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주의 게임-216화 (216/257)

제216화

황제는 크게 감탄했다.

“그렇군. 그런 전쟁도 있는 것이군.”

옆에서 세바스티안 공작이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안트라스. 그래서야 우리도 만만찮은 사람과 물자를 소모하지 않나?”

“그렇지. 하지만 같은 속도로 소모를 한다고 해도 제국의 체력은 공화국보다 훨씬 크네. 안 그런가?”

“그건 그렇지. 하지만 전쟁을 길게 끄는 것은 자고로 국가에 해롭지 않나? 힘을 집중시켜서 단기간에 결판을 내는 방법도 있지 않은가?”

“이런 이런, 세바스티안. 나의 답답하고 우직한 친우여. 자네는 전쟁터에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네.”

“그게 무슨 말인가? 절대 해서는 안 될 생각이라니?”

“자고로 전쟁이라는 것은 아군에게 유리하게, 적에게는 불리하게 판을 만드는 것이 철칙이지.”

“그래서?”

“병력을 집결시켜서 국운을 걸고 건곤일척의 승부를 보고자 하는 것은 공화국에서 바라는 바이지. 우리가 왜 그래야 하는가? 이대로 적을 꾸준하게 소모시키기만 하면 되는데?”

“아아아…. 그렇군.”

세바스티안 공작도 납득한 것 같자 안트라스가 말을 이었다.

“원래 국가의 체력이라는 면에서 제국은 대륙 최강일세. 일대일의 전면전이 된다고 해도 체력전으로 가면 제국이 이기지. 거기다 지금 공화국은 제국에게 힘을 집중시킬 수도 없는 상황이야.”

“레스터 왕국의 포레스트 대공 말인가?”

“바로 그걸세. 적들은 레스터 왕국이라는 적이 존재하는 이상 우리에게 모든 힘을 쏟지 못해. 결국 절반의 전력으로 제국을 상대해야 하는데…. 훗, 장담하건대 올해 안에 공화국의 한계가 보일 걸세.”

안트라스의 말에 세바스티안 공작은 전율했다.

‘이렇게 이기는 방법도 있었구나. 허허허….’

말년에 얻은 자신의 친구가 뛰어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괴물일 줄은 몰랐다.

이 대륙의 정세를 본격적으로 조사하고 3년도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대범하고 철저한 전략으로 공화국을 압박하다니….

괴물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그래도, 적이 전선을 축소하기 시작했다면 이대로 똑같이 나갈 수는 없겠지.”

안트라스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뭘 하려는 건가?”

“지금부터는 보다 빠른 속도로 지시를 내려야 하네. 후방에서 전서구를 이용해서 지시를 내리면 늦어.”

“설마 전선에 직접 가겠다는 말인가?”

세바스티안 공작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고 황제 역시 만류하려 했다.

하지만 안트라스는 태연하게 말했다.

“어차피 후속군을 이끌고 자네도 곧 출전하지 않나? 그때 같이 가지 뭐.”

“나하고 자네하고 같은 입장이 아니지 않나? 본인의 나이를 생각하게.”

“쯧, 자네하고 내가 얼마 차이 난다고 그러나?”

“나야 마스터이고, 자네는 내일 당장 저승길에 가도 이상할 게 없는 노인네 아닌가?”

“허허… 틀린 말은 아니군.”

“그러니 얌전히….”

“자네 말 따라 나는 오늘내일 하는 몸 아닌가? 그렇다면 여기나 전쟁터나 뭐가 다른가?”

순간 세바스티안은 자신도 모르게 그런가? 라고 생각할 뻔했다.

“크흠…. 그래도 안 되오. 너무 위험하오.”

황제가 안트라스를 한 번 더 말리려 했지만 안트라스는 단호하게 했다.

“폐하. 아마 적들이 전선을 물렸다면 지크프리트 본인이 직접 전선에 나와서 움직일 가능성이 큽니다. 아무리 저라고 해도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지크프리트를 제어하기는 힘듭니다.”

“으으음….”

결국 필요한 일이라는 말이다.

황제와 세바스티안 공작은 그런 안트라스의 말을 설득할 근거가 없었고, 결국 황제는 안트라스가 전쟁터에 가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다만, 그냥 가는 것은 아니다.

후속 병력 20만.

거기다 제국의 모든 마스터들이 참전할 것을 명했다.

젊은 호랑이 루카스 플로리안.

제국의 수호신 핵터 세바스티안 공작.

심안의 베이커 고담 후작.

제국의 2인자 도미닉 플로리안 공작.

마지막으로 제국의 제1검.

공화국의 바론과 더불어서 대륙의 최강자 중에 한 명으로 손꼽히는 남자.

