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물이 되어버린 투자자-3화 (3/138)

3화 첫 투자 성공

<3>

아이고 허리야.

모니터 세 대. 데스크톱 한 대.

다 중고 제품이다.

큼직한 가방에 넣어 대충 등에 메고, 양손에 각각 들고서 간신히 고시원에 도착했다.

그로부터 책상 정리와 세팅을 마치고 나자, 어느덧 밤 10시가 가까워지고 있다.

‘좀 미안하네.’

좌측, 우측, 건너편 방, 그리고 내 바로 아래층에 사는 사람들.

그들한테 각각 양해를 구하고서 10초가량 못질도 했다.

그나마 내가 여기서 가장 오래 살았던 사람이다.

총무가 하는 일들을 종종 돕기도 했고.

그래서 고시원의 폐쇄적인 그 사람들도 대충 나를 알고 있는 상태다.

‘이제 라면이나 먹을까.’

의자에서 일어나 간신히 방에서 나왔다.

뭔가 물건들이 많아지니까 내 방의 밀도가 무척 높아진 상태다

#

아흐, 추워.

건물 밖으로 나가자, 바로 몸을 움츠리며 두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재빨리 뛰어갔다.

하얀 눈송이가 흩날리는데, 아직 눈이 펑펑 쏟아질 모습은 아니었다.

“···여기요.”

잠시 뒤, 편의점에서 계산을 마쳤고, 거기서 뜨거운 물을 컵라면에 부었다.

딱딱했던 면들이 뜨거운 물에 풀릴 때까지.

나는 창가 일렬 테이블에 앉아 잠시 기다렸다.

그러고는 멍한 표정으로 창밖을 가만히 쳐다봤는데.

이때, 나도 모르게 눈이 살짝 커졌다.

바쁜 발걸음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긴 외투에 딱 달라붙는 청바지 차림의 여자.

길게 내려온 가방을 메고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그 여자는 바삐 걸어서 편의점을 지나가고 있었다.

한편, 나도 모르게 고개를 완전히 우측으로 돌릴 때까지.

그 여자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러고는 나도 모르게 이내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김주현. 그녀다.

‘하! 내가 미쳤지. 그땐.’

첫눈에 반해서 쫄쫄 따라다녔었는데.

하지만 커피숍에서 첫 데이트를 하고 난 뒤, 그날로 관계는 끝나 버렸다.

중소기업 화학공장에 다니는 고졸 남자.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박봉에 앞날도 불투명한 남자.

그리고 고시원에서 살고 있는 남자.

반면, 자신을 K은행 직원으로 소개하던 그녀.

그녀의 눈에 나 같은 스펙 따윈 눈에 차지도 않을 것이다.

‘에휴, 라면이나 먹자.’

하얀 눈송이가 흩날리는 밤···.

그 창밖의 눈송이를 한 번씩 쳐다보며 나는 라면을 먹었고.

그리고 그 라면 맛에 반하며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그래, 지금이 2009년이지.

앞으로 한 10년 정도.

그 정도 앞당겨 부자가 되자.

다 박살 내고, 다 쓸어버리자.

내 머릿속엔 내가 쌓은 수많은 지식과 경험들이 꽉 차 있다.

그래서 지난날과 달리, 더더욱 두려움은 사라진 상태다.

#

다음날 오전 11시 45분.

고시원 건물 밖에서, 담배 한 대를 꺼내 피웠다.

아침 일찍 증권사에 들러 증권계좌, 선물옵션계좌 등을 오픈했고.

공장에서 일하는 동안 벌었던 모든 돈을 증권계좌에 이체했다.

20살이 되던 1월부터 25살인 현재 12월까지 그렇게 모은 돈.

대략 6년을 저축한 돈이다. 은행 이자 포함해서.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났다.

우선은 가볍게 주식부터.

톡톡.

담뱃재를 털어낸 뒤 나는 담뱃불을 껐고.

그러고는 그 꽁초를 고시원 건물 안쪽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곧바로 비상계단을 밟으며, 내 방이 있는 3층으로 빠르게 올라갔다.

#

우선은 종목 선택부터!

차트를 보면서 급등 급락을 하고 있는 종목들을 먼저 확인했고.

전통적인 우량주 주가들도 확인했다.

