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주의 게임-226화 (226/257)

제226화

“오…. 오오오오오!!”

“슈바이커 공작 각하의 출진이다!”

“대륙 최강자!!”

“최강의 기사!!”

슈바이커 공작의 출진에 제국군에서는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마스터라는 전력 자체야 원래 귀중하다지만, 슈바이커 공작의 가치는 다른 마스터들과는 또 달랐다.

그가 곧 제국의 검이며, 그가 곧 제국 기사들의 정점이며, 그가 곧 제국의 무력의 상징이다.

그런 그가 출진한 것만으로도 제국에서는 전쟁에 승리한 것처럼 커다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밀턴의 입장에서 슈바이커 공작의 등장은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빌어먹을….”

생각은 하고 있었다.

제국군의 본대를 상대하면서 크리스챤 슈바이커 공작이라는 상대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대다.

그러니 그가 앞으론 나섰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반응은 대강 갖춰 두었다.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자.’

밀턴은 그렇게 생각하며 뒤에 있는 본진에 소리쳤다.

“레스터 왕국의 모든 힘을 보여주겠다! 병사들은 똑똑히 지켜보라!”

그리고 밀턴의 외침에 호응하듯이 후방에서 기마 세 기가 뛰쳐나왔다.

그중에 한 명은 붉은 머리카락에 커다란 장궁을 재고 있는 트라이크였다.

그리고 또 한 명은 검은색 머리를 투구 뒤로 흩날리고 있는 가녀린 여성 바이올렛이었다.

이 둘은 스트라부스 왕국 안에서도 어느 정도 알려진 이들이다.

비록 실력 면에서는 감춰진 부분이 많았지만 그래도 존재 자체가 기밀은 아니다.

다만, 다른 한 명은 달랐다.

그는 롱소드에 방패를 들고 있는 기사였는데 얼굴 전체를 가리는 투구를 써서 정체를 숨기고 있었다.

다만….

“오! 마스터다!”

“우리나라에 마스터가 또 있었나?”

가면의 기사의 검에 오러 블레이드가 서리자 레스터 왕국의 병사들도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들의 놀람이 가시기도 전에 먼저 바이올렛 역시 검에 오러 블레이드를 일으켰다.

“오오오! 바이올렛 대공비께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셨다!”

“레스터 왕국 만세!”

달려가는 두 사람의 검에 서려 있는 오러 블레이드에 레스터 왕국군의 병사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아무리 제국의 최강자인 크리스챤 슈바이커 공작이라고 해도 이제 이쪽은 마스터만 해도 다섯 명이다.

숫적 우위를 살려서 싸우면 우리가 유리하다.

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밀턴은 눈앞에 있는 도미닉 플로리안 공작과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두 사람이 검을 마주하고 오러를 밀고 당기며 이를 악물었다.

“간악한 놈. 마스터의 존재를 숨겨두고 있었던 거냐?”

“그게 왜 간악한지 모르겠군.”

“다수로 압박하는 것에 대한 수치심도 없나?”

“원래 1대1 결투에 끼어든 게 누구지? 억울하면 그쪽에도 마스터를 더 내보내지 그래?”

“이놈!”

플로리안 공작은 오러를 폭발적으로 밀어 넣으며 밀턴을 압박했다.

제국에 마스터가 더 없는 것은 아니다.

플로리안 공작의 아들인 루카스 플로리안이 아직 있었다.

단, 그 아들은 지금 이 자리에 없고 미끼 역할을 위해서 다른 전장에 있었다.

즉, 지금 제국에서 더 낼 수 있는 마스터는 없다는 것이다.

그때 밀턴은 플로리안 공작의 검격에 저항하지 않고 일부러 뒤로 물러났다.

자신과 플로리안 공작의 사이에 거리가 생기자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죽거나 아플거야.”

“무슨…. 컥!”

콰아아아앙!

‘무슨 개소리냐?’라고 말하려고 했던 플로리안 공작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뭐지?’

머리로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직감이 위험하다고 경고한 직후에 바로 방패를 들었다.

그 방패에 오러를 조금이라도 적게 실었다면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다.

그런 실감을 하게 될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 터져 나온 것이다.

‘이게 무슨….’

“소개하지. 마스터는 아니지만 저 친구가 내 비장의 카드다.”

밀턴은 그렇게 말하며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뒤편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트라이크가 자신의 활에 화살을 메기고 있었다.

“드디어 공식 데뷔군.”

트라이크는 자신의 입술을 핥으며 중얼거렸다.

트라이크는 마스터가 아니다.

경지로 따지면 익스퍼트 상급 정도는 될지 모르겠지만 마스터는 아니다.

그리고 근접전에서는 다른 익스퍼트들과 도저히 싸울 수 없을 정도로 취약한 면도 있다.

하지만 밀턴은 일기토를 벌이기 전에 트라이크에게 말했다.

[만약, 내가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끼어들어라. 명예의 실추와 거기에 따른 비판은 내가 감당하겠다.]

라고 말이다.

