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물이 되어버린 투자자-2화 (2/138)

2화 황제의 귀환

<1>

부들부들 떨다가 다시금 눈을 떴다.

이건 정말 지독한 악몽을 꾼 것 같은 느낌이다.

온몸에 땀이 축축하다.

그 땀이 이불에 닿아 안 좋은 냄새가 사방에 진동한다.

억지로 눈을 감고 있다가 나는 할 수 없이 일어났다.

도저히 버틸 수가 없다.

그 냄새 때문에.

너무 좁은 침대 때문에.

“하아, 몇 시지?”

문득 시계를 봤다.

저녁 7시 35분.

이미 해가 저문 시각.

‘밖은 겨울이라 춥겠지?’

시간을 거슬렀다고 해도 하필 겨울이라니.

젠장!

서러워죽겠네.

그냥 콱 다시 죽어버릴까.

하지만 생각과 달리, 이것저것 옷들을 챙겨입었다.

잠시 후, 밖으로 나갔다.

3층 계단을 밟고 밖으로 나가자, 하얀 눈이 내리는 서울 밤거리가 내 눈에 비쳤다.

인생이 참 뭣하지 않은가.

최고의 위치에까지 올랐다가 한순간 추락했다.

그런데 지금 내 모습은?

마치 나한테 다시 해 보라고.

누군가가 다시 기회를 줬다.

인생이 뭐 반복 회차인가.

복습, 예습, 그런 게 있나.

결국, 고달픈 인생을 다시 살아보라고.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다시 기회를 준 것이다.

‘근데 도대체 몇 년도야?’

속으로 외친 뒤 나는 쓴 미소를 지었다.

구태여 확인하지 않아도 지금이 언제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내 초라한 신세.

이걸 보면 그때가 언제인지 나는 너무나도 잘 알 수밖에 없다.

#

나, 김한수!

2009년 12월 14일.

다시 화학공장 생산기술팀 고졸 직원이 되었다.

화려했던 그때와 비교한다면 마치 인생의 밑바닥으로 내려온 것과 다름없는 변화였다.

<2>

“야, 김한수! 이 새끼! 뭐야! 갑자기 무슨 사표?”

“죄송합니다. 반장님.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야! 너 이러기냐? 인마! 내가 너 얼마나 신경 써 줬는지 몰라? 핏덩이 같은 새낄 교육시켜 제대로 만들어놨더니 어딜 도망가?”

“반장님! 근데 생각하시는 거, 그런 거 절대 아닙니다.

“야! 이직하는 거 아냐? 회사 어디야!”

“반장님, 그런 게 아니라, 좀 다른 일들을 해보려고요.”

“다른 일 뭐? 야! 정덕아! 내가 팀장한테 가볼 테니까, 이 새끼 좀 잡고 있어! 야! 김한수! 내가 말해서 사표 다시 받아올게. 인마! 내 밑에 있는 새끼들은 내가 다 챙겨. 알아?”

‘에고. 죄송합니다. 김 반장님.’

나도 모르게 머리를 다시 숙였다.

갑자기 사표를 내겠다고 하니, 너무 흥분하신 것 같다.

사실, 저분은 무척 고마우신 분이 아닌가.

이 회사에 다니며 나는 무척 많은 도움을 받았고, 인생 경험 역시 많이 배웠다.

물론, 내가 이 회사를 퇴직한 것은 바로 이 무렵이 아니었다.

3년 뒤, 이 회사가 부도나면서 쫓겨나듯이 이 회사를 떠나게 된다.

그때, 눈앞의 저 우락부락한 김창식 반장은 울고불고하다가 나중에 철물점을 차렸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나는 좀 더 이른 시기에 퇴사를 결정한 상태다.

“반장님, 끝나고 술 한잔하시죠. 제가 사겠습니다! 정덕아! 내가 살게. 동생들, 형님들한테도 다 말씀드려. 같이 다 가자.”

“근데 괜찮으세요? 사람도 많은데.”

“괜찮아.”

공장 근처에 있는 삼겹살집.

아마 이 무렵 삼겹살 가격은 아주 쌀 것이다.

해외 수입이 확대되면서 수입 삼겹살도 많이 들어왔고.

대략 1인분 가격이 4천 원 남짓 될 것이다.

이런 삼겹살을 이 공장에 다닐 때 자주 먹다 보니, 아직도 그 가격을 잊지 못한 상태다.

“근데 진짜 갈 거냐?”

다시 묻는 김창식 반장.

“네. 죄송합니다.”

나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하아, 미치겠네.”

거친 한숨 소리를 내다가 그는 내 어깨를 갑자기 탁! 쳤다.

“정말 갈 거면, 너랑 나랑 끝이다.”

“반장님! 제발요. 왜 그러십니까?”

“인마! 니가 그렇게 할 수가 있냐? 너도 여기서 뼈를 묻을 거라며?”

“반장님, 그건···.”

“잘 났다. 잘 났어. 그래, 잘 가라! 잘 가! 내가 널 다시 보나 보자!”

휙 고개를 돌리며 빠르게 걸어서 사라지는 김창식 반장.

황급히 뛰어가 잡으려고 했으나 갑자기 정덕이 내 팔을 잡았다.

