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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게임-227화 (227/257)

제227화

콰아앙!

“크윽….”

슈바이커 공작의 가벼운 휘두름에 제롬은 뒤로 휘청거렸다.

“계속 간다.”

그리고 슈바이커 공작의 이어지는 공격이 날카롭게 목을 노리는 순간….

카아앙!

제롬은 말에 거의 가로로 매달리다 시피 상체를 틀면서 슈바이커 공작의 검을 위로 올려쳤다.

정면으로 막으면 힘이 떨어진다고 판단하고 순간적으로 공격의 측면을 때려서 적의 공격을 후려쳐 버린 것이다.

덕분에 슈바이커 공작의 공격을 피했지만 자세가 무너진 제롬은 말에서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잘 됐군.”

그 모습을 보고 슈바이커 공작은 선선히 웃으며 자신도 말에서 내렸다.

이제 말에서 떨어진 이상 도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마스터의 능력과 기술을 제대로 살리자면 마상 결투보다는 지상에서 싸우는 편이 더 좋았다.

‘날 유희거리로 취급하는 건가?’

제롬은 슈바이커 공작의 미소를 보면서 속으로 뭔가 끓어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제롬 정도의 실력이라면 모를 리가 없다.

슈바이커 공작이 지금 자신을 그저 장난감으로 취급할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당연히 분노할 일이다.

다만, 제롬은 머리로 치솟아 오르는 열기를 가라앉히고 오히려 냉정을 되찾으며 생각했다.

‘차라리 잘됐다.’

지금 자신의 실력으로 슈바이커 공작을 막을 수 있는가?

‘아니, 힘들어.’

10년 후에 만났다면 혹시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힘들었다.

밀턴 같은 능력은 없었지만 슈바이커 공작과의 실력 차이는 피부로 확실하게 체감하고 있는 제롬이었다.

결국 제롬의 실력으로 밀턴을 슈바이커 공작에게서 지키려고 한다면, 이렇게 시간을 끌어주는 것밖에 없다.

고양이의 노리갯감이 된 생쥐 같은 입장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

자신의 명예보다 우선시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오직 주군의 안위뿐.’

그렇게 마음먹은 제롬은 다시 한번 슈바이커 공작에게 달려들었다.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 남자가 자신에게 흥미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목숨을 걸고….

콰앙! 쾅!! 쾅! 콰앙!

마상에서 내려온 후에 두 사람의 결투 양상은 확실하게 바뀌었다.

보통의 기사들이라면 말 위에서 싸우는 편이 훨씬 더 강력하겠지만 익스퍼트 상급, 아니 중급쯤만 되어도 그 이론은 통하지 않는다.

기마 부대를 이끌고 돌격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말에 올라타기는 하지만 그건 다수의 병사를 목표로 할 때 효율을 높이는 수단일 뿐이다.

진정한 강적을 상대로 기량을 다해서 싸우려면 역시 말에서 내려오는 편이 나았다.

아무리 기마술이 뛰어난 기사라고 해도 자신의 두 다리보다 더 안정적으로 무게 중심을 컨트롤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말과 달리 전후좌우의 이동이 자유로운 인간의 두 다리는 근거리에서의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공격 각도를 만들어 준다.

제롬은 사방에서 몰아치는 파도처럼 슈바이커 공작을 두들겼다.

오른쪽에서 일격을 휘두르고 그 공격의 여파가 다시 가시기도 전에 회전하며 왼쪽에서 이어지는 공격, 거기다 다시 오른쪽인 척하면서 이번에는 잔상만 남기고 후방으로 돌아가서 이어지는 날카로운 찌르기.

“좋군. 아주 훌륭하다.”

제롬의 필사적인 공격에 슈바이커 공작은 더욱더 흥이 난 것처럼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는 제롬의 검을 한 차례 쳐내서 뒤로 멀찍이 날아가게 했다.

그리고 그는 검을 위로 들어 올리고 말했다.

“막거나 피해라.”

둘의 거리는 5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제롬은 경고를 듣자마자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흡!”

짧은 호흡음과 함께 슈바이커 공작의 검에서 오러의 파동이 사출되었다.

콰콰콰콰콰!

지면을 갉아 먹으며 거칠게 달려간 파동은 순식간에 제롬을 덮쳤다.

