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두번째 투자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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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로또 당첨됐냐? 니가 저녁 산다고? 무슨 일이냐?”
“이야아, 김한수! 너 살아 있었네! 시발! 얼굴이나 자주 보자고!”
“너 아직도 공장 다녀? 인마! 때려치우고 내 밑으로 오라니까! 새꺄!”
조광섭, 최주혁, 강태원.
공고 출신의 친구들인 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공장으로 취업하지 않고 영업 전선에서 일을 시작했다.
조광섭은 현재 외제 자동차 딜러 일을 하고 있었고.
최주혁은 중고차 딜러다.
강태원은 어느 여사장 밑에서 이것저것 일들을 봐 준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영업을 하는지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있었다.
“근데 강석이는 왜 이렇게 안 와?”
어느덧 약속 시각인 7시가 훌쩍 지난 시각.
유강석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야! 한수야, 오긴 오는 거 맞지?”
“오겠지. 낮에 전화할 땐 바쁘긴 해도 온다고 했으니까.”
“야, 그럼 우리 주문부터 하자. 여기요! 여기요!! 여기요오오!!”
갑자기 요란하게 고함을 지르는 강태원.
저녁 시간, 삼겹살 구이집은 북적북적했다.
소주 한 잔에 삼겹살 구이, 이 얼마나 좋은가.
고달픈 직장인들은 이곳에 몰려들었고, 어느새 가게는 꽉 차 버렸다.
“아저씨! 주문할게요. 삼겹살 10인분! 소주 10병! 빨리 좀 갖다 줘요!”
“혹시 다른 건 필요하신 거 없어요?”
“달걀찜 서비스! 에이씨, 뭐야? 그런 것도 안 해주나?”
투덜투덜하다가 강태원은 내 어깨를 가볍게 쳤다.
“야! 넌 진짜 나한테 그냥 오라니까! 자동차 세일즈 하는 저 새끼들은 그냥 하루살이야.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게 뭐가 좋냐? 넌 잘 생각해 봐. 공장 일 같은 건 해 봤자 돈도 안 될 텐데.”
“야, 공장은 그만뒀어.”
“야! 진짜냐? 이 새끼! 이제 정신 차렸네. 야! 힘들고 돈도 안 되고. 그런 곳에 왜 붙어 있었어? 인마! 대체 몇 년째냐?”
잠시 후, 소주와 밑반찬이 먼저 나오자, 소주부터 깠다.
“근데 강석이는 오는 거냐?”
“누가 전화 좀 해 봐.”
“야, 이씨! 안 받는데?”
“뭐, 무슨 일 있나?”
“야, 야. 그만해. 그 새끼 알아서 오겠지. 우리 먼저 먹자! 우리끼리 마시는 건데 무슨 예의 차릴 게 있냐? 시발. 야, 다 받았지? 오케이, 멋지게 한 잔!”
단숨에 쓴 소주를 들이켰다.
어라? 오늘은 소주가 무척 달다.
나도 모르게 씩 웃으며 소주잔을 쳐다보다가 빈 소주잔을 내려놨다.
젓가락으로 김치 한 조각을 입에 넣고 먹다가, 다시 소주잔이 가득 채워진 걸 쳐다봤다.
그때부터 마시고 채우고.
그렇게 하다 보니 순식간에 소주 4병이 빈 병이 되어버렸다.
녹색의 길쭉한 고추를 양념장에 찍어 아삭아삭 씹어 먹던 태원.
녀석은 그때부터 손을 저으며 좀 천천히 달리자고 했고.
광섭과 주혁은 군말 없이 태원의 제안을 따르고 있었다.
역시 태원이 저 녀석!
변하질 않는다.
무리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며 뭐든 앞장서서 하는 녀석.
과거, 공고 실습 때 그 사건만 없었더라면, 태원이는 조폭 계보에 들어가 조폭이 되었을 거고.
조폭 오야붕이 되려고 발악했을 그런 녀석이다.
물론, 지금은 이미 지난 일이 되었다.
잠시 후, 불판 위의 삼겹살이 찌글찌글 구워지기 시작했고.
다시 술이 돌기 시작했다.
특히, 삼겹살이 맛있게 구워지자, 안주빨까지 서며 소주 맛은 더 좋아졌다.
“야! 마시고 죽자! 시발! 죽자고!”
거칠게 외치며 술잔을 드는 태원.
그렇게 2시간 정도 삼겹살집에서 먹고 마시며 떠든 뒤, 우리는 2차 호프집으로 넘어갔다.
물론, 거기서 맥주를 잔뜩 먹은 뒤, 이제 3차 룸살롱으로 가겠다는 태원이의 제안에 이때 나는 손을 저으며 뒤로 물러섰다.
“야! 시발! 넌 또 빼냐?”
“알잖아? 내가 좀 바쁜 거.”
“바쁘긴 개똥! 시발! 인마, 너 그러다간 스님 된다. 스님!”
“암튼, 오늘 즐거웠어. 그리고 말했잖아! 공장 그만두고 이제 전업투자일 하는 거. 컨디션 관리 못 하면 이 바닥에서 바로 젓돼.”
“인마, 그냥 다 때려쳐! 그냥 내 밑으로 오라니까! 니가 무슨 주식이냐? 다 말아먹으면 그냥 전화해. 내가 알아서 해줄게!”
“암튼 고맙다. 야, 니들도 다음에 보자.”
그러자 광섭과 주혁은 인상을 팍 쓰다가 할 수 없다는 듯 비틀거리며 내 팔을 각각 잡았다.
