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주의 게임-206화 (206/257)

제206화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은 밀턴은 바로 움직였다.

‘반드시 죽인다.’

지크프리트를 함정에 빠트려서 완벽하게 죽일 찬스를 잡았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분명 두고두고 한으로 남을 것이다.

‘이놈만 죽이면, 공화국은 천천히 정리할 수 있어.’

메이치 성을 지키지 못해도 좋다.

아니, 발랑스 왕국의 서부 지역을 병합하지 못해도 좋다.

지크프리트의 목 하나만 취할 수 있다면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밀턴은 거칠게 검을 휘두르며 지크프리트를 몰아붙였다.

그런 밀턴의 옆에서 제롬이 호흡을 맞춰가며 지크프리트를 합동했다.

“크윽….”

지크프리트 본인도 마스터였지만 마스터 두 명의 합공을 받아낼 정도는 아니었다.

거기다 밀턴은 몰라도 제롬의 경우 순수하게 실력만 논해도 지크프리트보다 한 수 위에 있는 강자였다.

어떻게든 수비적으로 맞서며 버티고 있었지만 지크프리트는 점점 궁지에 몰렸다.

밀턴에게 입은 다리의 부상 때문에 열세는 점점 심해져 갔다.

“총사령관님을 지켜라!”

“우오오오오!”

주변에 있는 공화국 병사들은 어떻게든 지크프리트를 엄호하려고 했지만 무리였다.

숀은 철벽 부대의 일부를 밖으로 빼돌려서 밀턴과 제롬의 방해가 끼어들지 않도록 철저하게 벽을 쳤다.

“죽어라.”

후우웅!

제롬의 일격이 지크프리트를 노리고 매섭게 날아들었다.

“큭….”

‘막으면 안 돼.’

지크프리트는 자신의 허리를 노리고 날아오는 일격을 간신히 피했다.

하지만 동작을 너무 크게 취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빈틈을 노리고 밀턴이 다음 일격을 날렸다.

“좀 죽어!”

날카로운 고성과 함께 밀턴의 일격이 지크프리트의 미간을 노리고 날아갔다.

“흡!”

지크프리트는 허리가 빠진 상황에서도 온 힘을 다 실어서 밀턴의 검을 쳐냈다.

아니 쳐내려고 했다.

하지만….

후웅!

밀턴의 검을 쳐내려고 했던 지크프리트의 검은 허무하게 공기만 베어냈다.

검이 부딪히기 직전에 밀턴이 가볍게 검을 거둔 것이다.

그때 악에 바쳤던 밀턴의 표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차분하게 변해 있었다.

‘당했다.’

지크프리트는 밀턴의 냉정한 표정을 보고서야 자신이 낚였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한 박자 빠르게 밀턴의 숄더 차지가 지크프리트의 가슴팍에 작렬했다.

터어엉!

“크아악!”

지크프리트의 입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순간적으로 가슴의 늑골이 부러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몇 미터는 뒤로 밀려나서 쓰러진 지크프리트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어찌어찌 일어났다.

“쿨럭…. 빌어먹을….”

‘폐가 찌그러진 건가? 제길….’

밀턴의 일격에 지크프리트는 호흡도 힘들어졌다.

다리의 검상에서는 피가 멎지 않았고 온몸에 상처가 자잘하다.

오러도 대량 소비했고 거기다 이번에 당한 일격은 실로 결정타였다.

그야말로 절체절명.

이 상황에서 지크프리트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그래도 저 새끼는 혹시 몰라.’

밀턴은 조금도 방심하지 않고 바로 지크프리트에게 달려들었다.

딱히 죽기 직전에 유언이라도 남겨 보라는 식의 배려는 없었다.

밀턴의 입장에서 보기에 지크프리트는 그냥 시대의 괴물이었다.

그런 괴물에게 자비는 무슨 자비란 말인가?

괜히 그런 식으로 쓸데없이 시간을 들이다가 저 괴물이 다시 살아나면 그게 더 골치였다.

“죽어라.”

밀턴은 단숨에 지크프리트의 목을 날려 버리기 위해서 검을 휘둘렀다.

“자…. 잠깐….”

지크프리트가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밀턴이 검을 멈출 이유는 되지 못했다.

서걱.

깔끔한 일격.

날카로운 섬광이 지크프리트의 목을 지나갔고 지크프리트의 머리는 바닥에 허무하게 떨어졌다.

“아…. 됐다.”

밀턴은 안도감과 성취감을 동시에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해냈다.

밀턴에게 있어서 지크프리트의 존재는 그야말로 인생을 가로막고 있는 하나의 벽과 같은 존재였다.

그 존재를 드디어 처리한 것이다.

‘잘 가라. 다음 생이 있다면 제발 만나지 말자.’

