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주의 게임-225화 (225/257)

제225화

크리스챤 슈바이커.

몰락 귀족의 아들로 평민이나 다름없던 남자가 무섭게 두각을 드러냈다.

동세대에 두각을 드러냈던 도미닉 플로리안 공작은 젊어서부터 그와 무수하게 경쟁했지만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공식, 비공식을 합쳐서 두 사람이 검을 마주친 것은 서른 번이 넘는다.

그리고 그 수많은 대결 속에서 플로리안 공작은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이기기는 고사하고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실력의 차이는 더 커질 뿐이었다.

가장 마지막에 부딪혔던 10년 전의 결투에서 그는 슈바이커 공작에게 20합 만에 검을 떨어트리고 충격에 빠지기까지 했다.

슈바이커 공작은 이미 자신을 라이벌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경지를 넘보고 있는 것이다.

그때 그는 깨달았다.

자신은 평생 슈바이커 공작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제국 최고의 기사는 크리스챤 슈바이커 공작이다.

체국 최고의 스승은 핵터 세바스티안 공작이다.

이런 생각이 당연하다는 듯한 상식으로 굳어졌다.

심지어 플로리안 공작가의 기사가 가문을 떠나서 세바스티안 공작가에 배움을 청하기 위해서 찾아가는 경우도 생겼다.

그는 굴욕과 치욕에 몸을 떨었다.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서 가문의 역사에 다시 있기 힘들 정도로 큰 전성기를 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간의 평가에서 플로리안 공작가는 영원한 2인자로 인식되어 버렸다.

세상에는 부, 명예, 권력을 다 가지고 있어도 2인자로 만족할 수 없는 자들이 있다.

플로리안 공작이 바로 그랬다.

그는 플로리안 공작가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기 위해서 보다 큰 명예와 공적을 원했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이 전쟁은 큰 기회였다.

아니,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고 할 수도 있었다.

이제까지는 노골적으로 공적을 탐하는 행동은 자제해 왔었지만 이제는 인내의 한계였다.

어쩌면 최근에 자신의 아들이 미끼 역으로 쓰였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나서 더 초조해진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 플로리안 공작의 눈앞에 밀턴 포레스트라는 대어가 아른아른거리고 있다.

애당초, 자신이 세바스티안 공작보다 먼저 나가지 못한 것도 ‘아차’하며 크게 후회했던 그였다.

그런데 그가 밀턴 포레스트에게 고전하고 있으니 자신이 끼어들 명분이 있다.

라고 스스로 변명을 하며 앞으로 나선 것이다.

사실, 고전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고 결투가 길어지고 있을 뿐이었지만 그에게는 더 이상 인내를 가질 여유가 없었다.

저러다 만에 하나 밀턴의 목을 세바스티안 공작이 가져간다면?

그건 생각도 하기 싫었다.

“비키시오. 세바스티안 공작! 더 이상 한심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대도 가만두지 않겠소?”

“지금 뭐라…. 으음.”

세바스티안 공작은 크게 진노하려고 했지만 가까스로 노기를 가라앉혔다.

‘…·진정하자.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다.’

평소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전쟁터다.

그리고 양군의 병사들이 모두 지켜보는 기사 대전 중이다.

여기서 같은 아군끼리 싸운다면 그거야말로 100년은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로 멍청한 짓이다.

‘어쩔 수 없군.’

상당히 비상식적이었지만 플로리안 공작이 물러날 느낌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차라리 자신이 물러나야 아군의 충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겁하게 합공이라니? 그게 제국의 방식인가?!”

그가 물러날 필요는 없었다.

레스터 왕국에서도 한 명의 기사가 크게 외치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는 일직선으로 플로리안 공작을 향해 달려갔다.

“네놈은 누구냐!?”

플로리안 공작이 크게 일갈하자 상대는 마주 외쳤다.

“레스터 왕국의 남부 기사단 단장! 제롬 테이커다!”

콰아아앙!

그리고 제롬이 플로리안 공작과 격돌했다.

“와아아아아아!!”

“비겁한 제국의 마스터를 박살 내 버리십시오. 테이커 경!”

레스터 왕국군에서도 크게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게 무슨…. 큭!”

난장판으로 변해 가는 상황에 적응을 못하던 세바스티안 공작은 급하게 허리를 틀었다.

촤아악!

‘쳇, 아깝군.’