“제롬!”

후퇴 중이던 밀턴은 깜짝 놀라서 외쳤다.

다행이도 흙먼지가 걷히고 드러난 제롬의 모습은 멀쩡했다.

“후우우….”

호흡을 정돈하고 있는 제롬은 자신의 옆으로 길게 나 있는 대지의 상흔을 보고 침을 삼켰다.

그 흔적만으로도 일격의 파괴력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괴물이군.’

오러를 원거리에서 날릴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슈바이커 공작은 그런 행동을 태연하게 했다.

제롬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쟁터에서 공포를 느꼈다.

죽음도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너무나 압도적인 실력의 차이는 절망감과 공포심을 안겨줄 수밖에 없었다.

그건 다른 마스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레스터 왕국의 마스터들은 물론이고 같은 편인 제국의 마스터들조차 슈바이커 공작의 일격에는 기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딱 한 명 예외가 있었으니….

“죽어!”

날카로운 고성과 함께 한 명의 검사가 슈바이커 공작의 측면에서 치고 들어갔다.

콰아앙!

“호오오…. 제법 날카로운 기세군.”

슈마이커 공작은 그 공격을 막고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 여유 만만한 미소가 상대를 더 빡치게 했다.

“뒤져. 이 괴물 같은 새끼야!!”

그리고 상대는 슈바이커 공작을 거칠게 공격했다.

난폭하지만 날카롭고 예리한 공격이 소나기처럼 슈바이커 공작에게 쏟아졌다.

압도적인 실력의 차이에 공포심을 느끼지 않는 이 인물은 바로 밀턴의 아내인 바이올렛이었다.

‘하필이면 지금?’

밀턴은 바이올렛의 상태를 보고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폭주 LV.9(MAX) : 전투 중에 자신의 부상을 무시하고 싸울 수 있다. 단, 이성적인 판단이 크게 떨어진다.

분전 LV.9(MAX) : 위급한 상황이 되면 발동한다. 자기 실력의 최대 100% 이상의 실력을 보인다.

바이올렛의 두 가지 특성이 지금 최대한 발휘되고 있었다.

바이올렛은 지금 폭주해서 눈에 보이는 게 없었기에 주저 없이 슈바이커 공작에게 덤볐고, 분전 능력 덕분에 평소보다 두 배는 더 강력한 힘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바이올렛이라면 도미닉 플로리안 공작이라고 해도 승기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상대가 너무 나빴다.

그녀의 앞에 있는 남자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륙 최강자인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가지.”

공격을 받아주던 슈바이커 공작이 검을 마주 휘둘렀다.

“큭….”

카카카카카카칵!

바이올렛은 슈바이커 공작의 공격에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이 괴물 딱지 같은 새끼….”

“허허허…. 왈가닥이군.”

슈바이커 공작은 허허롭게 웃으며 바이올렛을 몰아붙였다.

지금 슈바이커 공작의 공격은 제롬을 상대할 때와 달랐다.

그때는 일격 일격에 절도와 힘이 실려 있는 정통파 검술이었지만 지금은 검의 잔상조차 쫓기 힘들 정도로 숨 가쁜 쾌검의 연속 공격이었다.

제롬을 상대할 때는 제롬의 특기 분야로, 그리고 바이올렛을 상대할 때는 바이올렛의 특기 분야로 맞춰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어지럽게 검격이 난무하는 와중에 슈바이커 공작의 검이 바이올렛의 검에 얽혔다.

“웃….”

바이올렛은 자신의 검에 착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슈바이커 공작의 검에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아직 멀었군. 너무 실전적이라서 검의 묘미를 몰라.”

슈바이커 공작이 이렇게 말한 후에 그의 검이 기묘하게 움직였다.

그러자 그의 검이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바이올렛의 검을 타고 올라왔다.

“큭….”

바이올렛은 기겁했다.

이대로 가면 검의 손잡이를 쥐고 있는 자신의 손을 내줄 것 같았다.

하지만 다행이도….

콰아아앙!

슈바이커 공작의 공격이 성공하기 직전에 그는 뒤로 물러났다.

그를 멈춘 것은 트라이크의 오러 애로우였다.

“테이커 후작! 대공비를 모시고 어서 후퇴하시오!”

