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주의 게임-210화 (210/257)

제210화

밀턴이 한발 뒤로 물러나자 레이라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베스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엘리자베스.”

조용하고 단호하게 딸의 이름을 불렀다.

“으아아아앙! 아아아아아앙!”

베스는 엄마가 다가오자 더 크게 엉엉 울었다.

나는 아직 서럽다.

라고 세상에 항의하는 듯한 울음이었다.

하지만 레이라는 단호하게 한 번 더 말했다.

“엘리자베스.”

“으아아아앙! 엄마. 아빠가…. 아빠가….”

엘리자베스는 이제 아빠의 부당함을 호소하려고 했다.

세상에 씻어야 간식을 준다니?

어린 엘리자베스의 안에서 아빠가 악당으로 등극하기에는 충분한 이유였다.

하지만 레이라는 그런 엘리자베스의 응석을 받아주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

“울음을 그치렴.”

“으으으으…. 으으….”

만만한 아빠와 달리 자신의 땡깡이 통하지 않는 엄마의 단호함은 벌써부터 엘리자베스의 심신을 제압하고 있었다.

체벌도 없고 훈계도 없고 망태 할아버지도 없다.

하지만 레이라 여왕은 자연스런 위엄으로 딸의 버릇을 제압하고 있었다.

그녀는 차분하게 딸이 울음을 그치도록 기다렸다.

그리고 엘리자베스가 울음을 그치자 시녀를 불러 말했다.

“베스를 씻기고 간식을 주도록 해.”

“예. 여왕님.”

그걸로 상황은 끝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울다가 지쳤는지 얌전하게 시녀의 품에 안겨서 씻으러 갔다.

밀턴은 세상 신기하다는 듯이 그런 레이라 여왕을 보고 말했다.

“…·어떻게 한 거야?”

요물인 거야 진작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 요력이 육아에까지 요긴하게 쓰일 줄은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신도 좀 배우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 밀턴에게 레이라 여왕이 단호하게 말했다.

“애를 너무 오냐오냐 받아주기만 하니 그렇죠.”

“아니 하지만…·.”

“베스를 사랑해 주는 건 고마워요. 하지만 사랑한다면 단호하게 대처할 때도 있어야 해요.”

“아니 알긴 알지만….”

“알지만이 아니에요.”

그리고 레이라 여왕은 한동안 밀턴에게 육아에 관한 잔소리를 했다.

밥 먹기 전에 간식을 주면 안 된다 같은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램프의 요정처럼 부탁하는 걸 다 들어주는 것도 안 된다는 것까지 하나하나 꼼꼼하게 지적을 했다.

“알았어. 이제 안 할게.”

결국 밀턴은 항복했다.

그리고 딸의 교육에 관한 대부분의 전권은 레이라에게 맡기기로 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라고 해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엉망진창으로 키워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육아는 진짜 전쟁이네.”

저녁을 먹고 엘리자베스가 잠들자 밀턴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침실에 들었다.

이번에 밀턴과 함께하는 여인은 바이올렛이었다.

“그래도 귀엽잖아요?”

“그렇지. 귀여워 죽겠어. 진짜.”

밀턴은 다시 흐뭇한 표정을 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이렇게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존재가 있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크흠…. 그래도 레이라의 말이 맞기는 맞아. 너무 오냐오냐해도 좋지는 않은 것 같아.”

본격적인 육아를 해보고 나름 깨달은 것이 있는 밀턴이었다.

바이올렛은 그런 밀턴의 겉옷을 받아 직접 걸어주며 말했다.

“그래도 저는 베스가 부럽던걸요?”

“응? 무슨 말이야.”

“저는…. 아버지에게 그렇게 사랑 받아 본 적이 없으니까요.”

바이올렛의 말에 밀턴은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있어서 사랑은 고사하고 관심도 받지 못했고 실컷 이용만 당했던 바이올렛이었다.

그런 그녀의 앞에서 베스를 너무 오냐오냐하는 것은 그녀의 유년기 시절의 고통을 자극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런 밀턴을 보고 바이올렛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요. 저는 괜찮아요. 왜냐하면….”

바이올렛은 밀턴의 가슴에 얼굴을 기대며 말을 이었다.

“지금 너무 행복한걸요? 세상에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그녀의 말에는 진심이라는 것이 가득 전해져 왔다.

“바이올렛.”

밀턴은 그런 그녀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녀의 턱을 들고 그대로 진하게 키스를 했다.

그리고 그녀를 안아서 침대로 슬그머니 옮기고 드레스의 끈을 풀었다.

