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0화
[베이커 고담]
기사 LV.7
무력 - 93 통솔 - 95
지력 - 77 정치 - 69
충성 - 00
특성 - 냉철, 인덕, 설득, 심안.
냉철 LV.5 : 전투 중에 전황 전체를 보는 안목이 높아진다. 현장 지휘관으로서의 유연함을 발휘해서 아군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인덕 LV.7 : 대중들에게 포상을 내리거나 연설을 함으로서 민심을 끌어올릴 수 있다.
설득 LV.7 : 뜻이 맞지 않는 상대의 의도를 자신 쪽으로 유리하게 돌려놓을 수 있다.
심안 LV.9(MAX) : 시력이 없어도 사물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 타인의 목소리나 행동에서 심리 상태를 파악할 수도 있다.
밀턴은 혹시나 싶어서 베이커 고담 후작의 상태창을 확인해 봤다.
‘기사치고는 특성이 좀 특이한 사람이군.’
인덕이나 설득 특성은 기사보다는 문관에게 어울릴 듯한 특성이었다.
그런데 고담 후작은 그 특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더구나 레벨도 꽤 높았다.
이건 그가 평소에 다른 사람을 설득하거나 다독이는 역할을 많이 맡아 왔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의 무력은 93이다.
제롬의 무력이 99인 것을 감안하면 승부는 뻔한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아! 그런 건가?’
밀턴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담 후작이 왜 결투를 신청했는지 깨달았다.
‘그래. 기사다 이거지?’
밀턴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만약 자신의 예상이 맞다면 고담 후작은 여기서 죽이기에는 너무 아까운 인물이다.
‘그렇다면….’
밀턴은 결심했다.
“결투를 원한다고 했지?”
“예. 그렇습니다.”
“그 말은 진심인가?”
“후회는 없습니다.”
“좋다. 그렇다면 받아 주지.”
밀턴이 결정하자 고담 후작이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레스터 왕국 최강의 기사와 싸울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응? 나는 그 정도는 아닌데?”
밀턴의 말에 고담 후작은 깜짝 놀라서 말했다.
“…·대공 전하께서 직접 나설 생각이십니까?”
“물론, 나도 명색이 마스터인데 대리 결투는 너무 없어 보이잖아?”
“아니, 하지만 당신은….”
“말이 많군. 이제 와서 무르는 건가?”
“…….”
고담 후작은 불시에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고 밀턴은 그런 고담 후작에게 말했다.
“하자고, 결투 말이야.”
결국 밀턴은 고담 후작과 검을 가지고 일대일로 마주했다.
제롬이나 바이올렛이 말렸지만 밀턴은 강경하게 고집을 부렸다.
“나를 믿어. 아무 일도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밀턴은 그렇게 고집을 부려서 울상을 짓고 있는 바이올렛을 달래고 결투의 자리에 나섰다.
그리고 두 사람이 마주하자 고담 후작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좋으니 상대를 바꾸지 않으시겠습니까?”
“나로서는 부족하다 이건가?”
“…그런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 시작하지.”
밀턴은 그렇게 말한 후에 검을 뽑아 자세를 잡았다.
고담 후작 역시 거기에 맞서 검을 뽑았지만 그의 표정에는 뭔가 억지스런 기색이 역력했다.
“먼저 가네.”
그리고 밀턴의 공격을 시작으로 둘의 결투가 시작되었다.
결투가 시작되고 밀턴은 평소의 그 답지 않게 상당히 공격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고담 후작은 처음에는 그 거친 기세에 당황하는 듯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스린 듯 침착하게 그 공격을 막아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결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공방이 어우러지면서 둘의 공격은 점점 빨라졌고, 이제는 보통 기사들은 육안으로 쫓기도 힘들 정도였다.
카카카카카카카카칵!
그저 흐릿한 잔상과 번쩍이는 빛의 궤적, 그리고 이따금 튀기는 오러의 불꽃만이 두 사람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테이커 후작님. 결투의 양상은 어찌 되고 있습니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숀이 제롬에게 전황을 물었다.
그의 육안으로는 누가 유리한지 파악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주군께서 조금 유리하시네.”
“과연, 대공 전하께서 이기실 수 있겠군요.”
“…이대로 가면 말이지.”
말을 하는 제롬의 표정은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이었다.
‘지금도… 왜지? 왜 저러는 거지?’