크리스챤 슈바이커 공작까지 동원되었다.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 법입니다.]

라는 안트라스의 간언으로 이뤄진 총력전이었다.

“20만의 추가 지원군?!”

전선에 도착한 지크프리트는 제국의 움직임을 보고 받고 크게 놀랐다.

“예. 그리고 제국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마스터들이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자만은 없다 이건가? 제국답지 않군.”

지크프리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2차 이념 대립 전쟁에서 지크프리트는 제국군을 일방적으로 유린했다.

어린애 손목을 비틀 듯이 손쉽게 해치워 버린 지크프리트의 전과에 사람들은 제국의 시대가 진작 끝났다고까지 했다.

오랜 평화 속에서 전쟁을 멀리하고 나태함에 젖어든 결과 제국군의 수준이 형편없어졌다는 말이다.

이건 지크프리트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지난 전쟁에서 제국은 그야말로 나태했다.

그리고 그 나태함 속에서 오만함과 공적에 집착하는 고집까지 더해졌으니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자기 좋을 대로 주물럭거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전쟁의 초기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의 흐름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전쟁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결코 무리하지 않고 그때그때 지크프리트가 가장 싫어할 짓만 골라서 하고 있다.

‘밀턴 그놈하고는 달라. 이건… 도대체 지금 제국의 군사를 움직이는 건 누구지?’

안트라스의 존재를 모르는 지크프리트였지만, 막연하게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총 병력 50만에 마스터가 다섯 명이라….’

공화국으로서는 악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해보는 수밖에.”

그래도 지크프리트의 머릿속에 포기라는 단어는 없었다.

지크프리트는 우선 전선의 병력 배치 자체를 완전히 바꿨다.

전선을 최소한 집중시키며 서로 보완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배치했다.

그리고 자신은 제이크와 함께 고스트를 이끌고 슬그머니 모습을 감췄다.

그의 행방은 아군인 공화국의 장교들이라고 해도 모를 정도로 철저하게 말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공화국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쏴라! 적을 쉬게 하지 마라!”

제국군 2만을 지휘하는 솔론 백작은 병사들을 부지런히 지휘하며 공화국군을 공격했다.

표적은 성벽이나 요새가 아니라 야전에 진을 치고 있는 공화국군 1만이 목표였다.

“백작님. 적들의 전열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습니다.”

부관의 보고를 받으며 솔론 백작은 피식 웃었다.

“훗, 쉬운 전투군. 슬슬 기마대를 준비하라. 적이 후퇴하는 와중에 뒤를 갉아먹는다.”

안트라스가 제국군에게 내린 지시는 크게 세 가지다.

1. 공성이면 세 배, 야전이면 두 배의 병력을 가지고 상대할 것.

2. 깊게 추적하지 않고 정공법으로 공격할 것.

3. 승리하지 않아도 좋으니 위험하면 즉각 후퇴할 것.

지난 2년 동안 세바스티안 공작에게 말해서 제국군의 전체적인 수준 향상을 꾀하라고 한 안트라스였다.

제국군의 병력 규모는 대륙 최강이었지만 그 수준은 너무 약졸이었다.

실전을 거치며 단련된 공화국군이나 레스터 왕국에 비해서 너무 처졌다.

그래서 2년 후를 기약하며 최대한 단련시켜 두라고 했지만 병사의 질은 훈련만으로 올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실전을 거치고 사선을 넘어온 공화국군의 병사들에 비하면 질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병력을 최대한 온전하며 싸울 수 있도록 저런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실제 안트라스가 내린 세 가지 지령 때문에 지금 제국군은 큰 병력의 소모 없이도 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자신들이 이기고 있다는 것을 파악한 지휘관들이 자신감이 붙으며 한층 더 강력해진 제국군이다.

하지만, 자신감이라는 것은 항상 오만함이라는 양면성을 띄고 있는 법이다.

지금 솔론 백작은 적이 약세를 보이자 끝장을 보고자 하는 생각에 기마대의 돌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저 쫓아내는 것이라면 이대로 화살을 퍼부으며 보병을 진군시키기만 해도 되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가 기마대를 돌입시키기 직전….

뿌우우우우우!

요란한 전투 나팔 소리가 들리며 솔론 백작의 왼쪽에서 한 무리의 군단이 등장했다.

지크프리트가 이끄는 공화국의 최정예군이었다.

“제이크.”

“부르셨습니까? 대총통 각하.”

“쓸어버려라.”

“옛!”

그 한마디로 지시는 끝이었다.

기마 부대를 출격시키기 위해 전열이 전방에 기울어져 있는 적의 측면을 잡았다.