그러자….

“아, 잠시만요. 저…. 저 일단은 준비를 해야 돼요.”

바이올렛은 밀턴을 살짝 밀어내며 침대 옆의 서랍장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건…?”

밀턴의 물음에 바이올렛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날짜는 괜찮지만 혹시 모르니까요.”

그녀가 꺼낸 것은 피임약이었다.

밀턴과 사랑을 나누기 전에 그녀가 항상 먹었던 것이다.

밀턴은 그녀가 약을 먹기 전에 손목을 잡고 말했다.

“안 먹어도 돼. 이제 당신도 임신해도 괜찮잖아?”

밀턴도 알고 있었다.

바이올렛이 일부러 임신을 피해 왔다는 것을 말이다.

레이라 여왕이 낳은 아이는 레스터 왕가에 이름을 올리니 괜찮다.

하지만 포레스트 대공가의 후계자는 소피아나 바이올렛 둘 중에 한 명이 낳은 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바이올렛은 그 자리를 소피아의 아이에게 넘겨주고 싶어 했다.

사실 일개 귀족가의 영애였던 소피아보다는 공국의 공주 출신인 바이올렛 쪽이 혈통이 더 좋다.

하지만 혈통과는 별개로 바이올렛은 자신이 밀턴의 세 번째 아내라는 사실을 항상 자각하고 있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는 경우야 종종 있었지만….

소피아가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을 생각하면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소피아가 먼저 임신을 해서 아들을 낳을 때까지는 자신의 임신을 미뤄왔던 것이다.

밀턴은 이런 바이올렛의 속내를 알고 항상 고마워했다.

하지만 이제는 소피아가 아이를 낳았고 심지어 그 아이는 아들이다.

이제 후계자 구도에는 문제가 없으니 바이올렛이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은가?

“당신이 낳은 아이는 무척 귀여울 거야.”

밀턴은 그렇게 말하며 바이올렛의 가는 목에 부드럽게 키스했다.

그러자 바이올렛은 잠시 망설이는 듯했지만 다시 한번 밀턴을 밀어냈다.

“미안해요. 아직은 안 돼요.”

“뭐?”

밀턴은 설마 바이올렛이 거부할 줄은 몰랐다.

‘왜지? 이제 후계자 구도는 괜찮을 텐데?’

밀턴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월리엄이 조금 더 크기를 기다리는 거야? 그럴 필요는 없어.”

“아니에요. 그런 문제도 있었지만 이제 그것만은 아니에요.”

“그럼 왜?”

“왜 그런지는 내일 아침에 알려 줄게요.”

“내일 아침? 왜 지금 말하지 않고….”

“말로 하는 것보다 보여 주고 싶은 것도 있거든요.”

“…….”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밀턴에게 바이올렛은 쑥스러운 얼굴을 하고 말했다.

“오늘은 제 말에 따라주세요.”

그리고 그녀는 피임약을 먹고는 스스로 드레스의 끈을 풀었다

사르륵 하며 살을 스치는 소리와 함께 드레스가 내려가며 바이올렛의 하얀 속살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내일의 일은 내일 생각하자.’

밀턴은 의문을 내일로 미루고 지금은 눈앞에 있는 아름다운 아내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새벽까지 바이올렛과 격한 사랑을 나눴기 때문인지 밀턴은 다소 늦게 눈을 떴다.

그리고 그가 눈을 떴을 때 품속에 있어야 할 사랑스런 아내는 없었다.

“응? 어디 갔지?”

먼저 일어난 바이올렛을 찾는 밀턴에게 시녀가 문을 열고 들어와서 말했다.

“대공 전하. 바이올렛 대공비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채비를 하고 오시지요.”

“응?”

밀턴은 영문도 모른 상태로 시녀의 이끌림에 의해서 걸어갔다.

약간 비몽사몽 하기는 했지만 걷다 보니 정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시녀의 안내를 받아서 도착한 곳은….

“왜 연무장에?”

밀턴의 개인 연무장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밀턴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바이올렛이었다.

그녀는 머리를 뒤로 묶어서 깔끔하게 정리했고 갑옷을 다 차려입고 절도 있게 다듬어진 모습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젯밤 자신과 사랑을 나누었던 여인이 전쟁터에서와 다름없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밀턴은 의아했다.

“바이올렛. 아침부터 왜?”

“직접 보여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잠시 상대 좀 해 줄래요?”

그녀의 말에 밀턴은 아직 준비가 덜 되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그녀의 말을 따랐다.

‘무슨 생각이 있겠지?’