밀턴은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지크프리트의 명복을 빌었다.

그런데 그때….

“주군, 위험합니다.”

다급한 제롬의 목소리와 함께 밀턴은 자신의 옆에서 굉장한 충격파가 터지는 것을 느꼈다.

퍼어어엉!

“크윽….”

갑작스런 충격에 밀턴은 귀에 멍한 이명이 들려왔다.

“이게 무슨… 음?”

밀턴은 깜짝 놀랐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몹시 아쉽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지크프리트가 있는 것이다.

‘어떻게?’

방금 자신이 목을 날려 버렸는데 어째서 지크프리트가 살아 있는 것일까?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밀턴을 보고 제롬이 외쳤다.

“주군, 뭐 하시는 겁니까? 전쟁 중에 갑자기 멍하니 있으시다니?”

“내가 멍하니 있었다고?”

밀턴은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제롬의 다급한 표정을 보니 정말 자신이 정신을 놨던 모양이다.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왜 정신을 갑자기…. 음?’

순간 밀턴은 다시 한번 자신의 정신이 흐릿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서 전신의 오러를 일깨웠다.

“하압!”

그러자 밀턴은 머리가 개운해지고 자신을 감싸고 있던 끈끈한 무언가가 떨어져 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쯧, 역시 두 번은 안 통하나?”

약간 떨어진 공화국의 본진에서 엘리제는 혀를 차며 아쉬워했다.

멀리서 지크프리트의 위기를 보고 특기인 환술로 손을 쓴 것이다.

보통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그것도 마스터 수준의 강자에게 환술을 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때 밀턴은 지크프리트라는 대어를 다 잡았다는 생각에 몹시 흥분했고 마음에 냉정함을 잃고 있었다.

덕분에 엘리제는 간단한 환술을 걸 수 있었다.

“네가 원하는 것을 이뤄주마. 달콤한 꿈의 세계로 오렴.”

엘리제의 그 마법으로 인해서 밀턴은 자신의 검으로 지크프리트의 목을 날려 버린다는 환상에 빠졌다.

정작 현실에서는 갑자기 공격을 멈추고 멍하니 정신을 놓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 틈을 노리고 지크프리트가 역으로 밀턴의 목을 노렸지만 제롬이 다행이도 막아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두 번은 무리야. 이제는 저 남자가 알아서 빠져나오는 수밖에….”

엘리제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가 한계였다.

지금부터 죽고 살고는 온전히 지크프리트에게 달린 것이다.

“제길, 지크프리트. 네놈 부하의 짓이냐?”

환상 속에서 깨어난 밀턴이 이를 갈며 말했다.

그러자 지크프리트는 가쁘게 숨을 고르며 대답했다.

“글쎄? 나야 모르지.”

물론 지크프리트는 알고 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기 위해서 의뭉스럽게 말하는 것뿐이다.

“빌어먹을 자식이….”

그리고 이런 지크프리트의 허세가 밀턴에게 통했다.

‘마법사인가? 비앙카와 같은 마법사가 손을 쓴 걸까?’

밀턴도 대강 짐작은 하고 있었다.

고스트가 사용하는 비약이나 이전의 전투의 흔적을 자세하게 조사해 보면 지크프리트 주변에는 분명 마법사가 있었다.

그리고 밀턴이 알기로 마법사라는 존재는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미지의 존재이기에 두려운 것이다.

‘조금 전에 나에게 보여준 환상을 또 걸 수 있을까? 대응법은?’

신중한 것은 밀턴의 장점 중에 하나지만, 때에 따라서는 신중함이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지크프리트 본인은 지금 당장 쓰러질 것처럼 엉망이 된 상태다.

먼저 덤비는 것은 고사하고 부상 때문에 도주하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여유 만만한 미소와 의미심장한 발언으로 밀턴을 막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때 밀턴의 옆에 있는 제롬이 달려들었다.

“닥치고 죽어라. 지크프리트.”

‘제길….’

밀턴과 달리 허세가 통하지 않는 제롬의 행동에 지크프리트는 이를 악물었다.

급하게 검을 들어서 막아 보려고 했지만 이미 지크프리트의 검에는 오러가 없었다.

‘끝인가?’

천하의 지크프리트라도 이때만큼은 죽음을 안 떠올릴 수 없었다.

그러나….

“제롬 테이커!”

한 명의 거한이 허공에서 떨어졌다.

2미터가 넘는 거대한 투핸디 소드를 들고 메이치 성벽 위에서 뛰어내린 그 거한은 바로 제이크였다.

“큭….”

콰아아앙!

제롬은 지크프리트의 목을 거둘 수 있었지만 제이크의 살기가 워낙 흉흉해서 반사적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제롬이 피한 자리에는 커다란 바위라도 떨어진 것처럼 지면이 움푹 패여 있었다.