그런데 참, 이 시기가 애매하다.

2009년 12월.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진정되면서 대한민국 증시는 현재 폭등세가 지속되고 있는 중이다.

2009년 주가지수는 전년 대비해서 50% 이상 폭등했다.

작년 연말 코스피 지수는 1,124포인트.

그러나 현재 1,700포인트를 노리며 치솟고 있고.

코스닥 지수 역시 332포인트에서 560포인트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한편, 올해의 증시를 빛낸 주요 테마는 태양광, 풍력, 발광다이오드(LED), 2차전지 등이다.

그런데 이런 테마들은 2020년, 2021년에도 큰 빛을 발휘하게 된다.

뭐, 테마주들은 항상 사이클을 그리면서 유행을 타게 되는데.

갑자기 튀어나와 불꽃처럼 화려하다가.

이내 명멸하기도 하는 그런 운명들을 대체로 갖고 있다.

‘그럼, 대체 뭐가 좋을까.’

하필, 복귀 시점이 2009년 12월인 것이 다소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직 늦지 않았다.

내가 바로 황제 개미 김한수가 아닌가.

#

탁. 탁. 타타닥!

잠시 후, 나는 온라인 트레이딩 시스템, HTS로 주식 주문을 넣었다.

주문가를 지정한 뒤 시장가보다 훨씬 더 아래인 하방에 주문을 넣었다.

1,020원!

과연 여기까지 내려올까?

현재, 신풍LED의 시장가는 1,050원.

장초 1,075원에서 거래가 시작된 신풍LED.

이 종목은 불안 불안한 모습을 계속 보이며.

소폭 상승과 소폭 하락이 장중에 반복되고 있었다.

본래, 300원짜리 동전주였던 이 종목은 테마주 바람을 타고서 2009년 한 해, 크게 주가가 올랐고.

지난 10월에는 최고점 1,550원을 찍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새 주가는 많이 내려갔다.

그럼에도 기존 대비해서 주가는 아직도 고공행진 중이고.

수익 회수의 기운, 즉 매도 우세의 기운이 아직도 남아있는 상태다.

그 때문에 이런 자리에 들어가는 건 무척 위험한 짓일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나는 계속 주가 차트를 주시했다.

#

‘으음, 역시 변수는 외인들이야.’

곁눈질하며 다른 모니터에 띄워진 지난 데이터를 살피며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지난 몇 달간 외인 매도세가 확실히 큰 상태다.

외인보유율은 지난 연말 23.6%.

그러나 지난 몇 달간 보유율이 크게 줄어들면서 현재 15.7%를 찍고 있다.

특히, 작년과 올 초에 저가 매수한 외인들. 그들은 큰 수익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물론, 주가가 상승할 때는 이런 것도 상관없다.

늦게 들어온 사람이든, 빨리 들어온 사람이든, 다들 행복해지겠지만.

주가가 갑자기 급락할 경우, 이땐 반응이 달라진다.

에이씨! 진짜 시작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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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깜짝 놀라며 재빨리 주문가를 더 낮췄다.

주문가 1,020원에 5만 주 주문.

이걸 재빨리 1,010원으로 낮추고 이후 상황을 지켜봤다.

1,040원.

1,035원.

1,030원.

1,025원.

그렇듯 주가는 뚝뚝 떨어졌고.

하방 주문 물량을 모두 해소한 뒤, 매도 공세가 더 빠르게 이어지던 중.

이때 갑자기 정체 구간이 나타났다.

1,020원까지 떨어진 주가가 갑자기 반등하며 1,035원으로 솟구친 것이다.

누군가가 3만 주 남짓한 매도 물량을 한 번에 집어삼키며 주가 상승을 견인한 것.

그러자 개미들도 달려들었다.

3,000주.

2,000주.

500주.

100주.

이런 식으로 개미들이 상방 매수를 진행했다.

그 순간, 나는 미리 짜둔 프로그램을 통해 매수매도 물량 흐름 변화를 그래프 형태로 바로 확인했다.

장내 특정 위치의 매수 주문량 증가는 플러스 표시.

장내 특정 위치의 매도 주문량 증가는 마이너스 표시.

그렇게 그래프가 만들어지며.

그 그래프는 급격하게 상하 운동을 하고 있었고.

