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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게임-231화 (231/257)

제231화

안트라스는 바론이 여기에 어떻게 나올지 반응을 살폈다.

정석대로 하자면 수비의 이점을 살려서 보병의 사이에 장창병을 배치해서 보병의 전진을 막을 것이다.

그리고 공화국의 특수 석궁을 이용해서 먼저 공격을 하면 아군의 보병에게 먼저 피해를 입힐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쪽도 피해를 입겠지. 하지만 일단 힘 승부로 들어가기만 하면 초반에 피해를 입는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우리가 우위를….’

“뭐 하는 거지?”

머릿속으로 전황을 계산하고 있던 안트라스는 두 눈을 부릅떴다.

공화국에서 자신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공화국의 최선두에 기마 부대가 쐐기 진형을 갖추고 섰다.

그리고 그 가장 선두에 바론 대장을 뜻하는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선두에 서서 돌파하겠다는 건가? 그런 무모한 짓을 하겠다고?”

안트라스는 저게 허세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거야 마스터 수준의 무인이 앞장서서 무력으로 적의 전열을 파괴하는 경우도 있기는 있다.

하지만 그건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른 것이다.

아무리 마스터라고 해도 지금 제국군의 병력은 20만.

보병만 해도 14만이다.

그 보병을 빼곡하세 밀집시켜 전진하고 있다.

설령 마스터라고 해도 이걸 뚫다 보면 분명 중간에 발이 멈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적진 한가운데 고립될 것이 뻔해. 설마 전쟁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 그런 상식을 모른다는 건가? 아니면….’

안트라스는 미간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

“상식을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힘에 자신이 있다는 건가?”

그 의문을 바로 풀렸다.

“가자.”

큰 목소리로 호령을 하는 것도 아니고, 사기를 고양시키기 위한 일장 연설을 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옛!”

그를 따르는 장교들의 목소리에는 절대적인 믿음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바론 대장을 선두로 해서 그의 직속 기마 부대가 쐐기 진형으로 돌격을 시작했다.

그 숫자는 대략 1,000기.

기마 1,000기가 작은 병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20만에 돌격하기에는 너무나 작은 숫자다.

다만, 변수가 있다면 세 가지.

하나는 이 1,000기는 바론 대장의 부하 겸 제자로 키워진 정예 중에 정예라는 것.

두 번째로 이들은 바론이 가장 앞에 서서 싸운다면 지크프리트의 직속 병력인 고스트라고 해도 질려 할 정도의 전투력을 보여준다는 것.

마지막으로 세 번째.

이 1,000기의 돌파 진형의 가장 선두에 있는 인물이 바론 대장이라는 것이다.

“온다!”

“방패 겹쳐!”

“단단하게 뭉쳐서 버….”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던 보병장은 말을 잊지 못했다.

콰아아앙!

바론이 힘껏 내리친 일격 한 방이 그를 닥치게 한 것이다.

그가 일격을 휘두른 순간 제국군의 보병 전열이 박살났다.

“계속 간다.”

그리고 바론은 담담하게 말하며 계속 검을 휘두르며 전진했다.

“크아아악!”

“사…. 살려…. 크악!”

“아…. 아아아….”

그것은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전열을 갖추고 다수의 우세함을 살려서 버틴다?

웃기는 소리?

지금 제국군의 병사들은 지휘관에게 쌍욕을 하며 네가 해 보라고 따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바론이라는 남자는 태풍이었다.

이건 전쟁이 아니라 자연재해에 휩쓸린 느낌이었다.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병사들은 처참하게 죽었고 전열이 박살이 났다.

그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병사들의 팔다리와 육편이 바람에 휩쓸린 낙엽처럼 흩날렸다.

지옥이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제국군에게 지옥 같은 이 풍경은 공화국군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보다 장엄한 영웅의 활약이었다.

“바론! 바론! 바론! 바론!”

공화국의 병사들이 뒤이어서 돌격했다.

제국군과 같은 절도는 없었다.

그저 바론의 이름을 외치며 미친 듯이 달리고 또 달렸다.

마치 자신들끼리 경주라도 하듯이 누구보다 먼저 적에게 닿겠다는 듯이 달리는 그들의 모습은 영웅을 쫓는 민중의 선망이 구현화된 모습 그 자체였다.

