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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게임-215화 (215/257)

제215화

세바스티안 공작은 전쟁에서 일어난 일을 모두 설명했다.

그 후에는 안트라스의 요청에 따라서 밀턴 포레스트와 지크프리트에 대한 정보도 빠짐없이 조사해 주었다.

그 모든 정보를 듣고 안트라스가 말했다.

“허허허…. 용과 호랑이가 서로 싸우고 있었구나.”

“용과 호랑이? 그게 무슨 말인가?”

세바스티안 공작의 질문에 안트라스는 부채를 펼치고 탁 트인 목소리로 말했다.

“숲에 엎드려 기회를 보다 일단 움직이면 사납고 과감하게 달려들어 사냥감을 취하지. 지크프르트. 이 남자는 인내심과 과감함을 모두 갖추고 있는 간웅일세. 그 본질은 지혜로운 호랑이라 할 만하지.”

“…….”

“세상 누구 하나 주목하지 못하는 작은 연못에 용이 한 마리 잠자고 있었네. 그 용이 하늘로 승천함에 따라 수많은 구름이 그에게 어우러지며 한 폭의 절경을 만들어 냈지. 포레스트 대공. 그는 그야말로 시대의 풍운아. 운명에 선택 받은 용이라고 할 만하군.”

안트라스의 문학적인 감상에 세바스티안 공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는 종종 자네 말을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네.”

“허허허…. 그냥 이 두 젊은이가 무척 뛰어난 인재라는 말일세.”

“그럼 그냥 그렇게 말할 것이지….”

“어쨌든 나태한 제국이 상대하기에는 다소 버거운 적들이군.”

“…….”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세바스티안 공작이었지만 그렇게 말하기에는 최근에 겪은 패배가 너무 컸다.

안트라스는 세바스티안 공작에게 말했다.

“세바스티안, 제국의 황제 폐하를 알현하게 해 주게. 직접 뵙고 드릴 말씀이 있네.”

“알겠네.”

그렇게 안트라스는 제국의 황제를 만났다.

그때 그의 나이가 72세다.

“그대가 안트라스인가? 세바스티안 공작의 말에 의하면 남대륙의 제국에서 재상의 자리를 지냈다 하는데 정말인가?”

황제의 물음에 안트라스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은 그저 폐하의 은덕에 기대어 여생을 보내고 있는 야인일 뿐입니다.”

황제는 안트라스를 봤을 때부터 마음에 들었다.

겸손함과 당당함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있는 모습은 몹시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안트라스는 황제와 독대를 가지며 자신의 지혜를 보여주고 단번에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저 지혜롭기만 한 자라면 세상에 많이 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자존심이 강해서 군주의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다가 제대로 쓰임을 받지 못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트라스는 달랐다.

그는 황제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다.

제나라에 있으면서 두 명의 황제를 이미 섬겨 보았고 보필해 봤다.

황제를 대할 때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도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 수 있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무능한 군주는 무능한 신하가 만들어내는 법. 자신의 지혜만 믿고 군주에게 일방적인 믿음을 요구하는 이는 무능한 이와 다를 바가 없다.]

라는 것이 그가 제나라 승상으로 있으며 자식들에게 베푼 가르침이었다.

그는 황제를 설득시켜서 당장이라도 파견할 것 같은 2차 원정군을 일단 보류시켰다.

그리고 2년을 기다리라고 했다.

“2년씩이나 기다려야 하는 이유가 있소?”

“레스터 왕국과 공화국의 휴전 조약이 그때까지기 때문입니다.”

“흐음….”

“휴전 조약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공화국을 먼저 공격하십시오. 동시에 레스터 왕국에 사신을 보내서 합공할 것을 요청하십시오.”

“호오…. 과연, 그렇게 하면 공화국을 손쉽게 쓰러트릴 수 있겠군. 하지만 레스터 왕국이 과연 우리 요청을 받아들이겠는가?”

“아니요. 그들은 따르지 않을 겁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피하려 할 테지요.”

“그렇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제국이 먼저 공화국과 전쟁을 주도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기에 레스터 왕국이 참전한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 끼어들지 않도록 하는 것만 해도 충분합니다.”

“호오….”

“레스터 왕국이 끼어들지 못하게 한다면 우리가 온전하게 공화국의 공략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설령 원군을 파병하지 않는다고 해도 공화국의 입장에서는 레스터 왕국과의 국경을 비워 둘 수 없는 노릇이지요.”

“과연, 그렇군.”

“제국은 전력을 기울여서 전쟁에 임할 수 있지만 공화국은 전력의 5할, 기껏해야 6할밖에 동원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전력의 차이는 더욱더 극대화될 것이고 결국 공화국은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안트라스의 계책은 근시안적인 눈앞 전쟁의 승패가 아니라 보다 큰 미래를 보는 것이었다.

