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주의 게임-243화 (243/257)

제243화

“전하. 전서구가 한 마리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전령을 직접 보내. 그리고 당장 수도 인근의 모든 영지에 비상 동원령을 내려라. 원정 중에 있는 포레스트 대공에게도 연락하라.”

“옛!”

레이라의 지시에 신료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아직 뭐가 문제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동부 지역의 영지에서 연락이 되지 않는다면 생각해 볼 것은 하나였다.

“지크프리트…. 이걸 마지막 기회라고 여겼다는 건가?”

레이라의 고운 이마가 찡그려졌다.

이것이 얼마나 큰 위기인지는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들켰군.”

지크프리트는 레이라가 보낸 전령들을 처리한 후에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전령은 놓치지 않고 모두 처리했습니다. 전서구 역시….”

제이크의 보고를 받으며 지크프리트가 말했다.

“거기까지 했으면 이미 들켰을 것이다. 눈치가 보통인 여자가 아니야. 데리고 사는 밀턴 포레스트가 용하다 싶을 정도더군.”

레이라는 직접 만난 것은 한 번뿐이었지만 그녀가 어떤 여자인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지크프리트가 보기에 레이라는 어떤 의미로 자신과 동류라 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자기 목적을 있으면 그걸 반드시 성취해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

솔직히 아무리 예쁘다고 해도 그런 여자하고 한 이불 덮고 사는 건 사양하고 싶었다.

“그녀라면 수상하다고 느낀 순간 바로 움직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속도가 중요하다. 후속 병력에게 바로 따라붙으라는 명령을 내려라.”

“옛!”

지크프리트는 진군을 서둘렀다.

레스터 왕국의 동부 국경 지대를 돌파하고 반 이상을 조용하게 이동했지만 은밀하게 이동하는 것은 여기까지가 한계인 듯했다.

지금부터는….

“힘으로 뚫는다.”

그리고 지크프리트의 무지막지한 진격이 시작되었다.

“타이론 백작님. 공화국의 공격입니다.”

“허둥거리지 마라. 성문을 닫고 수성전에 들어가라!”

레스터 왕국의 수도로 향하는 관문 도시를 맡고 있는 타이론 백작은 이미 수도에서 적의 공격에 대비하라는 공문을 받았다.

그는 즉시 인근의 병력을 모으며 수성 장비를 성벽 위에 배치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본때를 보여주마. 공화국 놈들!”

수도로 향하는 관문 도시를 담당하고 있는 타이론 백작의 의기는 좋았다.

실제 페일런 공작의 밑에서 전쟁을 경험해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크프리트를 경험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제이크.”

“예. 대총통 각하.”

“네가 직접 선두에 서라. 오늘 안에 저 성을 무너트린다.”

“옛!”

지크프리트의 명령을 받은 제이크는 고스트 3조를 거느리고 직접 행동에 나섰다.

“성벽을 넘어 성문을 연다. 뒤처지지 마라.”

“옛!”

그리고 제이크는 고스트 3조와 함께 직접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올랐다.

단번에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올라간 그는 거대한 투핸디 소드를 휘두르며 압도적인 무력으로 성벽을 접수했다.

“목숨이 아까운 자들은 비켜라!”

성벽 위에 마스터가 올라왔을 때 수성하는 쪽에도 같은 수준의 무력을 가지고 있는 마스터가 없다면 상황은 크게 불리해진다.

제이크는 양 떼 사이에서 날뛰는 늑대처럼 거칠게 날뛰었고 그런 제이크를 막기 위해서 타이론 백작은 직접 나섰다.

“이 침략자 놈!”

용감하게 달려드는 기세는 좋았지만 실력이 받쳐주지 않는 이상 무모할 뿐이었다.

“네가 이 성의 책임자인가?”

제이크는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하며 타이론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의 거대한 투핸디 소드가 허공에 섬광을 그었다.

촤아악!

타이론은 최후의 단발마도 남기지 못하고 그대로 목이 떨어졌다.

그리고 제이크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성주의 목을 쳤다! 레스터 왕국군은 즉시 항복하라!”

그 순간 레스터 왕국군은 크게 패닉에 빠졌고, 반대로 공화국의 사기는 크게 올랐다.

두 시간 후.

“완전 점령했습니다.”

“따라온 후속 부대에서 5,000을 남겨서 마무리 짓게 한다. 본대는 즉시 움직인다.”

“옛!”

성 하나를 무너트렸음에도 조금의 휴식도 없이 지크프리트는 앞으로 나아갔다.

타이론 요새를 시작으로 지크프리트의 가공할 진격전이 시작되었다.

반나절 만에 타이론 요새를 무너트리고 바로 다음날 에스터크 성을 무너트렸다.