거기다 이끌고 있는 것은 지크프리트와 함께 수많은 전쟁을 헤쳐 온 제이크와 고스트 정예 부대.

무슨 지시가 더 필요할까?

“돌격!”

“우오오오오오!!”

제이크의 호령 하나에 고스트를 필두로 한 기마 부대가 폭풍처럼 적에게 들이닥쳤다.

그러자 솔론 백작이 지휘하던 제국군 2만은 파도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져 갔다.

제이크가 이끄는 고스트는 압도적인 파괴력을 보였고, 그 뒤를 받쳐주는 병사들 역시 공화국군 안에서도 최고 정예군이었다.

지크프리트가 직접 가리고 가려서 뽑은 대총통 직속의 군단이었다.

“후퇴! 후퇴하라!”

결국 제국군은 이렇다 할 반항도 하지 못하고 금방 허물어졌다.

“각하, 적들을 정리했습니다.”

빠르게 적을 정리한 제이크에게 지크프리트가 말했다.

“좋아. 빨리 다음으로 이동한다.”

“옛!”

지크프리트는 자신의 군단을 이끌고 다시 후방으로 사라졌다.

전선에 합류한 지크프리트는 줄곧 지금과 같은 전투를 하고 있었다.

후방에서 위치를 숨기고 있다가 적이 한창 기세를 올리고 있을 때 나타나서 적을 쓸어버리는 식으로 전과를 올리고 있었다.

덕분에 제국군의 군대를 상대로 다섯 번의 전투를 해서 모두 승리할 수 있었다.

제국군의 끝없는 압박에 점점 지쳐가고 있던 공화국군에게 있어서는 가뭄의 단비와 같은 활약이었다.

“생각보다 피해가 크군.”

지크프리트보다 약간 늦게 전쟁에 합류한 안트라스는 피해 상황을 보고 받고 혀를 찼다.

지크프리트가 합류하고 나서 제국군의 피해가 상당했다.

5만에 가까운 병사들이 죽거나 중상으로 전선을 이탈했다.

아무리 제국군의 병력 규모가 압도적이라고 해도 5만의 손실은 묵과할 수 없는 정도다.

“쯧, 내가 적극적인 전투는 분명 피하라고 했을 텐데….”

안트라스의 말에 현장 지휘관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몸을 움찔했다.

이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안트라스는 작위도 없고 제국인도 아닌 외부인이다.

하지만 세바스티안 공작과 허물없이 대하는 친우이며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대놓고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실제 황제는 안트라스에게 근위 기사단을 호위로 붙이며 현장 지휘관들이 안트라스에게 무례한 태도를 보이면 즉결로 처형해도 좋다고 지시를 내렸다.

“하긴, 전황이 잘 풀리고 있는 상황이니 전공에 욕심이 나기는 했겠지. 이 정도는 이해하겠네.”

안트라스의 말에 현장 지휘관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피해에 대한 질책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넘어가 준다면 그들로서는 행운이었다.

“단, 지금부터는 나의 지시에 잘 따라주기 바라네.”

현장 지휘관들의 마음을 한 번 떨어트렸다가 다시 건져 올린 안트라스는 지휘관들에게 다시 지시를 내렸다.

전열을 가다듬고 조금 더 세밀하게 전선을 배치했다.

그리고….

“고담 후작, 플로리안 경.”

“부르셨소.”

“불렀소?”

안트라스는 마스터 두 명을 호출했다.

“두 사람은 병력 10만을 거느리고 함께해 주시오. 그리고 세바스티안 공작, 플로리안 공작.”

“불렀는가?”

“말하시오.”

“두 사람 역시 병력 10만을 거느리고 함께해 주시오. 이 두 개의 군단이 앞으로 공화국을 공격하는 두 개의 창이 될 것입니다.”

안트라스는 전선을 넓게 퍼트려서 적의 힘을 분산시키면서도 마스터 두 명에 10만이라는 대군이 포함된 군단을 두 개나 만들어서 전쟁에 투입하기로 했다.

제국의 저력이 있기에 할 수 있는 전략이었지만 안트라스는 제국의 장점을 확실하게 활용하고 있었다.

“두 군단은 앞으로 본인이 지시하는 지점을 공격해서 공화국을 곤란하게 하면 되오. 단, 너무 깊게 들어갈 필요는 없소.”

안트라스의 말에 네 명의 마스터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한 명, 약간의 불만을 품고 있는 인물이 있었다.

“한 가지 질문이 있소. 은의 현자님.”

“말하시오. 플로리안 경.”

불만을 말한 남자는 가장 젊은 마스터 루카스 플로리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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