공화국의 멸망이라는 미래를 말이다.

“과연 탁월한 계책이오. 안트라스 그대를 제국의 재상으로 임명하여 이 작전을 책임지고 시행하도록 하겠소.”

“죄송하오나. 소인은 외부 인사이니 갑자기 제국의 요직에 오르면 내부의 분열을 일으킬 것입니다.”

“으음….”

“그저 황궁에 머물며 폐하에게 의견을 고하는 고문직 정도가 어떨까 합니다.”

“그대가 그러하겠다면….”

그리고 황제는 안트라스를 황제의 은사(恩師)로 임명하며 은의 현자라는 호칭을 내렸다.

정식 작위는 없었지만 세바스티안 공작의 친우에다 황제의 스승이라는 자리는 실질적인 작위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제국은 2년의 준비 기간을 가지고 칼을 갈았다.

세상은 왜 제국이 그렇게 오랜 기다림을 가져야 했는지 몰랐지만 이 모든 것이 안트라스라는 한 남자의 큰 그림이었다.

제국의 군이 북상을 시작했다.

그 규모는 무려 30만.

제국에서 작정하고 군사를 움직인 것이다.

발랑스 왕국의 니콜라스 국왕은 기꺼이 제국에게 길을 열었고 원조 물자를 지급하는 한편 자신들도 일군을 거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황제는 그 제안을 거절했고 그저 길을 열고 물자를 제공하는 것만 허락했다.

니콜라스 국왕은 그런 황제의 태도가 자비롭다고 느꼈지만 실상은 안트라스가 한마디 때문이었다.

[그런 오합지졸이 제국군에 섞이면 군량이 아까울 뿐입니다.]

이 한마디 때문에 발랑스 왕국의 군대는 이 전쟁에서 빠지게 되었다.

사실, 오합지졸이고 뭐고 간에 전쟁이라는 것은 숫자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번 전쟁에서 안트라스가 그리는 그림은 좀 달랐다.

탄탄한 벽돌로 쌓아 올려야 하는 담에 다듬어지지 않은 돌멩이를 더한다고 해 봐야 틈이 벌어질 뿐.

그는 발랑스 왕국군을 제외하고 제국군에게 지령을 내렸다.

[공화국군의 남부 영토 전체를 빠짐없이 공격하라. 단, 무리할 필요는 없다. 성을 함락하지 못해도 좋으니 계속해서 공격하라.]

성을 함락시키지 않아도 좋다는 지시에 일선 지휘관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황제에게서 내려온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그렇게 해서 공화국군의 남부 지역에서 본격적인 전쟁이 벌어졌다.

전쟁이 시작되고 3주가 지났을 무렵 지크프리트에게 전황의 결과가 보고되었다.

“대총통 각하. 전선에서의 보고입니다.”

“보고 하라.”

“남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선은 총 열일곱 곳이며 아직 함락된 성은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공화국의 병사들은 용맹하게 싸우며 제국군을 물리치고 있습니다.”

“오오오오오!”

“과연, 훌륭하군.”

“하하하. 제국 놈들이 전쟁에 무능하다는 것이야 이미 입증된 일 아닙니까?”

전령의 보고에 공화국의 장교들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지크프리트는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고 말했다.

“하나도 함락된 성이 없다고?”

“예. 그렇습니다. 대총통 각하.”

“이상하군.”

지크프리트 스스로 알기로도 남부의 전선에는 방어에 취약한 성이 몇 개 있었다.

예산의 부족으로 미처 신경 쓰지 못한 성도 있었고, 일부러 방어를 취약하게 해서 적에게 함락 당한 후에 고립시킬 목적으로 만들어 둔 곳도 있었다.

그런데 하나도 함락되지 않다니?

남부 전선 전체를 두들기고 있는 제국의 공격이 그렇게 약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이런 결과는 이상하다.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전령.”

“예. 대통총 각하.”

“지금 즉시 전서구를 날려 각 전황의 보고를 상세하게 수집하라. 전투의 횟수. 적의 전과, 아군의 사상자와 부상자 등등. 모든 정보를 올려라.”

“예. 알겠습니다.”

지크프리트의 지시에 따라 전령은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며칠 후.

“이…. 이런 일이.”

지크프리트는 보고서를 쥐고 손을 부르르 떨었다.

“대총통 각하. 무슨 일이십니까?”

“지도를 가져와라! 어서!”

지크프리트는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전선의 지도를 확인한 후에 이를 악물고 말했다.

“여기, 여기, 그리고 여기하고 여기도….”

지크프리트는 지도에서 열 곳이 넘는 곳을 지적했다.

그러고는….

“이상 지적한 곳에는 당장 퇴각 명령을 내려라. 대비되어 있는 2진까지 방어진을 물려라!”

지크프리트의 지시에 공화국 고위층 장교들은 영문 모를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중에 한 명이 지크프리트에게 말했다.