트라이크는 그렇게 외치고 다시 화살에 활을 매겼다.

“허허허…. 레스터 왕국은 보물 상자로군. 재미있는 자들이 아주 많아.”

제롬에 이어서 바이올렛을 거쳐 이번에는 트라이크에게 관심이 쏠린 슈바이커였다.

이제까지 수많은 강자들을 만나 봤지만 활로 이 정도의 경지에 이른 인물은 처음이었다.

안트라스의 말에 의하면 남대륙에는 활로도 마스터에 준하는 경지에 이룩한 자들이 있다고 하지만 자신들의 대륙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슈바이커는 모처럼의 별미를 발견한 미식가 같은 심정으로 트라이크를 표적으로 삼았다.

“후우우우….”

트라이크는 차분했다.

대륙 최강자가 자신을 목적으로 삼고 달려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차분했다.

자기 스스로 생각해도 놀라울 정도였다.

‘거리와 속도를 봐서 쏠 수 있는 화살은 한 번뿐. 첫 발이 빗나가면 그걸로 끝이다.’

생각해 보면 참 묘한 일이다.

그저 용병단의 단장이었던 자신이 기사가 되고, 작위를 받고, 이제는 대륙 최강자와 맞서고 있다.

‘이만하면 멋지게 살았지.’

트라이크는 이를 악물고 화살에 힘을 집중시켰다.

우우우우우우우웅!

트라이크의 활은 평소 빨아들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생명력을 빨아들였다.

“크으읍….”

트라이크의 안색이 급격하게 나빠졌고, 그의 붉은 머리카락이 서서히 희게 변해갔다.

“트라이크! 그만둬!”

밀턴은 바로 트라이크가 하려는 짓을 알았다.

원래 트라이크가 사용하는 활은 드라이어드라는 기생목의 특성을 이용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기생목의 본질은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위험한 나무였지만 훈련을 거쳐서 그걸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트라이크는 일부러 한계까지 생명력을 빨아 먹히고 있다.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서 대륙 최강자를 데려간다면 남는 장사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신세 많이 졌습니다. 주군!”

“그만둬 이 새끼야!”

밀턴이 크게 외쳤지만 이미 트라이크는 활시위를 놔 버렸다.

콰아아아앙!

트라이크가 활을 놓은 순간 엄청난 굉음이 울렸다.

그리고 슈바이커 공작의 표정에서 처음으로 여유가 사라졌다.

“합!”

슈바이커 공작은 검을 두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트라이크의 화살을 향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서 검을 내리쳤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

“으읏….”

힘과 힘의 충돌.

슈바이커 공작은 트라이크의 화살을 막았지만 조금씩 뒤로 밀리고 있었다.

이 화살에는 트라이크라는 천재 궁수의 전력이, 생명이,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그 위력은 천하의 슈바이커 공작이라고 해도 뒤로 밀어낼 정도로 엄청난 위력이었다.

하지만….

“꺼져라!”

콰아아앙!

슈바이커 공작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의 위력은 되지 못했다.

“빌어먹을….”

자기 화살이 꺾이는 모습을 보고 트라이크는 털썩 주저앉았다.

더 이상은 활을 당기는 것은 고사하고 두 발로 서 있을 힘도 없었다.

“훌륭하다.”

슈바이커 공작은 순수하게 트라이크를 칭찬했다.

도대체 얼마 만에 전력을 기울여 본 것이란 말인가?

제롬과 바이올렛, 그리고 트라이크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의 기량은 자신보다 떨어질지 몰라도 용감하게 전부를 쏟아붓는 이들의 모습은 존경할 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슈바이커 공작은 이들의 전력을 쏟아부은 분투가 누구 때문인지 알 수 있었다.

“후퇴할 생각이 아니었나?”

“그러려고 했는데 말이지.”

슈바이커 공작의 앞을 가로막은 이번 상대는 바로 밀턴이었다.

슈바이커 공작이 끼어든 순간 밀턴은 후퇴를 명령했었다.

하지만, 그런 밀턴을 후퇴시키기 위해서 제롬이, 바이올렛이, 트라이크가 필사적으로 발목을 잡는 과정을 보고 차마 돌아갈 수가 없었다.

결국 밀턴은 말 머리를 돌려서 스스로 슈바이커 공작의 앞에 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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