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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게임-218화 (218/257)

제218화

열세 속에서 지크프리트가 선택한 것은 주력을 이용한 요격전이었다.

전선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적의 두 개 군단을 자신이 직접 요격해서 처리하는 것.

이것이 성공하면 밀리고 있는 전쟁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었다.

단,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이 작전의 성공률은 30퍼센트를 넘지 않았다.

지크프리트가 직접 이끌면서 최대한 병력을 집결시켜 봐야 5만에서 7만 정도가 한계다.

물론 자신과 제이크, 고스트가 이끄는 파괴력은 대단했지만 제국군의 정예 병력을 정면에서 요격해서 쓰러트릴 수 있다는 장담을 하지 못했다.

더구나 하나의 군단이 아니라 두 개의 군단을 모두 상대해야 함에는 말해 뭘 할까?

그래도 지크프리트가 이 선택을 한 것은 이것이 그나마 최선의 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쟁터에서 도박을 하지 않는 성격인 지크프리트였지만 도박수 말고는 길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조차 지크프리트의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대총통 각하. 베이커 고담 후작이 이끄는 군단이 솔룬 요새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솔룬 요새라고?”

“예. 그렇습니다.”

“큭…. 거기를 왜?”

솔룬 요새는 10만의 병력이 집중되어야 할 정도로 견고한 거점도 아니고, 중요한 거점도 아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 갑자기 적의 주력 군단이 나타나다니?

‘읽을 수가 없어.’

적의 군단을 요격하려고 하면 그 움직임을 읽어야 한다.

그래서 지크프리트는 적이 가장 먼저 공격할 것 같은 요새에 가까운 곳에 대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적의 움직임이 지크프리트의 예상과 전혀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지크프리트는 전략 지도를 펼치고 생각했다.

‘내 머리 위에 있다는 건가? 아니야. 이건 그런 느낌이 아니야. 마치 작전의 일관성조차 사라진 느낌이다.’

도저히 적의 의도를 읽을 수가 없었다.

전쟁터에서 무수한 적을 만나봤지만 이런 적은 정말 처음이었다.

제국군의 본진.

거기에 대기 중이던 세바스티안 공작은 전령이 가져온 기쁜 소식을 직접 안트라스에게 전해주었다.

“베이커 후작이 제대로 성과를 올렸다고 하는군.”

“그래. 다행이군.”

그리고 안트라스는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나서 전략 지도를 보며 말했다.

“그럼 자네가 공격할 것도 이제 정해볼까? 애야. 그거 가져오거라.”

“예. 현자님.”

안트라스의 지시에 따라 시종 소년이 뭔가를 가져왔다.

그런 안트라스의 모습을 보고 세바스티안 공작은 허탈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

“대단하다 해야 할지 어이없다 해야 할지….”

“허허허…. 뭐든지 쓰기 나름인 법이라네.”

그리고 안트라스는 시종 소년이 가져온 것을 받았다.

그것은 놀랍게도 주사위였다.

안트라스는 전략 지도에 색깔이 다른 주사위 세 개를 던졌다.

그리고는….

“6-3-2라…. 그럼 듀란 성이군. 어서 가서 처리하고 오게.”

이제 보니 전략 지도에는 빼곡하게 숫자가 매겨져 있었다.

안트라스는 주사위의 눈이 나온 것에 따라서 공격 지점을 정했던 것이다.

지크프리트가 읽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순전히 운으로 정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절대 공격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지점은 안트라스가 배제해 두었다.

하지만 나머지는 넓은 전선에서 어디를 공격해야 할지 철저하게 운으로 정했을 뿐이다.

이건 지금 제국군의 최고위진밖에 모르는 사실이었다.

“설마 이게 효과가 있을 줄은….”

“너무 생각을 많이 하면 오히려 적에게 읽히기 쉬운 법이라네.”

안트라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말했다.

“전쟁이라는 것은 운이 안 따라주면 못하는 거지.”

“하아…. 자네하고 있으면 전쟁이 뭔지 회의감이 들어.”

“후후후…. 좋은 현상일세. 괜한 로망을 품는 것보다는 회의감을 품어야 마땅한 것이지. 전쟁이란 말이야.”

