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물이 되어버린 투자자-9화 (9/138)

9화 세번째 투자 성공

<7>

새벽, 갑자기 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하는 2009년 12월 17일 목요일.

일어나자마자 하얀 눈이 내리는 광경을 본 뒤, 아침 운동을 포기했다.

담배나 펴야겠다.

고시원 밖, 골목 모퉁이에 기댔고, 담배를 꺼냈다.

새벽이라 행인들은 보이지 않는다.

저 멀리 있는 가로등 불빛에 흩날리는 눈송이들.

은근히 빛이 나며 잠시 시선은 끌었다.

휴우.

가볍게 하얀 담배를 토해낸 뒤, 이때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마치 데자뷰 같은 느낌이 든다.

아주 오래전에도 이렇게 투자를 진행했는데.

그리고 항상 종목 발굴 때문에 무척 고심했다.

휴우.

다시 하얀 담배 연기를 토해낸 뒤 곧바로 담뱃불을 껐다.

그리고 고시원 2층 공용 주방으로 들어갔고.

전기밥솥에서 쌀밥을 퍼서 그릇에 담았다.

냉장고에 있는 김치를 접시에 덜어낸 뒤, 곧이어 아침을 해결했다.

이곳 고시원은 아침 쌀밥과 김치가 공짜다.

물론, 자신이 사용한 수저와 그릇은 반드시 자신이 씻어야 한다.

씻지 않고 갈 경우, 총무한테 걸리게 되면 무조건 벌금을 내야 한다.

벌금은 그렇게 많지도 않다.

대략 만 원 정도.

그러나 그 만 원을 아끼려고 아침을 여기서 해결하는데.

그래서 누구도 그 원칙을 어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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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었다.

배도 적당히 부르고.

설거지나 해야겠다.

그릇, 접시, 수저를 챙겼다.

그리고 일어서는데.

인기척이 들리며, 부스스한 모습의 남자가 나타났다.

체육복 차림.

그런데 그가 끼고 있는 안경에 하얀 습기가 가득 차 있어 그의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는 안경을 바로 벗더니 안경알을 닦았고.

내가 쳐다보자 바로 고개를 들었다.

아, 내 옆방 사람이다.

40대 초반 나이의 아저씨.

항상 한쪽 머리가 짓눌린 모습이고.

항상 두 눈에 핏기가 가득한 모습이다.

듣기론, 아직도 사법고시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2017년 마지막 시험을 끝으로 폐지되는 사법고시.

그래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편, 나는 간단히 목인사를 한 뒤 고개를 돌렸고.

남자도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전기밥솥 쪽으로 걸어갔다.

#

세수와 칫솔질을 마친 뒤, 좀 더 상쾌해진 기분으로 책상 앞에 앉았다.

세 대의 모니터를 바로 켰고.

주식 차트를 중앙 모니터에 띄웠다.

각종 종목 자료들은 모니터 좌측에 띄웠고.

우측 모니터에는 내가 짜 놓은 프로그램을 다시 확인한 뒤 프로그램을 바로 가동시켰다.

대영반도체, 잘 되겠지?

무조건 잘 돼야 한다.

지금 내 투자 상황은 올인 상황.

현금 모두가 대영반도체 종목에 들어간 상태다.

우선, 대영반도체의 과거 차트를 좀 더 분석한 뒤, 최근 외인과 기관 거래 동향도 다시 확인했다.

기사와 공시도 찾아봤다.

그러나 별다른 호재 사실을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더 기대된단 말이야.

찾을 수 없다는 것은 아직 재료가 반짝반짝 빛나는 상태라는 것.

그러나 그 호재가 공개되는 순간, 호재의 유통기한은 만료된다.

즉, 대중의 막연한 심리적 기대가 사라지는 순간, 재료의 가치는 소실되며 주가는 대다수 폭락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 심리를 예측하지 못한다면, 대다수 투자는 실패로 귀결된다.

#

아침 7시 30분.

장전 시간외거래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조용한 암투가 벌어지는 시각.

이 시간의 거래 동향을 확인하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오늘의 시황을 대략 예측할 수 있는 주요 정보이기 때문이다.

‘태경하이텍’

잠시 후, 나는 태경그룹 계열사인 태경하이텍 주식 차트를 띄웠고, 최근 동향을 확인했다.

재무지표와 매출 현황, 영업이익 등도 쭉 훑어내렸다.

그리고 동시에 대영반도체 정보와 태경하이텍 정보를 중앙 모니터에 띄웠다.

대영반도체는 한 해 매출 1,600억 원 정도의 중소기업이자 반도체 부품회사.

그리고 태경하이텍 역시 반도체 부품회사인데, 같은 계열사인 태경전자에 주로 재료를 납품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태경하이텍의 지분구조가 심상치 않다.

