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7화
아무리 다수의 궁수가 포위하고 화살을 날린다고 해도 마스터의 무력은 그걸 막을 수 있었다.
빠르게 검을 휘둘러서 화살을 다 막아낸 그는 그 와중에 클라우디아를 묶고 있는 밧줄을 끊어내기까지 했다.
“여보….”
“클라우디아.”
그는 자신의 아내를 한 팔로 안고 다른 한 팔로는 여전히 언제 날아올지 모를 화살을 경계했다.
“보고 싶었어요. 정말….”
울먹이며 말하는 클라우디아의 모습에 맥카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많이 야위기는 했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의 모습 그대로였다.
“여기서 구해주겠소. 내 뒤를 따라오….”
말을 하던 맥카시는 순간 뱃속에서 화끈한 느낌을 받고 말을 잃었다.
그리고 그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을 조우했다.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가….
목숨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고 한때 자신이 속했던 나라를 배신하면서까지 선택했던 그녀가….
자신의 배에 비수를 꽂아 넣은 것이다.
“미안해요. 여보. 하지만 역시 나는 살고 봐야 하지 않겠어요.”
“클…. 라우디아….”
“딱히 당신이 처음은 아니야. 내 발판이 되어서 죽어주는 남자 말이야.”
그녀는 웃으며 맥카시에게서 떨어졌다.
이걸로 레이라와의 약속은 지켰다.
허점을 노려서 맥카시를 죽였으니 이제 자신은 자유의 몸일 터이다.
그런데….
“나를 속였다는 건가?”
맥카시는 배에서 피를 흘리긴 했지만 아직 죽지 않았다.
“…….”
“대답해. 나를 속였나?”
“…·나…. 나는…. 나는….”
클라우디아는 크게 당황했다.
단검은 분명 들어갔다.
그리고 치사량이 가까운 독이 듬뿍 묻어 있기도 했다.
그런데 어째서 저 남자는 살아 있단 말인가?
그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유를 말하자면 클라우디아의 계산 부족이었다.
이 악녀는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죽여 봤고, 자신이 직접 손을 더럽혀 보기도 했다.
하지만 자기 손으로 마스터를 죽여 본 적은 없다.
마스터의 신체는 보통 사람과는 격이 다르다.
독에 대한 저항력부터 신체의 내구성까지 모두 말이다.
전쟁에 나오기 위해서 갑옷을 입고 있는 맥카시를 상대로 가녀린 여성이 찌른 비수가 과연 얼마나 박힐까?
아무리 무방비 상태였다고 하지만 근육을 약간 뚫었을 뿐이고 내장에 닿지도 않았다.
계획이 틀어졌다고 생각하자 클라우디아는 크게 당황했다.
그리고 맥카시는…·.
“그래. 그랬다는 건가?”
모든 것을 체념한 눈을 했다.
그러고는…·.
스팟!
한 차례의 섬광이 번뜩였다.
클라우디아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랐다.
몰랐지만….
어쩐지 세상이 점점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어… 왜…?’
툭!
머리가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그녀가 했던 마지막 생각은 이게 다였다.
자신의 미모를 이용해서 수많은 남자들을 유혹하고 조종하며 살아온 악녀.
한때는 레스터 왕국의 정계를 치마폭에 감싸 안았던 클라우디아 바모스.
그녀의 최후는 자신이 이용하던 남자에 의해서 마무리 지어졌다.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최후였다.
“…….”
맥카시는 극도의 허무감에 빠졌다.
그는 어려서부터 천한 태생이었고 자신의 실력만으로 출세했던 검의 천재였다.
하지만, 그건 그의 대외적인 능력일 뿐이고 인간 맥카시는 소중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텅텅 비어 있는 인간에 불과했다.
그랬던 맥카시에게 처음으로 다가와서 가슴 깊숙하게 들어왔던 것이 클라우디아였다.
그녀를 위해서 나라를 배신했고, 신분도 바꿨다.
그녀를 위해서 전쟁터에 뛰어들고 목숨을 걸고 그녀를 구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자신을 공격했다.
사실, 그녀에게 죽는다고 해도 유감은 없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은 진심이었다.
맥카시에게 있어서 클라우디아 바모스는 유일하게 잃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제까지 속삭였던 그 수많은 사랑과 애틋한 추억이 모두 거짓이었다면?
그것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절망이었고 자신의 전부가 사라지는 고통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무의식중에 검을 휘둘렀다.
마치 지금의 잔인한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것처럼 그의 검은 클라우디아의 목을 날려 버렸다.
“…….”
무력감과 허탈감 속에서 맥카시는 그냥 멍하니 허공만 바라봤다.
마치 길을 잃어버린 어린애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그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조차 판단할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 한 명의 남자가 다가왔다.