“어쨌든 나는 가네.”

출전하는 세바스티안 공작에게 안트라스는 한 가지 당부를 남겼다.

“말해 두겠지만 운으로 정하는 것이니 운이 나쁘면 걸릴 수도 있네. 그때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알고 있겠지?”

“알고 있네.”

“그럼 수고하게나.”

그렇게 세바스티안 공작은 플로리안 공작과 함께 출진해서 훌륭하게 적의 거점을 함락시켰다.

전쟁은 일방적으로 제국의 페이스로 흘러가고 있었다.

운으로 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운이 나쁘면 걸릴 수도 있다. 라는 안트라스의 말은 정확했다.

연 달아서 허탕을 쳤던 지크프리트의 정예군이었지만 마침내 적의 위치를 잡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드디어 찾았군.”

지크프리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평소 작전으로 적을 농락하고 조종하는 것을 즐기는 지크프리트였지만 이번만큼은 간절하게 힘 대 힘의 승부를 하고 싶었다.

그만큼 적의 움직임이 공화국을 괴롭혔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마침내 적의 움직임을 잡았다.

적은 베이커 고담이 이끌고 루카스 플로리안이 포함되어 있는 10만의 제국 군단.

“여기서 뒤집는다.”

지크프리트는 각오를 다지고 전열을 가다듬었다.

“저게 공화국의 주 전력인가?”

루카스 프로리안은 공화국의 진형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병력 규모는 5만이라…. 잡아먹기에 딱 좋군.”

여기서 공화국의 주력을 괴멸시키고 대총통인 지크프리트의 목을 치면, 사실상 전쟁은 끝이다.

미래가 촉망 받는 젊은 무장으로서 어찌 욕심이 나지 않을까?

하지만….

“플로리안 경. 군령을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요?”

이 군을 이끌고 있는 것은 루카스 플로리안이 아니라 베이커 고담 후작이었다.

같은 마스터라고 해도 아직 기사 신분인 루카스보다는 고담 후작이 연륜으로 보나 직위로 보나 군의 지휘관으로 어울렸다.

“으음…. 알고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작전대로 행동합시다.”

차분하게 말하는 고담 후작의 의견에 루카스는 반발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뭐라고 반발하기에는 명분도 실리도 전부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아아…. 어쩔 수 없지요.”

그리고 루카스는 적의 진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운 좋은 줄 알아라.”

그리고 제국군 전체에 명령이 전달되었다.

“보병 전진! 우익부터 사선으로 나간다.”

지크프리트는 진형을 짜고 군을 전진시켰다.

적의 병력 규모가 이쪽보다 더 많기에 정밀한 진형을 짜지 않고는 덤빌 수 없었다.

그렇기에 지크프리트는 최대한 승산을 높이기 위한 진형을 짜고 군을 출전시켰다.

전쟁을 크게 보는 전략과 전투에 한정해서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 전술.

그 모든 것에 능숙한 지크프리트였지만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전술이었다.

이것까지 안 통한다면 어쩔 수 없다.

이제부터가 진짜 도박인 것이다.

그런데….

“대총통 각하. 적들이 퇴각합니다.”

“뭐라고?”

“후미에 최소한의 병력을 남기고 후퇴를 시작합니다.”

“큭…. 제이크!”

“예. 대총통 각하.”

“고스트 전원을 이끌고 돌격하라. 적의 중앙을 부숴라!”

“옛!”

지크프리트는 서둘러서 적을 공격했다.

이건 진형이 어쩌고 할 때가 아니었다.

그의 명령에 제이크는 고스트와 함께 출격해서 제국군의 후미를 공격 했다.

그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파괴력으로 적의 중앙을 부쉈다.

후퇴를 위해서 배치했던 제국군의 후미는 제이크의 돌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대총통 각하. 적들이 후미만 남기고 모두 후퇴했습니다.”

“…….”

전령의 보고에 지크프리트는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후미에 남긴 병력 5,000 정도를 갉아먹기는 했지만 그게 전쟁의 전체의 판도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결국 적은 주력을 온전한 상태로 무사히 후퇴했고 또 제국군의 전선에서 종횡무진 움직이며 피해를 끼칠 것이다.