제롬이 보기에 지금 결투의 양상은 밀턴이 지배하고 있었다.
이건 좋은 일이지만 문제는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제롬이 보기에 고담 후작은 고수다.
힘이나 속도, 오러의 파괴력은 그저 그랬지만 맹인임에도 불구하고 전체를 파악하는 능력은 탁월했다.
오히려 맹인으로서 검을 갈고닦는 과정에서 생긴 그만의 장점일지도 몰랐다.
만약 제롬이 고담 후작과 싸운다면 이길 수는 있겠지만 그건 200합은 겨뤄야 가능할 것 같았다.
그 정도로 고담 후작의 검술 방어는 탁월했다.
거기에 비해서 밀턴의 실력은….
‘강해지기는 하셨지만, 고담 후작을 밀어붙일 정도는 아니야.’
제롬이 보기에 밀턴은 충분한 천재다.
아직 30대의 나이에 마스터에 도달했으니 어찌 천재 소리가 아까우랴?
다만, 밀턴은 일개 기사인 자신이나 고담 후작과는 다르다.
일국의 왕족으로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
몸이 두 개 아니라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일정 속에서 검의 성장은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지금 밀턴의 실력은 고담 후작보다 살짝 처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어떻게 밀턴이 고담 후작을 압도하는 걸까?
‘이상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기사인 제롬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결투를 하고 있는 밀턴은 고담 후작이 번번이 자신에게 선수를 양보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당신도 어지간히 우유부단한 인물이군.’
신중함도 이 정도면 병이다.
밀턴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공격 자세를 잡으며 고담 후작에게 말했다.
“시간을 더 끌어봐야 무의미하지. 이걸로 승부를 보자.”
“…·대공 전하. 정말 다시 생각해 주십…. 음?”
고담 후작은 말을 다 잊지 못했다.
밀턴의 몸에서 나오는 기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제대로 하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밀턴의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뿜어져 나오는 기세에 진심이 가득했고 공격 자세 역시 일격 필살의 의지가 가득했다.
“…음.”
결국 고담 후작도 자세를 잡았다.
그러며 그는 생각했다.
‘차라리 잘되었다.’
그리고 고담 후작 역시 자세를 잡고 오러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그런 고담 후작을 보고 밀턴이 빙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진작 그랬어야지.”
“…….”
“자, 그럼….”
“오시죠.”
고담 후작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밀턴의 몸이 정면으로 튕겨져 나갔다.
거기에 맞서서 고담 후작 역시 반보 앞으로 내딛으며 강한 일격을 내리쳤다.
둘 다 방어를 도외시하고 공격 일변도의 필살의 의지를 담아 검을 휘두른 것이다.
콰아아앙!
두 마스터의 정면충돌에 오러의 충격파가 터지고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그리고 드러난 광경은….
“…….”
“…….”
둘은 서로 침묵하며 상대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약간 떨어진 곳에서는 검이 떨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공격의 충돌을 이기지 못하고 서로 검을 떨어트린 듯한 모습이었다.
“무승부군.”
밀턴은 어깨를 으쓱하며 이제 어쩔 것이냐? 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고담 후작은 곤혹스런 표정을 하고 말했다.
“이미 알고 계셨군요.”
“뭐, 대강은 말이야.”
“알면서도 왜….”
“네가 아까우니까.”
“…·들어가서 마저 얘기하지.”
그리고 밀턴은 좌중을 향해서 외쳤다.
“이 결투는 무승부다. 모두 결과를 수긍하고 받아들이라!”
밀턴의 말에 주변의 기사들은 크게 복종했다.
“명에 따릅니다!”
그런 기사들 사이에서 제롬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과연, 그래서 주군께서 나서신 거군.”
제롬의 말에 옆에서 바이올렛이 물었다.
“뭔가 알겠나요? 테이커 후작.”
“예. 하지만 주군의 뜻인지라 입에 담을 수 없음을 양해해 주십시오. 대공비 전하.”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바이올렛은 수긍하며 나중에 밀턴에게 직접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밀턴과 고담 후작의 결투는 끝이었다.
결투가 끝나고 밀턴은 고담 후작과 함께 막사에 들어왔다.
그리고….
“워터포트산 와인 200년짜리지. 같이하겠나?”
직접 아끼던 와인을 따서 고담 후작에게 권했다.
“저를 포섭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밀턴은 부정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자 고담 후작이 괴로운 표정을 하고 말했다.