그가 급하게 몸을 틀었기 때문에 밀턴이 노렸던 회심의 일격은 세바스티안 공작의 어깨 보호대를 날려 버리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그리고 세바스티안 공작은 노호성을 질렀다.

“기습이라니? 대공의 직위에 있다는 자가 부끄러움을 모르는구나?”

“미안하군. 나는 우리가 결투 중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쪽 생각은 아닌가보지?”

“…….”

그건 맞는 말이었다.

결국….

“이놈!”

세바스티안 공작은 수치심을 분노로 바꿔서 밀턴을 다시 공격했다.

더 이상 일기토는 아니다.

2대2의 결투가 시작되었고 심지어 그 네 명이 모두 마스터이다.

이런 경우는 대륙의 전쟁사를 통틀어도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밀턴 대 세바스티안 공작.

그리고 제롬 대 플로리안 공작의 대결 구도였지만 어느 정도 섞이다 보니 서로 상대가 교환될 때도 있었다.

그렇게 100합이 넘어갈 때쯤….

“안 되겠군.”

제국군에서 한 명의 남자가 추가로 튀어나왔다.

“고담 후작님이다.”

“베이커 고담 후작님의 출진이다!”

제국군에서 큰 목소리로 병사들이 외쳤다.

심안의 베이커 고담 후작.

맹인의 몸으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걸물이자 제국의 마스터 중에서 가장 온화하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그러자 레스터 왕국에서도 다시 한 명이 튀어나왔다.

“내가 상대요. 고담 후작.”

거친 고함과 함께 달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고담 후작은 보이지 않는 눈꺼풀을 움찔거렸다.

“…션 페일런인가?”

이로서 레스터 왕국에 공식적로 밝혀진 마스터 세 명이 모두 튀어나온 것이다.

제국군의 병사 한 명이 멍하니 내 뱉었다.

“이거 돈 내고 봐야 하는 거 아냐?”

빠져 가지고….

라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주변에 그 말을 들은 자들은 모두 동감했다.

이걸 도대체 어디서 보겠는가?

마스터간의 결투.

그것도 3대3의 결투였다.

이런 광경은 대륙의 전쟁사를 통틀어도 유례가 없었다.

여섯 명 모두 대륙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기사의 정점에 있는 자들이다.

그들이 검을 교환하고 부딪칠 때마다 양국의 기사들은 이 광경을 조금도 놓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세바스티안 공작의 찌르기가 밀턴을 노린다.

밀턴은 그 공격을 피하며 그대로 세바스티안 공작을 스쳐 지나가며 그 뒤로 달려간다.

거기에는 고담 후작이 페일런 공작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끼어든 밀턴의 공격에 시선도 돌리지 않고 그대로 검을 휘둘러 그 공격을 받아친다.

콰아앙!

‘보이는 것 아니야?’

완전한 사각에서 레너드의 돌격력까지 이용해서 빠르게 몰아친 공격이었는데 고담 후작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밀턴의 공격에 대응하느라 생긴 틈을 노리고 페일런 공작이 고담 후작을 공격했다.

그의 특기인 연속 공격이 화려하게 허공에 빛의 궤적을 그리며 고담 후작을 공격했다.

하지만….

“션 페일런!”

도미닉 플로리안 공작이 거친 기세를 뿜어내며 페일런 공작의 앞을 가로 막았다.

카카카카캉!

허공에서 불꽃이 튀겼다.

페일런 공작의 자랑인 쾌검에 도미닉 플로리안 공작은 방패와 롱소드를 이용해서 모두 막아냈다.

‘읽힌다는 건가?’

자신의 공격이 완벽하게 간파당하자 페일런 공작은 이를 악물었다.

실제로 플로리안 공작은 페일런 공작보다 약간 상수였다.

그는 그의 공격의 흐름을 읽고는 방패로 대응하며 다른 한 손에 들린 롱소드로 오히려 역공격에 나섰다.

그러자 페일런 공작은 흐름이 깨지고 자세도 나빠졌다.

“끝이다!”

그 틈을 노리고 치고 들어온 세바스티안 공작의 공격.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어림없다!”

크게 일갈하며 끼어든 제롬이 검을 휘둘렀다.

첫 번째 휘두름에 세바스티안 공작의 공격을 막아내고….

카앙!

그대로 이어지는 두 번째 찌르기가 플로리안 공작의 목을 노렸다.

카카칵….

“큭….”

아슬아슬하게 방패에 오러를 둘러막은 플로리안 공작이었지만 자세가 무너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새 제롬은 자신의 공격 범위 안에 세바스티안 공작과 플로리안 공작을 포착했다.

