) 누군가가 다시 매도를 쓸어내며 주가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그 때문에 기세가 일변했다.
호가 패턴은 상방 지지와 상방 공략 우세로 변했고.
사방에서 개미떼가 달려들며 매수와 매도가 더 빗발쳤다.
4,475원 호가 매물대가 이때 깨졌고.
주가는 4,480원으로 치솟고 있었다.
이대로 상한가 진입까지 쭉쭉 이어질 것 같은 모습.
그러나 4,485원을 터치하는 순간.
나는 과거 경험(?)에 따라 모든 물량을 4,485원에 던지며, 매도 주문을 넣었다.
[종목: 툰미디어]
[매도 주문가, 4,485원]
[매도 주문량, 117,200주]
[매도하시겠습니다?]
따각!
그리고 그로부터 대략 10분 뒤.
지독한 피 말림이 이어지던 중.
매수·매도 공방전은 4,485원 호가대를 깨며 치솟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그렇게 거래 체결 사실이 모니터에 떠오르는 순간.
주가는 결국 4,490원으로 치솟았다.
이제 바로 위의 4,495원 상한가를 남겨둔 상태인데.
이때 나는 매도 체결 사실을 확인했고.
그래서 등락이 빗발치는 차트에서 시선을 뗀 뒤.
이제 내 수익 현황을 즉시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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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 툰미디어]
[평균 매수가, 4,261원]
[매도 주문가, 4,485원]
[매도 주문량, 117,200주]
결국, 수수료 등을 제외하고.
대략 2,600만 원가량의 수익이 잡혔다.
전체 현금 규모도 6억, 1,700만 원가량으로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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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상한가 진입은?
피식 웃은 뒤.
나는 팔짱을 끼고서 먼 천장을 한번 쳐다보다가.
이내 모든 모니터의 차트와 데이터를 정리했다.
더는 볼 필요가 없다.
상한가 진입을 하든, 상한가 진입을 못 하고 무너지든.
내 투자는 이미 끝났기 때문.
물론, 끝난 일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수익, 2,600만 원.
이 자체도 나쁘지 않은 수준이 아닌가.
크리스마스이브 선물로선 절대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데이트레이더(Daytrader)로서 무척 거친 투자를 하다 보니.
과거에 어떤 증권사 대표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진득하게 장기 투자, 가치 투자를 하는 게 더 속 편하다고.
흔들림 없이 큰 수익을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급등주를 주로 타깃하며.
스릴과 위험을 즐기는 데이트레이더(Daytrader)이다.
초초단기, 초초초단기가 극성을 부리는 선물옵션 시장이 내 주 무대이고.
하루 변동성이 최대 수백, 수천 퍼센트에 이르고.
단 몇 시간 만에 원금이 제로가 될 수도 있는 그런 시장이 내 고향 같은 곳이다.
물론, 끝은 무척 안 좋았지만.
마지막 순간, 다 털려버린 패배자.
그게 바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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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컴퓨터 정리를 마친 뒤.
나는 깔끔한 명품 정장 차림에 백화점에서 샀던 그 잠바를 그 위에 걸치고서 고시원에서 나왔다.
그리고 잠시 뒤.
택시에서 내렸고.
얼마 전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던 그 화학 공장의 정문 옆, 경비실로 들어섰다.
<10>
“···신수가 훤하네. 대체 무슨 물을 먹어서 그렇게 훤하냐?”
“반장님, 좀 그만 하세요. 전 이미 퇴사했습니다.”
“하아, 진짜 돌겠다! 너 나가고 나서, 공정 라인 하나 망가진 거 모르지?”
“네?”
“임시직 데리고 뛰다가, 내가 그 불량 틀어막는다고 죽는 줄 알았다.”
순간, 죄송합니다 라고 말할까 하다가 나는 조용히 입을 닫았다.
더는 나하고 상관이 없는 회사.
다만, 김창식 반장을 포함하여 이곳 선후배 직원들과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쌓이다 보니.
차갑게 외면할 수도 없어 나는 일부러 이곳을 다시 찾았다.
“한수야. 정말 돌아올 생각이 없는 거지?”
“네.”
“에휴, 내가 참 미련이 많아. 생산 반장 주제에 무슨 지랄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이 공장이 내 것도 아닌데. 다만, 좀 아쉬워서 그래. 너한테 나중에 이 반장 자릴 꼭 물려주고 싶었거든.”
순간,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김창식 반장은 너무 잔정이 많다.
한편으론 보스 기질도 다분하다.
다만, 학벌이 너무 낮아 더는 공장 요직으로 올라갈 수가 없다.
고졸 출신이라는 한계.
직책이 겨우 생산 반장에 불과하다는 한계.
그럼에도 자신의 테두리를 지키며 무척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반장님, 근데 저녁에 시간은 어떠세요?”
“저녁은 왜?”
“퇴사도 했는데···.”
“환송회?”
“네! 아, 아뇨. 제가 밥을 사고 싶어서요. 파트 사람들도 다 부르고 싶고.”
“야! 니가 무슨 밥을 사? 무슨 돈이 있다고?”
이때, 나는 바로 대꾸할까 하다가 이내 입을 닫았다.
투자 일을 시작하면서 이미 수억 원을 벌었으나.
김창식 반장은 절대 믿지 않을 것이다.
“야, 그 퇴직금은 아직 안 나왔지?”
“네.”
“곧 정산돼서 나갈 거야. 내가 며칠 전부터 경리과에 가서 빡세게 조르고 있거든. 금방 해결될 거야. 걱정 마.”
“아, 반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얼마 되지도 않는 푼돈.
그 퇴직금을 좀 더 일찍 받게 하려고 김창식 반장은 나름 노력을 하고 있다. 그만큼 잔정이 아주 많은 사람이다.
“회사는?”
“네?”
“이직한 데는?”
아아, 아직 모르시고 계시는구나.
내가 다른 공장으로 옮겨갔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나 보다.
하긴 고졸 출신에 공장 밥을 먹던 노동자가 어디 다른 데 갈 데가 있겠는가.
그래서 사실대로 말하려다, 나는 잠시 멈칫했다.
김창식 반장의 머리로는 주식이 뭔지 투자가 뭔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50대 초반의 나이.
공장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그는 어느새 머리가 하얗게 변했고.
통뼈를 갖고 있어 아직도 펄펄 날아다니지만.
따지고 보면, 내 아버지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날 걱정하나 보다.
에휴.
나는 쓴 미소를 지은 뒤 입을 열었다.
“걱정 마세요. 제가 알아서 잘 하고 있습니다.”
그렇듯 내가 애매하게 대답하자, 김창식 반장은 꼬질꼬질한 작업복 겨울 잠바에서 뭔가를 꺼내 나한테 내밀었다.
“이거 받아. 네 서랍에 놔두고 갔던데. 그리고 저녁 늦게 끝날 것 같은데, 괜찮아?”
“네. 괜찮습니다.”
“그럼 일 끝나고 밤 8시쯤 요 앞에서 보자.”
“네. 반장님.”
“근데 혹시 너, 결혼식 가냐?”
“네?”
“야! 니가 무슨 화이트칼라냐? 그냥 편안하게 입고 와!”
“아, 네.”
“나중에 보자.”
담배를 한번 쭉 빨고는 하얀 담배 연기를 토해낸 뒤 바로 불을 끄는 김창식 반장.
그러고는 그는 빠른 걸음으로 공터를 지나 공장 라인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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