가장 신뢰하고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부하는 제롬이지만 밀턴은 이 명령을 트라이크에게 내렸다.

그 이유는 트라이크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 때문이다.

오러 애로우.

이 세상에서 오직 트라이크 로우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공격 수단.

과거 지크프리트의 경우에도 그랬지만 마스터가 상대라고 해도 이 공격은 충분한 위협이 된다.

비록 정면에서 1대1로 마주하고 있으면 적이 대응하겠지만 불시의 기습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렇기에 밀턴은 일기토를 나가기 전에 여차하면 위기의 수단에서 써먹을 보험으로 트라이크를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트라이크는 지금 자신감에 차올랐다.

아군이 전방에서 적의 발을 잡아두고 있을 때 후방에서 활로 상대를 저격하는 전투 방식.

이것은 과거 그가 용병 시절부터 쭉 해 왔던 일이다.

상대가 제국의 마스터라고 해도 이런 진형이 갖춰진 상태라면 조금도 부담되지 않았다.

“이건 나를 위한 무대야.”

트라이크는 화살 끝을 다음 상대에게 겨냥했다.

콰앙!

“크으윽….”

트라이크의 화살이 작렬할 때마다 제국의 마스터들은 크게 휘청거렸다.

몰랐다면 모를까?

알고 있는 상황에서 무방비하게 당할 정도로 녹록한 인간들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상황이 무척 불리하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눈앞에 버거운 강적들을 상대하고 있는데 후방에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화살이 날아온다.

이건 확실한 위기였다.

“비겁하다 포레스트 대공!”

플로리안 공작이 눈에 핏발을 새우고 외쳤다.

하지만 밀턴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꾸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순간 플로리안 공작은 목구멍에서 뜨거운 뭔가가 울컥 치밀어 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부부는 닮는다고 하던가?

레이라와 오랫동안 함께하다 보니 사람 염장에 불 지르는 능력이 생긴 밀턴이었다.

트라이크의 개입으로 인해서 전투는 순식간에 레스터 왕국 쪽으로 기운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짧은 시간의 우세함이었다.

트라이크가 후방에서 활을 쏘기 시작하고, 그 화살의 숫자가 네 발을 넘어가고 있을 때.

슈바이커 공작이 전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가 처음으로 검을 휘두른 순간.

“받아라.”

콰아아앙!

상황은 크게 변했다.

“큭….”

슈바이커 공작의 첫 공격이 작렬한 것은 션 페일런 공작이었다.

고담 후작을 상대하고 있던 그는 갑자기 끼어든 슈바이커 공작의 공격을 정면으로 막았다.

그리고 그 일격을 막았을 때 페일런 공작은 자신도 모르게 생각했다.

아주 오랜 기억….

과거 자신이 소년이었을 때 숙련된 기사들과 대련을 했을 때….

그때와 같은 느낌이 지금의 일격을 통해서 되살아났다.

‘설마 이 남자와 내 실력의 차이가 그만큼 난다는 건가? 어른과 아이만큼?’

페일런 공작은 이를 악물었다.

자존심이 있다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인정할 수 없었다.

“슈바이커!”

거칠게 일갈하며 페일런 공작은 슈바이커 공작을 공격했다.

그러나….

“어설퍼.”

슈바이커 공작은 무심하게 한마디를 답하며 검을 마주 휘둘렀다.

그러자….

카아아앙!

“커억….”

페일런 공작이 그대로 뒤로 날아가 버렸다.

큰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말에서 떨어진 페일런 공작의 입가에는 핏물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검이?”

“저럴 수도 있나?”

페일런 공작의 검이 부러져 있는 것에 다른 마스터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마스터의 검이다.

오러 블레이드라는 파괴의 상징으로 무장되어 있는 마스터의 검이 부러지다니?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밀턴은 빠르게 슈바이커 공작의 능력치를 확인했다.

그러자….

[크리스챤 슈바이커]

판독 불가

무력 - 112 통솔 - 90

지력 - 55 정치 - 42

충성 - 00

특성 - 판독 불가

‘뭐냐 이건?’

밀턴은 순간 경악했다.

이 능력을 손에 넣고 나서 상태창이 이런 식으로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판독 불가라니? 뭐가 어떻기에 판독 불가라는 말이 나온단 말인가?

능력치만이 나왔을 뿐, 상대방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칭호와 특성은 판독이 불가능하다고 나왔다.

즉, 이 남자가 누구이고 어떤 인간인지를 밀턴의 능력으로도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이런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었다.

“전원 후퇴! 본진으로 퇴각한다!”

밀턴은 크게 외쳤다.

다른 건 알 수 없지만 밀턴의 능력으로 딱 하나 알게 된 것이 있다.

‘무력 112? 어떻게 되먹은 괴물이야?’

이런 숫자가 나올 수 있다고는 생각도 못 했다.

제롬의 무력 수치가 99에 이르렀을 때 밀턴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무력 면에서는 제롬이 누군가에게 밀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하루….

아니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괴물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저런 괴물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은 미친 짓이다.

이제 일기토는 접어두고 차라리 집단과 집단의 부딪힘인 전쟁으로 싸우는 게 나았다.