“인마! 너 그렇게 살지 마. 시발, 적은 돈 모아선 돈이 안 된다니까. 내가 벤츠 한 대 팔면 얼마 받는지 모르지?”
“야, 가라! 가! 빨리 가! 공장 새끼는 빨리 가라고!”
“야, 주혁아, 시발, 좀 조용히 해! 야, 김한수! 인마, 넌 그래도 넌 잊지 마라. 우리가 졸라, 졸라, 졸라 너 좋아하는 거. 시발! 너 때문에 태원이 저 씹새끼! 사람 됐잖아. 우리가 졸라 그때···.”
그러면서 점점 더 횡설수설하기 시작하는 녀석들.
나는 웃으며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녀석들과 간단히 포옹했다.
“암튼 다음에 보자! 야! 태원아, 얘네들 좀 챙겨.”
“알았어. 시발. 빨리 가봐.”
나는 손을 흔든 뒤 재빨리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휘유, 사는 게 똑같지 뭐.
아주 예전에 봤을 때나 녀석들은 똑같은 모습이고, 별다를 게 없는 모습이다.
그래서 그나마 다행스럽기도 하다.
다들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이고.
그것만으로도 나는 무척 만족스럽다.
근데, 내가 너무 술을 많이 마셨나.
너무 알딸딸한데.
1차에서만 무려 소주 20병을 나눠 마신 것 같다.
내가 대략 소주 4병 정도는 마신 것 같은데.
아으, 속이야.
인상을 살짝 쓰며 나는 계속 터벅터벅 걷었고.
그러다가 갑자기 뭔 생각이 떠올라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돌아봤다.
유강석.
그 자식은 왜 안 왔을까?
무슨 문제가 있나.
그러나 지금으로선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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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새벽 6시.
찌뿌둥한 모습으로 나는 일어났다.
그리고 곧장 공용 주방으로 갔고.
거기서 정수기를 틀고는 한 사발 찬물을 들이켰다.
후우! 이제야 살 것 같다.
잠시 후, 나는 체육복에 간편한 잠바를 입은 뒤, 고시원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침 운동을 하기 위해서다.
전날 과한 술을 마셔 아직 머리가 맑지 못한데.
힘껏 달리다 보면 내 컨디션은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어둠 속, 고시원 주변의 길을 따라 30분 남짓 달리고 나자, 굳어있던 근육들이 스르륵 풀어지며 몸이 개운해졌다.
여기저기 불어오는 겨울 찬바람 때문에 머리 역시 조금씩 맑아지는 듯했다.
어? 근데 저 여자는?
달리다가 나는 문득 우측을 쳐다봤다.
고시원 근처, 중형 빌라.
아마 그곳에 사는, 은행 직원 김주현.
그 여자와 룸메이트로 보이는 여자가 흐릿한 가로등 아래에서 가볍게 체조를 마쳤고.
곧바로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모자를 눌러 쓴 상태였고, 어느새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이내 좌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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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전 시간외거래(아침 7시 30분~8시 30분)가 시작되자, 잠시 긴장하며 거래 차트를 쳐다봤다.
이런 날, 거대한 매도세가 터지면 바로 하한가 직행이다.
그러나 다행히 매도세가 아니라 엄청난 매수세가 우위였고.
그러다 보니, 매물 빗장은 잠기며.
거래 자체가 발생하지 않고 있었다.
곧 이어진 장전 동시호가에서도 신풍LED는 빛나기 시작했다.
8시 30분!
바로 그 시각, 동시호가가 뜨는 순간, 신풍LED은 가볍게 상한가를 찍어버린 것이다.
물론, 동시호가는 그 자체가 큰 변동성이 있다.
동시호가란 게 투자자들의 주문들만 모아서 반영된 거라.
이 자체가 실질 주가를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래가 실제 일어난 게 아니기 때문.
그러나 느낌상으론 아주 좋은 쾌조의 출발이었다.
1,420원?
이야! 딱 플러스 15% 지점이네.
내 매수가는 1,020원인데.
그래서 무척 기분이 좋은, 그러나 무척 초조한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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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침 8시 55분.
어느새 장 개장을 5분 앞둔 시각.
이때, 내 눈에 비친 호가는 아직도 상한가(2009년 상한가 15%)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불안한 것은 사실.
왜냐하면, 이런 동시호가란 게 참 위험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동시호가에서 일시적으로 상한가를 찍더라도 그게 갑자기 풀어질 수도 있고.
우르르 무너지며 순식간에 마이너스 대를 찍을 수도 있다.
특히, 이 종목에선 빗장이 풀리느냐, 그게 아니냐.
그것에 따라 앞으로의 수익은 크게 바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잠시 뒤.
아침 9시 정각이 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심장이 쿵쿵 뛰었다.
순식간에 종목 주가의 가치가 확정되기 때문이다.
저절로 내 두 눈은 커지고 있었고.
찰나, 모든 숨이 멈추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1,420원!
이 주식을 이 가격에 사겠다며, 주문 물량이 우르르 몰리기 시작했고.
대기 물량이 2백만 주를 단숨에 넘어서더니.
어느새 3백만 주를 넘어서.
삽시간에 5백만 주에 이르고 있었다.
수요와 공급의 시장 법칙.
그 법칙에서 수요가 폭발하는 순간, 시장가는 한없이 날아오르게 된다.
특히, 신풍LED 주식은 돈이 있어도 살 수도 없는 아주 귀한 주식으로 변해 버렸다.
역시 상한가였다!
상한가!
하하, 하하하!
하이에나가 먹이를 건드릴 때, 그 타이밍을 뚫고 들어간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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