통계분석이 이때 이루어지며.

매수 주문량과 매도 주문량에 대한 단기 차트들이 저절로 그려졌다.

그리고 잠시 뒤, 주요 포인트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 장난질은 맞는데.

패턴으로 보면, 매수가 한쪽으로 계속 몰리는 듯한 느낌이다.

불규칙적으로 물량을 토해내거나 흡수하는 개미들.

그러나 어느 순간, 일정 패턴을 보이며 매수에 집중하는 누군가.

다만, 주가 차트에 드러난 주가는 정체 혹은 부분 하락세다.

그런데 그 정체 기간이 점점 길어지자 거래물량도 점점 줄어들었는데.

이때, 변수가 확 나타났다.

어느새 1,020원으로 떨어진 주가 위치.

그 위치에 대략 30만 주의 대형 매도 물량이 나타난 것이다.

거기다가 하방 1,015원에서는 매수 주문 물량이 우르르 쌓이기 시작했다.

[1,020원, 매도 주문 물량 301,532주]

[1,015원, 매수 주문 물량 232,780주]

그러다 보니, 주가는 더 올라가지도 못하고 더 떨어지지도 못하는 상태가 됐다.

그 순간, 나는 모니터에 집중하며 깊게 심호흡을 했다.

지금껏 지켜본 차트 흐름.

뭔가 심상치 않은 게 있는 것 같은데.

그러나 아무리 통계 장치를 하더라도 주가 흐름을 견인하고 있는 주요세력의 심리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 지독한 시간이 흘러가는 와중에.

갑자기 다시 장중 변화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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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1,015원 주가마저 깰 생각인가.

갑자기 쏟아져 나오는 매도 물량들.

1,015원에 몰려있던 매수 주문 물량은 그 때문에 빠르게 줄어들었다.

주문 물량 232,780주.

193,566주.

156,899주.

125,111주.

100,082주.

93,381주.

50,195주.

특히, 그 주문 물량이 빠르게 줄어들수록 깜짝 놀란 개미들은 자신의 보유 물량들을 황급히 던졌고.

1,015원대 주문 물량이 사라지는 속도는 눈부실 정도로 빨라졌다.

그 와중에 차트에 빠르게 추가되는 주문 물량과 거래 체결되는 물량이 격렬한 사투를 벌이는데.

마침내 1,015원대의 주문 물량 숫자가 0을 찍으며 고갈되는 순간.

아찔한 주가 폭락이 발생할 것만 같았다.

실제, 일시적으로 주가가 1,010원대를 찍긴 했는데.

바로 이때, 1,015원대 쪽으로 30만 주의 매수물량이 다시 들어오면서 원점 복귀하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나는 두 눈을 크게 떴고, 심장이 쿵쿵 뛰었다.

또한, 동물적으로 타다닥! 소리를 내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주문가 1,020원]

[주문량 10만 주]

딱!

바로 마우스를 클릭했고.

이때 상방 매수를 택했기 때문에 거래 주문은 바로 체결되었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그렇듯 작은 창이 뜨며 매수체결 사실을 알려줬는데.

이후, 갑자기 거래 움직임이 사라지는 것 같더니 차트도 조용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대략 7초가 지나갈 무렵,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때, 나도 모르게 팔짱을 끼며 모니터를 쳐다봤고,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거대한 헷지펀드들이 아니고선 내 상대가 될 수가 없다.

이건 단순 단타가 아니라 약간의 예술이라고 해야 하나.

특히, 투자금이 작은 상태라 안정적인 분산매수는 단순 개미들의 전유물일테고.

내 포지션은 다르다.

지금 폭발할 듯 치솟는 주가의 모습.

우와아아!

1,025원.

1,035원.

1,050원.

1,075원.

1,125원.

1,155원.

1,225원.

바로 이거야!

이 맛이지!

이 맛 때문에 내가 황제 개미가 되었다.

그 돈으로 훗날 공부도 다시 시작할 수 있었고.

그 돈으로 대중적 지명도 역시 얻게 되었다.

다시 시작한 투자.

이 인생의 첫 투자.

첫 투자는 그렇듯 생각보다 잘 되고 있는 모습이었고.

하! 고시원만 아니어서도 고함이라도 지를 텐데.

약간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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