그렇게 판단한 밀턴이 급하게 후퇴 명령을 내리자 아군은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이미 싸우고 있는 제롬은 물론이고 뒤에서 막 합류하려고 했던 바이올렛과 정체불명의 기사도 빠르게 밀턴의 명령에 따랐다.

레스터 왕국군에서 절대적인 명령권을 가지고 있는 밀턴이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자들도 없었다.

철가면의 기사는 빠르게 쓰러져 있는 페일런 공작을 챙겨서 말머리를 돌렸다.

아마 안트라스에 비해서 밀턴이 유일하게 앞서는 부분이 이것일 것이다.

하지만 슈바이커 공작은 밀턴을 그냥 보낼 생각이 없었다.

이제 막 의욕이 생겨서 무거운 걸음을 했는데 누구 마음대로 돌아간단 말인가?

‘이럴 때는….’

슈바이커 공작은 빠르게 밀턴을 향해서 달려갔다.

그의 경험상 이럴 때 적의 발목을 잡고 싶으면 가장 높은 자를 잡아야 했다.

그래야 나머지도 발이 멈출 테니 말이다.

그리고 밀턴의 측근인 제롬은 빠르게 그런 슈바이커 공작의 의도를 읽고 대응했다.

“갈 수 없다!”

제롬은 용감하게 외치며 슈바이커 공작에게 덤볐다.

카아앙!

제롬의 검이 슈바이커 공작과 부딪히며 오러의 충격파를 사방에 퍼트였다.

제롬은 페일런 공작처럼 일격에 날아가 버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버거워 하는 느낌은 확연했다.

다만….

“내 시체를 넘기 전에는 주군에게 갈 수 없다!”

제롬은 스스로 전의를 다지고 슈바이커 공작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상대가 대륙의 최강자이며 제롬 역시 어린 시절에는 국경을 넘어서 그를 우상처럼 생각하며 목검을 휘두르던 소년 시절이 있었지만….

자신의 주군을 위협한다면 그게 누구든 간에 용서는 없다.

그저 적으로 간주하고 최선을 다해서 싸울 뿐.

제롬은 슈바이커 공작에게 혼신의 공격을 퍼부었다.

쾅! 콰앙! 퍼어엉!

일격 일격이 부딪힐 때마다 공기가 진동할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 교환되었다.

슈바이커 공작은 그 공격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막으며 제롬을 상대했다.

그런 제롬의 모습을 보고 레스터 왕국군의 병사들은 크게 놀랐다.

“테이커 후작님이 슈바이커 공작을 몰아붙이다니?”

“저분의 실력이 저 정도였던 건가?”

일반 병사들이 보기에는 제롬이 대륙 최강자를 상대로 일방적인 공격을 펼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멋지군.’

실상은 꽤 달랐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슈바이커 공작은 지금 제롬의 공격을 하나하나 음미하고 있었다.

자신의 목을 노리고 날아오는 것을 보며 슈바이커 공작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띄었다.

‘도대체 이게 얼마만이지?’

진심으로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날아오는 적의 공격이 반가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과거에는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몰락 귀족 출신인 자신이 세바스티안 공작의 애제자로 총애 받는 것이 못마땅했던 자들이 결투를 핑계로 그의 목숨을 노렸다.

당시 자신의 실력으로는 아직 버거웠던 상대들이 진심으로 목숨을 노리고 공격해 왔고 어린 날의 슈바이커 공작 역시 최선을 다해서 거기에 맞섰다.

‘참 좋은 시절이었지.’

보통 사람의 생각과는 많이 동떨어져 있지만 슈바이커 공작은 진심으로 그 시절이 그리웠다.

그때의 결투 하나하나가 자신의 성장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런 일은 없어졌다.

그의 명성이 올라가고 실력이 입증될 때마다 적의는 두려움으로 바뀌었고 감히 그와 맞서고자 하는 자는 점점 사라져 갔다.

가장 마지막까지 자신에게 대항심을 불태웠던 결국 도미닉 플로리안 공작마저 결국에는 포기해 버렸다.

더 이상 세상에 자신을 상대로 진심으로 검을 교환해줄 상대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슈바이커 공작에게 있어서 그건 슬픔을 넘어서 비극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검은 인생의 전부나 다름없다.

세상에서 가장 향긋한 미주를 가져와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녀가 자신에게 미소를 지어준다고 해도 검에 대한 갈증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 정말 오랜만에 적을 만났다.

아직 자신에 비해서 미숙함이 보이지만 그래도 훌륭한 기량을 가지고 있는 적이 진심으로 자신을 상대로 살기가 실린 검격을 날려주고 있다.

이제 머릿속에서 밀턴 포레스트를 추격하고자 하는 생각은 사라졌다.

애당초 이 결투판에 끼어든 것도 눈앞에 있는 제롬 테이커라는 남자에게 끌림을 느껴서가 아니었던가?

‘너 하나에 집중해 주마.’

그리고 슈바이커 공작은 방어 일변도를 버리고 공격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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