병력의 차이도 중요하지 않고 상대가 누구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선두에서 그들을 이끌어주는 바론이 멈추지 않는 이상 이들은 지옥 끝까지 달릴 것이다.

“위험하군. 저 바론이라는 인물을 막아내지 않으면 정상적인 전쟁 자체가 안 되겠어.”

안트라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전열의 3분의 1 이상을 파고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론의 돌진은 멈출 줄 몰랐다.

이 정도의 무위는 남대륙에서도 거의 보지 못했다.

서둘러 손을 써야 한다고 느낀 안트라스는 부채를 펼쳐서 지시를 내렸다.

“유동금쇄(流動擒鎖)의 진을 펼친다. 실수하지 마라.”

“옛!”

원래 안트라스가 병법을 갈고닦았던 남대륙은 모든 부분에서 지금의 대륙보다 발전해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진형의 활용이다.

병사들을 철저하게 훈련시켜서 수족처럼 부릴 수 있게 되면 그 병사들을 이용해서 순식간에 요새에 필적하는 진형을 만들어낸다.

그 활용도는 상당히 높았다.

단순하게 돌파, 포위, 협공, 횡진 등의 전술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이 대륙의 책사들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의 전술이다.

다만, 이 전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병사들을 다년간 수족처럼 부릴 수 있도록 단련시켜야 했다.

아무리 안트라스라고 해도 짧은 시간에 제국군을 그렇게까지 만들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안트라스는 딱 하나의 진법만을 선택해서 그 진법만큼은 지시에 따라올 수 있을 만큼 병사들을 훈련시켰다.

이것도 쉬운 것은 아니었기에 안트라스가 진형을 간단하게 가다듬어야 했지만 결국 하나의 진법은 실전에 쓸 수 있을 만큼 단련되었다.

그게 지금 펼쳐지려는 유동금쇄의 진이었다.

적진 깊숙하게 적이 파고들어 왔을 때 포위망을 재구성하고 겹겹이 둘러싸서 포위망 안에서 적의 힘을 빼 놓는 진법이었다.

‘원래는 포레스트 대공이나 지크프리트 대총통에게 쓰려고 했던 것이지만…. 저 남자라면 가치는 충분하지.’

안트라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진형을 움직였다.

“지시를 놓치지 마라. 수기를 단 전령은 신호를 확실하게 확인시켜라!”

“옛!”

그의 부채의 움직임에 따라서 제국군의 움직임이 확실하게 변했다.

“음….”

거침없이 돌격하던 바론의 진격이 처음으로 멈췄다.

그는 가만히 서서 주변을 살펴봤다.

갑자기 적의 움직임이 변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앞에 최대한 좁게 뭉쳐서 단단하게 버텨 내려고 했는데 이제는 자신의 앞에서 옆으로 돌면서 자신의 돌격으로 입는 피해를 최소화하며 포위망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방을 자세히 살펴보니 마치 거대한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적들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신기하군.”

말에 낭패한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그저 말 그대로 처음 보는 이 광경이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 바론을 보고 제국의 지휘관들이 명령했다.

“쏴라!”

그러자 소용돌이의 건너편에서 대기 중이던 궁수들이 바론을 노리고 일제히 화살을 쐈다.

바론은 자신을 향해서 쏟아지는 무수한 화살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검을 휘둘러 모두 막거나 쳐냈다.

그러며 바로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부관에게 말했다.

“후속 병력은 어찌 되었나?”

“단절되었습니다.”

“지금 따라오고 있는 병력은?”

“대장님의 직속 기마대인 저희뿐입니다.”

최초에 바론과 함께 적진에 돌입했던 기마 1,000기 이외에는 적의 포위망 밖에서 고립되었다는 말이다.

‘돌입 시에 100 정도 죽고 돌파 과정에서 또 100정도 죽었다 치면 남은 건 대략 800정도 되는군.’

바론은 가볍게 머리를 굴려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800이면 충분하다. 가자.”

“옛!”

이대로 돌파한다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이 말도 안 되는 선택지에 그의 부관은 한 점의 의심도 없이 따랐다.

강철보다 단단한 믿음이 없다면 이런 행동은 불가능했다.

“전진하라!”

“우오오오오오오!”

그렇게 바론의 무모한 돌진이 시작되자 안트라스는 미소를 지었다.