밀턴은 갑옷을 입지는 않았지만 한쪽에 있는 검을 들고 바이올렛과 마주섰다.

“대련이지만 최선을 다할게요. 당신도 그렇게 해 주세요.”

“최선이라고 해도…. 음.”

곤란한 듯 말을 하던 밀턴의 태도는 바이올렛이 자세를 잡자 싹 변했다.

눈앞에 날카로운 기세를 뿜어내는 바이올렛을 본 순간 적당히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후우우우우….”

바이올렛은 호흡을 정돈하더니 그 직후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움직임의 전조가 거의 없어서 얼음을 스치고 미끄러지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녀는 그대로 밀턴의 발목을 노리고 낮게 검을 휘둘렀다.

밀턴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그 공격을 피하고 바로 검을 내리쳐서 바이올렛을 공격했다.

적당히 기세를 죽인 검이긴 했지만 그래도 밀턴의 검은 바람을 매섭게 가르며 바이올렛의 머리로 떨어져 갔다.

그러나….

밀턴의 검이 머리에 닿기 전에 바이올렛의 몸이 유려하게 움직이며 밀턴의 공격을 피했다.

동시에 그녀의 검은 밀턴의 턱을 노리고 날카롭게 치솟았다.

‘웃!’

밀턴은 상체를 뒤로 젖혀서 피하기는 했지만 그 덕분에 자세가 무너졌다.

그런 빈틈을 놓치지 않고 바이올렛 공주의 발차기가 밀턴의 복부에 작렬했다.

퍼어억!

“크윽….”

복부에 식스팩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마누라의 발차기는 밀턴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뒤로 쓰러진 밀턴은 재빨리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리고 그제야 밀턴은 확신했다.

‘강해졌어. 예전보다 훨씬 더.’

밀턴은 빠르게 바이올렛의 상태를 확인했다.

[바이올렛 론 플로렌스]

대공비 LV.4

무력 - 91 통솔 - 85

지력 - 30 정치 - 20

충성 - 99

특성 - 폭주, 분전, 특공, 육감,

폭주 LV.8 : 전투 중에 자신의 부상을 무시하고 싸울 수 있다. 단, 이성적인 판단이 크게 떨어진다.

분전 LV.8 : 위급한 상황이 되면 발동한다. 자기 실력의 최대 80% 이상의 실력을 보인다.

특공 LV.9(MAX) : 다수의 적을 상대로 단신으로 파고들어서 날뛴다. 높은 확률로 상대방의 전열을 무너트릴 수 있다. 적의 사기를 감소시킨다.

육감 LV.7 : 자신이 지휘하는 군에게 위급한 상황이 닥치는 것을 사전에 감지할 수 있다.

“이럴수가…. 바이올렛 당신?”

밀턴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바이올렛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부터 제대로 할게요.”

그리고 그녀의 검에 마스터의 상징을 의미하는 선명한 오러 블레이드가 맺혔다.

“잠…. 잠깐만.”

“갑니다.”

밀턴이 제지하려고 했지만 바이올렛은 망설이지 않고 달려왔다.

그리고 밀턴도 어쩔 수 없이 검에 오러 블레이드를 끌어올렸다.

콰아아앙!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굉음이 울려 퍼졌고, 둘은 본격적으로 서로 어울리기 시작했다.

이제 바이올렛이 자신에 비해서 하수라는 생각을 버린 밀턴은 대련이라는 범주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바이올렛 역시 특유의 광기를 터트리지 않을 뿐.

역시 최선을 다해서 검을 휘둘렀다.

200합 정도의 공수 교환이 흘렀고 둘은 대련이 더 격해지기 전에 서로 떨어져서 검을 거두었다.

“후우우우우….”

바이올렛은 검을 거두고 호흡을 정돈했고, 밀턴은 그런 아내를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천재인 거야 알고 있었지만….’

설마 어느새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렀을 줄은 몰랐다.

죽어라 훈련시키고 전쟁터에서 구르는 릭과 토미는 아직 익스퍼트 중급의 벽은 넘지 못해서 버벅거리고 있는데 바이올렛 공주는 이 왕궁에서 홀로 마스터의 벽을 넘어 버린 것이다.

이건 재능만으로는 불가능했다.

마스터라는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 그녀는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매일 자신을 갈고 닦았으리라.

그 노력의 결과를 몸소 체험한 밀턴은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래서 아직…. 안 된다는 거야?”

밀턴은 그녀가 임신을 꺼리는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바이올렛 공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직, 전쟁이 완전하게 끝난 것은 아니죠?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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