‘저 무식한 놈. 성벽 위에서 뛰어내렸다는 건가?’

성벽의 안쪽에서 내려오는 계단은 숀이 철벽 부대를 지휘하며 막고 있었다.

만약 정면으로 뚫고 왔다면 밀턴이 미리 알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나타난 것은 놈이 무모하게도 성벽 위에서 그대로 뛰어내렸기 때문이다.

마스터의 신체 능력이면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기 한 몸을 적진의 한가운데에 집어 던지다니?

밀턴의 입장에서 보면 짜증도 이런 짜증이 없었다.

“이런 썩을 새끼들이 진짜….”

밀턴은 혈압이 솟구쳐서 혈관이 끊어질 것 같은 분노에 휩싸였다.

제롬이라는 강력한 전력을 조커로 활용하기 위해 수성전에서 완전히 제외시키면서까지 간신히 만들어낸 함정이다.

덕분에 지크프리트의 목을 취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런데 이 타이밍에 또 방해가 들어온다고?

“빌어먹을! 포기할 것 같으냐?!”

밀턴은 간절했다.

이번 기회에 정말로 지크프리트의 목을 날려버리기 위해서 다시 한번 돌격했다.

그리고 제롬 역시 그런 밀턴과 함께 돌진했다.

‘주군께서 너무 흥분하셨다. 하지만 말리기에는 너무 좋은 기회야.’

제롬은 밀턴보다 좀 더 냉정했다.

지크프리트에 대한 위기감이 밀턴보다 덜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냉정을 유지한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제이크 저놈의 목이라도 취하는 게 이득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제롬은 그대로 밀턴과 함께 제이크를 공격하려 했다.

지크프리트는 이미 전투 불능의 상태나 마찬가지니 여전히 2대1의 수적 우위는 여전했다.

그런데….

“총사령관님을 살려라!”

“공화국 만세!”

밀턴과 제롬의 머리 위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냥 비가 아니라 사람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공화국의 병사들과 고스트 대원들이 자기 목숨은 아랑곳하지 않고 밀턴과 제롬에게 떨어져 내린 것이다.

“이 미친 것들.”

밀턴은 순간 어이가 없었다.

제이크야 마스터의 신체 능력이 있으니 도박을 할 수 있었다 치자.

그런데 저놈들은 뭐란 말인가?

‘일본의 자살특공대도 아니고….’

양팔을 쫙 벌리고 떨어져 내리는 공화국군을 보며 밀턴은 급하게 하늘로 검을 휘둘렀다.

콰아앙!

“크악!”

“크아아악!”

공화국의 병사들과 고스트 대원들이 비명을 질렀지만 그래도 놈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밀턴과 제롬에게 뛰어내려서 둘의 발을 묶었고 이 틈에 제이크는 지크프리트를 챙겨서 전선을 이탈하고 있었다.

그리고 공화국군 쪽에서는 길게 퇴각 나팔이 울렸다.

“후퇴! 후퇴하라!”

그리고 공화국군은 일사불란하게 물러나기 시작했다.

지크프리트가 중상을 입기는 했지만 그 이외의 국면에서는 틀림없이 공화국이 이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승리를 포기하고 지크프리트의 안위를 더 우선시해서 퇴각한 것이다.

“놓치지 마라! 적을 추격하라!”

밀턴은 레너드의 등 위에 다시 오르면서 전군을 이끌고 그런 공화국군을 추격했다.

사실 공화국군을 추격하는 게 아니라 지크프리트를 끝까지 잡아 보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지크프리트를 살리기 위해서 공화국군 병사들과 고스트들은 끈질기게 밀턴의 발목을 잡았다.

“공화국 만세!”

“낙원에서 만나자 형제들이여!”

밀턴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병사들에게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다.

“비켜. 이 광신도 새끼들아!”

밀턴과 제롬이 하나로 뭉쳐서 무지막지한 위력으로 적들을 돌파했다.

하지만, 그런 밀턴과 제롬의 무력보다 공화국군 병사들의 집념이 한 수 위였던 것일까?

막대한 피해를 입으면서도 결국 추적을 저지했고 지크프리트는 놓치고 말았다.

“이겼다!”

“우오오오!”

“다시는 오지 마라. 공화국 광신도 새끼들아!”

메이치 성벽의 위에서는 레스터 왕국군의 병사들이 승리의 환호성을 질렀다.

어쨌든 전쟁의 결과는 레스터 왕국군의 수성 성공으로 끝난 것이니 이긴 것이다.

다만, 그런 환호성 속에서도 밀턴은 못내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올지 모르는데….’

아쉬워도 너무 아쉬운 밀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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