“저는 제국의 명가인 고담 후작가의 후예입니다. 제가 제국을 저버리면 그것은 가문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투를 통해 죽으려고 했나?”
“…….”
고담 후작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은 사실상의 긍정이었다.
고담 후작의 속내는 이랬다.
이 전쟁의 판도는 이미 기울었다.
레스터 왕국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었고, 무의미한 전쟁을 지속해 봐야 죄 없는 병사들이 죽을 뿐이다.
그러니 고담 후작은 항복이라는 선택지를 택했다.
하지만, 머리로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옳은 결정이라고 해서 그걸 순순히 따를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은 단순하지 않다.
인간에게는 실리만큼이나 자신의 신조가 중요한 법이기 때문이다.
신조라 함은 그 사람이 관철시켜 온 삶의 가치 그 자체이며, 그 인간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그걸 쉽게 저버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고담 후작의 신조라는 것은 곧 기사도와 귀족의 명예를 뜻했다.
그는 고담 후작가의 현 가주이며, 제국의 마스터로서 많은 기사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기사다.
그런 그가 적에게 항복을 한다면 그 항복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명예에 먹칠을 하게 된다.
그래서 고담 후작은 생각했다.
병사들의 목숨이라는 실리와 자신의 명예라는 신조를 동시에 지키는 길.
그것이 바로 결투 신청이었다.
항복을 해서 전쟁에서 패배를 수긍하되 자신은 결투에 나서서 제국의 기사로서 죽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밀턴에게 결투 신청을 했다.
그렇게 하면 레스터 왕국 최강의 기사인 제롬 테이커가 나올 것이고, 자신의 인생을 마지막을 장식하는 상대가 그라면 미련은 없을 듯했다.
그게 고담 후작의 뜻이었다.
명예를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골수 기사였기에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밀턴은 그런 고담 후작의 뜻을 알고 초를 쳐 버린 것이다.
밀턴은 고담 후작의 의도를 읽었을 때 생각했다.
‘이 남자 아깝다.’
이미 주변에 넘칠 정도로 우수한 인재를 거느리고 있는 밀턴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담 후작은 탐이 나는 인재였다.
원래 군주에게 있어서 인재라는 것은 사막의 물과 같아서 항상 목이 마르고 금방 또 원하게 되는 법이다.
그래서 이 남자를 살리고자 직접 결투에 나선 것이다.
원래 밀턴은 꼭 필요한 순간이 아니면 위험한 다리를 건너지 않는 성격이다.
하지만 이건 위험하지도 않았고 충분히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결투에 나선다고 해도 고담 후작이 자신을 죽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고담 후작이 밀턴을 죽이게 되면 그때는 항복이고 뭐고 없다.
제롬이나 바이올렛이 레스터 왕국군을 이끌고 제국을 초토화시켜 버릴 것이다.
무의미한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 항복을 결정한 사람이 그런 위험을 무릅쓸 일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도 돌다리를 두들겨 본다고 결투 초반에는 고담 후작의 의향을 타진해 봤다.
빈틈을 드러내며 무모한 공격을 하며 고담 후작이 반격을 할까 지켜봤지만 그는 철저하게 방어에 주력하며 싸웠다.
그건 이길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그걸 확인하고 나서 마지막 승부수로 던졌던 최후의 일격.
그때 고담 후작은 죽을 생각이었다. 제롬은 아니었지만 밀턴의 검에 죽음으로 인해서 제국의 기사로서 명예를 지킬 생각이었다.
그런데, 밀턴은 그런 고담 후작의 결과를 읽고 승부를 무승부로 만들어 버렸다.
고담 후작의 검을 날려 버린 후에 그대로 자신도 스스로 검을 손에서 놔 버린 것이다.
그를 죽이지 않고 결투를 끝내기 위해서 처음부터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완전히 파악한 것은 제롬 정도였다.
그리고 다시 지금.
밀턴은 향긋한 와인을 한 잔 마시며 말했다.
“애당초 말이지. 당신 생각이 너무 어중간해.”
“무슨 말씀이십니까?”
“항복해서 무의미한 전쟁을 피하고 병사들의 목숨은 피하며 자신은 죽어서 명예를 지킨다? 그렇게 어중간하게 행동하니 나한테 수가 읽힌 거야.”
“저로서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최선의 선택? 끔찍한 혼종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