“대총통 각하. 공화국의 전사들이 용맹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아직 패색이 드러난 곳은 하나도 없는데 어찌 후퇴를 명하십니까?”

“용감하게 싸우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예?”

“시간이 없다. 당장 전선에 지시를 전달하라! 그리고 제이크!”

“예. 대총통 각하.”

“지금 당장 중앙군에 지령을 내려라. 내가 직접 전선에 나선다.”

“예. 알겠습니다.”

지크프리트는 빠르게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사실 서쪽에 있는 레스터 왕국 때문에 자신이 직접 움직이는 것보다는 중앙에서 전체적인 지시를 내리며 상황을 두고 보려고 했었다.

그런데 상황을 보니 그럴 때가 아니다.

‘한 달만 늦게 알아챘다면 이 전쟁은 돌이킬 수 없었을 것이다.’

지크프리트가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전선의 상황은 나빴던 것이다.

세바스티안 공작은 황궁에 급하게 들어가서 황제에게 알현을 요청했다.

그리고 그는 황실의 시종에 따라서 황궁의 후원에 안내되었고, 거기서 황제는 안트라스와 티타임을 가지고 있었다.

“여어. 자네 왔는가?”

안트라스는 반갑게 인사를 했지만 세바스티안 공작은 우선 황제에게 인사를 해야 했다.

“제국의 유일한 절대 군주에게 핵터 세바스티안이 인사 올립니다.”

“어서 오게. 공작.”

그리고 인사 후에 세바스티안 공작은 황제에게 서신을 전해 주었다.

“전선에서 온 급보입니다.”

황제는 서신을 뜯어서 내용물을 확인하더니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호오…. 공화국군이 스스로 병력을 물리고 요새를 떠났다고 하는군.”

황제는 자신의 곁에 있는 안트라스에게 들으라는 듯이 상황을 설명했다.

거기에 안트라스는 뜨거운 차를 천천히 마시며 말했다.

“허허…. 벌써 말입니까? 생각보다 눈치채는 게 빠르군요.”

안트라스는 마치 예상했다는 듯이 말했고 황제는 꿍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

“끄으응…. 지크프리트는 귀공의 신묘한 책략을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짐은 모르겠군. 이제 슬슬 답답함을 풀어주면 안 되겠나?”

길버트 황제의 말에 안트라스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전쟁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아십니까?”

“음…? 그거야 군대가 있어야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군대는 무엇으로 유지됩니까?”

원론적인 질문이 이어졌고 길버트 황제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냥 원론적으로 대답했다.

“병사와 지휘관, 그리고 병량과 무기도 있어야겠지.”

“그렇습니다. 상세하게 나누면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사람과 물자라고 할 수 있죠.”

“사람과 물자?”

“예. 그렇습니다. 말단 병사부터 여기 있는 세바스티안 공작까지. 비중의 차이는 있었지만 결국 크게 나누면 사람인 것이죠. 병량과 무기 역시 결국은 전쟁에 필요한 물자입니다.”

“그렇군. 흐음….”

길버트 황제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닌 듯했다.

“그럼 귀공이 한 책략은 공화국군의 두 가지 요소 중에 하나에 문제가 발생하도록 했다는 거군.”

“현명하신 판단력이십니다.”

“다 떠먹여주고 그렇게 말해 봐야….”

황제가 투덜거리자 안트라스는 설명을 이었다.

“전선을 최대한 넓게 펼쳐서 전방위로 압박을 가하지만 결코 가열찬 전투를 할 필요는 없다. 제가 한 지시는 이것이 다였습니다.”

“그렇지. 그런데 그게 이런 결과로 이어지다니….”

“아무리 가열한 공격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전쟁은 전쟁. 크고 작은 전쟁이 벌어질 때마다 사람과 물자는 점점 소모됩니다. 전쟁이라는 것은 국가적으로 가장 큰 체력을 소모하는 행위기 때문이죠.”

“그건 그렇지.”

전쟁 한 번 할 때마다 들어가는 군자금이 얼마나 천문학적인지 길버트 황제는 잘 알고 있었다.

“전선 하나하나에 소모되는 물자와 사람은 별것 아닐지 모르지만 그게 남부 지역의 국경 지역 전체에 걸쳐서 펼쳐진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티끌이 모이면 산이 되는 법. 공화국은 지난 한 달 동안의 전투에서 실로 많은 물자와 사람을 소모했을 겁니다.”

“과연, 그게 공화국에 압박이 되었다는 것이군.”

“그렇습니다. 성을 함락시킬 필요도 없고, 적장의 수급을 취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공화국의 체력을 끊임없이 소모시키면 그들은 빠르게 한계를 맞이할 것이니까요.”

“오오오….”

“제국은 그 후에 힘이 빠진 적을 유유히 처리하면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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