“형! 그만둬요. 반장님 좀 내버려 둬요.”

“야! 나도 힘들다.”

“반장님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저도 지금 기분이 안 좋은데. 우린 팀웍이 얼마나 좋아요? 아시잖아요? 근데 형이 나가면 앞으로 어떡해요? 불량 나오면 그거 다 형 때문이에요.”

“야, 그만하자. 그만!”

나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간단히 생각했는데, 사표 내기가 왜 이렇게 힘들까.

#

“김한수씨! 총무과로 좀 오세요!”

“김한수씨! 경리과에 잠깐 오세요!”

“김한수씨! 물품 반납해 주시고, 파손된 것은 퇴직금에서 제합니다.”

“김한수씨! 퇴직 같은 건 적어도 두 달 전에 알려주셔야 하는데, 이게 대체 뭡니까!”

“김한수씨! 여기 여기 사인해 주시고, 명찰 반납해 주세요.”

“김한수씨! 김한수씨!”

쉴 새 없이 들려오는 목소리들.

계속해서 여기저기 불려 다녔다.

비록 갑작스럽게 사표를 제출했으나.

임시직 직원들도 제법 많은 공장이다 보니.

정규직인 내가 던진 사표는 이내 수리되었다.

그래도 이것저것 다 처리되고 나자, 나도 모르게 온갖 만감이 교차되었고.

지난 인생의 경험들이 떠올라 약간 울컥해졌다.

사실, 나는 인생 바닥에 있다가 갑자기 인생 최고의 위치로 솟구쳤고.

그러고는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다시 그 시작점에 서게 되자, 정말 기분이 묘해져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한수 형! 근데 반장님, 오늘 술 안 마시겠대. 완전히 삐지신 것 같은데.”

잠시 후, 정덕이 다가와 넌지시 사정을 전해주었다.

이때,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정덕을 가만히 쳐다봤다.

“형! 그냥 오늘은 가는 게 어때? 다음 주에 만나서 같이 마시자. 알잖아? 지금 물량 딸려서 밤새 생산 진행해야 하는 거. 주말도 없어. 반장님도 일 때문에 오늘은 절대 술 못 마신대.”

이렇게 생산에 집중할 때는 2교대가 1.5교대로 바뀌게 된다.

그땐 임시직, 정규직 직원 모두가 합심해서 생산에 나서야 하는데.

중소기업이라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럴 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알았어. 내가 연락할게.”

“형. 수고 많았어. 회포는 다음에 풀자!”

“오케이. 들어가.”

잠시 후, 나는 내 짐들을 넣은 큰 배낭을 메고서.

공장에서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어느덧 오후 4시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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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내가 사는 작은 고시원.

나는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뒤 그곳에 도착했다.

사실, 서울 외곽에 위치한 이 고시원은 시설이 그렇게 좋지 않은 편이고 화장실과 샤워실도 모두 공용이다.

싼 맛에 산다고 하지만, 밤에는 끽소리조차 낼 수가 없다.

방음 자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고시원 내 방에 들러, 나는 회사 짐들을 풀었고. 이때 버릴 것과 팔 것들을 분류했다.

특히, 팔 수 있는 것들은 바로 사진을 찍은 뒤, 중고 거래 사이트에 올려놨다.

그런데 그 일을 마치기까지 시간이 다소 걸렸다.

바로 중고 노트북이 너무 더디게 움직여,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이다.

문제는 이런 저사양 노트북으로는 투자행위를 할 수가 없다.

노트북 화면 역시 너무 작은 데다가.

노트북 메모리도 너무 부족해 그 외 시간에 각종 분석을 하고 각 자료를 저장하는 게 아마도 벅찰 것이다.

그냥 괜찮은 중고 데스크톱 한 대를 새로 사고, 거기에 모니터 서너 대를 설치하면 딱 맞는데.

이 고시원 방은 절대 그런 규모가 아니었다.

‘아냐, 될 것 같기도 한데.’

책상 우측에 놓인 책장을 문 쪽에 내려놓고 거기에 모니터들을 놓으면 될 것이다.

그렇게 하고 나면, 의자 뒤쪽의 작은 공간은 거의 사라지게 된다.

거의 빈틈 없이 책상, 의자, 책장, 침대 형태로 방이 꽉 차게 된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그 방법밖에 없다.

또한, 방음 스펀지 계란판을 사서 벽에 붙여둬야 할 것 같다.

낮 시간 동안이라도 마우스 클릭 소리가 무척 요란할 텐데.

방음 세팅이 아마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 D-day는 언제로 잡을까.

한쪽 벽면에 매달려 있는 낡은 달력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나는 최종결정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오늘 당장 발품을 팔아 컴퓨터와 모니터 세팅을 하고, 계란판도 사서 붙여야겠다.

그런 뒤, 내일은 증권사를 방문하고 증권계좌를 바로 만들 생각이다.

그러면 바로 주식 투자가 시작된다.

특히, 좀 더 빨리 투자를 시작한 만큼 유리함도 있다.

형체가 없는 불확실성!

바로 코인 같은 것도 내가 좀 더 일찍 만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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