그리고 그날 새벽 야습으로 탈리아 성을 무너트렸고, 그 다음날 정오에는 로니카트 성이 무너졌다.

레스터 왕국으로 향하는 최단거리를 거침없이 진격하고 있는 것이다.

요새와 성을 담당하는 지휘관들은 최선을 다해서 싸웠지만 아무도 지크프리트를 막을 수는 없었다.

애당초 레스터 왕국 사람들은 지크프리트에 대한 경계심이 너무 적었다.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공화국의 지크프리트이지만 레스터 왕국에서는 지크프리트의 천적이라고 평가되는 밀턴 포레스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크프리트가 아무리 대단해도 자신들은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밀턴이 원정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지크프리트가 수도를 노리고 최단거리로 진격을 하자 깨달았다.

왜 지크프리트가 전쟁의 천재라고 불리는지….

왜 공화국의 역사상 최대의 걸물이라고 불리는지를 말이다.

아무도 지크프리트를 막지 못했다.

아니 막는 건 고사하고 하루도 버티지를 못했다.

이제 지크프리트가 이끄는 군대는 후속 부대와 합류해서 그 규모를 크게 불렸다.

총 8만의 공화국군이 레스터 왕국의 수도로 진격하고 있었다.

8만을 이끄는 총사령관은 전쟁의 귀재인 지크프리트.

거기에 마스터인 제이크와 공화국 최대 전력이라 할 수 있는 고스트.

마지막으로 후속 부대를 이끌고 온 맥카시 오브라이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세상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지크프리트의 측근인 엘리제 역시 같이 행동하고 있다.

지크프리트는 정말 모든 전력을 집중시킨 것이다.

레스터 왕국의 수도는 몹시 불안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공화국군이 하루가 멀다 하고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불안한 기색이 역력해진 것이다.

그리고 신하들은 레이라 여왕에게 어서 피난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레이라 여왕은 그 권고를 일축했다.

“어리석은, 지금 여기서 우리가 도주한다면 공화국이 포기할 것 같은가?”

레이라가 보기에 지금 지크프리트의 목적은 수도 함락이 아니다.

자신과 밀턴의 아이들을 사로잡아서 포로로 삼으려고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수도를 함락시키는 것은 부차적인 수단이고 말이다.

“하지만 전하, 이대로 수도에서 적을 맞이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수도 방위군의 전력은 2만이 약간 넘습니다. 공화국을 상대하기에는 한참 부족합니다.”

“모쪼록 왕족으로서 가지는 무게를 인지해 주소서.”

신하들은 레이라에게 가족과 함께 피난할 것을 거듭 권고했지만 레이라는 강경했다.

수도를 피난한다고 지크프리트의 마수를 피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리고 설령 그렇다고 해도 수도가 철저하게 파괴당하면 밀턴이 이번 원정으로 얻은 이득이 거의 제로로 돌아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밀턴이 돌아왔을 때 복수를 위해서 공화국과 무리한 전쟁을 한다면 그때야말로 이 시대는 언제 끝날지 모를 전화의 소용돌이 속에 잠기게 될 것이다.

[이걸로 전부 끝내버릴 거야.]

전쟁에 나가기 전에 밀턴이 레이라를 안아주며 한 말이었다.

레이라는 그 말을 기억했다.

‘내 개인적인 복수는 거의 다 했어. 나라가 이만큼 부강해졌으면 왕족으로서의 의무도 완수했어. 그렇다면 남은 인생은 그저 그의 아내로 안온하고 평온하게 살고 싶다.’

레이라 스스로 생각해도 이런 자신이 생소했다.

안온함과 평온함을 바라고 한 남자의 품 안에 안겨서 사랑을 느끼고 아이들을 보며 모정을 느끼는 삶….

이런 삶은 자신과 평생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이제는 바랐다.

너무나 바라서 이걸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포기해도 괜찮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때 대전 밖에서 급하게 전령이 들어왔다.

“전하, 페일런 공작 전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오오오!”

“페일런 공작 전하께서?”

신료들은 크게 반색했고 레이라 여왕도 다급하게 말했다.

“북부 기사단과 북부군도 함께인가?”

“빠른 이동을 위해서 북부군은 기병을 위주로 한 1만 명밖에 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북부 기사단은 전원 데리고 왔습니다.”

대전 안에 들어오며 페일런 공작은 직접 대답했다.

“페일런 공작.”

“다행이 늦지 않았습니다. 전하.”

레이라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의 손을 직접 잡았다.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이 암울한 상황에서는 절망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페일런 공작의 합류라는 것은 그야말로 희망의 빛이었다.

