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3화
“빌어먹을!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이냐?!”
참다못한 플로리안 공작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 하다니? 패고 있잖나?”
“…….”
순간 너무 당당하게 말해서 딱히 할 말이 없어져 버렸다.
“그리고 너희들은 맞고 있지.”
이어지는 바론의 말에 세바스티안 공작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결투에 임하는 방식에 너무 품위가 없고 야만적이다 생각하지 않나? 명색이 일국의 최강을 자처하는 자라면….”
“쿡….”
세바스티안 공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론은 피식 웃어 버렸다.
“품위라…. 전쟁터에서 품위? 미안하군. 30년 넘게 전쟁에서 굴렀지만 그런 얼빠진 말을 하는 인간은 처음이라서 말이야.”
바론의 조롱에 세바스티안 공작은 얼굴이 붉어졌다.
거기다 고담 후작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기사도를 모독하는 건가?”
평소 온화한 성격인 고담 후작답지 않게 목소리는 커다란 분노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난 공화국 사람이다. 당연히 기사도를 모독하지. 뭐 잘못됐나?”
“…….”
듣고 보니 이것도 맞는 말이긴 하다.
공화국은 신분 제도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당연히 기사 계급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 3대1로 덤빈 시점에서 네놈들에게 기사도 운운할 자격은 없어 보이는데? 아닌가?”
“…….”
구구절절이 맞는 말만 하는 바론이었다.
우직한 성격과 달리 의외로 말발도 약하지 않았다.
“그럼 마저 가도록 하지. 너희들 목을 치고 슈바이커 공작이라는 남자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봐야겠다.”
“큭….”
“얕보지 마라!”
세 명의 마스터들은 억지로 전의를 일으키며 바론에게 덤볐다.
하지만 데미지를 입은 몸으로 상대하기에는 적이 강해도 너무 강했다.
그들의 분전은 불과 50합이 이어지지 못했다.
50합이 지났을 때 고담 후작이 가장 먼저 쓰러졌고 플로리안 공작이 이어서 쓰러졌다.
가장 마지막까지 버틴 세바스티안 공작은 실력 이상의 분투를 했지만 그게 다였다.
마지막에 같이 죽을 각오로 휘두른 일검조차 바론의 얼굴에 작은 생채기 하나 남기는 것이 고작이었다.
“큭…. 죽여라.”
쓰러진 세바스티안 공작은 바론을 보며 이를 갈며 말했다.
“안 그래도 그럴 것이다.”
바론은 검을 뽑아서 세바스티안 공작에게 마무리하기 위해서 다가갔다.
그런데….
퍽!
바론의 발걸음 바로 앞에 한 자루의 창이 날아와서 박혔다.
이 창을 던진 사람이 누구인지 시선을 돌려보니 거기에는 바론이 가장 바라 마지않는 인물이 있었다.
“다행이 늦지 않았군.”
“아…. 그런 모양이군.”
바론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피차간에 실제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서로 보자마자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상대가 누구인지 말이다.
“크리스챤 슈바이커.”
“공화국의 바론. 맞지?”
통성명이 끝나자 두 사람의 모습이 흐릿해졌다.
그 직후….
콰아아아앙!
이 전장에 있는 모든 이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굉음이 울렸다.
어느새 바론과 슈바이커가 서로 검을 마주하고 있었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미친 듯이 보고 싶었다.”
“피차일반이다.”
피차간에 적이 없었고, 피차간에 없는 적을 바랐다.
사랑하는 연인을 바라는 것보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이 순간을 기다렸던 두 명의 절대 강자가 서로 검을 마주한 것이다.
이 결투를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깨달았다.
오늘 이 순간.
대륙의 최강자가 누구인지 결정된다는 것을 말이다.
“…세상에.”
“말도 안 돼.”
“인간이 저렇게까지 할 수 있던 것인가?”
바론과 슈바이커의 격돌을 지켜보고 있던 이들은 넋을 잃었다.