“싸울 필요조차 없다는 건가?”

지크프리트는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어차피 지금의 흐름을 이어가기만 하면 승리는 제국의 것이다.

상대는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지크프리트는 실낱같은 희망이 서서히 사라져 가는 것을 느꼈다.

제국군을 상대로 돌파구가 보이지 않자 지크프리트는 본진에 귀환했다.

그리고 자신이 신뢰하는 주요 참모진들을 불러서 뭔가 지시를 내렸다.

“진심이십니까? 대총통 각하?”

“너무 위험합니다.”

“저는 반대입니다.”

지크프리트에 대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공화국의 중진들이었지만 이번 작전만큼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듯했다.

그들이 보기에 지크프리트는 너무 어려운 길을 선택하고 있었다.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달리 길이 없다.”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크프리트의 의지는 굳건했다.

“지금 즉시 작전을 시행한다. 일주일 안에 준비를 마치도록!”

지크프리트는 그렇게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부터 공화국군, 아니 공화국 전역에 믿지 못할 명령이 내려졌다.

“현자님. 공화국이 후퇴하고 있습니다.”

“후퇴라…. 어디까지 후퇴하고 있는 거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저 전선을 뒤로 물리는 것을 넘어서 후방으로 크게 후퇴하고 있는 듯합니다.”

“…….”

안트라스는 무겁게 침묵했다.

“어찌 하겠는가? 전과를 올리고자 한다면 지금 추적하는 것이 좋을 듯한데?”

옆에 있는 세바스티안 공작의 말대로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지금이야말로 전진의 호기다.

적이 후퇴하면 아군이 진격한다.

전쟁의 본질을 땅따먹기로 본다면 이건 지극히 평범한 생각이다.

다만….

“좀 꺼림칙하군. 우선 조금 더 지켜보도록 하세.”

안트라스는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오랫동안 전쟁을 지휘해 봤던 육감이 위험함을 경고했다.

지금 추격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이다.

그의 그런 직감이 옳다는 것은 며칠 후에 전령이 가져온 정보에 의해서 알게 되었다.

“적이 크게 후퇴했습니다.”

“정확한 위치는?”

“과거 스트라부스 왕국의 북방 국경선 지점까지입니다. 거기서 과거 공화국 시절에 만들어 두었던 국경 요새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허어…. 국토의 절반을 포기하고 물러났단 말인가?”

이렇게 파격적인 후퇴는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전령이 가져온 정보는 이게 다가 아니었다.

“그리고…. 후퇴하는 과정에서 적들이 전 국민을 철수시켰다고 합니다.”

“그거야 당연히 그렇겠지.”

“그리고 도시도 불태웠습니다.”

“그것도 당연하지.”

“그리고…. 용수 시설을 모두 부수고 도로망과 작은 마을까지 모두 파괴했습니다. 아직 추수를 하지 않은 밭을 모두 불태웠고, 숲에도 불을 질렀습니다.”

“…….”

세바스티안 공작은 할 말을 잃었다.

“남긴 게 뭔가?”

“없습니다. 과거 스트라부스 왕국의 수도였던 템플리체까지 철저하게 파괴했다고 합니다.”

“미친놈들.”

세바스티안 공작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후퇴하며 적군이 이용하지 못하도록 기반 시설을 무너트리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이건 그런 차원을 넘었다.

용수 시설이나 도로망 거기다 도시는 물론이고 작은 마을의 집까지 모두 파괴하고 산야까지 불태웠다니?

“전쟁 이후를 생각도 하지 않는 건가?”

세바스티안 공작의 말에 안트라스는 무겁게 동의했다.

“아마 그럴 걸세. 이 정도의 대규모 청야 전술이라니….”

안트라스는 지크프리트의 대범함에 혀를 내둘렀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안트라스가 이 정도이니 다른 지휘관들이 느낀 감정은 오죽할까?

광기에 가까운 집념을 보이는 공화국의 행동에 제국의 지휘관들은 모두 질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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