“맥카시 오브라이언.”
스트라부스 왕국 시절에 그의 이름을 부르며 나타난 그는 철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기사였다.
“너는….”
맥카시는 이 남자의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잊을 수 없을 만큼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검을 들어라.”
“…그래. 그런가?”
맥카시는 자신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어울리는 남자가 나왔다고 생각했다.
“살아 있었군.”
맥카시는 검을 들고 철가면의 기사에게 말했다.
“라이언 카텔.”
그 말에 철가면의 기사는 자신의 투구를 벗었다.
그러자 드러난 것은 과거 스트라부스 왕국의 수호신으로 이름을 날렸던 라이언 카텔 후작의 얼굴이었다.
그는 복수심에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맥카시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놈의 목을 죽여 망국의 원한을 갚겠다.”
과거 스트라부스 왕국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가장 큰 결정타를 남겼던 것은 맥카시의 배신이었다.
라이언 카텔 후작은 그것을 절대 잊어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런 카텔 후작의 모습을 보고 맥카시는 씁쓸하게 말했다.
“나라를 위한 충정인가? 의미 없는 행위라 생각했는데 차라리 그게 나았을지 모르겠군.”
“죽여주마.”
그리고 라이언 카텔 후작과 맥카시가 격돌했다.
라이언 카텔.
그는 스트라부스 왕국의 수호신이라 불릴 정도로 훌륭한 기사였다.
하지만 아군의 배신으로 인해서 나라가 무너지고 자신은 패배한 상태로 간신히 목숨만 건져서 제국에 망명을 했다.
제국에 망명을 하며 그가 황제에게 바랐던 조건은 딱 하나.
자신의 조국을 무너트린 공화국에 대한 복수였다.
앤드루스 제국의 힘이라면 그게 가능하다 생각하고 자신의 몸을 던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제국은 실패했다.
오만하고 나태한 제국은 힘은 있을지언정 전쟁을 수행하는 능력이 떨어졌고 전쟁은 대패했다.
그때 아군의 후퇴를 돕기 위해서 결사대를 자처.
최후미에 남아 지크프리트를 상대로 시간을 끌어서 세바스티안 공작이 무사히 후퇴하도록 도왔다.
그리고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나타났던 것이 밀턴이 이끄는 레스터 왕국이었다.
거기서 밀턴이 지크프리트를 물리치며 라이언 카텔은 목숨을 건졌지만 생사를 헤맬 정도로 심각한 중상을 입었다.
기적적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의사는 그에게 다시는 검을 잡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무인이 다시는 검을 잡을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크게 절망했다.
하지만 그런 라이언 카텔에게 밀턴이 말했다.
[회복을 위해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소. 남은 건 하느냐? 하지 않느냐? 그대의 의지뿐이지.]
그 한마디에 카텔 후작은 다시 일어섰다.
처음에는 두 발로 서서 걷는 것도 힘들었다.
6개월이 지나고 나서 간신히 검을 잡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아서 3류 기사 한 명 이기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카텔 후작은 이를 악물었다.
‘아직 포기할 수 없어.’
나라를 잃은 복수를 해야 했다.
이미 멸망한 스트라부스 왕국이었지만 그 나라는 자신의 조국이다.
한때 그 나라에 충성을 바치고 검을 들었던 기사로서 조국의 멸망에 결정타를 날렸던 배신자만큼은 용서할 수 없었다.
이를 악물고 일어선 카텔 후작은 점점 몸을 회복해 갔다.
중간에 비앙카가 공화국의 비약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얻은 회복약은 그의 몸을 점점 되살렸고 마침내 2년에 걸쳐서 본래의 무위를 회복했다.
그리고 라이언 카텔 후작은 가면을 쓰고 밀턴에게 맹세했다.
[이 가면을 쓰고 있는 동안, 라이언 카텔이라는 이름은 봉인하겠습니다. 그저 이름 없는 기사로서 대공 전하에게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라고 말이다.
밀턴이 물었다.
언제까지 가면을 쓰고 있을 생각이냐고?
그 말에 라이언 카텔 후작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지크프리트와 맥카시 오브라이언. 이 둘 중에 최소한 한 명의 목을 거두는 그날까지입니다.]
[좋아. 그럼 나도 그날까지는 그대를 무명의 기사로 고용하지.]
그렇게 라이언 카텔 후작은 밀턴의 밑에서 와신상담의 세월을 보내게 된 것이다.
바로 오늘 이 순간까지 말이다.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맥카시 오브라이언!!”
“…….”
거칠게 몰아붙이는 라이언 카텔에 비해서 맥카시는 그저 수세로 일관할 뿐이었다.