태경하이텍의 지분은 주로 태경그룹 박정훈 회장의 자녀들이 쥐고 있고.

태경하이텍은 태경전자 납품을 맡으면서 어느새 매출이 1,000억 원을 돌파한 뒤, 시총 규모도 그만큼 커져 버렸다.

현재 태경그룹의 후계자는 장남 박영준으로 알려져 있고.

그는 태경하이텍의 최대주주이자, 지분 46.5%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차남 박영수는 이 회사의 지분 20.8%를 보유하고 있는 중이다.

이걸 다 합치면 대체 얼마야.

태경하이텍 시총 1,200억 원 기준으로 봤을 때, 두 형제의 지분 가치는 807억 원에 달한다.

회사 설립시, 고작 억대 지분이었는데.

그게 어느새 수백억 원짜리 지분이 된 거였다.

그래도 좀 부족하지.

거대한 덩치를 가진 태경전자를 장악하려면···.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했다.

희미하지만, 뭔가 잡힐 듯한데.

선뜻 잡히지 않다가.

잠시 후, 턱을 계속 쓰다듬으며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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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30분.

장전 동시호가가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대영반도체와 태경하이텍 거래 차트를 띄운 뒤, 이상 동향이 있는지 동시에 살펴봤다.

우아아! 확실히 뭔가 있어.

쉴 새 없이 몰려드는 엄청난 매수 기세.

장전 시간외거래에서 대영반도체는 매수만 무진장 몰리더니.

단 한주의 주식조차 거래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여파가 그대로 이어지며.

동시호가에서 바로 상한가를 찍고 있다.

4,475원!

역시, 쩜상!!

나도 모르게 날아갈 듯한 기분이 되었다.

하긴, 여기서 쩜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제 주포는 엄청난 물량을 손에 쥐지 않았나.

그런 새로운 주포의 등장.

새로운 주가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그 기분 좋음이 어느새 긴장으로 바뀌었다.

태경하이텍!

장전 동시호가가 시작되자, 태경하이텍의 호가가 완전히 달라졌다.

장전 시간외거래에선 별다른 기세 없이 평범한 모습이었는데.

장전 동시호가가 시작되자마자, 누군가 호가를 쭉쭉 누르기 시작했다.

전일 종가는 3,210원.

현재 동시호가는 3,065원.

대략 마이너스 4.52%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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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58분 59초.

어느덧 장 개장 시각을 코앞으로 앞둔 시각.

현재까지 대영반도체는 4,475원 상한가 호가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태경하이텍은 호가가 조금 올라 3,105원(-3.27%)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종목: 태경하이텍]

[매수 주문가, 시장가]

[매수 주문량, 5만 주]

[매수하시겠습니다?]

이때, 나는 매수주문(신용)을 즉시 넣을까 고민하다가.

시간은 어느새 경과되었고.

드디어 9시, 증시는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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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이거 바닥을 기는데.

내가 잘못 생각했나.

시간은 다시 빠르게 흘러, 어느덧 오전 9시 45분.

꽤 시간이 흘렀으나, 태경하이텍의 주가는 쉴 새 없이 매도 우위가 되고 있다.

매도 물량은 쉴 새 없이 장내에 투하되고 있었고.

호가는 미친 듯이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현재 주가는 2,925원.

마이너스 8.88% 지점이다.

혹시라도 매집 흔적이 있나 싶어 프로그램을 돌리며 확인해 봤으나.

아직 뚜렷한 정황이 없다.

순전히 매도 우위이기 때문이다.

아아, 이거 참.

이럴 리가 없을 텐데.

어느덧 팔짱을 끼고서 차트의 흐름을 쫓는 사이, 시간은 다시 흘러갔고.

그러다가 뭔가 툭 튀며 주가에 살짝 변화가 생겨났다.

좀 전, 거래 체결 물량은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인데.

그럼에도 호가가 가볍게 두 계단을 올라섰다.

이유인즉, 지루한 매도 폭풍 속에서 위쪽 호가대의 매물들이 아주 슬림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호가가 오를 수 있도록, 마치 상승 도로가 잘 닦여진 모습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 자체가 매도 우위 차트상에선 주로 나타나는 모습이고.

그래서 큰 의의를 두지 않던 중.

갑자기 나도 모르게 두 눈이 커졌다.

오전 11시 26분 38초.

서둘러 키보드를 타다닥 두드렸다.

[종목: 태경하이텍]

[매수 주문가(신용), 시장가]

[매수 주문량, 10만 주]

[매수하시겠습니다?]

따각!

재빨리 마우스를 클릭했고.

곧이어 알림 창이 떴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십여 분 뒤.

이야아, 이거 보소!

차트가 움직였다.

나는 박수를 칠 뻔했다.

내 예측.

그게 신기할 정도로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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