두 사람이 그것을 자각한 순간….

스팟!

소리조차 뒤를 따를 정도로 날카로운 속도로….

기척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완벽한 절도로….

제롬의 검이 넓은 반원을 그리며 두 명의 마스터를 노렸다.

이 세 번째 베기 동작까지 포함해서 이 모든 공격은 불과 한 호흡에 이뤄진 것이었다.

“후우우….”

“위험했군.”

완벽해 보이는 공방이었지만 상대 역시 보통은 아니었기 때문일까?

제롬의 세 번째 공격은 세바스티안 공작의 가슴 갑옷을 조금 베어내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세바스티안 공작은 간담이 서늘했다.

만약 조금만 간격을 허락했다면 갑옷이 아니라 심장이 갈라졌을 것이다.

피한 것은 반쯤은 운이었다.

‘강하다. 이런 젊은이가 제국에 있었으면 좋으련만….’

목숨이 오가는 상황 속에서도 인재로서 욕심이 날 정도로 제롬의 실력은 탁월했다.

그리고 제롬 역시 만만치 않게 실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려운 상대들이군. 제국은 제국이라는 건가?’

제롬은 속으로 힘겨워했지만 겉으로 드러난 표정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천 길 낭떠러지 외줄타기 하는 듯한 아슬아슬한 느낌.

여섯 명의 마스터가 모두 느끼고 있는 감정이었다.

아주 조금만 삐끗해도 서로 목숨이 날아갈 것 같은 상황 속에서 벌써 몇 시간인지 모를 시간이 흘렀다.

공방의 횟수로 치면 이미 천 합을 넘게 교환했다.

난전 아닌 난전이라 정확하게 표현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만큼 치열한 격전인 것이다.

‘가능하면 첫날은 이대로 넘어가고 싶은데 말이야.’

밀턴은 곁눈질로 기울기 시작하는 해를 보며 생각했다.

이제 두 시간 정도만 더 끌면 해가 질 것 같다.

그럼 위태롭기는 해도 어찌어찌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밀턴은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다 제롬 덕분이지.’

치열하게 싸우는 와중이지만 밀턴은 상대편의 능력치를 살폈다.

자잘한 능력치까지 세밀하게 살필 틈은 없었지만 그래도 무력 수치는 알아둬야 했다.

핵터 세바스티안 - 무력 94.

베이커 고담 - 무력 95.

도미닉 플로리안 - 무력 97,

세 명 모두 강했지만 플로리안 공작은 정말 강했다.

정통파 기사로서 극한에 도달한 것처럼 보였다.

무력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실전에서는 당시의 상황이나 개개인의 센스도 큰 영향력을 끼친다.

하지만 그걸 포함해도 제국의 마스터들은 정말 강했다.

그런데도 어떻게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느냐 하면….

밀턴 포레스트 - 무력 93.

션 페일런 - 무력 95.

제롬 테이커 - 무력 99.

보다시피 제롬 덕분이었다.

무력 99.

밀턴이 재야에서 발굴한 제롬의 천재성이 드디어 만개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결투를 시작하며 제롬의 무력이 올라갔다는 것이다.

밀턴이 기억하기로 그 전에 제롬의 무력은 96이었다.

그런데 결투를 진행하며 조금씩 오르더니 마침내 99까지 오르고 말았다.

밀턴이나 페일런 공작이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제롬이 끼어들어서 힘의 균형을 맞춰 주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아직 살아 있는 것이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기만 하면 세비안 백작의 작전을 수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눈부시게 개화하고 있는 제롬의 재능이 결코 건드려서는 안 될 인물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낄 생각은 없었다.

좀처럼 보기 드문 광경이긴 하지만 자신의 피를 끓어오르게 하지는 못했다.

이미 3대3으로 균형이 딱 맞춰진 상황에서 자신이 끼어든다면 오히려 뒷말이 나올 뿐이었다.

슈바이커 공작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서서히 변해 갔다.

‘대단하군. 실전 속에서 발전하는 것이야 드문 일도 아니지만…. 저건 정말 대단해.’

슈바이커 공작을 자극한 것은 점점 더 발전해 가는 제롬 테이커의 존재였다.

아직 자신의 적수가 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10년, 아니 5년만 더 뒤에 만났다면 자신의 적수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 그럼 5년 후에 싸우자, 라고 생각하며 보내기에는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슈바이커 공작이 앞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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