검을 들기는 했지만 그는 정상적으로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클라우디아가 남긴 검의 독은 점점 그의 몸을 좀먹어 갔고….
무엇보다 그의 정신이 지금 온전하지 못했다.
솔직히 카텔 후작의 검에 목이 떨어져도 상관없다 싶은 심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을 들고 싸우고 있는 이유는 그저 막연한 본능일 뿐이었다.
이래서는 승부는 뻔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라이언 카텔 후작은 맥카시에 한해서만큼은 컨디션이나 부상 여부를 고려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이건 결투가 아니라 배신자를 처벌하기 위한 복수이기 때문이다.
“죽어라!”
맥카시의 검 끝이 처진 것을 놓치지 않고 라이언 카텔 후작의 검이 섬광처럼 번뜩였다.
콰아아앙!
강렬한 충돌 결과 맥카시의 손에서 검이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라이언 카텔 후작은 그대로 어깨로 맥카시의 몸통을 들이박았다.
쿠웅!
“크윽….”
다리 하나를 뻗어서 상대방의 발목 안 축을 받치면서 이어진 절묘한 숄더 차지.
맥카시는 그대로 뒤로 넘어가 버렸다.
그리고 이어서 라이언 카텔 후작이 강철 부츠를 신은 발로 맥카시의 가슴을 강하게 짓밟았다.
콰직!
“으윽…. 쿨럭….”
맥카시의 입에서 핏물이 한 움쿰 올라왔다.
라이언 카텔 후작은 냉엄한 눈을 하고 맥카시에게 말했다.
“지옥에서 전하께 참회해라.”
“…….”
카텔 후작의 입장에서는 죽기 전에 후회의 한마디라도 있기를 바랐지만….
이미 맥카시는 눈이 죽어 있었다.
“제길.”
푸욱!
짧은 욕을 내뱉은 카텔 후작은 그대로 검으로 맥카시의 목을 찔러 버렸다.
과거 스트라부스 왕국을 멸망으로 몰아갔던 배신의 기사.
그리고 공화국에서 대장의 직위에 오른 인물치고는 참으로 허무한 최후였다.
맥카시 오브라이언의 전사.
이것이 가져온 결과는 상당히 컸다.
“공화국의 맥카시가 죽었다!”
“레스터 왕국의 라이언 카텔 후작님이 맥카시를 죽였다.”
“와아아아아아!!”
병사들은 크게 사기를 올렸다.
그리고 한창 돌입 중이던 고스트 두 개 조는 그런 병사들에게 거친 반격을 받아야 했다.
“큭…. 버텨라! 거점을 양보하지 마라! 아군이 올라올 때까지 버텨라!”
고스트 6조의 조장은 자기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 부하들에게 비약을 복용하고 버티게 했다.
병사들의 사기가 높아봤자 결국 병사다.
북부 기사단의 수준이 꽤 높다고 하지만 비약을 복용한 고스트보다 강한 것은 아니다.
‘이대로 버티며 성벽 위의 아군을 늘리면….’
콰아아앙!
그렇게 생각하던 고스트 조장의 귓가에 강렬한 굉음이 들렸다.
서둘러 굉음이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레스터 왕국의 라이언 카텔이 여기에 있다!”
“빌어먹을….”
이제는 가면을 벗고 당당하게 이름을 밝힌 카텔 후작이 고스트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 혼자라면 어찌 어찌 감당하겠지만….
“푸하하하하!! 포레스트 대공의 충신 릭 스토리도 여기 있다!”
“북부 기사단 전원 물러나지 마라! 도련님 출신 소리 듣기 싫거든 이 악물고 근성을 보여!”
크게 광소를 터트리며 앞장서서 실력 이상의 기세를 보이는 릭, 북부 기사단의 대열을 정돈하며 고스트를 치밀하게 압박하는 토미.
오랫동안 밀턴의 곁에서 전쟁을 수행한 이 둘은 어느새 어엿하게 자기 몫을 다하는 기사가 되어 있었다.
이들이 이끄는 북부 기사단이 고스트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하자 결국 6조와 7조 대원들은 점점 쓰러져 갔다.
“빌어먹을!”
6조의 조장은 이렇게 된 이상 자기 목숨을 던져서 라이언 카텔이라도 죽이겠다고 결심했다.
과거 고스트 6조는 한 번 제롬에게 전멸 당한 적이 있었다.
그 후에 지크프리트가 다시 인원을 보충해서 다시 만들기는 했지만 기존의 고스트에 비하면 조금 실력이 떨어진다는 내부 평가가 있었다.
그러나 6조의 조장만큼은 예외다.
그의 실력은 다른 고스트 조장과 비교해도 결코 모자라지 않았다.
비약을 복용하자 그는 익스퍼트 최상급에 가까운 실력을 끌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