안트라스는 둘이 격돌하고 나서 근처에 쓰러져 있던 마스터 세 명을 급하게 구출하라 명령했다.
그 명령은 시기적절했다.
왜냐하면 지금 와서 저기에 다시 가라는 말은 자살해, 라는 말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콰콰콰콰콰콰콰….
슈바이커 공작과 바론 대장이 격돌하고 있는 장소를 기점으로 대략 50미터 정도의 공간은 다른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이 되었다.
이 둘이 격돌할 때마다 터지는 충격파와 오러의 잔해가 사방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양군은 전쟁도 멈추고 이 둘의 결투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니, 지금 자신들이 전쟁을 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기는 한 걸까?
병사들끼리 싸워서 어느 한쪽이 승기를 잡는다고 해도 저 두 괴물 중에 한쪽이 이긴다면 그걸로 상황은 바로 역전될 것이다.
지금 슈바이커와 바론이 보여주고 있는 힘은 실제 저 정도의 위험이 있었다.
인간을 수준을 넘어서 가히 신화의 영역에 도달할 정도로 둘의 격돌은 무시무시했다.
“저런 힘이 있었다면 왜 우리를 상대할 때는….”
세바스티안 공작은 바론의 무위를 보고 패배감을 넘어서 순수한 감탄을 하고 있었다.
저것은 그야말로 인간이 이를 수 있는 한계를 돌파한 정점의 일각이다.
검을 손에 쥐고 있는 인물이라면 누구나 추구해야 할 극의에 도달한 모습이다.
저런 인물을 두고 품위가 어쩌니 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서 얼굴이 붉어졌다.
‘인생의 말년에 참으로 많은 수치를 당하는군.’
한숨을 내쉬는 세바스티안 공작의 옆에서 안트라스가 말했다.
“아마, 자네들과 상대할 때는 저 정도로 강하지 않았을 것일세.”
“그게 무슨 말인가?”
“진짜 용호상박(龍虎相搏)이군. 이대로 가면 위험해.”
“내 제자인 슈바이커가 질 것이라는 말인가?”
“아니,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닐세. 저건…. 저건 저래서는….”
안트라스는 초조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드러났다.
무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결투의 끝이 어떻게 될지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것과 같은 수준의 결투를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호왕 제이한과 자신의 부친인 이명 대장군이 벌였던 최후의 일전.
그때 안트라스는 자신의 부친이 호왕을 상대로 시간을 끌어만 주면 군과 군의 싸움으로 하나라의 정예 병력을 섬멸한다는 계획을 세워 놨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의 양부인 이명 대장군과 호왕 제이한이 너무나 강했다는 것과, 그들의 힘이 완벽한 호각이었다는 것이 화를 불렀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했던 안트라스였지만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그런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손을 쓸 수 없었다.
“결투를 막을 방법이 없겠나?”
안트라스가 세바스티안 공작에게 다급하게 말했지만 세바스티안 공작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무리일세. 그저 크리스챤이 이기고 나오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어.”
지금 저 공간에는 세바스티안 공작도 끼어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부상을 입어서가 아니라 몸 상태가 최상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저 둘은 자신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경지에 도달해 버린 것이다.
“걱정 말게. 내 제자는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어. 반드시 승리할 것일세.”
“…….”
안트라스는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승패가 중요한 게 아니라네….’
슈바이커 공작과 바론 대장은 신기한 감각에 젖어 있었다.
처음에는 호승심이 먼저였다.
서로 상대방에 대한 소문을 귀 아프게 들어왔다.
피차간에 적이 없어 고독한 최강자들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전장에서 마주하고 깨달았다.
이 남자라면 내 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때부터 둘은 서로를 이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도대체 얼마만일까?
이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 보는 것이?
둘은 끝없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유랑자처럼 갈증을 채워갔다.
일격 일격에 서로 감탄하였고, 결투가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이 둘은 서로가 더욱더 강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십여 년 가까이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벽을 넘어 그 위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둘은 환희에 떨었다.