“전하, 페일런 공작 전하께서 합류했다고 해도 아직 전력이 부족합니다.”

“그렇습니다. 공화국군에 포함된 마스터만 해도 세 명입니다. 아무리 페일런 공작님이라고 해도 혼자서 그들을 모두 감당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신하들의 말에 레이라 여왕이 대답하기 전에 페일런 공작이 먼저 말했다.

“나 혼자 온 것은 아닐세.”

그리고 대전 안으로 한 명의 기사가 들어왔다.

“레이라 폰 레스터 전하를 뵙습니다.”

“당신은…?”

철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기사는 최근 레스터 왕국에서 활약했던 정체불명의 마스터였다.

그는 밀턴을 따라 원정을 나갔었지만 제국과의 전쟁이 안정화되자 보급선을 담당하기 위해서 후방으로 크게 빠져 있었다.

덕분에 그는 레스터 왕국의 위협을 듣고 누구보다 먼저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혼자 온 것은 아니다.

“보급 부대에서 빼올 수 있을 만큼은 빼왔습니다. 1만의 군대를 데리고 왔으니 수도 방위에 합류하겠습니다.”

“이로서 기존의 수비 방어군 2만과 합치면 4만이군. 공화국이 8만이라고 해도 수치상으로는 막을 만하오.”

페일런 공작의 말에 몇몇 신하들은 안색이 밝아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신하들은 여전히 비관적인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에 젊어 보이는 귀족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하, 수성이 전투에 유리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뭔가?”

말을 잇지 못하는 젊은 신하에게 레이라 여왕이 엄한 시선으로 다그쳤다.

그러자 그는 할 말은 해야겠다는 듯이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상대는 그 지크프리트입니다. 유감스럽지만 대공 전하를 제외하고는 그를 상대할 인물이 왕국에 없다고 판단됩니다.”

페일런 공작과 철가면의 기사.

두 명의 마스터를 눈앞에 두고 소신 있는 발언을 한다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 말 자체는 여러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었다.

실제로 그의 무례를 지적하는 자는 대전에 없었고 오히려 공감하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지크프리트가 보여주고 있는 가공할 만한 진격전이 레스터 국민들에게 깨닫게 해 준 것이다.

지크프리트가 얼마나 엄청난 괴물인지를 말이다.

그리고 젊은 귀족은 다시 말을 이었다.

“전하, 수도 방위를 고집하시겠다면 수성전은 수성전대로 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전하와 왕손들의 안위는 수도의 방위만큼이나 중요한 사안입니다. 부디 지금은 냉정하게 현실을 파악해 주십시오.”

소신 발언을 마친 귀족은 크게 허리를 숙이며 끝까지 자기 의견을 말했다.

레이라는 그를 향해서 말했다.

“경의 이름이 뭐였죠?”

“파테 백작가의 현 가주인 그라인드 파테라고 합니다.”

“생각보다 말을 잘하는군요.”

레이라는 그제야 상대가 누구인지 기억이 났다.

파테 백작가는 최근에 현 가주가 갑자기 급사를 하고 동생이 대신 가주의 자리를 이었다고 했다.

극히 최근의 일이라서 레이라도 미처 얼굴을 익히지 못했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제까지 존재감을 거의 숨기고 있었는데 지금 말을 하는 것을 보니 꽤 달변인으로 보였다.

‘제법 유능한 인물이야. 하지만…. 꺼림칙해.’

논리적으로 봤을 때 저 남자가 하는 말은 모두 맞았다.

하지만 논리적인 이유를 넘어서 뭔가 잘못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레이라는 오히려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피난은 없소. 나는 이 수도를 지킬 것이오.”

레스터 왕국의 수도 시민들은 몹시 불안했다.

지크프리트가 이끌고 있는 공화국군이 하루하루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화국 놈들이 여기 들어오면 어떻게 하지?”

“수도 방위군의 숫자는 2만밖에 안 된대. 적은 20만이 넘는데.”

“그런…. 그래서는 이길 수 있을 리 없잖아?”

“공화국 놈들은 점령지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아무도 살려두지 않는데 공화주의에 반감하는 자들은 모두 죽여 버린다고 하더군.”

“지금이라도 도망가야 하는 것 아니야?”

안 좋은 소문이 빠르게 퍼지면서 민심이 몹시 불안해졌다.

소문이 노골적으로 과장된 것을 확인한 레이라는 이것이 공화국의 뒷공작이라고 확신했다.

‘세작을 심어뒀군. 당연하다면 당연한가?’

아쉽지만 지금 세작을 찾아서 처리할 시간은 없다.

하지만 방치할 수도 없는 것.

불안한 민심을 바로잡기 위해서 그녀는 즉시 손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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