“어리석군. 진법을 힘으로 부수겠다는 건가? 애당초 힘을 무효화하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 진법의 묘리이거늘….”

안트라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채를 펼치며 말했다.

“그 어리석음의 대가는 죽음으로 치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진법을 구성하고 있는 병사들의 움직임이 한층 더 가속되었다.

소용돌이가 점점 빨라지며 포위망 안에 있는 바론을 목표로 한 공격은 더욱더 계속되었다.

이제는 화살 공격에 그치지 않고 중갑을 입은 보병이 투입되고 투척용 창을 소지한 경기마대가 돌입되기도 했다.

포위망을 구성하고 있는 소용돌이의 사이사이에 적의 숨통을 끊어 넣을 수 있는 필살의 칼날을 숨겨 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맞서서 바론이 선택한 것은….

“이대로 간다. 뒤처지지 마라.”

오직 전진.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실행한 것은 두 가지뿐이었다.

적이 있으면 벤다.

적을 베고 난 후에는 앞으로 나아간다.

오직 이 두 가지만을 묵묵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적의 움직임이 변했을 때 잠깐 멈췄던 것은 막혀서 멈춘 게 아니라 그저 처음 보는 적의 움직임에 호기심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호기심마저 사라지자 그는 처음처럼 해 왔던 일들을 묵묵하게 해 나갈 뿐이었다.

“어리석어. 그게 될 성싶으냐?”

안트라스는 바론이 이끌고 있는 병력이 어느새 반 이하로 줄어드는 것을 보고 혀를 찼다.

아직 바론을 잡지는 못했지만 그를 따르는 병력은 착실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결국 적의 한계가 먼저 드러날 것이다.

그런데….

“…왜 멈추지 않지?”

시간이 지나면서 안트라스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바론이 멈추지를 않았다.

병사들이 진법의 묘리를 살려 최소한의 피해로 포위망을 구성하고 있고 그런 포위망에 계속해서 공격이 투입되었다.

효과도 착실해서 이제 바론을 따르고 있는 기마의 숫자는 200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론이 멈추지를 않았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기마대 역시 조금도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포위망 밖에서 공격 중인 공화국군의 병사들 역시 조금도 위축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바론! 바론! 바론! 바론! 바론!”

“바론! 바론! 바론! 바론! 바론!”

“바론! 바론! 바론! 바론! 바론!”

사기가 점점 오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안트라스는 황당할 뿐이었다.

저놈들은 생각이 없는 건가?

모두 장님이라서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보이지도 않는 건가?

자신들의 지휘관이 포위망 안에 갇혀서 일방적으로 계속 공격을 당하고 있다.

그 지휘관을 따르는 병사도 5분의 1이하로 줄었다.

그런데 어째서 사기가 오른단 말인가?

공화국군의 함성만 들으면 마치 이 전쟁을 공화국에서 압도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할 정도였다.

거기다 마침내….

“포위망이 뚫린다! 재구성을 서둘러라!”

망루 위에서 내려다보던 안트라스가 다급하게 소리를 질러 버렸다.

드디어 바론의 묵묵한 돌진이 포위망을 뚫어내려고 하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예비대를 투입해라! 어서!”

“이미 정해진 예비대를 다 투입했습니다.”

“그런…. 큭.”

안트라스는 이를 악물었다.

만약 여기가 제나라고 병사들이 자신의 조련을 받은 정예 군단이라면 진형을 바꿔서 다른 형태로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제국의 군사들에게는 한 가지 진형을 가르치는 것이 현실적이 한계였다.

그걸 알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은, 이 한 가지 진형만으로도 적의 핵심 인물을 잡아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게 포레스트 대공이던 지크프리트 대총통이든 말이다.

그런데, 설마 이런 남자가 있을 줄은 몰랐다.

처마 밑의 낙숫물에 바위가 뚫리는 것처럼 조금씩 꾸준하게 쉬지 않고 전진 또 전진.

그 결과가 이것이다.

지혜를 단순함으로 무너트리고, 수적 우위를 무력으로 넘어섰다.

이런 남자는 안트라스의 길고 긴 전쟁의 경력에서도 딱 한 명밖에 본 적이 없었다.

“저 남자는 호왕(虎王) 제이한의 환생인가?”

남대륙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상대하기 힘들었던 숙적이 이 순간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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