이 순간을 얼마나 바랐던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껍질을 깨고 날개를 펼치는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서 더할 나위 없는 존경을 느꼈다.
이제 둘의 머릿속에서 세간의 평가나 명성, 그리고 전쟁의 결과마저 잊어버렸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하기만을 바라며 둘은 끊임없이 격돌했다.
더 높은 경지로….
지금보다 더 높은 경지로….
둘은 자신들의 앞에 하늘로 이어지는 계단이 내려온 것 같았다.
혼자서는 평생 오를 수 없었던 그 계단이 지금 자신들을 유혹하고 있다.
어서 올라오라.
신들의 영역에 올라올 것을 허하노라.
상승의 욕구에 젖어든 둘은 어느새 인간을 초월하고 있었다.
“어…. 어어….”
“저건 뭐야?”
전쟁의 한가운데에 있던 이들은 모두 경악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하늘이 열린 것이다.
눈부신 서광이 비치는 것과 동시에 하늘에서 천상의 존재들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 광경은 장엄하고 성스러웠으며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엎드려 천상의 존재를 경배했다.
“결국 이렇게 되었는가?”
안트라스는 침음을 삼키며 말했다.
“안트라스. 이게 무슨 일인가?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야?”
세바스티안 공작의 물음에 안트라스가 침통하게 말했다.
“저 둘은 초월해 버린 걸세. 검의 도(道)를 통해서 인간의 틀을 초월해 버린 것이야.”
“뭐라고?”
“남대륙에서는 저것을 승천(昇天)이라고 불렀네. 우수한 인간, 혹은 수백, 수천 년간 수행을 쌓은 영물이 하늘로 올라가 천상에 거하게 되는 것이지. 영광되고 성스러운 일일세.”
“…….”
“하지만 지금은 전쟁 중인데 우리는 군의 최대 전력을 하늘에 빼앗기고 말았네. 그때 아버님과 호왕도 이렇게 되어서 결국…. 제길!”
안트라스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욕을 하며 자신의 부채를 부러트려 버렸다.
어느새 하늘의 서광은 사라졌다.
그리고 지상에는 크리스챤 슈바이커 공작과 바론이 검을 들고 오연하게 서 있었다.
하지만 안트라스는 알고 있었다.
지금 저기에 있는 것은 둘의 육신뿐이다.
이미 둘의 영혼은 천상으로 올라가 버렸다.
과거 호왕과 이명이 이렇게 되었을 때 안트라스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서 그저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에 그쳤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항상 인간은 두 번째에서는 첫 번째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이는 법이다.
“전군! 공격하라!”
안트라스는 제국의 물량을 이용해서 공화국군 10만을 쓸어버리기로 했다.
이제 이렇게 된 이상 본래의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
레스터 왕국군이 합류하기 전에 공화국군을 물리쳐야 한다는 말이다.
“와아아아아!!”
“전군 돌격!”
크리스챤 슈바이커 공작을 잃었다고 해도 공화국의 바론 역시 사라졌다.
그렇다면 마스터간의 전력 차이를 제외하고 순수한 병력의 질과 양만으로도 공화국군을 압도할 수 있다.
바론의 명령을 받은 제국군은 공화국군을 맹공격했다.
그리고 바론을 잃었다고 해도 공화국군 역시 정예 병력답게 철저하게 항전하며 대항했다.
“대장님의 뒤를 따르자!”
“공화국의 위대한 영웅 바론!!”
“우오오오오오오!!”
전략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철저하게 힘으로 부딪히는 싸움이었다.
이렇게 되면 제국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것은 뻔했다.
하지만 공화국군의 병사들은 용감하게 싸웠다.
그야말로 최후의 한 명까지 말이다.
훗날 역사에는 이 전쟁을 이렇게 남겼다.
위대한 두 영웅이 신화의 영역에 도달한 성스러운 날인 동시에 양군을 합쳐서 20만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해서 대지를 붉게 물들인 저주스런 날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